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우스 하우스

12월 한계령에서 바라본 밤하늘을 밝게 비추는 시리우스 별처럼... 여기도 영원히...

(23) 명성산(鳴聲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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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캠핑,기타자료/수도권 명산 30선

2011. 10. 14.

 

<수도권 명산 30選>억새의 바다… 은빛, 가을이 출렁이는…

(23) 명성산(鳴聲山)

문화일보 | 엄주엽기자 | 입력 2011.10.14 12:21 |

이맘때쯤 경기 포천과 강원 철원의 경계에 있는 명성산(923m)을 찾으면 억새가 장관이다. 유명한 '명성산 억새꽃축제'가 14일부터 16일까지 열린다. 매년 명성산 억새 군락지를 찾으면 막걸리에 취해, 고인이 된 가수 고복수씨의 "아∼ 으악새 슬피우니…"를 부르는 사람들을 여기저기서 만난다.

↑ 지난 12일 포천 명성산 남쪽 자락의 억새 군락이 만개할 준비를 하고 있다. 14일부터 사흘간 명성산 억새꽃축제가 열린다. 그즈음 억새가 절정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억새가 지고 나면 경기 북부부터 단풍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포천 = 김낙중기자 sanjoong@munhwa.com

'으악새'는 새(鳥) 이름이 아니고 억새의 방언이다. 바람에 무리져 누우면 곱게 빗은 은빛 머릿결처럼 반짝이는 명성산 억새는 이번 주가 피크일 것 같다. 억새는 단풍보다 더 일찍 피는 가을의 전령사다. 억새가 지면 단풍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 축제로 인해 '명성산' 하면 으레 억새를 떠올린다. 그래서 억새 군락을 보고자 포천의 산정호수 쪽으로 명성산을 오르게 마련이다. 명성산은 '울음산(鳴聲山)'을 한자로 옮긴 것이다. '미륵 세상'을 꿈꾸던 궁예의 숨결이 깃든 산 이름이다. 억새도 좋지만 명성산의 역사성이 거기에 묻힌 것 같아 찾을 때마다 씁쓸한 기분이 든다.

명성산 정상은 철원에 속한다. 철원의 산이다. 그런데 그 자락인 억새 군락지는 포천에 속해, 특히 '억새꽃축제'로 명성산이 포천의 산인 양 돼 있다. 이 축제는 지역축제 중 손꼽히는 '성공작'이다. 철원군이 여러모로 배가 아프다.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철원군은 궁예가 이곳에 세웠던 나라인 태봉을 본떠 '태봉제'를 열었다. 철원의 '맞불 작전'이지만 아직은 '군민축제' 수준이다.

태봉제와 관련해 아쉬운 점 하나. 철원군 홈페이지의 명성산 소개를 보면 "궁예가 철원 풍천원에 도읍을 정하고 지나친 폭정으로 인심을 잃고 부하들에게 왕위를 빼앗기자 여기(명성산)까지 피신해서 왕건과 대치하던 중 기력이 쇠퇴하여 부득이 이 산중에서 부하군사들과 해산을 하게 됐는데, 이때 심복들이 슬퍼 통곡하였다"고 적고 있다. 이미 역사학계에서도 궁예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는데, '태봉제'를 한다며 궁예를 제대로 소개하지 못하고 있다.

'승자의 역사'가 왜곡시킨 인물 중 궁예는 첫손가락에 꼽힌다. 왕건의 고려가 펴낸 역사서에서 궁예는 포학한 미치광이로 묘사돼 있다. 하지만 철원에 남아 있는 설화에서 궁예는 딴판이다. 왜일까. 고려가 궁예를 소위 '정사(正史)' 속에서 학정을 일삼은 폭군으로 혼신을 다해 묘사한 것은 그를 그리워하는 민초들의 정서가 당시 만연했기 때문으로밖에 볼 수 없다. 철원지역 민초들에게 여태껏 구전돼 온 설화 속에서 궁예는 '미륵의 세상'을 꿈꿨던 인물이었다. '그리운 궁예'인 것이다.

알려졌다시피 미륵 신앙은 민초들의 신앙이자 혁명의 사상이었다. '정사'로 봐도 토호 세력을 등에 업은 왕건이 절대 민초들의 편일 수는 없다. 지금은 절판된 듯한데, 작가 김성동이 쓴 '미륵의 세상 꿈의 나라'(청년사·1990)에 궁예와 그를 둘러싼 당시 상황이 잘 그려져 있다. 울음산이란 이름에는 궁예에 대한 민초들의 깊은 연민이 깃들어 있다. 명성산 주변의 패주(敗走)골, 항서(降書)받골, 야전(野戰)골, 망봉(望峯) 등도 모두 궁예와 관련된 지명이다.

그래서 관광지인 포천 산정호수의 반대편, 철원 용화저수지 쪽으로 오르는 명성산을 추천한다. 이쪽이 궁예능선도 만나고, 아무래도 궁예의 냄새가 강한 '느낌'이다. 확실한 사료는 없다. 느낌일 뿐. 그래도 무엇보다 한적하고 아름답다. 지난 12일 찾았을 때 "명성산을 오르려면 이곳이구나" 할 정도였다. 물론 이 코스로 해도, 좀 더 걷긴 하지만 산정호수 쪽으로 하산하면서 억새 군락을 볼 수 있다.

용화저수지가 들입목이다. 버스는 하루 네 편 정도밖에 안 돼 이용이 쉽지 않고, 승용차로 삼부연목포를 지나 오룡굴을 거쳐 5분 정도 더 들어가면 등산로 안내판이 오른쪽에 나온다. 더 들어가면 비포장도로가 나오고 군부대 사병들이 출입을 통제하기 때문에 안내판을 잘 찾아야 한다.

안내판에서 1시간 못 미쳐 오르면 명성산과 느치계곡을 가르는 능선이 나오는데, 여기부터는 '룰루랄라' 하면서 아름다운 능선길만 감상하면 된다.

특히 약사령 갈림길에서부터 명성산까지 이어지는 약사령능선길은 탁 트인 전망과 아름다운 굴곡으로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는 기막힌 경관을 선사한다. 아마도 예전에 포 사격 훈련장이어서 나무가 사라진 지역이다. 지금은 물론 아니지만. 잡목까지 모두 제거된 지역에 잡초들이 가을 색을 띠고 죽 펼쳐진 모습은 쓸쓸하면서 아름답다. 명성산 정상까지 이 같은 풍경이 이어진다.

명성산 정상에서 남쪽으로는 삼각봉을 거쳐 억새 군락지-산정호수 방면이고 북쪽으로 궁예능선이다. 궁예능선은 암반으로 이뤄진 코스로 금방 궁예의 울음이 터질 듯 이어져 있다.

포천 =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

 

<수도권 명산 30選>여기, 아세요 ? 폭포물 떨어지는 곳이 가마솥 같다하여 ‘三釜淵’

문화일보 | 엄주엽기자 | 입력 2011.10.14 12:21

철원 쪽으로 명성산을 찾아가면 왼쪽 도로 옆에서 삼부연폭포(사진)를 만나게 된다. 눈이 번쩍 뜨이는 아름다운 폭포다. 주소는 강원 철원군 갈말읍 신철원리다. 철원군청에서 동쪽으로 2.5㎞쯤 되는 곳인데, 명성산을 찾아 삼부연폭포까지 이르는 계곡길도 한적하고 괜찮다. 역시 요즘은 사람들이 적게 찾는 곳이 더 아름다워 보인다. 하지만 높이 20m에 3층으로 된 삼부연폭포는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을 폭포다. '철원팔경' 중의 하나다.

12일 찾았을 때도 그동안 비가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량이 적지 않다. 그 주변 바위와 어우러져 장관이다. 아마 이 폭포가 설악산 어디에 있었다면 더 이름을 날렸을 듯싶다. 폭포의 물 떨어지는 곳이 세 군데 있는데 그 모양이 가마솥 같다 해서 삼부연(三釜淵)이라고 부른다. 더 들어가면 철원 쪽으로 명성산을 오르는 들입목이 나온다. 그 동네 이름이 용화동인데 삼부연에서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에서 지어진 지명이다. 그 옆에 용화저수지가 있으며, 예부터 가뭄이 들면 폭포 밑에 단을 차려 놓고 기우제를 지냈다.

앞에 설명했듯, 철원 쪽 용화동에서 명성산에 오른 후 하산할 때는 약사령 갈림길에서 '느치계곡'으로 "내려와야 한다". 큰따옴표로 강조한 것은 여기를 놓치면 명성산에서 절반을 놓친 것이기 때문이다. 석천계곡이라고도 부르는 느치계곡은 좀 더 지나면 단풍으로 환해질 것이다. 근 한 시간 동안 느긋한 계곡길을 맛볼 수 있다. 나무들이 빼곡하게 하늘을 가린 계곡길, 그것도 좁지 않고 꽤 넓다. 물도 이맘때치고는 많은 편이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편안하고, 마음을 푹 내려놓게 하는' 계곡길이다. 하산 시 꼭 이곳을 통해 내려오길 바란다.

철원 쪽을 통한 명성상 입산의 단점을 하나 꼽으라면, 이 계곡을 내려올 때 듣는 포 사격 소리다. 1주일에 두어 차례 포 사격이 있는데, 계곡에서 들으면 정말 깜짝깜짝 놀란다. 물론 안전하다. 사실 '철원' 하면 '철의 삼각지대'로 격전지다. 그런 아픔까지 느끼면서 산행을 한다면, 그것도 괜찮지 않을까.

포천 =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