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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씨구(孼氏求),절씨구(卍氏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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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오피니언

2016. 9. 9.


조성호 칼럼니스트

부산대학원(공학석사)
전) 새누리당 부산행복연구원 정책연구조정실장
전) 부산광역시장 비서실장/ 감사관/ 행정자치국장/부산시 공직자윤리위원, 인사위원 등
홍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표창 등


얼씨구(孼氏求),절씨구(卍氏求)의 정신으로 ‘저출산’ 극복을!


저출산‧고령화 현상은 차후 대한민국의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최근 우리나라는 저출산에 따른 심각한 인구위기에 직면해 있다. 사실 우리 시대적으로만 보면 1960년대는 정부의 가족계획 운동표어가“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3명의 자녀를 3년 터울로 35세 이전에 단산하자”이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1970년대는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내 힘으로 피임하여 자랑스러운 부모되자”라는 슬로건을 통해 사회전체가 인구증가를 억제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정부는 산아정책을 제5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종료되는 1986년까지 여성 한명이 가임기간 중 갖게 되는 평균 출생아의 수인 합계출산율을 인구대체수준인 2.1명으로 낮춘다는 목표를 설정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는 합계출산율이 2.8명으로 여전히 높고, 베이비붐 세대가 출산기에 집중되며, 남아 선호가치는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어서 출생아수의 지속적인 감소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정부는 더욱 강력한 인구대책을 수립‧시행 하였다. 그 결과 1970년 4.5명이던 합계출산율이 80년 2.8명, 90년 1.6명으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당시 정부의 인구 억제정책은 경제성장 과정만큼이나 압축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무조건 많이 낳자던 풍토가 불과 20년 만에 출산의‘질’로 전환되었으니, 정부의 인구정책은 이러한 측면에서 성공적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로부터 반세기도 지나지 않은 지금 우리는 정반대의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현시점에서 우리는 이제 저출산의 위험에 대해 심각히 생각해보아야 하는 시점이 되었다. 우리의 인구정책의 문제는 국가정책이 백년대계는 고사하고 20년 앞도 못 내다보았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저출산은 고령화와 함께 미래에 우리 자식들의 부양부담을 급격히 증가시키는 주요 원인이 될 것임에 틀림없는 사실이다. 인구가 줄지도 늘지도 않는 평형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여성 한명이 평생 평균 2.1명의 아이를 낳아야 하지만, 현재 한국의 합계출산율 수준은 이탈리아, 스페인, 일본, 독일과 더불어 세계 최저 수준이다.

이런 국가들은 공통적으로 아동양육의 사회화 수준이 낮고, 사회복지서비스에 있어서 가족의 일차적 책임을 강조하는 전통을 갖고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강조되는 후기산업사회로 이행되고 있음에도 전통적인 가족 중심의 아동양육시스템을 고집할 경우, 여성들은 경제활동과 출산‧양육 사이에서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고, 이러한 상황이 궁극적으로 출산율 감소를 불러오게 된다.


현재의 저출산 문제가 더욱 심각한 이유는, 일단 억제된 출산율을 회복하는 것이 인구를 억제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점이다. 현재의 저출산 행태는 사회 전체적으로 뿌리를 내린, 일종의 전형적 행위규범으로 굳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 한 아이를 키우는 데 들어가는 직접적인 비용만 계산해 보아도 둘 이상은 무리라는 결론이 나온다.


오늘날에도 출산 문제가 아이를 갖지 않으려는 풍토 때문에 심각한 현상이지만, 옛날에는 농경사회와 산업 구조적으로 노동집약적이기 때문에 자식 복이 많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조선시대만 해도 평균6.9명 정도 낳았지만 다산다사(多産多死)했다. 인구가 늘지 않는 또 다른 요인은 질병으로 인한 사망과 전쟁이었다.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인 문제인지는 몰라도 세계 역사상 우리 민족만큼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은 나라는 없다. 역사 기록에 나오는 것만 해도 약 900여회나 된다고 한다.  다른 나라가 침략을 해오면 나아가 싸우는 일은 남자들의 몫이다. 지금도 ‘금수저’니 ‘은수저’, ‘흙수저’라는 수저 논란이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지체가 높은 사람들이나 그 자제들은 모두 이 핑계 저 핑계로 다 빠져나가고 가장 미천하고 힘없는 사람들만 맨 앞에서 싸우다 죽었다, 한번 전쟁을 치르고 나면 미천한 신분의 남자들은 거의 씨가 말라버릴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미천한 신분의 여자들은 시집도 못가고 아이를 낳고 싶어도 낳을 수가 없었다. 


어디를 간다 해도 쉽게 씨를 받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한이 맺혀 하는 소리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얼씨구 절씨구 지하자졸씨구”였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각설이 타령은 “얼씨구씨구 들어간다 ~ ”, “저얼씨구씨구 들어간다 ~ ”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 ”로 시작한다.


이 말뜻은, 얼씨구(蘖氏求)는 ‘세상에서 가장 멸시 당하는 서자(庶子)의 씨라도 구해야겠네’ 라는 의미이며, 절씨구(卍氏求)는 ‘당시 사회에서 구박 받던 스님의 씨라도 받아야 겠네’ 라는 의미이고, 지하자졸씨구(至下者卒氏求)는 ‘가장 낮은 졸병(천민)의 씨라도 구해야겠네’ 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등 전쟁으로 건장한 사내들의 씨가 전쟁터에서 사라지고 남아 있는 씨가 없었던 시대에 불러진 노래라 한다. 혼기가 넘거나 전쟁터에서 졸지에 과부가 되니 사내를 찾을 수 없고, 자식이란 가업을 이으며 농촌에서는 생산동력원인데 마땅한 사내가 없으니, 그런 천한 사람의 씨라도 얻어 아기를 갖고 싶은 여성들의 절박함을 노래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지금의 저출산 형태는 옛날과는 다르지만 아기를 갖고 싶은 이러한 절박함이 없이는 한국이 미래에 국력을 계속 유지하고 다가올 남북통일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심각한 문제로 지목되고 있는 저출산 문제를 극복해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때는 세계에서 가장 저출산 국가의 하나였던 프랑스는 80년도 1.95명, 93년도 1.65명, 2004년도 1.92명으로 높아졌다. 프랑스 정부가 출산과 양육은 국가책임이라는 기본철학 하에 장기적인 출산장려정책을 편 결과이다.


국가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저출산 문제를 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부는 출산율 제고를 위해서 무조건적인 출산을 권장하기 보다는 양육비, 교육비, 탁아시설 등 저출산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를 면밀히 검토해서 양성평등 환경개선을 중점과제로 하고, 보완적으로 자녀비용 경감과 보육환경 개선을 강구하는 종합대책 마련을 통해 물질적‧심리적 문제를 해소시켜 주는 정책을 펴야 하고, 개개인 또한 출산의 문제가 남의 문제가 아닌 자기일이라는 생각으로 ‘얼씨구 절씨구’를 노래하던 옛날 여성들의 절박함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나가야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http://www.sundayjournal.kr/news/articleView.html?idxno=140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