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향 이야기

히말라야시다 2017. 10. 6. 14:53


돈다산


원래의 동네 명칭은 돈다산(敦多山, 돈다메)으로 불렀다.


돈다산은 호남평야 들판에 위치한 동네로,

들판에서 10미터 정도의 두두룩한 언덕으로 되어 있어

돈다산으로 명명되었다고 한다.


돈다산은 그 지형이 좀 두두룩한

돈대((墩臺))로 되어 있어 일컫는 말로서,

4개로 나누어진 동네로 되어있었다.



큰 마을인 다산(多山)은 50여 가구가 모여있는

서편 들판을 향해 위치한 마을이다.




위 사진의 정자가 솟아있는 마을이 다산이다.


예전에는 현 정자 옆에 커다란 마루 정자가 있었다.



돈산(敦山)은 3개의 작은 마을이 모여있었다.

돈산 마을 가운데로  철로가 관통하는데,


위 사진의 철로 좌편은 부정리(浮井里), 우편은 장자동이다. 



 

송정은 다산과 가까이 위치하고

소나무가 동네 중앙에 많이 있어 송정이라고 하였다.

소나무 숲 가운데에 정자와 별장이 있었다.


과거에 어르신들이 유유자적하며 머무르신 곳으로,

13호 정도가 모여 살았다.



부정리(浮井里)는 물이 지상으로

넘치는 샘이 있어서 그 샘을 '뜬 샘'이라 하고,

한문자로 '浮井'이라 하여 부정리가 되었다.



장자동은 철길 건너 동편에 위치한 동네였다.


필자가 살던 동네는 송정으로,

집 뒤편에 커다란 은행나무와

100여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소나무 수십 그루가

2,000평의 터에서 대나무와 함께 자라고 있었다.


과거에는 소나무 숲 가운데에 정자가 있었고,

일본식의 별장도 있어 집안 어르신이 사셨다.




집의 울타리를 옆에 두고 20미터의 수고에 이르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어

가을이면 아주 많은 은행이 열려

많은 은행을 주어서 먹을 수 있었다.

(두 전신주 사이의 나무가 그 은행나무이다).


소나무는 두 아름들이 되는 커다란 나무로

20여 그루가 넘게 자라고 있었고,

곳곳에 왕대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동네의 아이들은 틈만 나면 안에 들어가 놀았고,

중학교 시절에는 여름철에 들어가 책을 읽으며

공부하던 장소로 적당하였다.

지금은 소나무가 모두 죽었고,

송정 마을 입구에 마을회관이 자리잡고 있다.







글만 읽어도 좋은 고향을 두신 것이 느껴집니다. 늘 행복하세요. ^^
감사합니다. 고향 사진과 더 많은 이야기를 다듬어 올려야하는데,
많이 부족합니다. 그리운 고향, 떠나온지 40년이 넘었습니다.
이번 추석에 어머님과 함께 자가용으로 돌아보고 돌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