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생활 속의 쉬운 명상, 있는 그대로 보기, 저절로 알아차려짐, 무위의 수행, 중도, 명상, 정견, 위빠사나, 마음챙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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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법문/법상스님의 목탁소리

2021. 2. 3.

 

 

생활 속의 명상이란

생활 속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모든 것들에 대해

그저 단순하게 일어나는 그대로를 그대로 느끼고 경험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너무나도 단순하고

새롭게 명상이라는 이름을 붙일 필요조차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무엇이든, 생각으로 체계화하고, 구조화하고, 정리하고

논리적으로 방법론적으로 만들어 내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 단순한 가르침이 아주 힘들고, 어렵고, 난해하고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것이며, 특별한 영적인 수행자만 할 수 있는

무언가로 장황스럽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수행, 명상, 중도, 정견, 위빠사나, 알아차림, 관찰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어떤 현상이 경험되면 경험되는 그대로를

그저 있는 그대로 경험해 주면 됩니다.

 

아니 이것은 내가 경험하는 것조차 아닙니다.

모든 것은 저절로 경험되고, 저절로 알아차려집니다.

내가 애쓰지 않아도, 모든 것은 저절로 일어납니다.

 

길을 걸을 때 그저 걸어지는 그대로를 그저 경험해 주세요.

이미 그러고 있지 않나요?

 

보일 때 보이는 것을 그저 볼 뿐, 어떤 소리가 들릴 때

그 소리를 그저 해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들을 뿐입니다.

 

보고 듣고 느끼고 알고 생각하고 움직이는 그 모든 삶의 경험들에 대해

생각으로 해석하고, 이름 붙이고, 판단하지만 말아 보세요.

 

그저 맨느낌으로 느끼고, 알아지는 대로 알 뿐이고, 보이는 대로 볼 뿐이면

그것이 곧 명상이고, 중도이고, 정견입니다.

 

느껴지는 이대로, 알아지는 이대로, 경험되는 그대로

일어나는 그대로가 전부입니다.

이처럼 너무나도 단순하고,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 마음공부입니다.

 

분별 망상으로 모든 대상을 자기 식대로 해석하고, 분별하고, 판단하고

좋다거나 나쁘다고 생각하고, 취하거나 버리려 하는 등의

분별심을 개입시키지만 말아 보세요.

 

그저 첫 번째의 맨경험 그대로를 그저 있는 그대로 경험해주는 것입니다.

생각, 판단, 해석, 인식을 통해서만 대상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는 것이 익숙해져서, 생각, 판단, 해석 없이 보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겠지만, 사실은 누구나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소리가 날 때, 그 소리를 못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런데 곧장 그 소리에 이름을 붙이고, 해석하고 듣기 좋은지 나쁜지를 판단하죠.

 

그저 소리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경험해 주고, 허용하고

그것과 하나가 되어서 듣고 보면 그뿐입니다.

 

그 소리를 해석하면 어떤 소리, 좋은 소리, 나쁜 소리, 듣기 싫은 소리 등이 되지만

그 해석을 빼면 그저 소리는 하나의 소파장처럼 있는 그대로 경험됩니다.

 

해석 이전에 있는 그대로의 소리와 만나보세요.

판단 이전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난생처음 보는 것처럼

선입견 없이 만나 보세요.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만날 때,

그것이 바로 최고의 명상입니다.

 

사실 우리는 매 순간 삶이라는 명상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삶을 있는 그대로 사는 것이 곧 명상이기 때문입니다.

 

분별 없이, 그저 삶을 사세요.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보고 경험하세요.

이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되, 되어 지는 것에 내맡기는 것에 가깝습니다.

삶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살려지고 있습니다.

 

살려지는 이대로를 그저 천진난만한 시선으로 그저 바라봐 주세요.

이 아무 할 일 없는 것이 곧 명상입니다.

 

그래서 노자는 이것을 무위자연

즉 할 일 없이 자연스럽게 내맡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명상은 무위법이라,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스럽게 본연의 흐름에 내맡긴 채,

그저 이 대로를 허용해 주기만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