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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한계령에서 바라본 밤하늘을 밝게 비추는 시리우스 별처럼... 여기도 영원히...

(25) 양평 용문산(龍門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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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캠핑,기타자료/수도권 명산 30선

2011. 11. 4.

 


<수도권 명산 30選>노송군락·암릉 조화 이룬 환상적 풍광… 4계절 色다른 ‘파노라마’
(25) 양평 용문산(龍門山)
문화일보|
엄주엽기자|
입력 2011.11.04 15:11
경기 양평군의 용문산(1157m)하면 보통 이 산이 품고 있는 용문사(龍門寺)의 천 년 넘은 은행나무를 떠올린다.

용문산은 꼭대기에 군부대가 있어 정상이 개방된 지는 얼마 안 된다. 그로 인해 산보다는 은행나무에 관심이 많았다. 용문산은 2007년에 정상부근이 일부 개방됐지만 정상능선은 지금도 통제돼 있다. 6·25 당시 유명했던 용문산전투가 말해주듯, 용문산은 사방 100㎞가 막힘없이 조망되는 천혜의 요새여서 삼국시대부터 군사적 요충지였다. 용문산전투는 1951년 5월 한국군 제6사단이 중공군 제2차 춘계공세를 저지해 승리한 전투다. 이후 군부대가 주둔하는 산으로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웠으나 2007년 정상이 개방되면서 서울 근교의 등산코스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정상 부근에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고, 나무와 철계단도 설치해 오르기 편리할뿐더러 환경에도 좋게 꾸몄다.

 

↑ 용문사는 신라 때 지어진 유서깊은 사찰로 조선 말에는 의병들의 근거지가 되기도 했다. 사진은 용문사 일주문.

↑ 용문사에서 절고개를 거쳐 상원사로 넘어가는 코스는 용문산에서 단풍을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코스다. 찾는 이들이 많지 않아 호젓한 가을 숲길을 맛볼 수 있다. 양평 = 김낙중기자 sanjoong@munhwa.com

용문산은 경기도에서 화악산(1468m), 명지산(1253m), 국망봉(1167m)에 이어 네번째로 높다. 실제 고도도 높지만 험한 편이어서 오르기가 간단치 않다. 용문사에서 정상까지 3.4㎞ 정도밖에 되지 않아 우습게 생각하고 등산을 시작하지만 짧은 거리에서 급격하게 높아지게 돼 상당히 가파르다. 또 정상에 다 올랐다 싶으면 다음 봉우리가 나타나기를 서너 차례 반복해 더욱 힘이 든다.

'용이 드나드는 문'이란 뜻인 용문(龍門)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은 남북한을 합쳐 몇 군데 된다. 중국에도 쓰촨(四川)성의 룽먼산(龍門山)이 유명하다. 양평 용문산의 이름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는 따로 기록이 없다. 단 용문산의 원래 이름이 미지산(彌智山)이었다는 점에서 그 유래를 유추해볼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세조 8년(1462) "임금이 미지산 아래의 효령대군의 농장에 이르러 상원사(上院寺)에 거둥(임금의 행차)하였다"라고 적고 있다. 여기서 상원사는 용문산 상원사를 말한다. 용문산을 당시에 미지산으로 불렸음을 알 수 있는 기록이다.

하지만 실록에 '용문산'이란 표현도 나오기 때문에 두 이름이 이미 조선시대에 같이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신경준의 '산경표'에는 용문산을 일명 '미지'라고 부른다고 했고, '동국여지승람'에는 "양평군은 '용문산에 의지하고' 있는 곳"이라고 돼 있다. '미지'는 '미리'의 옛 형태고, '미리'는 '용(龍)'의 방언(경상, 제주)이다. '용'의 순우리말인 '미르'와 관련이 있다. 그렇다면 애초 미르산으로 불리다 한자로 미지산으로 적었다가 용문산으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2일 용문산을 찾았을 때 정상부근에는 이미 단풍이 퇴색하기 시작했고 산 아래로 단풍이 내려와 있었다. 용문사 은행나무는 이제 노랗게 물들기 시작했는데 꼭대기는 약간 푸른 빛이다. 이번 주말쯤 단풍이 절정에 이를 것 같다.

용문산 단풍이 볼 만한 곳은 용문사에서 절고개를 통해 상원사로 넘어가는 1.9㎞ 코스다. 이 코스는 찾는 이들도 많지 않은 호젓한 산길이다.

용문산은 멋들어진 노송군락이 암릉과 조화를 이룬 풍광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계곡도 제법 깊고 길다. 산 전체가 울창한 천연수림으로 뒤덮여 있어 겨울 설경, 봄 철쭉, 여름 계곡, 가을 억새와 단풍 등 철 따라 그 풍모의 변천이 다채롭다.

용문산의 산행기점은 대개 용문사를 통하게 된다. 용문사 코스는 마당바위를 거치는 계곡코스, 용문사 왼편 절고개 능선을 거쳐 오르는 암릉코스, 아예 절고개를 넘어 상원사로 갔다 연수2리로 내려오거나 아니면 장군바위로 치고 올라 정상으로 가는 코스 등 3개가 대표적이다.

제일 긴 종주코스는 용문사 일주문 직전 매표소 화장실 뒤편으로 용문봉을 거쳐 정상을 지나 함왕봉, 백운봉으로 해서 세수골로 떨어지는 코스가 있다. 백운봉(940m)은 용문산이 남쪽으로 흘러오다 마지막으로 남한강을 만나 뾰족하게 솟아오른 봉우리로 함왕봉과 능선으로 이어져 있다. 서쪽에는 함왕골, 동쪽에는 연수리계곡이 있으며 정상과 주능선에는 암봉이 많다. 능선에서 눈에 띄게 솟아있어 정상을 앞두고 급경사의 산길을 오르게 되는데 그 때문에 한국의 마테호른으로 불린다.

백운봉만 따로 찾는 사람들도 많다. 또 용천2리 사나사(舍那寺)를 통해 오르는 길도 길게 산을 타고자 하는 이들에게 자주 이용된다. 어느 코스를 타더라도 볼거리와 조망이 각기 달라 실망하지 않는다.

용문산은 기차, 전철, 버스, 승용차 등 무엇으로나 접근하기 편하다. 동서울, 상봉터미널에서 용문으로 가는 버스를 타거나, 중앙선 전철(2시간 소요)로 용문 혹은 양평역으로 가도 된다.

양평 =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

코스

▲ 매표소 - 용문사 - 마당바위 - 정상(왕복 4시간30분) ▲ 매표소 - 용문사 - 능선길 - 정상(왕복 4시간) ▲ 매표소 - 용문사 - 상원사 - 장군봉 - 정상 - 마당바위 - 용문사 - 매표소(6시간) ▲ 매표소 - 용문사 - 정상 - 백운봉 - 세수골(7시간)

<수도권 명산 30選>여기 아세요? 용문사 은행나무 1100년 위용.
낙엽무게만 2t·열매 15가마니
문화일보|
엄주엽기자|
입력 2011.11.04 15:11
용문산에 가면 용문사와 그 앞의 은행나무(사진)를 놓칠 수 없다. 천연기념물 제30호인 용문사 은행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가 많고 키가 큰 은행나무다. 나이는 1100년 정도로 보고 있고 나무 높이 62m, 줄기 둘레 14m에 달한다. 가을에 단풍이 들었다가 떨어지는 낙엽의 무게만 2t, 은행 열매는 15가마니나 된다.

이 나무는 신라 경순왕의 세자였던 마의태자가 나라 잃은 슬픔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 심었다고도 하고, 또 신라의 고승 의상 혹은 원효대사가 꽂은 지팡이가 자란 것이라고도 전한다. 용문사는 여러 번 전쟁과 화재를 겪었으나 이 나무만은 그 화를 면했다. 사천왕전이 불탄 뒤부터는 이 나무를 천왕목(天王木)으로 삼고 있다.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는 소리를 내어 그 변고를 알렸다 전한다. 조선 세종 때는 정삼품(正三品)보다 높은 당상직첩(堂上職牒)을 하사받은 명목(名木)이다. 공손수(公孫樹)라고도 부르는데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이 은행나무 열매를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지어졌다.

용문사는 신라 신덕왕 2년(913) 대경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며, 일설에는 경순왕(927~935재위)이 친히 행차하여 창사 하였다고 한다. 세종 29년(1447) 수양대군이 모후 소헌왕후 심씨를 위하여 보전을 다시 지었고 세조 3년(1457) 왕명으로 중수하였다. 순종 원년(1907) 의병의 근거지로 사용되자 일본군이 불태웠으나 이후 중창되었다.

상원사도 유서가 깊은 절이다. 유물로 미루어 보아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1330년대에 보우가 이 절에 머물며 수행했고, 1398년(태조 7)에 조안이 중창했으며, 무학이 왕사를 그만둔 뒤 잠시 머물렀다. 1458년 해인사의 대장경을 보관하기도 했다. 1462년(세조 8) 세조가 이곳에 들러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어명을 내려 크게 중수했다고 하는데, 최항이 그때의 모습을 기록한 '관음현상기'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1463년(세조 8)에는 왕이 직접 찾았다. 상원사도 1907년 의병 봉기 때 일본군이 불을 질러 겨우 법당만 남게 되었다. 이후 신축했으나 6·25전쟁 때 용문산전투를 겪으면서 다시 불에 타 없어졌다가 이후 복원됐다.

양평 =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