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향 이야기

히말라야시다 2018. 2. 21. 10:26



흥왕초등학교 운동장에 있는 낙우송





    추억- 흥왕국민학교 소풍              

                                                 

    1961년 3월에 흥왕초등학교에 입학하여

    1967년 2월 졸업을 할 때까지 6년 동안,

    수없이 많은 소풍을 다닌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봄과 가을이 되면 어김없이 소풍을 갔다.

    예나 지금이나 학생에게 가장 즐거운 날이

    소풍이 아닐까 싶다.


    소풍가는 전날이면 마음은

    모두가 들떠 있었고 환호를 하였던 행사였다.


    용돈도 주지 않았고

    도시락이라야 별로인 반찬이지만,

    최고의 날이었다.


    선생님과 친구와 함께 들과 개울을 건너

    재잘거리며 한없이 걸어갔다.

    산에 오르고 자리하고 앉아서

    특별한 프로그램도 없이 자유스럽게 놀았다.


    기다리면 준비하여간 도시락을 먹으라는 담임의

    허락과 함께 친구들과 먹고는 돌아오는 행사였다.

    그것으로도 한없이 즐거웠던 날이었다.


    봉화산은 여러 번 다닌 것으로 생각난다.

    학교에서 가깝고 경주이씨 문중 산으로

    할아버지를 비롯하여 몇 대조 조상의 묘가 있어

    명절마다 자주 찾는 산이었다.


    화배 마을 근처에 있던 갱명산도 몇 차례 다녀왔다.

    지금은 KTX 철로가 근처를 지나 차에서도 볼 수 있다.





    용안면사무소 뒤편의 삼각산도 한 번을 갔다.

    너무도 먼 소풍지였던 기억이 난다.


    강경 근처에 있는 천주교 유적지 나바우도 갔다.


    함열을 지나 성당, 함라에 위치한 아주 높은 산은

    정말 걸어가기에는 너무 멀었고,

    올라가기엔 너무 높았던 소풍지였다.

    가자마자 점심을 먹고 먹고나자 바로 돌아온

    최악의 소풍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4학년 가을철에 갔던 논산에 위치한 미륵탑과 부처 바위,

    5학년 가을에는 부여 낙화암으로 갔다.

    논산까지 기차를 타고 가서 버스로 부여를 갔다.

    한 친구가 논산 역에서 하행선을 타지 않고 상행 열차를 타고

    두계역까지 갔다가 차장의 안내로 되돌아왔다.


    용안역에 내려서 인원 점검을 하니 남학생이 한 명 부족하였다.

    모든 학생을 집으로 보낸 뒤 담임 선생님은

    그 친구를 찾느라 고생을 하셨다.


    두계역까지 올라간 친구는 차장의 안내로

    안전하게 밤늦게 돌아왔다고 한다.

    그 뒤로 그 친구의 별명은 "두계'가 되었다.


    6학년 때 가을 소풍은 수학 여행으로 서울로 갔다.

    이 때는 가정 형편으로 불참하여 앨범에서

    아쉬움을 달래고 만다. 

     














    바람이 부는 날이면 소리가 나던 나무, 낙우송도 잘 있는지 궁금하다.
    운동회 전날 플라타나스 나무에 만국기를 달다가 떨어지던 선배,
    몰려들었던 학생과 몰아내던 선배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