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지오그래픽] 보팔 가스 누출 사고 후 드러난 도시의 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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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지오그래픽

2021. 1. 29.

 

 

123, 해가 뜨면서 가스는

인도 전역으로 희석됐습니다.

 

하지만 보팔에서는 3천 명 정도가 사망하고

30만 명 이상이 MIC 노출로 인해 고통을 겪었습니다.

 

수만 데이와 다른 직원들은 밤새 살아남았지만

날이 밝자 도시의 참상을 처음으로 봅니다.

 

물소들이 보였어요.

소 여러 마리가 거리에서 죽어있었죠.

노인과 어린이의 상태가 가장 심각했습니다.

가스가 지면 가까이에 응축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곧 보팔 사태가 헤드라인을 장식합니다.

보팔 사태 사망자가 2500명이 됐습니다.

역사상 최악의 산업 재해입니다.

 

안도 보팔에서 일어난 참사

유니언 카바이드 현장 건너편에는 약 1만 명의 주민이 삽니다.

오늘 아침, 판자촌이 모두 비었습니다.

 

어마어마한 사상자 수에 당연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사건의 진상은 무엇일까요?

 

124, 사고 다음 날 인도 정부는

화학 박사 티아가라잔을 보내 공장을 안정화합니다.

 

정말 겁이 났어요.

사람들이 시신과 함께 거리에 있었거든요.

우는 사람도 있고 정신이 없었죠.

 

보팔 공장은 세빈을 대량 생산 했는데

회사 간부는 티아가라잔에게 MIC를 액체 상태로 탱크에 안전히 보관했다고 말합니다.

땅속 깊은 곳에요.

 

하지만 직원들은 E610 탱크가 적정 용량 50%를 넘기고

75%까지 차 있었다고 얘기합니다.

치명적인 MIC액체 42톤 전부가 기화해 분출한 겁니다.

 

티아가라잔은 한 번 더 놀라운 얘기를 듣습니다.

직원들과 두 번째로 논의한 건 MIC 가스가 더 있느냐는 거였어요.

그때가 돼서야 가장 최악의 소식을 들었죠.

 

611 탱크에 MIC가 더 있었어요.

얼마나 있느냐니까 30~35톤이라더군요.

깜짝 놀랐죠.

전날 분출한 양과 같았으니까요.

 

EE610은 벙커에 있던 탱크 3개 중 하나였습니다.

보팔의 저장 용량은 큰 편이었지만 다른 나라의 공장과 달리

세빈은 하루에 몇 톤밖에 생산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쓰지 못한 MIC가 몇 주씩 저장돼 있던 겁니다.

 

탱크 하나는 예비용이었지만 보팔 직원들은 탱크 3개가 모두 차 있었다고 했습니다.

터진 건 E610뿐이었지만 다른 탱크도 불안한 상황이었죠.

빨리 탱크를 안정화해야 했습니다.

 

보팔이 참사로 휘청거릴 때

유니언 카바이드의 CEO 워런 앤더슨이 미국에서 상황을 파악하러 옵니다.

앤더슨이 공장 책임자라는 걸 파악한 경찰이 그를 체포합니다.

여러분이 저를 돕고 싶다면 제 아내와 어머니에게 안부를 전해 주세요.”

 

라지키마르 케스와미 같은 현지 언론인은 경찰 연행이 쇼였다고 믿습니다.

공항에서부터 체포될 걸 알았을 거예요.

구치소로 가는 대신 유니언 카바이드 게스트 하우스로 갔는데

당시 보팔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었죠.

 

몇 시간 후 앤더슨은 보석으로 풀려나 출국합니다.

살충제 공장에서는 티아가라진 박사가 남은 MIC 35톤을 두고 고민에 빠집니다.

 

남은 양이 그렇게나 많을 줄 몰랐어요.

우리 연구실에서는 최대치가 10ml거든요.

당시에 MIC는 안정돼 보였지만 직원들은 E610 탱크도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폭발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일단 폭발을 염두에 뒀어요.”

 

화학자라면 최악의 상황을 전제하고 일을 되짚어 봐야 하니까요.

두 번째 참사를 피하려면 MIC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처리하는 게 중요했습니다.

그러려면 대담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죠.

오작동하는 설비를 다시 켜는 겁니다.

 

같은 직원들을 데리고 전에 생산하던 것과 같은 살충제를 다시 생산할 수밖에 없었어요.

1216일 참사 후 13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수천 명이 죽어 가고 병원도 붐비는 상황에서

직원들은 남은 MIC를 중화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첫 번째 사고 원인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지만

위험한 새 작전에 믿음이란 이름을 붙입니다.

 

그저 믿을 수밖에 없었어요.

확신할 수 있는 건 저의 자신뿐이고

다른 탱크 안은 어떨지 전혀 몰랐거든요.

자신을 믿자고 얘기했어요.

 

하지만 보팔 주민에게 그런 사고 후 공장을 다시 가동한다는 건 너무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공장을 다시 가동하면

인구 수천 명을 죽인 가스가 다시 누출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장담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요.

 

작전을 수행할 때도 최악을 생각했어요.

폭발할 수도 있으니 헬리콥터로 물을 날랐죠.

젖은 캔버스 천으로 공장 전체를 감쌌고요, 매 순간이 중요했어요.

두 번째 사고가 날 가능성이 아주 컸거든요.

직원들은 안전 조치를 취하고 공장을 재가동했습니다.

 

생산을 시작한 수간 주민들은 도시를 떠났습니다.

많은 사람이 보팔을 떠났어요.

누구도 자기 목숨을 담보로 삼긴 싫었을 거예요.

 

남은 MIC를 빼내자 병원 환자들까지 피난 행렬에 합류하고

중환자들만이 도시를 지켰습니다.

버려진 도시였어요.

유령 도시 같았죠.

 

고통스러운 일주일이 지나고

남은 MIC는 모두 세빈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 참사는 없었습니다.

 

저희가 한 일이 자랑스러웠어요.

도시를 떠나면서 이제 안전하다고 말해 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