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범스님_하나가 있는 곳에는 전체가 있고 [통도사화엄산림대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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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법문/종범스님_법문

2021. 1. 21.

 

 

오늘 제가 말씀드리는 내용은요

이렇게 안내서가 떡 왔는데요

옛날보다 굉장히 발전했더라고요, 종이도 좋고..

나날이 발전을 해요.

 

여기보면 여래출현품에 대해서 법문을 하십시오 하는 내용이 있어요.

여래출현품을 오늘 하는데요

 

화엄경은 93980. 이게 화엄경이거든요.

그래서 9회 설법, 39, 80. 이러는데

여래출현품은 회차로 보면 9회중에 7회설법

품차로 보면 39품 중에 제 37품이에요.

권차로 보면 권의 차례는 80권 화엄경중에 5051, 52, 3권이에요.

거기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이 화엄경이라는 것은요, 대방광불, 대방광불을 말씀하는 경이고

화장장, 화장이라는 것은 공덕이 많다, 연꽃 화,

연꽃을 보면 연잎도 많고, 연씨앗이 꽉 찼거든요.

그래서 많다, 또 저장되어 있다. 많은 공덕으로 저장해서.

 

그러니까 화장은 공덕이 많다 이 소리에요.

많은 공덕으로 장업을 한다.

장엄이라는 게 막 꾸민다는 거죠.

 

그래서 화엄경은 대방광불을 말하고 화장장엄을 말하고

또 화엄경은 일승원교를 말한다.

불교가 대승불교, 일승불교가 있는데, 대승에서 더 깊게 들어가면 한 일, 일승이거든요.

그런데 그 일승 중에서도 둥글 원, 가르칠 교, 일승원교라고 하면

바로 화엄경만을 일승원교라고 해요.

 

여기에는 허공과 같아서 모든 불교가 포함되지 않은 게 없다.

그래서 화엄경은 대방광불, 화장장엄, 일승원교.

화엄에만 대 자를 붙여요, 대화엄경, 일승원교대화엄경, 화장장엄대화엄경, 대방광불대화엄경

그게 화엄경이고요.

 

그런데 이 화엄경은 인과원만이다.

인과원만이라는 게 뭐냐?

이 화엄경은 결과만 원만한 게 아니라, 원인도 원만하다.

결과도 원만하고 원인도 원만하다.

이게 뭔 소리냐?

 

화엄경은 뭘 마지막으로 이룰 때만 그게 훌륭한 게 아니라

시작할 때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마칠 때도 훌륭하고

다 훌륭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것을 시작이나 중간이나 마지막이나 어려운 말이 있는데

법성덕용이라. 법성, 이 만법의 근원이 법성인데

만법의 근원의 공덕작용이라는 거죠. 시작과 중간과 끝이.

 

그래서 일체만법이 법성덕용이기 때문에

화엄경은 행행이 본처요, 걸을걸음이 다 본래자리에 있다.

갈 행, 간다. 가도가도 본래자리에 있는 것이 화엄경이다.

 

또 지지가 발처라. 이른다 하는 이를 치, 이르러도 이르러도 출발한 것이다.

가도가도 본래의 곳이고, 이르러도 이르러도 출발한 곳이다.

이걸 말하는 게 화엄경이에요.

 

그러니까 화엄경은 부처님이 성불했을 때만 화엄경이 아니라 처음 발심할 때도 화엄경이에요.

그래서 발심도 원만하고 성불도 원만하다.

 

그래서 초발심과 최정각

초발심도 원만하고, 최정각도 원만해서

다 인과가 법성덕용이고, 대방광불화장장엄이다.

이걸 말하는 게 화엄경이에요.

 

그리고 전체도 법성덕용이고, 부분도 법성덕용이라.

부분도 완전하고 전체도 완전하다.

 

초발심이 없으면 최정각도 없고

최정각이 있는데는 반드시 초발심이 있다 이거죠.

하나가 있는 데는 전체가 있고

전체가 있는 데는 하나가 있다.

 

그래서 성불해서 부처님으로 출현하는 것도 훌륭하지만

하나하나 공덕을 닦아나가는 것도 부처님이 출현하는 거와 똑같이 훌륭하다고 가르치는 그게 화엄경이에요.

 

우리가 여기 앉아서 화엄경 법문을 듣고 화엄경 공부하는 것은

이게 바로 원만한 성불인 거예요.

그런데 중생은 그걸 모를 뿐이에요.

몰라도 성불은 성불이거든요.

 

그러니까 1원짜리가 10개가 있어서 10원인데, 10개 전체가 10원인데

10원은 1원이 있기 때문에 10원이 된 거예요.

1원 없으면 10원이 안 돼요.

10원 속에는 반드시 1원이 있어요.

1원은 10원이 되고.

 

그러니까 1원이나 10원이나 똑같은 거예요.

1원 없는 10원도 없고, 10원 없는 1원도 없다.

그게 화엄경이거든요.

일중일체, 하나 가운데 일체가 있다.

일즉일체다, 하나가 곧 일체다.

이게 화엄경이거든요.

 

이 자리에서 화엄경 법문 들으면

그게 10원 속의 1원과 같기 때문에 그게 성불인 거예요.

그걸 가르치는 게 화엄경이에요.

 

그래서 인과를 항상 말하는데

처음에 어떤 거로 출발하느냐 하면

부처님이 성불하는 거로 출발하거든요.

또 나중에 발심해서 성불하는 것을 여래 출현이라고 말을 하고요

옛날에 부처님 발심해서 성불하신 것을 시성정각이라고 그래요.

처음으로 정각을 이루셨다.

 

그런데 부처님 법문 듣고 발심해서 닦고닦고 닦아서 부처님이 처음으로 성불했을 때는

여래출현이다, 이렇게 얘기하고

부처님이 옛날에 닦고닦고 닦아서 부처님이 처음으로 깨달았을 때를 시성정각

처음시 이룰 성, 바를 정, 깨달을 각, 처음으로 바른 깨달음을 이루셨다.

이렇게 되거든요.

 

그러면 이 시성정각은 발심수행이 있었기 때문에 이룬 거예요.

그래서 발심수행이 바로 시성정각이고, 시성정각이 바로 발심수행이다.

인이 원만하고 과가 원만하다 이거거든요.

 

화엄경 초회에는 부처님 성불을 얘기해요.

초회. 9회 중에 처음 법회, 법회 회.

부처님이 처음 깨달았을 때, 뭐가 어떻게 됐는가?

거기에 대해서 제일 먼저 시작하는 게 ***

그 초회설법은 부처님이 정각을 이룬 내용을 이야기 하거든요.

 

부처님이 정각을 이루니까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지혜가 나타나는 거예요.

각이라는 건 지혜거든요.

그러면 이 깨달은 지혜가 뭐냐? 각지. 각지인데.

 

각지는 미혹과 반대되는 말이에요.

미혹이 없으면 각지가 없거든요.

그래서 미혹에서 깨달은 지혜를 얻는 거잖아요.

 

그러면 육도범부가 미혹을 하고, 삼세제불이 정각을 했다.

삼세제불이 되려면 정각을 해야지 예불이에요.

그런데 중생이 되려면 미혹해야 중생이에요.

미혹 안하면 중생일 수가 없죠.

 

미혹하니까 중생이거든요.

미혹이라는 건 잘 모르는 거예요.

예를 들면 노란 뱀이 동그랗게 있는데, 그걸 황금으로 보는 거, 그걸 미혹이라고 그래요.

노란뱀이 똬리를 틀고 딱~~ 있는데 그걸 황금으로 알고 그 잠든 뱀을 주워왔어요.

집에 놔뒀어요. 장롱 깊숙이 놔뒀는데

이 뱀이 잠에서 깼어요.

그러면 얼마나 놀래고 무섭겠어요.

 

그래서 노란뱀을 황금으로 안 것을 미혹이라고 그러고

그걸 주워 온 것을 업이라고 그러고요.

나중에 뱀이 잠이 깨서 물리고 쫓기는 것을 고통이라고 그래요.

혹업고라고 그래요. 그게 미혹이거든요.

 

그럼 미혹이 뭐냐?

우리 몸이 있는데, 이 몸은 지수화풍 4가지. 사대육신이에요.

그런데 사대를 자기 몸으로 알고요, 또 생각이 있는데 그 생각은 수상행식, 4온을 자기 마음으로 알아요.

4대를 내 몸으로 알고, 4온을 내 마음으로 안다.

 

그래서 이 몸 받기 전에서부터 있었고, 이 몸 버린 후에까지 있는 청정법신을 모르고

44, 이 몸을 자기 몸으로 아는 것, 그걸 미혹이라고 그래요.

4대를 내 몸으로 알고, 수상행식 4온을 내 마음으로 안다.

 

그러면 이 수상행식이라고 하는 것은 그림자와 같아서

그림자는 몸을 움직이면 몸따라서 움직이는게 그림자거든요.

그래서 수상행식 4온은 늘 밖에 경계만 쫓아가요.

그래서 항상 나그네 마음, 나그네가 돌아다니는게 나그네거든요.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없는 이 발길~

 

이 생각이 조금 후에 어디로 갈지, 저녁에 무슨 꿈을 꿀지

전혀 몰라요. 그냥 헤매고 있어요.

그런데 그것밖에 모르는 거예요.

 

그러면 뭘 모르느냐?

청정법신을 모르고, 사대를 내 몸으로 안다.

또 청정지혜를 모르고 수상행식을 내 마음으로 안다.

이게 미혹이거든요.

 

그러면 깨달음이 뭐냐?

공덕을 많이 지어서 마음이 청정해지고 청정해지고 밝아지고 밝아지면

이 몸받기 전부터 있었던 청정법신을 알아요.

그걸 깨달음이라고 그래요.

 

또 생각이 아무리 일어나고 일어나도 그 생각 속에는 청정한 지혜가 있어요.

그 지혜가 드러나는 거예요.

청정법신을 아는 순간에 지혜가 드러나요.

그걸 깨달음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본래 몸, 그걸 모르고 지수화풍 4대 몸을 내 몸이라고 한다.

 

본래 지혜 그걸 모르고 수상행식, 4온심을 내 맘이라고 한다.

여기서 본래 몸을 알고, 본래 지혜를 얻는 그것이 깨달음이다.

 

처음에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니까 시성정각을 하니까

지혜가 드러나거든요.

그 지혜가 삼세에 들어간다.

 

그 지혜는 과거 현재 미래, 아무 장애가 없어요.

지혜를 보면요, 이것 속에 무량억겁이 여기 다 들어있고

무량억겁 뒤가 다 들어있고, 하나하나에 세월이 없어요.

세월 밖의 것을 봐요. 그걸 겁의 기혜라고 그래요. 겁은 세월이거든요.

 

겁 밖의 겁의 실상, 세월 밖에 있는 진실상을 보는 게 지혜이거든요.

그래서 지혜가 삼세에 들어가고

또 본래신이 신변시방이라. 본래신이 시방에 두루하다.

이것이 부처님의 시성정각이에요.

지혜가 과거현재미래에 다 관통하고

우리 본래 몸이 시방세계에 꽉 차 있다.

 

불신충만어법계라, 불신, 깨달음 몸인데, 그 깨달은 몸이 법계에 가득하다.

이렇게 가르치는 게 화엄경이거든요.

그걸 어디서 깨달았느냐? 보리도량에서 깨달았는데

중생한데 설명하는 게 보광 경전이에요.

 

그러면 깨달은 장소가 보리도량이고

설명하면 그게 보광명이에요.

보리장, 보리장은 깨달은 곳이고 설명하면 보광명이에요.

같은 거예요.

 

이 말은 뭐냐?

마지막으로 열매를 따면 그게 열매인데요

그걸 종자로 심으면 그게 씨앗이에요.

아 이것도 또 대단하네... ㅎㅎ

 

열매가 씨앗인 거예요.

그래서 깨달은 마음이 설법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처음에 부처님이 깨달았을 때는

지혜가 삼세에 들어가고 몸이 시방에 두루하다.

지입삼세, 신변시방 이렇게 얘기했는데

 

설법하는 부처님을 여래명호품에서 부처님을 이야기하거든요.

그럼 설법하는 부처님은 어떠하셨냐?

묘오개만, 묘한 깨달음이 다 가득하니.

 

묘오한 깨달음이 다 가득하다는 얘기는

번뇌를 끊은 것도 가득하고, 지혜도 가득하고, 불법도 가득하고

모든 부처님의 원력과 신통과 공덕이 다 원만하다, 이걸 말하는 거거든요.

앞에는 깨달음이 원만하다는 거고, 뒤에는 부처님의 공덕과 신통이 원만하다는 것을 설명해요.

화엄경, 알고 보면 아주 재미있는 경전이에요.

진짜 재미있어요.

 

재미를 못 느껴도 그 순간순간 성불한 거예요.

1원을 하나하나 세면 작지만, 모으면 수백조도 되고 수억조도 되고

거기서 하나 빠지면 안 되는 거예요.

이런 말을 잘 들으면 바로 성불하는데...

 

 

2. 두 번째 보광명전에 어떻게 설명했냐?

묘한 깨달음이 다 원만하니까 이행영절, 중생은 미혹해서 늘 취하고 버리고, 취하고 버리고

이 취사에 항상 살고 있어요.

취해도 취해도 계속 취하고요, 버려도 버려도 계속 버리고.

왜냐?

중생은 미혹애서 만족할 줄을 몰라요.

 

구해도 구해도 항상 채워지지 않는 빈가슴을 가지고 살아요.

그러니까 이 정도 많이 해주면 만족하겠지.

천만에 만만이에요.

 

꼭 받은놈이 더 받으려고 그래요.

안 받은놈은 아예 받을 생각을 안 해요.

안 믿어지세요?

꼭 받은 놈이 더 받으려고 그래요. 진짜예요.

왜냐하면 만족할 줄 몰라서 그래요.

 

그러니까 오래 살 생각하지 말고

만족하는 재주를 얻어야 해요.

만족하는 능력, 그걸 얻어야 해요.

 

만족하는 능력이 있으면

이 순간에 딱 열반에 들어도 하나도 여한이 없어요.

 

그런데 만족하는 능력이 없으면 10년을 살아도 20년을 살아도 맨날 더 살려고 그래요.

그러니까 죽기 전에 이 만족하는 능력을 얻고 죽어야 여한이 없어요.

 

얻은 게 있어야 한이 없다.

얻은 거 없이 죽으면 아무리 오래 살아도 한 천지에요.

한쟁이로 죽어요. 한쟁이.

 

!

한뿐이오.

이룬 게 많은 사람도 한이에요.

한쟁이에요. 너도 한쟁이 나도 한쟁이.

 

성불이라고 하는 것은

취하고 버리는 행이 영원히 끊어졌어요. 치사.

이행이 영절하고 주어불주라(두 가지 행이 영원히 끊어지고 항상 지혜에 머문다)

불은 지혜인데, 항상 지혜에 머물러요.

미혹하고 생각으로 구하다가 울면서 죽는게 아니라,

구하다가 울면서 죽어요. 그게 지혜가 없어 그렇거든요.

 

오래 살면 뭐 해요.

아무리 오래 살아도 죽을 때는 울면서 죽어요.

만족할 줄 몰라서 그렇거든요.

 

부처님은 소행무애라.

행하는 바가 걸림이 없다.

 

이게 뭐냐하면

좋은 거나 나쁜 거나, 하나도 취하고 버리는 두려움이 없어요.

취하고 버리는 건 두려움 때문에 그러거든요.

이것을 갖지 않으면 큰일난다.

이것을 내쫓지 않으면 큰일난다.

 

그런데 부처님은 늘 생각으로 보는 게 아니라 지혜로 보기 때문에

좋고 나쁜 거, 탐내고 성내고 이런 게 없어요.

무엇을 만나도 걸리는 바가 없다.

이게 소행이 무애라 그래요.

 

그리고 또 보견삼세라고, 삼세를 널리 다 봐요.

이게 설법하시는 부처님이에요.

삼세를 널리 다 본다는 것은 뭐냐?

지금 아무리 강하고 웅장해도 앞으로는 다 없어질 거예요.

 

미래라는 게요, 과거에요.

미래를 궁금해 할 필요가 없어요.

과거를 보면 그 과거를 미래에요.

이 말도 안해야 되는데, 이거.. ...

 

미래는 과거다.

나의 미래가 어떨까?

돌아가신 어머니가 나의 미래에요.

그걸 몰라요.

 

옛날 경봉큰스님, 화엄입제법문하면 그런 말씀 하셨어요.

아버지 장가가서 고생하는 것 뻔히 보면서도

저도 장가가서 고생하고

어머니 시집와서 고생하는 것 뻔히 보면서

자신도 시집가서 고생한다고.

그런데 자기가 시집갈 때는 어머니 같지 않으리라고 철석같이 믿고 가거든.

웬걸, 살아보세요.

 

부처님은 무서운 게 없어요.

아무리 강한 것도 세월지나 가면 다 과거에 없어진 것처럼 다 없어져요.

 

그래서 보견삼세라.

널리 삼세를 보고 사는 게 부처님이다.

보견삼세.

 

이 삼세를 널리 보면, 탐내고 성낼 게 없어요.

그냥 자재하고 걸림이 없을 뿐이에요. 무애자재 할 뿐이에요.

무애자재, 그걸 깨달음이라고 그래요.

얼마나 쉬워요. 세상 쉬운 게 깨달음이지.

 

거기서부터 2회에서 십신을 설하고, 3회에서 십주, 4회에서 십행

5회에서 십회향, 6회에서 십지,

이렇게 해서 다시 보광명전에 와서

십일지를 말해요.

십통, 십정, 십일품, 아승지품, 여래수량품, 보살주처품, 불부사의법품, 여래십신상해품, 여래수호광명공덕품, 보현행품, 여래출현품

이게 11지거든요.

 

7번째, 다시 보광명전에서 설하는 11품 중에 제일 마지막품이 여래출현품이에요.

그러면 여래출현품에도 여래가 출현하니까 깨달음이잖아요.

 

그러면 여래출현품에서는 어떻게 말하나?

처음에 시작하기를 여래가 출현하기 위해서는 한가지 두가지 이런 거로 출현한 게 아니다.

수많은 여러 가지 공덕과 여러 가지 인연으로 출현했다. 이렇게 나와요.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하나 법문듣고, 하나하나 공부하고, 하나하나 좋은 인연짓는게

전부 여래가 출현하는 그 낱낱 행위에요.

 

태산이 아무리 커도 먼지 없으면 태산 안되듯이요.

먼지 없으면 태산이 아니에요.

그런데 보이는 것은 태산이니까 먼지가 안 보이거든요.

그게 또 범부에요.

아이고 그 말 하니까 머리가 다 근지럽네.

 

먼지는 안 보고 태산만 보냐 이거에요.

우리가 그래요.

스님들도 그래요. 기가 차서.

저 산 참 좋죠.

그 산이 먼지인데 왜 먼지는 안 보고 산만 보냐 이거에요.

 

그러니까 대단하게 이룬 거 속에는 그 하나하나를 닦은 것이 이 말이오.

그러니까 내가 하나 닦으면 그게 바로 이룬 거예요.

먼지가 바로 태산이듯이.

그게 화엄이에요.

 

그래서 여래 출현은 한가지 인연 한가지 공덕으로 된 게 아니라

많은 공덕과 많은 인연으로 여래 출현을 한다, 이렇게 나와요.

 

화엄경만 하더라도 제2의 보광명전에서부터 시작해서 쭉~ 가서

7회 다시 보광명전으로 화서 여래출현이 되거든요.

그다음에는 선제동자 출현이 또 있어요.

 

그래서 화엄경은 발심성불하는데 제2의 보광명전에서부터 제8회 이세간품까지가 한번 발심수행여래출현으로 되고

그다음에 9회 선제동자에서 시작해서 마지막까지 또 한번 깨달음이 펼쳐지는 거로 해요.

이게 화엄경이에요.

 

그래서 일단 여래명호품서부터 이세간품까지가 되면

그건 한번에 완전히 발심수행으로 여래출현이 끝나는 거고요

선제동자 발심수행으로서 마지막까지 가면 또 한번의 성불이 펼쳐지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인과인과 발심수행 여래출현, 발심수행 여래출현 이렇게 펼쳐지는 게 화엄경이에요.

알고보면 족보가 다 있고 순서가 있어서 어려울 것도 하나도 없고 이상할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과거보면 미래 훤히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젊은 사람이 조금 있으면 늙겠구나,

늙은 사람은 몇 년 있으면 다 가시겠구나.

 

여기 계신 분들 한 50년 후에 누가 살아남을까, 손 한 번 들어보세요.

나요 나요, 50년 후에 내가 있을 거예요.

100년 전 사람 지금 하나도 없잖아요.

100년 후에 지금 사람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있다가 없고 없다가 있는 이게 뭐냐?

대방광불 법성덕용이다.

 

여래출현품이 펼쳐지는데, 온갖 공덕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공덕을 닦는 것이 바로 여래출현이다.

 

오늘 내가 무슨 공덕 닦으면 그게 성불이에요.

절 한번 했으면 그게 성불이에요.

공부 하나 했으면 그게 성불이에요.

 

돈이 이만큼 돈 덩어리가 있는데

거기 1원은 작고 보고 돈 덩어리는 크게 보고

이게 미혹이에요.

1원이 바로 큰 돈덩어리인 거에요.

그 돈덩어리에서 1원 빼면요, 덩어리가 성립이 안 돼요.

 

그래서 여래출현품 제일 처음에 어떻게 시작하냐.

게송이 나오는데

정각공덕으로 대지출이라.

청정법신 본래면목을 깨달은 공덕으로 이 수상행식의 번뇌망상이 대지혜가 되어서 탁 출현하는 게 정각공덕이에요.

 

정각지혜를 원만보신이라고 그래요.

보라고 그러는 것은 보답의 몸인데 무슨 보답이냐?

깨달은 보답이요.

깨달은 보답으로 얻은 게 지혜에요.

 

그래서 그 지혜를 원만보신이라고 그래요.

그리고 막 여기저기 나타나는 걸 신통인데 그 신통을 100억 화신이라고 그래요.

그럼 뭘 깨달았나? 청정법신을 깨달은 거예요.

청정법신을 본래 몸이라 그러거든요.

청정법신은 못 깨달은 중생에게도 다 있어요.

그런데 깨달은 지혜몸이 없는 거라.

그래서 깨달으면 되는 거예요.

 

정각공덕으로 대지출이라.

정각의 공덕으로 대지혜가 출현했다.

이게 여래출현이에요.

 

그러면 여래지혜는 어떤 거냐?

여래를 알려고 하면, 욕지재불심, 모든 부처님의 마음을 알려고 하면

당관불지혜하라. 마땅히 부처님의 지혜를 관찰하라.

 

불지혜가 그게 부처님이거든요.

지혜없는 부처님 없어요.

불지혜가 부처님이기 때문에 불지혜를 관찰하라.

 

그런데 불지는 무의처하니

불지는 의지하는 곳이 없어요.

불지는 이 몸이 태어나서 이 몸에 의지하는 것도 아니고요

이 몸이 죽을 때 죽는데 의지하는 것도 아니고

무주요, 무주.

의지함이 없어요.

그래서 실상이에요. 진실상.

 

불지는 무주실사이라. 어려운 말인데요.

지혜라고 하는 것은 이건 무주이기 때문에

보이는데 머무는 것도 아니고 보이지 않는데 머무는 것도 아니고

과거에 머무는 것도 아니고 미래에 머무는 것도 아니고

그냥 진실상인 거예요.

 

그래서 생각을 맑혀야 이게 보이지

생각을 일으키면 안 보여요.

 

그런데 공부를 하다보면 생각으로 공부를 하려고 그러면

경상도 말로 디비쪼는 거예요.

생각을 맑히면 보이고, 생각을 일으키면 안 보이는데

일으켜서 구하려고 하거든요.

 

이건 예를 들면 나를 사랑해 달라고 하면서

왜 사랑하느냐 하고 자꾸 가서 때리는 거와 똑같아.

사랑받으려면 때리지 말고 그 사람이 원하는 걸 해주면

사랑이 올 거 아니에요.

그런데 사랑 못받는 사람들은요, 가서 때리기부터 해요.

그럼 못 받는 거예요.

 

그래서 이 깨달으려고 하면요, 생각부터 가라앉히면 돼요.

가라앉히면 깨달아요.

막 번뇌망상을 일으켜서 머리에 열나게 하면 못 깨달아.

이렇게 아주 간단한 거예요. 원리가.

원리가 아주 간단해요.

 

대지가 출현하는데 불지는 의처가 없다.

그래서 여공무소의라.

저 허공이 아무데도 허공은 의지하는 데가 없잖아요. 허공은.

 

그런데 모든 게 다 허공 속에 있어요.

그래서 이 깨달은 지혜는 어디에도 머물지 않지만 모든 것이 다 깨달은 지혜에 머문다.

이렇게 되고요.

 

또 이 깨달은 지혜는 여수잠류지,

물이 땅속에 잠겨서 흐르는데, 땅속에 흐르는 지하수와 같다고 그러는데

지하수는 겉으로 안 보이잖아요.

그런데 땅속으로 물이 흐르잖아요.

 

그러면 땅이라는 건 뭐냐? 우리 생각이에요.

생각 속에 지혜가 있는 거예요.

그게 생각에 덮여서 못 나타날 뿐이에요.

그래서 생각을 맑히면 그냥 드러나는 거예요.

 

무슨 말이 있느냐 하면

휴식이라는 쉴 식, 마음 식

식심이면 즉불이요, 마음을 쉬면 곧 부처요.

기심이면 즉범이라, 마음을 일으키면 곧 범부다.

마음 일으키면 범부이고 마음 쉬면 부처다.

 

땅속에 물이 흐르는데

흙을 계속 덮어서 물이 안 보일 뿐이죠.

그런데 그 지하수는 구지무부득이라.

땅속에 흐르는 물을 파서 이걸 뜨려고 그러면 지하수 못 얻는 사람이 없어요.

다 땅 파면 물이 나와요.

 

그래서 마음을 조용히 닦으면 다 지혜를 얻는 거예요.

그런데 번뇌망상을 계속 일으키니까 셈을 자꾸 흙으로 파묻는 거와 같아서 못 얻는다, 이 말이죠.

아따 굉장하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