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나방송] 고요한소리_ 9_2장 임종시의 생각­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우리는 어떤 과정을 통하여 다시 태어나는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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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법문/정목스님_유나방송

2021. 1. 26.

 

 

6. 경험의 등록

죽음직전의 생각-촉진 마음단계 다음에 죽음과정 상의 또 한 단계 즉 경험등록단계가 일어나는데 이 단계 역시 앞서 설명한 그대로이다.

받아들인 인상의 경험을 등록하는 데 그칠 뿐이며 심리적으로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

경험의 등록으로부터 어떤 결과가 초래될 일은 없다.

 

 

7. 숨지는 마음

이것은 현생에서 경험되는 마지막 생각이다

임종자는 이제 마음속으로 죽음을 알고 있다.

이때 죽음을 알아차리는 경험의 주체는 의식단계의 마음이 아니다.

그것은 무의식단계의 마음이다.

이는 금생에서의 마지막 무의식단계 생각으로서,

그 생각-대상은 곧 다음 생에서 첫 번째 무의식단계 생각의 생각-대상, 즉 금생과 연결시키는 재연결식의 생각대상이 된다.

숨지는 마음 역시 심리적으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아무런 업과도 가져오지 않는다.

그것은 마음의 떠남일 뿐이다.

따라서 마지막 생각으로 간주되는 것은 숨지는 마음이 아니라 5항에서 설명한 죽음직전의 생각-촉진 마음이다.

 

8. 재연결식

생각-과정의 다음 단계는 이제는 임종자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지만 아주 중요한 단계인 재연결식 혹은 재생식의 단계이다.

우리가 더 이상 마음을 영원불변한 것으로 보지 않게 되면,

하나의 생각-과정이 설혹 같은 인격체 내에서가 아니라 해도 다른 생각-과정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마음을 실상 그대로 식의 상태의 연속 혹은 열로 보게 되면

한 생에서의 어떤 식의 상태가 어떻게 다른 생에서의 다른 식의 상태를 야기할 수 있는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다음 생에서의 재연결식을 일으키는 것은 죽음직전 생각-촉진 마음이라 알려진 임종자의 최종 식의 상태이다.

 

빠띠산디 윈냐나는 항용 재연결식으로 번역되는데 현생을 내생과 연결시켜 주므로 적절한 역어일 듯싶다.

실제로 양쪽 식의 상태의 생각-대상이 동일한 것은 이 재연결식 때문이다.

바꿔 말하자면 마지막 죽어가는 생각의 생각-대상이, 그 생각-대상의 결과로 초래될 재연결식의 생각-대상이 되는 것이다.

재생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재연결식을 철저히 이해해야만 한다.

첫째, 재연결식을 일으키는 것은 숨지는 마음이 아니고 그에 선행하는 죽음 직전 생각촉진 마음임을 이해해야만 한다.

숨지는 마음은 무의식단계의 마음인 데 반해 마지막의 죽음 직전 생각-촉진 마음은 의식단계의 마음이다.

지는 마음이 재연결식을 일으킨다고 보는 견해도 있지만 옳지 않다.

왜냐하면,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지는 마음'은 단지 등록하는 역할만을 하고 결과를 가져올 어떤 활동적 기능도 수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임종 과정에서 그것은 마지막 생각이긴 하지만 무의식단계의 생각이다.

그것은 단지 죽는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을 등록하기만 한다.

변화의 법칙, 생성의 법칙, 연속성의 법칙,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 그리고 인력의 법칙에 따라,

마지막의 죽음직전 생각-촉진 마음은 강력한 마지막 생각-대상 혹은 죽음의 표시 중의 하나를 그 생각-대상으로 받아들이며

방금 언급한 것과 같은 법칙들의 작용에 의해 재연결식 즉 다음 생의 핵을 구성하는 무의식 형태의 한 생각을 일으킨다.

 

임종자의 죽음직전 생각-촉진 마음이 재연결식을 일으킨다고 할 때,

우리는 앞의 식의 상태가 원인적 요소가 되어 뒤의 식의 상태를 일어나게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런데 그처럼 중요한 결과가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원인적 요소도 그만큼 강력해야 한다.

그 잠재력의 근원을 조사해 보자.

 

 

마지막 죽음 직전 생각의 잠재력

 

우리는 강렬한 생각은 창조력을 지니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앞부분에서 인용했던 법구경의 첫 구절은 마음의 우월성과 모든 것이 마음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생각은 물체이다라는 책에서 WW앳킨슨은 창조적 사고라는 제목에 한 장()을 할애하면서 과학은, 안의 것이 밖으로 드러나려는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으로 되려는

표출되지 않은 것이 표출되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생각은 행위로 형상화되려 애쓴다.

생각은 자신을 물체화시키려 끊임없이 애쓰는 것이다.”고 말하였다.

 

생각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고유의 창조 능력은 별 문제로 하더라도, 죽음직전의 생각은 임종자로서의 마지막 능동적 생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연히 마지막 생각이 가장 강렬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경주에서, 달리기 선수의 마지막 역주는 그가 지닌 최대의 힘을 보여준다.

과일나무가 죽게 되면 그 마지막 결실기에 가장 많은 소출을 낸다고 한다.

어떤 힘이나 능력이 최고, 최대로 발휘되는 것은 마치 죽음을 앞두고 들려오는 백조의 노래처럼 그 자체의 붕괴 소멸이 다가왔을 때이다.

존재에 대한 욕구는 인간의 모든 활동을 받쳐주는 가장 지배적인 동기이므로, 죽음의 찰나에 무섭게 강해져 움켜쥐려는 자세, 정신적으로를 취한다.

부처님의 말씀처럼 죽음의 찰나 이 지배적인 딴하는 움켜쥐는 힘이 되어 자신 쪽으로 다른 존재를 끌어당기게 된다.

이 움켜쥐는 힘을 싣고 있는 것이 바로 마지막 생각­과정인 것이다.

 

심리학에 의하면 잠들기 전 마지막 생각은 매우 강력하여 다음날 아침 깨어날 때의 첫 번째 생각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지만 새벽 기차를 타고 싶을 때, 시간에 맞춰 일어날 것을 잠들기 직전에 암시해두면, 아무리 늦잠 버릇이 몸에 밴 사람도 틀림없이 그 시간에 일어나게 된다.

 

낭시의 유명한 치료사 에밀 꾸에가 환자 치료과정에서 자기암시를 통해 긍정적 자세를 가지게 하는 데 성공을 거둔 것은 암시요법이 환자들의 취침 바로 전에 시술되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지 이 시간에 암시되는 것은 강력한 효과를 낳는 경향이 있다.

마음은 이 시간이 되면 암시를 아주 잘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에딘버러 대학의 강사 콜린스와 에딘버러 대학의 교수 드레버는 공저 심리학과 실제 생활에서 이렇게 기술한다.

자연적 피암시성은 어떤 조건이 갖춰지면 증진된다.

넓은 의미의 최면상태수면과 각성의 중간상태와 수면상태, 최면상태로 분류되는 모든 상태에서는 피암시성이 매우 높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또한 가까운 시일 내에 외과 수술 목적으로 환자 마취에 최면을 사용하게 될 것이라는 말도 하고 있다.

 

이와 같이 잠들기 직전은 강력한 무의식단계의 마음이 활동할 시간과 아주 가까울 뿐만 아니라

마지막 의식적 생각과 잠이 유도하는 무의식단계의 마음 사이에 끼어들 수 있는 것도 거의 없기 때문에

잠들기 전 마지막 생각에는 거대한 창조적 가치와 창조적 잠재력이 존재한다는 것이 인정되고 있다.

 

따라서 잠들기 전의 마지막 의식적 생각이 잠에서 깨어났을 때의 첫 번째 생각이 되므로

같은 논리에 따라 죽음의 잠 직전의 마지막 의식적 생각이

즉 최종의 죽음 직전 생각-촉진 마음, 이것이 그가 깨어나게 되는 다음 생의 첫 번째 생각, 재연결식이 된다고 하면 너무 지나칠까?

 

임종자의 마지막 생각은 순전히 집중된 에너지 덩이인데

그런 에너지가 사람이 죽는다고 사라질 리 없다.

그것은 창조적 에너지로서 어딘가에 그 자신을 드러내게 되어 있다.

 

ER. 로스트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므로 존재가 죽었을 때, 뇌 속에 갇혀있던, 의식으로 대표되는 모든 힘들은 허공 속으로 사라지지도, 흩어져 없어지지도 않는다.

이 생에서 생명의 개울 속을 의식의 연속이 끊이지 않고 흐르고 있듯,

죽음에도 내내 그 생명의 개울의 흐름이 있다.

또 이 생명의 개울이 기능면에서 직분을 다하자면 존재의 진화선상에 알을 깔 자리를 찾아야 하듯이

주관면에서는 객관적 기반의 형성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논거를 불교에 적용시켜 보면

앞서 언급한 세 가지의 강력한 생각-대상 혹은 죽음의 표시 중 하나를 그 대상으로 받아들이게 된 이 유력한 마지막 생각은

이제 엄청난 창조력을 지니게 된 것으로 간주해 마땅하다.

 

또 마지막 생각의 기능은 새로운 존재의 준비란 뜻으로 아비나와 까라나라고 부른다.

강력한 생각-대상 혹은 죽음의 표시 중 하나가 임종자의 마음 앞에 나타나는 것은 이 준비를 이행하기 위해서이다.

마지막 생각이 이 특별한 생각-대상을 받아들이고 나서 가라앉을 때

내생에 마지막 생각의 생각-대상과 동일한 생각-대상을 지니는 재연결심이 동시에 일어난다.

이 재연결심은 일종의 정신적인 것이므로, 육체라는 짝과 결합해야만 일어날 수 있는 게 보통이다.

따라서 재연결심은 모태에서 일어나게 되는데

아무 어머니의 자궁에 들어가서가 아니라

반드시 알맞은 환경의 알맞은 어머니의 자궁에,

특히 금생에 영위했던 삶의 형태에 어울리는 모태 속에서 일어나게 된다.

 

사람은 하나의 명색, 즉 몸과 마음의 결합체이므로

다시 태어난 사람 역시 몸과 마음의 결합체이다.

그렇기는하나 사람이 정신만 있고 몸이 없는 영의 세계에 태어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 경우에도 재연결심은 일어난다.

 

이상으로 재생현상을 일어나게 하는 것은

앞의 각 장에서 다룬 기본법칙 혹은 원리들

즉 변화, 생성, 연속성, 인과 그리고 인력의 법칙들의 복합적 작용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냐나지와꼬 스님이 쇼펜하우어와 불교에서

쇼펜하우어는 그 대부분의 견해가 매우 불교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는데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이들 신비한 힘들은 실제로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것들이지만 죽음의 찰나 모두 함께 나와 활동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이 신비한 힘들이란 다름 아닌 앞서 언급한 기본 법칙들이다.

그것은 자연의 법칙으로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때에만 신비한 채로 있다.

재생을 일으키는 것은 그들의 종합적 작용이다.

그러므로 재생은 이들 자연법칙의 작용으로 생기는 자연스러운 결과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