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우스 하우스

12월 한계령에서 바라본 밤하늘을 밝게 비추는 시리우스 별처럼... 여기도 영원히...

베토벤 교향곡 제5번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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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악/클래식

2019. 7. 8.



베토벤 교향곡 제5번 c단조 작품67.

​(Symphony No.5 in c minor Op.67 )






베토벤의 9개의 교향곡 중

가장 유명한 곡 중 하나로 우리에게 알려진

모든 서양 고전음악을 대표하는 곡.

4개의 악장 모두 소홀히 할 수 없는 뛰어난 곡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2악장이 제일 좋은 것 같다.


1803년~1808년초에 작곡되어

1808년 12월 안 데어 빈 극장에서

초연되었으며 후원자인 로프코비츠 후작과

라주모츠스키 백작에게 헌정되었다고 한다.

​이 곡이 '운명'이라는 별칭으로 널리 알려진 까닭은

그의 제자이며 베토벤의 전기로 유명한 쉰들러가

이 곡의 제1악장 서두에 나오는

'빠바바 밤'이라는 4음의 주제의 뜻을 물으니

베토벤 자신이

"운명은 이처럼 문을 두드린다"고 설명한데

연유하고 있다고 한다.

베토벤의 귀가 점점 나빠질 때에 작곡한 이 곡은

교향곡 제3번 '영웅'이 완성된 뒤에

쓰기 시작하였으며

'운명'교향곡이라는 별칭은

일본에서 붙여진 것으로 우리나라와 일본 등 

동양권에서 널리 쓰이는 이름이라고 한다.

로베르트 슈만은 이 곡에 대하여

'이 교향곡은 음악의 세계가 계속되는 한

몇 세기고 간에 남을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1828년 어느 날.

파리 국립 음대에서 있었던 일.

이 대학 강당에서

베토벤의 제5번 교향곡이 연주되고 있었다.

많은 음대 교수들과

유명한 작곡가, 지휘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 위대한 작곡가의 걸작품이 연주 되었다.

이 대학의 교수였던 브리엔느씨가

자서전에 남긴 글 중의 일부...

"나는 그날 이 유명한 음악가의 작품 연주에

초대를 받고 좌석에 앉았습니다.

드디어 장쾌한 연주가 시작되자

청중들은 숨을 죽이고 빠져들었습니다.

... 중략....

드디어 음학회가 끝났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박수를 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박수를 칠 생각을 그만 잊어버린 것입니다.

한참 후에 누군가가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드디어 청중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모자를 집어 들고 머리를 찾으니

머리가 어디어 붙어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1악장 Allegro con brio(힘차고 빠르게) C단조 2/4박자 - (고뇌)

  소나타 형식의 전형으로 네 개의 음으로 된 그 유명한 제1주제가 힘차게 연주된다.

이 것은 남성적이고 장쾌하고 호방하다.

이 주제는 여러 모양으로 변형되어 나타나면서 곡은 클라이맥스로 향하여 박진감이 더해진다.


제2악장 Adagio con moto(느리게 그러나 활기차게) Ab장조 3/8박자- (평온함)

두개의 주제를 가진 자유롭고 아름다운 변주곡 형식이지만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구성이다.

비올라와 첼로가 연주하는 주제가 아름다운 분위기를 연출하지만 역시 곡은 전체적으로 긴장감도는 구성이다.


제3악장 Allegro(빠르게) C단조 3/4박자 - (열정)

스케르쪼 악장으로 1악장의 주제가 다시 나타나 구조의 견고함과 통일감을 준다.

3악장은 끊이지 않고 바로 4악장으로 이어지면서 곡의 클라이막스를 만든다.


제4악장 Allegro(빠르게)  C장조 3/4박자- (환희)

소나타형식으로 전악장들의 주제를 여기에 한번 더 회상시키면서 곡 전체를 유기적으로 확고히 연결시킨다.

'승리의 악장'이라고도 불리며 운명과 싸워 이긴 전사의 행진처럼 당당하게 대미를 장식한다.




<운명 교향곡 감상하기>


https://youtu.be/6fsDkAa9VtM


https://youtu.be/dFy7NRNDD4g




 ※베토벤(1770~1827)

1770년 독일 본의 음악가 집안에서 출생.

1792년 비엔나에서 요제프 하이든과 공부함.

1802년 청력을 잃어가고 있는 사실을 처음 발견함.

1804년 교향곡 '영웅'  작곡.

1808년 교향곡 제5번 '운명'과 제6번 '전원' 발표.

1809년 피아노 협주곡 제5번 '황제' 발표.

1819년 청력을 완전히 잃음.​

1823년 장엄미사 완성.

1824년 교향곡 제9번 '합창' 발표.

1827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남.




베토벤


<합창환상곡>(1817)의 가사를 쓴 시인 크리스토프 쿠프너가 베토벤에게 물었다. “선생님의 교향곡 중에서 가장 좋아하시는 곡은 무엇입니까?” 베토벤은 대답했다. “에로이카!” <영웅교향곡>이라는 것이었다. <운명교향곡>일 거라고 생각했던 쿠프너는 되물었다. “C단조(<운명교향곡>)가 아니구요?” 베토벤은 다시 한번 못박았다. “아니오, 에로이카요.”

 

 

1805년 4월 6일, 베토벤은 교향곡 제3번 <영웅>이 빈의 안 데아 빈 극장에서 초연되기 전날 밤을 맞았다.

베토벤은 스스로 지휘할 초연을 앞두고 큰 긴장에 빠져 있었다.

<영웅>이 그가 만든 생애 최고의 역작인 만큼 베토벤의 기대는 매우 컸다.

그러나 다음날 공연이 끝난 다음 이 교향곡에 대한 반응은 시큰둥했다.

이 공연에 대해 라이프치히의 <알게마이네 음악신문>은 “너무 어렵고 생소하고 긴 곡이다.

전체적으로 밝아지고 투명해지고 통일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일반인들이 즐기기에는 무리가 있다”라고 평했다.

그러나 베토벤은 실망하지 않았으며, 끝내 한 부분도 고치지 않았다.

다만 이 곡의 길이에 대해서는 마음에 걸린 바가 있었던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곡을 연주하려면 종래의 교향곡보다 두 배에 가까운 한 시간 정도가 소요되기 때문이다.

베토벤은 나중에 출판된 악보에

‘이 교향곡은 매우 길기 때문에 연주회 전반에 연주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이 곡을 연주하는 데 한 시간 가까이 걸리는 게 사실이지만, 머지않아 이 곡이 전혀 길지 않다고 느껴질 날이 올 것이다.”

 

베토벤은 훗날 교향곡의 대명사라고 불리는 5번 <운명교향곡>과

교향곡의 완성이라고 칭송받는 9번 <합창교향곡>을 작곡했는데도,

왜 <영웅교향곡>에 더 큰 애착을 느꼈던 것일까?

이 곡을 필두로 해서 베토벤이 모차르트와 하이든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음악사적인 이유를 댈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본인의 판단이라기보다는 연구자들의 판단이기 때문이다.

베토벤이 <영웅교향곡>에 특별한 애정을 가졌던 것은 이 작품이 그만큼 역작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임에 틀림없으며,

한편으로는 그가 평생을 몰두한 ‘영웅’이라는 주제를 가장 종합적으로 구현한 작품이기 때문이었다.

실로 그는 많은 곡에서 ‘영웅’을 그렸다.

그의 영웅은 자신의 처절한 운명과 싸워야 하는 마음속의 영웅이자, 그가 염원해 마지않던 인간의 자유를 보장해주고 평등을 실현해줄 역사적 영웅이었으며, 나아가 진정으로 인류를 구원할 신화적 영웅이었다.

이 세 종류의 영웅을 종합적으로 그렸을 뿐만 아니라, 영웅의 죽음과 부활, 세상의 구원을 입체적으로 노래한 <영웅교향곡>은 귀가 먼 불우한 음악가 베토벤의 운명에 대한 뜨거운 절규였던 것이다.


 

 

베토벤은 흔히 ‘음악의 성인’(樂聖)이라고 불리지만, 필자는 ‘음악의 영웅’이라고 부르고 싶다. 베토벤의 생애야말로 영웅의 일대기에 걸맞은 것이기 때문이다. 영웅 하면 일반적으로 아킬레우스오디세우스, 알렉산더나폴레옹 등 전쟁영웅을 떠올리기 쉬우나, 나라를 세운 건국영웅, 종교의 교주나 성자 등 종교영웅, 인류의 문화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문화영웅도 영웅에 포함될 수 있다. 신화 속 영웅들은 대체로 신이한 탄생으로부터 출발하여, 시련을 이기고 세상을 구원할 소명의식을 갖고 수련을 위해 길을 떠나며, 집단으로 회귀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비범한 죽음을 맞이한다. 이 신화 속 영웅의 일대기가 현실의 영웅들에게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겠지만, 이와 비슷한 생의 궤적을 그릴 때 그 영웅의 삶은 세상 사람들에게 더욱 깊이 각인된다.


 

음악의 영웅들은 어린 시절부터 보통 사람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 모차르트가 여섯 살 때 이미 공개연주를 한 것은 유명하다. 모차르트보다는 못한 듯하지만 어린 시절 베토벤의 능력 또한 특별한 것이었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1770년 12월 17일 독일의 본에서 가난한 음악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베토벤은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베토벤의 아버지는 궁정 악장이 되었으나 그의 실력이 그리 출중한 편은 아니었다.

 

그는 아들을 통해 자신의 음악적 욕망을 실현하고 싶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신동임을 내세우려고 아들의 나이까지 속였다. 베토벤은 마흔 살이 될 때까지 자신이 1772년에 출생한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여덟 살 때인 1778년 처음으로 대중 앞에서 연주회를 갖게 되었는데, 주최측에서는 ‘궁정음악가 테너 요한 베토벤의 6세 된 아들 루트비히가 피아노 협주곡과 3중주곡을 연주할 것이다’라고 광고했다. 이 연주회의 성패는 자세하게 전해지지 않으나, 여덟 살 때에 이미 피아노 협주곡을 감당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다.



 

어린 시절에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서 그의 인생이 탄탄대로였던 것은 물론 아니었다. 시련은 어렸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였고, 어머니는 병약했으니, 장남 베토벤의 어린 시절은 눈물겨운 고난 그 자체였다. 자식을 모차르트보다 유명한 음악가로 키우고 싶었던 아버지의 음악 교육은 가혹했다. 아버지는 베토벤을 네 살 때부터 클라브 생(피아노의 전신) 앞을 떠나지 못하게 하거나, 바이올린을 주고 방 안에 가둬버렸다.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이 컸다면 아마도 음악을 끔찍이도 싫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베토벤은 일찌감치 음악을 접하는 것을 즐겼다. 그러나 이런 아버지의 교육으로 인해 그는 학교 생활에는 쉽게 적응하지 못했고, 오직 음악 속에서만 행복할 수 있었다. 열한 살에 그는 극장 오케스트라의 단원이 되었고, 열세 살에는 오르가니스트가 되었다. 열다섯 살에 벌써 동생들의 생계를 위하여 피아노 교습 등을 통해 돈을 벌어야 했다.

 

1787년 어머니가 폐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것은 베토벤에게 참으로 큰 충격이었지만, 한편으로는 한층 성숙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어머니를 여의면서 그는 죽음의 의미와 생명의 유한성, 그리고 구원의 문제를 골똘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나중에 “죽음을 모르는 사람은 가엾어라! 나는 열다섯 살(사실은 열일곱 살이었다)에 벌써 죽음을 알고 있었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이 시기에 그는 정신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열세 살에 작곡한 <드레슬러 주제에 의한 피아노를 위한 9개의 변주곡 C단조>가 최초로 출판되면서, 베토벤의 작곡 인생이 시작된다. 천재라 할지라도 소명의식이 없으면 평범한 사람으로 자랄 수도 있다. 소명의식을 키워주는 이는 대체로 스승이다. 청소년 시절에 강력한 소명의식을 일깨워줄 스승이 있어야만 천재는 자신의 재능에 자부심을 갖고 더욱 정진하게 되는 것이다. 베토벤에게 소명의식을 부여한 스승은 크리스티안 고틀로프 네페였다. 네페는 베토벤에게 음악의 중요성과 기술뿐만 아니라 자신이 공부한 철학을 토대로 인간의 정신세계에 대해서도 가르쳤다. 특히 모차르트와 하이든을 만나게 해줌으로써 베토벤의 음악인생에 힘찬 엔진을 달아주었다.


1787년 베토벤은 빈으로 여행을 떠났는데, 거기서 모차르트를 만나게 된다. 당시 31세의 모차르트는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베토벤이 피아노를 멋진 솜씨로 연주했는데도 모차르트는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베토벤이 즉흥곡 주제를 요구하자 모차르트는 작곡중이던 <돈 조반니>의 주제 일부를 주었다. 베토벤의 즉흥곡을 들으면서 모차르트는 외쳤다. “이 젊은이를 눈여겨보라. 이 젊은이가 머지않아 세상을 향해 천둥을 울릴 날이 있을 것이다.” 이미 음악과 한몸이 된 베토벤이었지만, 모차르트와의 만남으로 인해 그의 음악에 대한 집념은 더욱 집요해지게 되었다.


 

 

자신의 길을 발견한 영웅은 본격적으로 길을 떠나게 된다. 1792년 11월, 22세의 베토벤은 당시 음악의 도시였던 빈에 정주하였다.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가 활동했던 빈에서 베토벤은 모차르트를 능가하는 위대한 음악의 세계를 펼쳐 보이고 싶었다. 그는 음악 공부는 물론이고 생활도 철저히 꾸려나갔다. 하이든, 요한 밥티스트 솅크, 요한 게오르그 알브레히즈베르거, 안토니오 살리에리, 엠마누엘 알로이스 푀르스터 등을 스승으로 모시고 음악의 여러 장르를 섭렵했다. 빈 시절 초기에는 많은 작품을 쓰지 않았지만, 이제는 어떤 대작도 쓸 수 있는 종합적인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1796년의 수첩에 베토벤은 이렇게 적었다. “육신은 아무리 잔약할지라도 나의 정신은 꼭 이기고야 말리라! 스물다섯 살! 나도 이제는 스물다섯 살이다. 인간으로서의 전 역량을 드러내야 할 나이가 된 것이다.” 실제 나이는 스물여섯 살이었다.


 

 

 

그러나 사실상 베토벤에게 시련은 이제야 찾아온 셈이었다. 1796년과 1800년 사이 베토벤은 차츰 청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최고의 음악 영웅을 꿈꾸는 이에게 음악이 사라져버리는 일이었다. 자신의 인생이 끝나가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 두려워 베토벤은 여러 해 동안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1801년에 이르러서야 두 친구, 의사 베겔러와 목사 아멘다에게 고백하였다. 그는 베겔러에게 편지를 보내 “내가 얼마나 나의 존재를 저주하였는지 모르네! 플루타르코스가 나를 체념으로 인도해주었다네. 그러나 가능하면 이 처절한 운명과 싸워보고 싶네”라고 말했다. 이 시련은 그 어떤 것보다 버거운 것이었다. 과연 청력을 잃고도 위대한 음악가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시련으로 인해 베토벤은 ‘영웅’이란 주제에 더욱 끌리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비참한 운명에 처한 인간을 구제할 특별한 능력을 소유한 영웅! 고통 속에 허덕이는 세상 사람들도, 병마에 시달리는 자신도 그 영웅의 힘으로 일어설 수 있으리라는 꿈을 꾸었던 것이다. 그의 꿈속에 들어온 당대의 영웅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였다. 그가 보기에 나폴레옹은 시민의 대변인이자 평화의 전도사로서 폭군들을 물리치고 인간의 권리를 되찾아줄 공화주의자였다. 나폴레옹을 생각하며 베토벤은 교향곡을 작곡하였고, <보나파르트>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러나 1804년 12월 나폴레옹이 황제에 즉위했다는 소식을 들은 베토벤은 나폴레옹에게 바친다는 헌사 부분을 찢어버렸다. “나폴레옹은 영웅이 아니었어. 권력욕에 사로잡힌 평범한 인간일 뿐이었어.” 베토벤은 자신이 나락으로 추락하는 것 같았다. 겨우 마음을 진정한 그는 생애 최고의 대작에 ‘영웅’이라는 나폴레옹보다 더 큰 제목을 붙였다. 그렇게 <영웅교향곡>은 우리들 앞에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영웅에게 닥친 시련이 클수록, 시련을 이겨낸 영웅의 위대함은 더욱 빛나는 법이다. 음악가에게 청력이란 목숨과도 같았을 터, 그러나 베토벤은 청력을 잃은 후에도 인류의 빛과 소금이 되는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생산하였다. 베토벤이 평생에 걸쳐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 32곡은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평균율과 함께 피아노 음악의 금자탑으로 손꼽히고 있다. 1808년 작곡하고 초연한 <운명교향곡>과 <전원교향곡>, 기나긴 준비과정을 거쳐 1824년에 작곡된 교향곡 제9번 <합창교향곡>은 위대한 영혼이 만들어낸 고귀한 피조물이다. 바그너의 다음과 같은 말은 베토벤 교향곡의 가치를 분명하게 말해준다. “교향곡을 쓸 권리는 베토벤에 의하여 소멸되었다. 이 최후의 교향곡은 음악을 그 특수한 요소에서 구해내고, 보편적 예술에 결합시킨 것이다. 그것은 미래 예술의 인성적 복음이다. 그 이상 진보할 수는 없다.” 그러나 베토벤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작품을 구상했다. 그는 열 번째 교향곡을 준비하면서 완숙미를 자랑하는 다양한 현악4중주곡을 작곡했다.


 

영웅의 최후는 생각보다 허무하다. <라마야나>의 영웅 라마가 강가에서 홀연히 사라졌듯이, <마하바라타>의 영웅 크리슈나가 발뒤꿈치에 화살을 맞고 하늘로 떠났듯이, 불사의 영웅 아킬레우스도 발뒤꿈치에 화살을 맞아 죽고 말았듯이, 영웅은 자신의 임무를 다하면 허무하게 떠나고 만다. 열 번째 교향곡을 준비하긴 했지만, 이미 기악과 성악을 결합시킨 교향곡의 정점 <합창교향곡>을 만든 이상 영웅 베토벤의 임무는 끝났는지도 모른다. 그는 조카 카를의 교육에 몰두하지만, 카를의 음악적 능력을 귀가 먼 베토벤이 제대로 알아볼 수는 없었다. 조카에 대한 집착은 병만 키우고 만다. 1827년 3월 26일 베토벤은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이렇게 베토벤의 생애는 비범한 성장기를 거쳐 뜻을 세운 후 프로메테우스의 불과도 같은 음악을 선사하고 떠난 영웅의 일대기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모든 면에서 완벽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는 기분이 좋을 때에도 갑작스럽게 화를 내는 경우가 많았으며, 사랑하는 여인들과도 원만한 애정관계를 유지하지 못했고, 도덕적 가치를 강조하면서도 자신의 악보를 한꺼번에 여러 출판사에 넘기는 행위를 하기도 했다. 그런 불안한 면까지가 희로(喜怒)와 애락(哀樂)과 선악(善惡)과 호오(好惡)로 작품 속에 스며들어 우리가 그의 음악에 더욱 뼈저린 감명을 느끼게 하는지도 모른다. 베토벤 음악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우주의 궁극적 본질과 신성(神性)을 향한 명상과 기도를 함께 담고 있다. 우리가 베토벤 음악 속에서 장중함을 넘어 숭고함을 느끼는 이유이다. ‘예술의 영웅’은 완벽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불완전한 면모까지를 포함한 숭고함에 있는 것이리라.

 

다시 <영웅교향곡> 이야기로 돌아가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영웅교향곡>은 한 위대한 음악가의 탄생을 알리는 장중한 신호탄이었다. 신호탄 치고는 지나치게 ‘파괴적’이었다.


 

교향곡 제3번이 진가를 인정받은 것은 한 세대 후 베를리오즈에 이르러서였다. 베를리오즈는 “이 교향곡은 착상과 처리가 아주 힘차며, 그 양식은 숭고하며, 시적인 영감을 품고 있다. 이 교향곡을 들을 때 나는 헤아릴 길 없는 깊은 고태(古態)적 슬픔에 잠긴다”라고 말했으며, 바그너는 “교향곡 제3번은 완벽한 인격에서 우러나온 작품이며, 감정의 유연성과 정력적인 힘이 결합되어 있다. 이러한 완성에의 정진이야말로 이 작품의 영웅적 성격을 뚜렷하게 하는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그럼 오늘은 베토벤이 지휘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영웅교향곡>을 들어보자. 처절한 운명(악)과의 싸움으로 시작하여, 죽음과도 같은 시련, 고난을 디딘 부활, 마침내 인류에게 구원의 선물을 주는 것으로 끝나는 이 곡이 베토벤의 삶과 꼭 닮지 않았는가? 이 영웅이 우리에게 특별한 감동을 주는 이유는 그가 결코 영웅이 될 수 없는 조건에 처하게 되었음에도 투철한 정신력으로 마침내 도달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글쎄, <영웅교향곡>이 베토벤의 생애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말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베토벤의 영향력을 생각할 때 그의 음악을 소개하는 책이 많을 것은 자명하다. 그런 책들에 대해서는 독자들의 도움을 빌리기로 하고, 베토벤의 생애를 다룬 진정으로 권하고 싶은 책을 추천한다.

 

로맹 롤랑의 <베토벤의 생애>(이휘영 옮김, 문예출판사)는 베토벤의 음악만큼이나 장중하고 활달한 문체로 그려진 베토벤 전기이다. 베토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영혼의 울림이 한 글자 한 글자에 스며 있는 아름다운 글이다.



 

베토벤의 생애베토벤의 삶과 음악세계베토벤의 영웅교향곡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며, 이 글을 읽어보라. 베토벤의 강렬한 눈빛이 당신의 마음속에서 오래도록 떠나지 않을 것이다. 베토벤이 1802년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쓴 유서의 다음 구절과 함께. “모든 불행한 사람들이여! 당신과 같은 한낱 불행한 사람이 자연의 갖은 장애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사람들과 예술가의 대열에 참여하고자 전력을 다하였다는 것을 알고 위로를 받으라!”

 

조수철의 <베토벤의 삶과 음악세계>와 <베토벤, 그 거룩한 울림에 대하여>(이상 서울대학교출판부)는 베토벤의 삶에 대해 최대한 자세하게 정리했을 뿐만 아니라, 작품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해설하고 그 의미를 짚어나간 특별한 책이다. 특히 신경정신과 의사이기도 한 저자가 베토벤 음악과 삶의 심리적 의미까지를 진술한 부분은 다른 책에서 발견하기 힘든 흥미로운 대목이다. 베토벤이 영향받거나 그의 음악 속에서 표현된 동서양의 사상까지를 정리하여 베토벤에 대한 입체적인 이해를 도모하기도 했다. 베토벤의 모든 것이 두 권의 책 속에 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베토벤의 음악이 글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은 물론이다. 베토벤의 음악을 친구로 삼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 두 권의 책도 친구로 삼는 것이 좋겠다.

 

애너 하웰 셀렌자의 <베토벤의 영웅교향곡>(이상희 옮김, 책그릇)은 어린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베토벤이 <영웅교향곡>을 작곡하게 된 배경과 그 내용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냈다. 시디가 포함되어 있으니, 음악을 들으면서 읽으면 더욱 재미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