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연구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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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극지 탐사 항해

2021. 1. 23.

 

 

얼음 연구는 어떻게 이뤄질까요
실제 과정을 소설 속에서
경험할까 합니다

 

 

 

 

32. 연구 작업

 

쇄빙능력시험이 몇 번 더 필요하다.
새로운 목적지 77N 160W 부근에 다다랐다.
북쪽으로 올라감에 따라 여름인데도 아침 기온은 영하 4도까지 내려갔다. 낮이 되자 햇빛이 나오고 갑판에 쌓였던 눈이 많이 녹았다. 눈은 철판의 색깔에 따라 온도가 다른지, 하얀색의 구조물엔 눈이 그대로 있는 반면 초록색 갑판엔 눈이 말끔히 녹았다.
헬리콥터가 빙빙 돌아다니다가 괜찮은 얼음덩어리를 발견했다고 연락해 왔다.
미국인 얼음팀은 오랜만에 밥값을 하게 됐다고 좋아했다.
곰감시인은 갑판 4층 연돌 옆에서 곰이 다가오는지 망을 보기 시작했다.
이젠 자신의 임무가 주어져 보수를 받아도 미안하지 않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렇지만 북극곰 한 마리는 데리고 와야 하는데… 이거 잘못하면 일자리가 사라질지도.”
먹는 문제는 누구에게나 만만치 않다.
농담하는 그 얼굴에는 진담의 흔적이 스며있었다.
‘노인과 바다’의 노인도 그랬을 것이다.
저녁식사가 끝난 후 시작한 쇄빙시험은 3미터 두께의 얼음을 만났다. 배가 부딪혀 옆으로 미끄러졌다. 이런 두께는 쇄빙시험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 너무 두껍기 때문이다.
배의 위치를 옮겨 조금 얇은 곳에서 몇 번의 쇄빙시험을 했을 때 감동적이었다.
쪼개진 얼음에서 은은한 황혼의 빛이 반사했다.
8월 초순 밤 10시의 북극 하늘에서 낮게 내려앉은 태양 빛으로 얼음은 엄청 황홀했다.
아름답다!

 

그 밤이 지나고 이튿날.
밤사이 배의 항적을 보니 거대한 뱀처럼 S자를 그리며 움직였다. 10분 동안 백 미터도 채 움직이지 않았는가 하면, 10분 동안 몇 킬로미터를 움직인 적도 있다.
옆으로 밀리고, 휘어지고, 꼬여서 배는 소주를 몇 병 마신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갈지자로 항적을 그렸다.
8월 4일 오후에도 헬리콥터는 얼음을 찾아다녔다.
날씨가 나빠 얼음상태를 파악할 수 없어 한 시간 만에 돌아왔다.
얼음 연구는 삼박자가 맞아야 한다.
쇄빙선, 날씨, 얼음이 적당해야 하는 것이다.
오후 얼음팀과 생물팀이 배 근처의 얼음 위로 내려갔다.
얼음팀은 얼음을 뚫어 얼음 두께를 재고 특성을 알아보는가 하면, 생물팀은 얼음 아래의 미생물을 채집했다.
배는 또 다른 목적지 78N 160W에 다다랐다.
얼음 책임자 이 박사를 태운 헬리콥터가 얼음을 찾아 나섰다. 날씨가 좋아 50분 이상 날아다니며 배에서 7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쓸 만한 얼음을 찾아냈는데, 신기하게도 북극곰을 발견했다.
“과연 북극에 오긴 왔군.”

곰감시인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보여줄 때가 온 것이다.
지금까지 북극 탐사에서 발견된 단 한 마리의 북극곰이었다.
몸집은 그다지 크지 않으나 헬리콥터 소리에 놀라 곧 돌아서 멀어져 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저녁때 곰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시간당 4킬로미터를 걷는 곰이 배의 주방에서 나오는 음식 냄새를 맡고 나타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헬리콥터에서 찾아낸 얼음은 길이 300미터에 폭 150미터 빙판이었다.
얼음-물-얼음 3층으로 언 것으로 두께는 평균 2미터가량.
얼음은 깨어졌다가 다시 다른 얼음과 닿아 어는 경우가 많아 두께는 들쭉날쭉 했다.
도대체 쇄빙능력시험은 어떻게 한다는 것인가.
배가 얼음을 깨는지 아니면 깨어진 얼음끼리 부딪쳐 깨지는 건지 알 필요가 있다. 또 그때 배의 힘과 속도를 알아봐야 한다.
북극의 수평선은 직선이 아니고 울퉁불퉁한데 이건 얼음 봉우리 때문이다.
얼음봉우리 뒤에 북극곰이 숨어 있을 법도 하지만 헬리콥터에서 보았다는 북극곰은 끝내 배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가까이 나타나도 여전히 문제가 될 것이다.

 

8월 8일 일요일
오늘 아침처럼 하늘이 높고 화창한 날은 북극에 온 이후 처음인 것 같았다.
북위 75도의 바다이지만 바람이 적고 기온은 2도로 아주 상쾌했고 바닷물은 반짝거렸다.
생물팀은 채수기를 내려 그물에 걸린 플랑크톤을 채집하느라 분주했다.
얼음구멍 아래로 보이는 시퍼런 바다가 무서운 입을 벌리고 있었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삼키기도 한다>
전국시대 순자는 배를 잘 알고 말한 것 같았다.
러시아 유빙항해사가 한국 얼음팀 연구원 두 명과 함께 선교로 올라왔다.
그는 연구원들에게 해빙분포도를 그리는 법을 가르쳤다. 이를 위해 해빙의 두께와 위치를 파악하는 방법과 그의 경험을 말해주면서 얼음분포에 관한 기본 자료 축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저녁 메뉴로 나온 삼겹살이 소주를 친구 삼았다.
하늘이 높고 맑을 때는 술이 한잔 들어가면 하늘은 끝없이 넓은 바다로 보이는가.
“연거푸 마셨더니 머리에 쥐가 나려고 하네.”
선의(船醫)가 주기의 오름을 간접적으로 표현하자 양외란이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그럼 아스피린 드실래요?”
“의사는 내야. 약 먹을 일 없어. 쥐났을 땐 주물러주는 수밖에.”
“이땐 머리를 주물러야 하나요?”
“보통은 쥐난 곳의 반대쪽을 주물지. 근데 이런 경우엔?”
“……”
“다리에 쥐가 났다면 반대편 다리를 주물러 주고….”
“머리의 반대쪽은 발이 되나요?”
“그건 좀 애매하군.”
이럴 때 누가 대표로 부끄러워해 주고 웃어줄 사람은 없을까.

 

지구 온난화의 비극을 확인하는 땅이 바로 극지이다.
북극의 얼음이 예상보다 빨리 녹아내리고 있음은 온 지구가 다 아는 사실이다.
30년 전부터 위성에서 촬영해온 북극해의 얼음 표면적 변화가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얼음면적은 30년 전의 것에서 25%로 줄어들었다.
2030년 여름엔 북극해에서 빙하가 완전히 사라질지 모른다는 경고는 이 때문이다.
북극 빙하의 소멸은 생각지도 않은 두 가지 큰 변화를 가져왔다.
북극해 항로 개척과 북극해 연안 자원개발.
현재 북극해의 얼음은 여름철 두 달 남짓한 짧은 기간만 녹았다가 가을부터 봄까지 다시 얼어붙어 쇄빙능력을 갖추지 않은 선박은 운항할 수 없다.
날씨는 구름이 많이 끼고 안개가 자욱한 날이 많았으며 변덕도 심했다. 여름철 북극은 백야 현상으로 하루 종일 해가 지지 않는다.
북극해의 해빙(解氷)이 가속화되고 있다.
2100년엔 지금보다 기온이 4도 상승하고 해수면이 1미터 상승한다는 예상이다.
“대한민국은 서울시의 5배 되는 넓이의 해안이 수몰한다는 시뮬레이션이 있지요.”
얼음팀 연구원이 말했다.
“살고 있는 곳이 해면에서 일 미터이상 되는지 확인해봐야겠네요.”
양외란의 반응이었다.
잡지에서 본 기사가 생각나서 그녀는 다시 물었다.
“그럼 인도양에 있는 인구 30만의 몰디브 운명은 어떻게 되죠?”
“스리랑카에 토지를 매입했다는데….”
“남태평양의 작은 섬들은 호주나 뉴지로 대피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작은 섬들이 수몰의 공포에 떨고 있는 가운데 북극에는 새로운 현상이 생겼다.
북위 80도까지 얼음이 녹아 푸른 바다로 변하고, 북극점 부근도 곳곳이 녹아 호수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북극점에서 폭염 현상을 경험하는 날이 오겠군요.”
양외란은 걱정이 돼서 말했다.
“북극에서는 지금 하루에 서울의 백배가 넘는 면적의 얼음이 녹아내리고 있어요.”
연구원도 함께 걱정했다. 얼음 연구의 중요성이 더 크게 부각되는 것이다.
전 지구 담수(지하수 포함)의 70퍼센트가 빙설인 만큼 얼음이 녹는다는 사실은 끔찍하기만 하다.
북극의 기후변화와 빙하, 생물종, 해류, 자원 등에 대한 연구를 위해 한국은 2002년 북극의 노르웨이령 스발바르 제도에 다산과학기지를 건설했다. 프랑스와 공동으로 건물을 사용하면서 북극의 모든 것을 연구하고 있다.
극지 얼음의 문제는 전 인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