[1분과학] 산타가 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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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과학·북툰·SOD

2020. 12. 24.

 

 

 

실제 제가 겪은 이야기로 만들었습니다.

 

모태신앙이었던 나는 중학생 때 종교에 대한 믿음이 없어졌다.

그런데 갑자기 성당을 안다니겠다고 하면, 어머니께서 실망하실까봐

성인이 될 때까지 매주 일요일에 어머니와 성당을 다녔다.

 

그래서 일요일은 자연스럽게 나의 사색시간이 되었다.

성서에서 하는 모든 말이 맞다고 치자.

정말로 신이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분하고

천국과 지옥에 보낸다고 치자.

성서에서 나오는 끔찍한 노예제도, 당연하듯 하는 성차별

 

아브라함에게 외아들 이삭을 산채로 제물로 바치라는 하느님

십계명에 강간하지 말라는 말은 안 하셨지만

본인의 이름은 함부로 부르지 말라고는 하신 하느님

죄 없는 아이들은 왜 죽는 것이며

아프리카에서 하느님에 대해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다 지옥에 가게 되는 건지.

그리고 딸은 왜 치지 말라는 건지!’

수많은 의문이 들지만 다 맞다고 치자.

인간은 감히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의 빅픽쳐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도대체 왜, 천국과 지옥에 가는 기준이

하느님을 믿느냐 안 믿느냐일까?

도대체 왜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지옥에 간다고 하는 걸까?

 

보이지 않는 걸 안 믿는다고 해서 처벌을 하는 게 맞는 건가?

보이지 않으니까 안 믿는 건데, 그게 왜 문제가 되는 거지?

 

신이 정말 우리를 구원해주고 싶으면

그냥 눈앞에 나타나면 되는 것 아닌가?

왜 굳이 안 보이는 곳에 숨으셔서 믿으라고만 하는 거지?

 

순간 머릿속에 무엇인가 떠올랐다.

! 혹시 보이지 않는 걸 믿는 것 자체가 중요한 건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걸 믿는 힘을 길러주시려고 하는 건가?‘

 

생각해보면 우린

보이지 않는 걸 믿는 힘이 없으면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미래의 목표도 세울 수 없을 것이고

꿈도 꿀 수 없을 것이고

희망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가상의 보이지 않는 목표를 이루어야 한다는 의지

심지어 살아야겠다는 의지조차 없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걸 믿지 않는데, 왜 살아야 하겠는가?

 

그때 미사의 마지막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한 청년이 나와 성서에 있는 구절을 읽었다.

오늘의 구절은 로마서 824절에서 25절입니다.

우리는 이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겠습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기에 참고 기다릴 따름입니다.

미사가 끝났습니다.

가족과 함께 평온한 저녁 되시길 바랍니다.”

 

소름이 돈은 나는

미사가 끝나자마자 구절을 읽은 청년에게 달려가 불었다.

지금 어떤 구절 읽은 거예요?”

 

청년은 의아해하며 구절을 적은 포스트잇을 보여줬다.

포스트잇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나를 보고

옆에서 지켜보던 청년은 나에게 말했다.

그거 가져가실래요?”

 

그 포스트잇은 15년이 지난 지금, 나의 서랍장 안에 있다.

어떻게..

내가 보이지 않는 걸 믿는 힘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도중에,

보이지 않는 걸 믿는 것에 대한 구절이 나올 수가 있지?

신이 나에게 무언가를 알려주려 했던 걸까?

 

순간 혹했지만 믿음은 돌아오지 않았고, 나는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 동창회가 있었던 날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나에게 대뜸 말했다.

우린 왜 살까?”

 

내가 말했다.

나도 그게 궁금해. 우린 왜 살까?

우리 인생은 이 우주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친구가 말했다.

아니 그거 말고.. 왜 살아야 하지?”

 

내가 대답했다.

행복해.. 지려고?”

 

친구가 말했다.

그런데 그 감정은 결국 사라지잖아.”

 

난 이때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감정이 결국 사라지는데 왜 살아야 하는가? 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물었다.

그 감정이 사라지면 내일 다시 행복한 일들을 하면서 행복해하면 되잖아?”

 

친구가 말했다.

그런데 그 감정도 사라지잖아

 

난 기분이 이상했다.

이 친구에게는 나에게 있는 뭔가가 없는 것 같았다.

내가 물었다.

넌 꿈이 뭔데? 목표가 있어?”

 

친구가 답했다.

“LA에서 사는 거

!? 아니, 사는 거 말고..

사는 건 그냥 거기 가서 살면 되잖아. 그런 거 말고

뭔가 미래에 이루고 싶은 거나, 되고 싶은 것 같은 거... 없어?

내가 물었다.

친구는 고민을 좀 하더니 입을 열었다.

없는데

 

놀란 내가 물었다.

없어? 한 번도 없었어? 어릴 때도?”

 

친구가 말했다.

 

내가 물었다.

그럼 넌 뭔가를 믿어본 적 있어? 종교나 뭐 아무거나

 

친구가 말했다.

없어.”

 

내가 물었다.

산타도?”

, 우리 집은 종교가 없었고, 산타에 대해서 말해본 적도 없어.”

 

들어보니 이 친구는 굉장히 특이한 가정사를 갖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 친구를 키우는 방식은 돈으로 지원해주는 것,

그거 딱 하나뿐이었다.

신기하게도 금전적으로는 아낌없이 지원을 해줬지만,

산타든, 신이든, 무엇이든

아빠 엄마가 정성스레 가르쳐준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 친구가 중학교에 입학할 땐, 부모님이 혼자 살라며 이 어린아이를 서울에 혼자 보내

자취방까지 스스로 구해서 살게 했으니...

신이나 산타같은 따뜻한 이야기는 해주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건 이 친구는 밖에서 누구보다 밝고 행복한 친구라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무뎌지는 법이 없고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정말 지금 이 순간만을 행복하게 사는 아이다.

 

얼음이 녹는 걸 가만히 관찰하기도 하고, 선크림을 바르려고 이마에 선크림을 콕 찍고 나면

그게 이뻐서 또 한참을 본다고 한다.

나는 그 순간 무엇인가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다.

너 혹시 LSDmushroom같은 환각제 해봤어?”

 

내가 이렇게 물은 이유는

그의 행동이 LSDmushroom을 한 사람의 행동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LSDmushroom과 같은 환각제를 한 사람은 자신의 자이가 사라지는 경험을 한다.

뇌 스캔을 하면, 이 환각제를 한 사람의 뇌는

숙련된 명상가가 자신의 자아를 내려놓는 명상을 할 때의 뇌와 같아진다.

이 사람들은 나와 외부 세계를 구분 짓던 자아라는 녀석이 사라지는 경험을 하면서

자신이 세상과 하나 되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보리수나무 아래 앉아 밥도 먹지 않고 명상만 하던 부처가

49일째에 깨달음을 얻고

모든 것은 하나다!” 라고 외쳤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서 이 사람들은 자신과 하나 된 이 세상에

엄청난 애정을 느끼고 세상의 아름다움에 심취한다.

그래서 난 이 친구에세 자아가 있는지 테스트해보기로 했다.

 

자아가 강한 사람은

나의 몸, 나의 물건, 나의 차, 나의 집, 나의 직업

이렇게 나의 00을 늘려가면서 라는 자아의 영역을 넓혀가고

그것에 대해 굉장히 방어적인 태도를 취한다.

 

테스트를 시작했다.

너는 소유욕이 있어?

아니, 난 그런 거 없어. 사람들이 왜 무언가를 소유하려는지 모르겠어.

그 물건이 보고 싶으면 그냥 거기 가서 보면 되는데...

그래서 난 자주 돌아다녀!“

 

내가 물었다.

그럼 만약에 어떤 사람이 너가 어렸을 때부터 갖고 놀던 인형을

너 앞에서 막 발로 밟고 때리고 던지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

 

이번엔 친구가 웃으면서 말했다.

웃길 것 같아. 인형한테 그러는 게 웃기지 않아

 

흥미로웠다. 난 더 확실한 질문을 해보기로 했다.

그러면 가족은?

어떤 사람이 너희 부모님한테 가서 인격모독을 막하면서 시비를 걸고 욕을 해.

그걸 보면 어떨 것 같아?“

그러면 그 오해를 풀려고 할 것 같아

 

난 눈이 똥그래져서 말했다.

화 안나?“

그러자 되려 친구도 눈이 똥그래지며 말했다.

화가 나? 그게 왜 화가나?“

 

난 너무 재밌어서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친구는 곧, 나에게 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줬다.

넌 너의 얼굴이 낯설어 보인 적 있어?

난 거울을 보면 자주 나의 얼굴이 낯설게 느껴져.

그리고 내 팔이나 내 손이 움직이는 걸 보면 신기해

신비로워서 마냥 쳐다보게 돼

 

놀랍게도 이 친구는...

자아가 없는 것 같았다.

그가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왜 살까?“

 

놀랍게도 난 말문이 막혔다.

말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난 서둘러 내가 왜 사는지를 생각해보았다.

감정이 계속 사라진다는 걸 나도 알고 있는데... 그럼 나는 왜 살지?‘

 

! 나는 미래를 보며 가상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사는구나.

그런데 끄 목표는 왜 설정한 거지?

내가 느끼는 감정은 다 사라지는데, 무엇을 위해 그 목표를 이루려고 하지?

나는... 왜 살지?

! 내가 1분과학을 하는 이유, 내가 책을 읽고 공부를 하는 이유는 모두

이 세상이 궁금해서, 이 세상을 알아아기 위해서구나!’

 

간신히 이유를 찾은 내가 대답했다.

나는 이 세상을 알아가려고 살아

나는 이 세상이 꿍금하거든.

이 세상은 뭐고, 나는 누구인지... 이런 게 궁금해!“

 

친구가 물었다.

그게 왜 궁금해?“

그러게.. 나는 이게 왜 궁금하지?

처음 생각해보았다.

내가 말했다.

내가 그걸 궁금해하는 이유는 결국 이거 같아.

내가 이 우주에서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이 우주는 왜 존재하는지,

그런 본질적인 것들 있잖아?

그것에 대해 알고 싶어.“

 

그러자 친구가 말했다.

이 세상에 의미라는 건 없어

의미라는 건 존재하지 않아.

의미는 사람들이 만드는 거야.”

 

내가 말했다.

아니, 만약에 이 세상을 정말 어떤 신이 만들었어.

아니면, 이 세상이 시뮬레이션이야.

그냥 또 다른 세계의 인간이 이 시뮬레이션을 만든 거지.

그러면 그게 우리의 존재에 대한 어떤 의미를... 주지 않나!”?“

 

친구가 말했다.

그건 그냥 이 세상이 만들어지게 된 원인이지 의미가 아니잖아.

의미라는 건 존재하지 않아

 

사실이었다.

내가 일평생 찾던 그 의미라는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면 난... 왜 살까?

 

20세기 초 프랑스의 철학자, 알버트 카머스의 말이 생각났다.

철학에 있어서 진짜 질문은 단 하나다 자살.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가 하는 것이 철학의 궁극적인 질문이다.

나머지는 디테일이다.“

 

정말 놀라웠다.

자아가 없는 친구와 대화하는지 1시간 만에

난 처음으로 카머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이해가 됐다.

그동안 나의 자아가 나의 눈을 가리고 있던 걸까?

 

나는 재미있는 예시가 생각나 입을 뗐다

, 그럼 상상해봐...”

친구가 말했다.

난 상상을 못해.. 나는 그냥... 상상이라는 게 안 돼.“

 

그랬다.

이 아이에게는 보이지 않는 걸 믿는 힘이 없었다.

그래서 목표나 꿈을 설정하지 못하는 것이었고

미래를 보지 않고, 바로 내일도 보지 않고

온전히, 지금 이 순간만을 사는 것이었다.

 

난 생각했다.

아 아이는 보이지 않는 걸 상상할 줄 모른다.

보이지 않는 걸 믿는 힘이 없다.

그건 아마 어렸을 적부터 보이지 않는 신을 믿어볼 기회

심지어 어렸을 때 누구나 거쳐야 할 산타를 믿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아이는 존재하지 않는 걸 상상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산타, , 목표 이외에 상상하지 못하는 것이 하나 더 있었다.

그건 바로, 자아였다.

 

이 친구에겐 라는 것까지가 상상의 산물이었다.

라는 것도 환상이라는 걸까?

복잡한 감정이었다.

 

이 친구가 어렸을 때 산타라도 믿었다면 이렇게 않았을 텐데...

크리스마스에 산타가 우리에게 준 선물은

자동차나 인형이 아니었다.

 

산타가 준 진짜 선물은 바로 였다.

그것이 좋은 것이지 나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