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23] 대구팀 합동산행-21_팔공산 - 10년 전의 기억 속으로

댓글 0

대구팀 합동산행

2017. 4. 26.

[대구팀 합동산행-21] 팔공산 - 10년 전의 기억 속으로

[산행일시] 2017.04.23(일) 10:36~16:58(6시간 22분)

[날       씨] 맑음

[산행인원] 13명(서울팀 3명, 대구팀 10명 / 이하 존칭 생략)

                   (서울팀) 시인마뇽, 하이맛, 성봉현

                   (대구팀) 차성섭·나경숙, 임상택, 박영홍·천정미, 기경환, 차수근·박금선, 박상훈·최미애 / 권재형

[접       근] 서울역 → 동대구역 : 열차(KTX) / 동대구역 → 오도암 주차장 : 대구팀 전세버스

[이       탈] 팔공산자연공원 동화사지구 → 동대구 : 대구팀 전세버스 / 동대구역 → 서울역 : 열차(KTX)

[산행시간] 오도암 주차장(10:30) → 오도암(11:24~11:28) → 청운대(12:16~12:24) → 하늘정원(12:35~13:30)

                   → 비로봉(14:01~14:05) → 동봉(14:30~14:33) → 염불암(15:43~15:51) → 팔공산자연공원 동화사지구(16:58)

[산행지도] 1:50,000 군위, 대구(국토지리정보원 1:25,000 온맵 편집)

 

[구글어스]  2017-04-23_대구팀_21_팔공산.gpx

 

[산행기록]

과거에는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변화의 속도가 빠른 지금은 십 년이 아니라 더 짧아진 듯하다. 그러한 변화의 십 년이 지났지만 우정과 열정만은 변하지 않은 대구참사랑산악회와의 합동산행이 낼모레로 다가왔다. 회사에서 요구하는 자격증 시험 때문에 산에 가본 것이 언제인지 잊어버렸고 또한 유월 말까지 이어질 것이지만 대구팀과의 합동산행 만큼은 빠질 수 없기에 마음은 벌써 대구 팔공산 산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2004년 10월 16일(토) 한북정맥 5구간인 축석령~울대고개 구간을 산행하기 위해 이른 아침 축석령을 출발하였다. 백석이고개를 지나 천보산으로 이어지는 마룻금에 올라선 후 오리동고개로 내려가기 위한 로얄골프장 입구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고만고만한 지능선은 산객을 헛갈리게 만들어 결국 분기점을 지나치면서 헤메이다 우여곡절 끝에 찾게 되었고 아침 9시 경, 나와 비슷한 상황을 겪은 대구의 권재형님을 만나 짧지만 360번 지방도 덕고개까지 동행하였다. 이 만남이 계기가 되어 2006년 1월 임상택 대장을 만났고, 12월 수락산 산행 후 임 대장이 정기적인 산행을 제의하였다. 그리하여 2007년 5월 26일(토) 오후 한티재 아래에 있는 '꿈의 도시'에서 첫 만남을 가진 후 팔공산 산행을 시작으로 봄·가을 대구와 서울을 오가면서 산행하기를 어연 십 년이 지난 것이다.

 

4월 네 번째 일요일, 이른 아침 서울역에서 하이맛 선배님 그리고 광명역에서 시인마뇽 선배님을 만나 동대구로 향한다. 이번 21차 합동산행은 세 명만 하게 되었는데 범솥말 선배님이 친형님 상으로 불참하게 되어 못내 아쉽기만 하다(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두 선배님의 대화소리를 옆자리에서 들어가면서 졸며 깨며 하다 보니 어느새 낯익은 동대구역에 도착하고 역사로 올라가는 계단을 올라서니 오늘도 임상택 대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이어 대구참사랑산악회 회원님들과 연이어 만나 반가운 인사를 나눈 후 전세버스 기사님과도 눈인사를 나눈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대구시내를 벗어나 구불구불한 도로를 올라 십 년 전의 기억이 머무르는 한티재휴게소에 이른다.2007년 5월, 대구팀과 처음으로 합동산행을 하였던 팔공산 산행의 출발점에 다시 도착한 것이다. 그때를 회상하면서 대구팀에서 준비한 나물비빔밥으로 아침밥을 든든하게 먹고 오늘 산행의 출발지를 향해 출발한다. 오름길처럼 다소 급한 내리막길을 내려가자마자 '꿈의 도시' 출입로가 나오고 버스는 계속 내려가다가 잠시 멈춘다. 군위 제2석굴암을 관람하기 위해 잠시 멈춘 것으로 버스에서 내려 좌측의 도로를 따라 극락교를 건너면 비로전이 있다.

 

                                                                                      군위 삼존석굴

- 국보 제 109호

- 소재지 : 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남산리 산 15

    이 불상은 팔공산(八公山) 북쪽 계곡 학소대(鶴巢臺)의 천연절벽 자연 동굴안에 모셔진 미타 삼존석불이다. 이 석굴사원은 경주 토함산 석굴암보다 조성연대가 1세기 앞선 것으로 석굴사원의 효시라 할 수 있다. 석굴은 둥근 입구와는 달리 바닥은 평면의 2단으로 되어 있고 천장은 입구의 높이보다 더 파 들어간 유선형 모양이다. 깊이 4.3미터 폭 3.8미터 높이 4.25미터의 굴 전면에는 간단한 석축을 쌓아 의식 장소를 마련했고, 안쪽으로 턱을 만들고 그 앞에는 별도의 화강암으로 된 사각의 대좌를 놓고 그 위에 본존상을 봉안했으며 좌우에 관세음보살님과 대세지보살님을 모셨다. 본존불은 높이 2.88미터로 머리에 무수히 가늘고 얕은 음각의 선들이 나타나 있으며 정상육계는 아주 크게 표현되어 있다. 좌우의 협시 보살상은 입상으로 거의 같은 양식이다. 이 석불은 손의 모양이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는 아미타불(阿彌陀佛)로 7세기말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군위 삼존석불 안내문 전문(全文)]

 

비로전을 지나 참배단으로 이어지는 계단의 끝은 석굴 입구이지만 그냥 먼발치에서 바라만 본다. 젋은 시절 직업 때문에 전국을 내집처럼 다니던 그때 보고 싶었던 제2석굴암을 이제서야 만났고 아쉬운 작별을 해야 한다. 절벽에 조성된 보기에는 아담한 석굴 안에 존치된 세 기의 석불, 불교신자가 아니지만 어떻게 저런 곳에 만들 생각을 하였는지 궁금증을 사진에 담으면서 짧은 관람을 끝내고 다시 버스로 돌아간다.

 

이후 낯설은 도로를 따르던 버스가 우측길로 방향을 바꾸는데 알 듯 모를 듯한 도로를 따라 고도를 올려간다. 그러고 보니 젋은 시절 업무차 오르내리던 군부대 진출입용 도로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지금은 하늘정원 인근까지 개방되었다고 한다. 얼마나 올랐을까, 군부대를 향해 계속 오르는 도로에서 우리는 좌측편 주차장으로 방향을 바꾼다. 오도암주차장으로 도로 우측편으로 보이는 안내판에는 '원효대사 구도의 길, 오도암 ↗1.5km'라 표기되어 있다. 그 앞에서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21회차 합동산행의 첫 발걸음을 시작한다(10:36).

 

나무로 만든 아치형의 문을 통과하는 '원효대사 구도의 길'은 부드러운 흙길로 이어진다. 앞서간 일행들을 뒤쫓아 임상택 대장, 시인마뇽 선배님과 함께 걷는 후미의 발걸음은 아직 초반부라 그런지 여유롭다. 소나무와 어우러진 연록색의 이파리가 싱그러운 산길에는 초파일 행사를 준비하는 오도암의 연등이 우리를 맞이해준다. 짧은 나무다리를 건너니 이제 서서히 오름을 준비하라 하는 듯 고도를 조금씩 올려가는가 싶더니 시야가 트이면서 산줄기가 올려다 보이는 산등성이 상에서 앞서간 일행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11:03).

 

지금까지와는 달리 제법 경사진 오르막으로 변한 산길에 듬성듬성 무리지어 핀 진달래가 힘내라 응원해주고 나무계단을 올라서니 코코넛 열매 껍질로 만든 천연매트가 산꾼의 발바닥 촉감을 부드럽게 감싸준다. 아울러 정면에서 급경사의 높은 봉우리가 시선을 붙잡는데 부담스런 저 봉우리를 지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오른다(날카롭게 솟아 보이는 봉우리가 청운대라는 것을 이때는 몰랐다). 천연매트로 덮인 산길은 작은 사립문이 있는 오도암(悟道庵)과 '등산로(원효대사 구도의 길)'의 갈림길에 이른다(11:24).

 

사립문으로 들어서면 돌탑이 제일 먼저 반겨주고 좌측편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오도암의 대웅전이 보이는데 선명한 원목의 색상과 지붕 기와가 신축된지 얼마 안되었다고 말하는 듯하다. 반면 대웅전 너머로 송곳처럼 솟아 보이는 암봉과 그 우측편으로 깊게 패인 듯한 능선 안부가 부담스럽게 다가선다. 그리고 우측편으로 이어지는 능선 상에 보이는 통신용 철탑들, 삼십여 년 전 업무차 몇 일씩 오르내리던 곳이었다.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며 잠시 바라보고 있노라니 일행들이 대웅전을 보고 되돌아 나오고 있다.

 

다시금 사립문을 나가 좌측으로 급하게 방향을 바꾸어 나무데크 등산로로 발걸음을 옮긴다(11:28). 짧은 내리막 계단은 수평으로 이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오르막 계단으로 바뀐다. 일반적인 오르막이 아니라 급경사의 된비알로 변한 계단길, 임상택 대장 왈 계단수가 구백여 개 된다고 한다. 제법 경사진 오름의 계단을 올라가는데 임 대장이 원효굴을 둘러보자고 하면서 빨리 올라오란다. 하지만 근래들어 산행을 하지 못한 것을 몸이 알고 있다는 듯 마음대로 따라주질 않는 발걸음으로 힘겹게 올라간다. 오도암에서 올려다 보이던 안부가 이십여 미터 정도 남은 곳의 계단이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는 지점에 도착하니 임 대장이 기다리고 있다가 원효굴은 이곳에서 안전난간을 넘어 왼쪽으로 가야 한다고 알려준다(11:53).

 

나 혼자 안전난간을 넘어 절벽같은 곳에 만들어진 길을 따라 걸어가는데 생각보다 그닥 위험하지는 않다. 바윗면을 따라 안전용 밧줄이 걸려 있는 곳을 지나면 3m 정도 되는 바위지대의 오르막이 나오며 넘어서서 내려간 후 밧줄이 있는 곳을 지나도 원효굴은 보이질 않고 좌측의 큰 바위와 절벽 사이에 박힌 돌덩이를 만난다. 그 너머로는 낭떠러지인 듯 아무 것도 보이질 않아 되돌아가다 보니 올 때는 못 보았던 원효굴이 보인다. 원효굴에 올라보니 2m 정도의 길이에 물이 제법 고여 있는데 어디에서 공급되는지 모르겠지만 지저분하다. 사진 한 장 찍고 원효굴에서 내려와 계단으로 다시 돌아가려다가 임 대장을 만난다. 임 대장이 낭떠러지 같은 곳의 좌측편 바위가 좌선대라 하면서 절벽과 좌선대 사이에 낀 바위를 밟고 좌선대로 이동한다. 그리고는 다시 우측 절벽으로 건너온 후 나에게 좌선대에 앉아보라 하는데 아랫편으로 보이는 것은 그저 낭떠러지이다. 왔던 길을 따라 계단으로 이동하는 도중 얇은 바윗면을 가리키면서 도마뱀바위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하는데 마치 양주 불곡산의 악어바위처럼 도마뱀처럼 보이는 것이 그럴 듯 하다. 다시금 안전난간을 넘어 계단길로 복귀하여 앞서간 일행을 쫓아 남은 계단을 오른다(12:13).

 

이십여 미터 정도 되는 급경사의 계단을 올라서니 오도암에서 보았던 안부이고 임 대장과 함께 좌측의 청운대로 향한다. 완만한 산길에 제단같은 느낌이 드는 돌담을 지나면 멋진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조망처인 청운대가 나온다(12:16). 발치 아래로 오도암이 아스라이 보이고 시선을 잠시 올려보면 아침을 먹었던 한티재가 눈에 들어온다. 십 년 전 저 한티재에서 파계봉과 서봉을 지나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걸었던 기억을 잠시 떠올려 본다. 옛말에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우리의 합동산행은 십 년을 맞이하여 스물한 번째 산행을 하고 있는 중으로 변한 것이 있다면 그 당시에는 출입금지 지역이었던 비로봉이 이제는 개방이 되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더욱 진한 인연을 만들어 가는 산꾼의 우정은 깊은 장맛처럼 구수해지고 있다.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왔던 길을 따라 하늘정원으로 가기로 한다(12:24)

 

조금 전 오도암에서 가파른 나무계단으로 올라왔던 안부를 지나 군부대 철망 사이로 개방된 등로를 걷는다. 삭막함을 반전시키는 군부대 벽돌담에 그려진 그림을 보면서 걷다 보니 어느새 하늘정원의 전망대에 도착한다(12:35). 잠시 조망을 즐긴 후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듯이 아래에 있는 원형의 너른 쉼터에서 산상 만찬을 시작한다, 대구팀의 풍성한 식탁은 언제 보아도 먹음직스럽기만 한데 내가 준비한 것은 부실하기만 하니 꺼내기가 부끄럽다. 먹는 즐거움을 만끽하면서 오고가는 이야기는 끝이 없을 듯 이어지지만 아직 갈 길이 아직 남아 있기에 마무리를 한다. 앉았던 자리를 정리하고 복장을 정비한 후 잠시 멈추었던 발걸음을 비로봉을 향해 다시 걸어간다(13:30).

 

군부대의 기존 철망과 신설 철망 사이에 만들어진 나무데크 등로는 시멘트 도로로 이어지고 그 길을 따라 걷는다. 사월의 따가운 오후 햇살을 가려줄 만한 나무 한 그루 없는 시멘트 도로는 'kt 팔공산중계소'에서 끝나고(13:56) 크게 방향을 바꾸어 비로봉 아래에 있는 '팔공산 제천단' 표석을 지나 팔공산의 주봉인 비로봉(1192.9m)에 오른다(14:01). 커다란 화강암의 정상석 앞면에는 검정색 페인트로 '팔공산 비로봉 1193m'이라 쓰여 있고 바로 앞에는 기초대가 땅 위로 노출된 삼각점[군위 11 / 79.10 재설]이 있다. 주봉답게 시야가 시원스럽게 트이는 풍광을 잠시 즐기고 동봉으로 발걸음을 옮긴다(14:05).

 

다시금' kt 팔공산중계소' 앞의 공터로 내려선 후 '비로봉 0.1km', '동봉 0.4km'라고 표기되어 있는 이정표 앞에서 좌측으로 내려가 대구팀과의 첫 산행 때 걸었던 그 산길을 따라 동봉으로 향한다. 꼭 십 년 만에 다시 걷는 산길, 애사로 오늘 참석치 못한 범솥말 선배님과 지금은 근황을 알 수 없는 조부근씨가 생각난다. 그 날을 생각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발길에 멀리 보이는가 싶던 석조약사여래입상이 나타나고 조금 더 올라서니 산꾼들로 북적이는 동봉(1167m)이다(14:28).

 

                                              팔공산 동봉 석조약사여래입상(八公山 東峰 石造藥師如來立像)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0호

                                                                                                                                           소재지 : 대구광력시 동구 용수동 산 1

    이 불상은 서쪽을 향해 바로 세운 전체 높이 6m의 거대한 약사여래입상이다. 약사여래는 동방의 정유리(淨琉璃) 세계에 있으면서 중생의 고통을 없애주는 것이기 때문에, 이 불상도 역시 서쪽으로 향하고 있다. 정면을 향한 입상은 상투 모양의 육계를 갖추고 두 볼은 풍만하며 입가에 약간의 미소를 띠고 있다. 바로 선 발 끝은 드러나 있고 발가락 조각도 뚜렸하다. 옷은 두 어깨에 걸치는 방식으로 입고 치마를 걸쳤다. 오른손은 무릎 위로 늘어뜨려 바닥을 안으로 하고 있고, 왼손은 가슴 위에 올려 물건을 받치고 있다. 옷의 새김은 투박하고 전체 균형도 고르지 못하나 대체로 조화를 이룬다. 비바람에 노출되어 표면은 많이 풍화되었다. 이 불상에는 손과 발의 기형적 조각 수법이 나타나기는 하나, 잘 조화되는 옷주름이나 얼굴 모습 등의 조각 솜씨로 보아 통일신라 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육계(肉髻) :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상투모양으로 두드러진 혹 같은 모습

[팔공산 동봉 석조약사여래입상 안내문 전문(全文)]

 

동봉에 세워진 이정표에는 '한티재 8.3km', '갓바위 7.3km'라 표기되어 있지만 오늘은 동화사 방향으로 하산하기로 하여 조금 더 머물면서 조망을 즐기고 싶은 마음을 접고 올라오는 산꾼들에게 자리를 비켜주면서 올라왔던 길로 내려간다(14:33). 석조약사여래입상을 지나 만나는 삼거리에서 좌측길로 내려가는 길은 수태골주차장까지 3.2km 남았다고 한다(14:44). 지금부터 본격적인 너덜같은 내리막길은 제법 빠르게 고도를 떨어뜨리기 시작하고 군데군데 무리지어 피어 있는 진달래가 따가운 햇살과 달리 이곳의 기온을 실감케 하면서 산꾼의 눈길을 잡는다. 내려가고 또 내려가길 십여 분, 수태골주차장과 동화사 그리고 케이블카 승하차장 갈림길이다(15:00).

 

몸살인지 힘든 걸음으로 우리와 함께 산행한 차수근 님을 비롯한 서너 명은 케이블카로 내려가기로 하고 나머지 일행은 산길을 따라 염불암을 거쳐 동화사지구로 가기로 결정되어 두 팀으로 나누어 진행한다. 갈림길에서 동화사 방향으로 내려가자마자 케이블카 팀은 우측 산길로 진행하고 염불암 팀은 좌측 내리막길을 따른다. 차성섭 회장을 비롯한 선두는 언제 내려갔는지 모습이 보이질 않지만 시인마뇽 선배님, 임 대장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고도를 조금씩 낮추다 보니 염불암이 모습을 나타낸다. 겨울 가뭄에 이어 올 봄에도 비가 내리질 않아서인지 명색만 유지하고 있는 계곡 능선을 건너니 어느새 염불암이다(15:43).

 

맑은 햇살에 하얗게 빛나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벚나무 앞에서 시인마뇽 선배님과 임 대장은 선두를 따라 내려가고 나는 발걸음을 염불암으로 옮겨 경내를 둘러보려 한다. 입구에는 커다란 돌덩이들이 널부러져 있는데 암자를 증개축하려는지 공사 중이나 보다. 계단을 올라 경내에 들어서니 아크릴 판으로 만든 박스 안에 '동화사 염불암 청석탑(대구 유형문화재 제19호)'이 보이고 극락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요사채가 각각 한 채씩 있는 그리 작지 않은 규모의 암자이다. 또한 극락전 뒤편의 자연석에는 '동화사 염불암 마애불좌상 및 보살좌상(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4호)'이 양각되어 있고 고개를 들어 산등성이를 보면 바위 봉우리인 염불봉(1042m)이 염불암을 내려다 보는 듯하다. 올랐던 계단으로 내려와 다시 한 번 더 염불암의 전경을 본 후 앞서간 일행을 따라 내려간다(15:51).

 

염불암으로 오고가는 차량들을 위해 시멘트로 포장된 도로 한켠에는 크고 작은 돌탑들이 산객을 위해 도열한 듯하고 그런 길을 따라 차츰차츰 고도를 낮추어 내려가다가 시멘트 도로를 버리고 우측의 계곡능선으로 방향을 바꾼다(16:07). 염불암 전의 계곡에는 거의 바닥이 보였지만 고도를 낮추었다고 수량이 발목 이상을 적실 수 있을 만큼 많아졌는데 이곳 계곡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기경환 전 회장이 시인마뇽 선배님에게 맨발로 물 속에서 5분 버티기를 제안한다. 그 제안을 혼쾌히 수락하신 선배님이 5분을 가볍게 넘기면서 잠시나마 즐거운 휴식을 취한 후 다시 내려간다(16:17).

 

개울을 좌측에 두고 내려가는 산길은 한가롭기만 하고 계곡을 두어 번 더 건너니 팔공산 동화지구 캠핑장이 나온다(16:50). 이어서 음식점들이 보이는가 싶더니 팔공산 케이블카 승하차장이 우측으로 300m 지점에 있다는 표지판과 함께 탑골등산안내소가 있는 '팔공산자연공원 동화사지구'에 도착한다(16:52). 대구팀과의 첫 번째 합동산행을 위해 이곳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해발고도 820m의 정상역까지 올라간 후 비로봉을 보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십 년 전의 일이 되었으니 세월이 유수같다.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며 임 대장을 따라 집단시설지구를 벗어나 동화지구 먹거리촌 표지판 앞에서 먼저 도착한 일행들과 만나 대구팀과의 스물한 번째 합동산행을 마무리한다(16:58).

 

대기 중인 대구팀의 전세버스에 승차하여 주말 나들이 차량의 귀가길로 정체되는 도심을 통과한 후 지하철 만촌역에 도착, 전세버스를 보내고 횡단보도를 건너 기경환 전 회장의 부인(夫人)이 운영하는 '고향전집'으로 이동한다. 매번 뒤풀이를 위한 맛깔스런 음식을 장만해 주시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 기경환 전 회장 사모님께 감사의 인사 드립니다.

** 고향전집(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512길 3(만촌동) /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 1039-30,  ☎ 053-743-0502)

 

합동산행 십 주년 기념식과 산행 뒤풀이를 겸한 만찬과 함께 차성섭 회장의 기념사를 시작으로 주고 받는 인사가 이어지고 한 순배 돌아가는 술잔과 더불어 지난 십 년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간다. 기념식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즈음 덕산지맥 2구간(일월재→논골재)을 산행하고 부리나케 달려온 권재형 님이 참석한다. 지맥산행 들날머리가 워낙 오지인 곳이라 어쩔 수 없이 산악회와 산행하고 왔다는 권재형 님, 13년 전인 2004년 10월에 한북정맥의 로얄골프장 입구에서 우연히 만난 인연의 끈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반가운 얼굴들과 함께 주고 받는 한 잔의 술과 이야기는 끝이 없으니 서울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는 것이 아쉽지만 가을의 서울을 기약하면서 작별인사를 나눈다.

 

대구참사랑산악회 회원님들, 고맙습니다. 금년 가을 서울에서 반갑게 다시 만날 때까지 즐거운 산행 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