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생활 이야기

히말라야시다 2018. 3. 15. 21:12




                    <효자3동에 있었던 춘천삼육초등학교 옛건물>



갑자기 허집사님의 소개로 남영골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소개가 과분하게 이루어져, 지난 주 바쁜 중에도 해명하는 글을 인사 겸 올립니다.

허집사님의 간단한 소개에 대한 보충 사항을 올리오니 제가 일한 내용은 그냥 보시고,

저를 도와 주시고 주님의 학교를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와 은혜만 보시기 바랍니다.


 

거의 폐교 직전의 학교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쏟으신 그 열정

2000 3월 부임할 당시에 춘천삼육초등학교는 춘천에 거주하는 교인들조차 폐교를 말할 때였고,

동중한합회와 연합회에서도 부담을 갖고 있는 학교였습니다.

재학하는 학생수는 2000 3 65, 2001 65, 2002 100, 2003 120,

2004 150, 2005 180, 내년에는 220명 이상 예정입니다.

춘천시 효자3, 시의 중앙에 위치한 학교가 2004 8,610평의 새학교 부지를

소양댐 근처 동면 장학리에 600평 규모의 새 학교를 신축하여 2005년부터 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삼육학원에서 학교운영비의 70-80%를 지원받던 학교에서 이제는 곧 자립하는 학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피땀, 노력 그리고 철저한 교육관

2000 4, 춘천삼육초등학교를 찾아오신 ㅎ이사장은 학교를 둘러보시고 유포리 막국수 식당에서 식사를 하셨다.

출발에 앞서 이사장은 많이 생각하여 발령을 냈어. 죽을 힘을 다하여 일하라.”고 하셨다.

전임 교장이 힘을 다해 일하다가 질병으로 죽었는데 후임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시니 더없이 무겁게 느껴졌다.

아침마다 교내를 쓸고 열심히 일하다 보니 그 동안 발톱이 두 번이나 빠졌고,

흘린 눈물과 땀들이 어떠했을 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학생 대신에 화장실 청소를 하시고

화장실 청소하는 남학생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학년에 남학생이 한 명인데 군이 화장실을 청소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 아이는 주1회씩 하는 화장실 청소를 도맡아 한다는 것이 아닌가.

담임과 협의하여 화장실 청소를 면하게 해주고 남녀 화장실 모두를 내가 청소하기로 하였다.

아무도 안 보는 새벽에 화장실 쓰레기를 버리고 화장실 청소를 하였다.

어느 일요일에는 식구와 함께 공중 화장실 냄새가 나는 남자 소변기를 분해하여 청소하였다.

오랜 세월 동안 경화된 염분은 염산과 낙스로 닦아지지 않았다.

펜치와 도라이버, 마침내 사포를 가져다가 경화된 염분을 제거하였다.

1회씩 식구와 함께 번갈아 가며 화장실 바닥, 대소변기, 벽 타일,

문짝을 닦는 대청소를 하여 깨끗한 화장실을 만들었다.

 

사모님과 함께 급식을 준비하시고

2,000년 부임한 해에 65명 학생 중 여러 학생이 도시락을 싸오고 급식을 하지 않았다.

달이 갈수록 급식자가 줄었다. 식단이 부실하기 때문이었다.

10년째 근무하는 조리사가 학생이 줄다 보니 급료는 줄어들고

운영비에 맞추어 재료를 구입하여 만들기 때문이었다.

여러 삼육초등학교의 식단을 받아서 식구에게 넘기며 부탁하였다.

식단을 짜서 급식실에 넘겨주고 급식이 잘 되도록 도와주라고 부탁하였다.

밤이 늦도록 만두를 만들어 주고, 삼육 피자를 만들어 급식을 하였다.

전에 없던 호떡과 필리핀 요리 등을 급식으로 제공하였다.

싸고 다양한 식재료를 구하려 청량리에 있는 경동 시장까지 찾아가서 사왔다.

정성을 다하여 만든 결과 모든 학생이 기다리는 점심 식사가 되었다.

식구는 2005년 지금도 식당에서 무보수로 일하며 봉사하고 있다.

 

여러 해 묵은 교실 바닥을 청소한 이야기

십여 년을 묵은 때는 보기에도 더러웠다.

교실 바닥을 청소하면 깨끗해지지 않느냐?’고 물으니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마루를 깔 때부터 그렇게 되어 있었다.’ 8년 전부터 계신 고참 선생님이 말했다.

저도 그런가 보다 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날, 저의 식구가 교실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교실 바닥을 닦고 있었습니다.

낙스를 가지고 바닥의 때를 지우고 있는 것이었다. ‘안 닦이는 것이다.’라고 들은 대로 말렸습니다.

얼마 후에 보니 교실 바닥이 뽀얗게 변하는 것이었다.

같이 쪼그리고 앉아 낙스를 부어가며 교실과 복도 바닥을 닦았다.

독한 낙스 냄새를 맡아가며 닦다가 더 좋은 방법을 찾아냈다.

교실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물을 흠뻑 뿌렸다.

때가 불기를 기다려 수세미로 밀어 닦으니 쉽게 닦이는 것이었다.

낙스 비용도 절약되고 독한 냄새도 맡지 않아서 이중으로 좋았다.

1 100평을 모조리 몇 날 동안 닦았다.

여 선생님이 하려는 것을 힘든 일이라고 말리고 교재 연구를 하라고 하며 다 닦았다.

 

학교 교육과정에 끌어들인 특성화 교육들

삼육초등학교마다 시도하는 전교생 1 1악기 교육을 하였다.

대전, 원주 삼육초등학교가 처음 시작하여 효과를 보고 있었다.

춘천삼육초등학교는 학생수도 적고, 학부모가 원하는 교육인지 알 수 없었다.

바이올린과 풀룻은 개인이 구입하지만 첼로는 학교용을 준비하여야 하기에 학교운영비도 부족한 때라 망설였다.

또 영어교육을 위해서는 원어민이 머물 사택과 인건비로 엄두를 내기 어려웠다.

그러나 S이사장, 동중한합회장 O목사의 격려와 지원으로 시작하였다.

결론으로 말하면 이런 과감한 특성화 교육이 성공하여 오늘의 춘천을 만들었다.

지난 2005 11전교생 음악 발표회를 성황리에 치루었다.

전교생이 참여하는 음악회는 전국에서도 찾기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이상이 허집사님이 짧게 소개한 내용의 세부 내용입니다.

그 외에는 교육대학교를 졸업한 선생님을 3명이나 침례를 주고

학교 정식 교사로 채용한 일은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1명의 초등학교 교사를 만들기 위하여 한국연합회 교육부에서

200만원씩 8학기 동안 장학금을 지급하는데 3명을 교사로 채용하였던 것이다.

 

2001 4월에 이스타나 봉고를 구입하였다.

3월에 34인승 학교 버스로 학생들이 등하교를 하는 데 1시간이 넘었다.

춘천 전역에서 오는 학생들을 실어나르느라 학생들이 버스에서 한 시간을 타고 다녔다.

중간에 학교를 들려 하차하고 돌아다니는 방법을 써도 해결되지 않았다.

불가불 제 개인 통장의 돈을 찾아 넣어서 이스타나 봉고를 구입하였다.

운전사를 따로 구할 수 없어 아침 등교는 급식실 조리사가 하였고,

오후 1차 하교는 학교장이 손수 운전하며 하교를 하였다.

방학 때 실시하는 특기교육과 개척대, 영어 캠프에 학생들을 실어나르다 보니

전교생의 가정 위치를 아는 교장이 되었다.

그 외의 많은 이야기들은 이곳에 올리면 창피하고 자존심도 깎이는 듯하여 더 말하기가 그렇습니다.

6년이 너무도 빨리 지났습니다. 그리고 때마다 도와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어서 감사드릴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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