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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비엔나 - 벨베데레궁 미술관의 그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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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기/오스트리아

2008. 10. 11.

 

 

 

 

 

                  [Herbert Boeckl : Self-Portrait, 1923, Belvedere, Vienna]       [Vincent van Gogh : Harvest in Provence (1888)]

  

 

 

다음의 그림들은 Lower Belvedere에서 한 <Wien-Pairs>전에 전시된 그림들로

무료로 나누어 준 팸플릿(위 사진 오른쪽) 안에 실린 그림들입니다.

 

 

 

[Herbert Boeckl : Self-Portrait, 1923, Belvedere, Vienna]

 

오스트리아 화가이자 조각가인 Herbert Boeckl(1894-1966)은 빈 공대의 건축학을 전공하였는데

본래 미술대학에 진학하려했으나 실패했다고 합니다.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쉴레와 비견될 만큼 오스트리아화가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전시관의 안내도 팸플릿' 표지에는 클림트도 에곤 쉴레도 아닌  그가 그린 초상화가 있나봅니다.

제가 그림을 잘 몰라서 굵은 붓터치때문에 옆에 작은 글씨로 써있는 작가의 이름을 보기 전에는

반 고흐의 그림이 아닌가 생각했었습니다.

 

 

 

 

 

[Wilhelm Thony : Paris November 11th (Place de la Concorde), 1935, Belvedere, Vienna]

 

1888년 오스트리아 그라쯔(Graz) 출생

1949년 미국 뉴욕에서 사망한 인상주의 화가

 

실제의 파리 콩코드 광장보다 더 멋지게 표현한 것 같습니다.

사실 11월 11일은 독일이 연합군에게 항복을 선언한 세계 1차대전의 종식일(1918년)이기에

빌헬름 토니는 희망과 자유의 상징인 푸른색으로 그림 전체를 표현한 것은 아닐까도 생각해봅니다.

 

 

 

 

[Paul Gauguin : Faa Iheihe, 1898, Tate Britain, London] 

 

 

 

 

  [Paul Cezanne : Still Life with onions, 1896-98, Musee d'Orsay, Paris]

 

 

 

 

[Josef Anton Engelhart : Loge im Sophiensaal, 1903]

 

 

(1864-1941)  오스트리아 비엔나 출신의 화가이자 조각가

 

참 예쁜 그림입니다. 특히 중앙의 중년 남성의 표정이 상당히 사실적으로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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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gar Degas : Dancers in th Rehearsal Room, 1891, Von der Heydt Museum, Wuppertal]<_span><_span><_span><_span><_span><_span><_span><_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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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4-1917] 프랑스 파리출생. 화가이자 조각가

 

주로 발레리나의 순간동작을 아름답게 묘사한 드가는

파리의 부유한 은행가의 장남으로 태어나 유복한 생활을 보냈으나

인간에 대한 혐오증으로 인해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고 합니다.

 

 

 

 

 

[Le Corbusier : Still Life, 1918, Private Collection]

 

 르 꼬르뷔지에(Corbusier, 1887-1965) 스위스에서 출생한 프랑스 건축가이자 화가, 조각가

근대 건축의 거장으로 건축 분야에서는 매우 유명한 분이라고 하네요.

 

 

 

다음의 그림들은 무료로 받은 아래의 소책자 안에 실린 그림들입니다.

 

 

 

 [Vincent van Gogh : Harvest in Provence (1888)]

 

 

 

 

 

 

[Egon Schiele : Portrait of Herbert Rainer, 1910, Belvedere, Vienna]

 

에곤쉴레가 그린 Herbert Rainer의 초상화로 약 6세 때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Pierre Auguste Renoir : Paysage d'automne avec une mare]

 

 

 

풍경화든 인물화든 르느와르의 그림에서는 어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의 그림에서는 언제나 부드러움의 극치를 보는 것 같습니다.

 

 

 

 

 

 다음의 그림들은 벨베데레 신문에 실린 그림들입니다.

 

 

[Vincent van Gogh : the Restaurant de la Sirene, 1887,  Musee d'Orsay]

 

  

 

 [Carl Schuch : Pariser Hauser .1885]

 

정물화와 풍경화를 주로 그린 오스트리아 비엔나 출신의 화가 [1846-1903]

 

 

 

 

 

 [Paul Cezanne : La Montagne Sainte-Victoire (1890)

 

 

 

 

 

[Herbert Boeckl : Gelber Steinbruch bei St. Margareten (1938) 

 

 맨 처음 올린 안내 팸플릿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자화상을 그린 Herbert Boeckl의 그림이네요.

 

 

 

 

[Gustav Klimt : Oberosterreichisches Bauernhaus (1911)

 

 

 

 [Paul Signac : Le Pont des Arts, Paris, ile de la cite (1912)]

 

 

 

 

 

 

 

프랑스 화가 폴 시냑 (Paul Signac : 1863-1935)은 쇠라 (Georges Seurat : 1859-1891)와 함께

19세기 말엽에 처음으로 점묘법이라는 새로운 화법을 창조한 화가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후 위의 그림에서와 같이 큰 점으로 모자이크 풍의 화법을 사용해 

특히 프랑스 항구를 많이 그렸다고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점묘법으로 그린 이 그림이 무척 마음에 들었었는데

많은 전시 작품들 중에서 이 그림이 신문에 실려 있네요. 꽤 유명한 그림인가 봅니다.

뮌헨의 노이에 피나코텍과 오르세 미술관에도 시냑의 다른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유독 이 그림에 더 마음이 끌렸던 것은 아마도

제가 좋아하는 시떼섬을 배경으로 그린 그림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Gustav Klimt : Avenue in Schloss Kammer Park, 1912]

 

 미술관 한쪽 벽면에 따로 왼쪽에는 클림트의 이 그림을 오른쪽에는 이 그림과 비슷한 반 고흐의 풍경화 두점만을

나란히 전시하여 방문객들로 하여금 두 그림을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그 앞에 마련된 긴 의자 앞에 앉아 다리도 쉴 겸 잠시 두 그림들을 감상했답니다.

클림트의 몽환적인 인물화가 아닌 이 풍경화를 보니 색다른 느낌이었습니다.

 

 

 

 

 

[Henri Toulouse-Lautrec :

 the ladies in the brothel dinning-room, 1902]

 

이곳에서 반 고흐와 세잔 그리고 고갱의 그림을 본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쉽게 볼 수 없었던 로트렉의 그림을 만날 수 있어서 참 행복했습니다.

 

이 그림은 원래 헝가리 부다페스트 Fine Art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그림인데

벨베데레 미술관에 잠시 대여했나봅니다.

그래서 정작 우리가 헝가리 부다페스트 Fine Art 박물관에 갔을 때는 볼 수 없었지요.

 

 

 

 

 

 

 

 

 

 

 

 

 

벨베데레 기념품점이 하궁과 상궁 두 곳에 모두 있었습니다. 

저는 클림트의 그림들이 실린 그림화보집과 책갈피 그리고 엽서를 샀습니다. 

 다음은 화보집 중에서 클림트의 유명한 그림 몇 작품을 올려봅니다.

 

 

 

[Gustav Klimt, the Kiss, 1907-08, Belvedere, Wien]

 

 너무도 유명한 클림트의 이 작품은 전시실 2층(first floor) 서쪽 맨 끝에 있는데

생각보다 작품의 크기가 상당히 컸습니다.

평면적 사진으로는 느낄 수 없는 마치 금가루를 뿌려 놓은 듯한 화려함과 신비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EBS 등 TV를 통해 여러 번 그의 일생과 작품에 대해 자세히 들었던 탓인지

이 그림에 대한 놀라움은 덜 했던 것 같습니다.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동생의 처제와의 묘한 관계를 계속했다는 클림트....

차라리 아무 설명도 듣지 못한 상태에서 이 그림을 봤었다면 오히려 더 감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해석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누구의 해석이나 관점에서가 아니라 그저 자신의 시각에서 보고 느끼고 감탄하고 행복해하면 되지 않을까요?

머리로 생각하는 그림감상이 아닌 눈과 가슴으로 보고 느끼는 그런 감상을 하는 것이

바브고 지친 일상에서 그림을 통해 잠시의 휴식과 위안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림의 전문가만이 그림을 감상할 자격이 부여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런데 삼성전자 LCD TV가 클림트의 '키스' 작품 탄생 100주년 기념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벨베데레궁 미술관 로비에 2008년 10월 1일에 설치되어 클림트의 작품을 TV화면으로 볼 수 있도록 했다고 하네요.

 

 

 

 

[Gustav Klimt : Portrait of Sonja Knips, 1898]

 

 '키스'  오른쪽에 걸려있는 클림트의 이 작품이 오히려 저는 더 끌리더군요.

분홍색 옷이 정말 화사했습니다.

그의 붓놀림은 매우 세밀해서 더 많은 인내와 집중력을 요구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Gustav Klimt : Fritza Riedler, 1906]

 

우아한 부인의 모습과 고상한 옷색깔 그리고 단순한 배경처리가 잘 어우러져

심적으로도 안정된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드레스 오른쪽 아래에 그려진 것은 뱀인 것 같은데 무슨 의미일까요?

죽음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왠지 클림트는 세상에 참 냉소적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늘 들곤 합니다.

 

 

 

 [Gustav Klimt : Judith 1, 1901]

 

위 사진은 책갈피용으로 사 온 것을 올린 것이기에 오른손에 들고 있는 사람의 잘린 머리는 보이지 않습니다.

유디트는 성서 속 인물로 부유한 미모의 미망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이스라엘을 공격한 앗시리아의 장군 호로페르네스를 유혹해서

술에 취한 채 혼자 남겨진 그를 칼로 목을 베어 앗시리아의 군대를 퇴각시킨 이스라엘의 여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클림트는 그녀를 다른 각도에서 해석하여

위와 같이 매우 관능적이고 요염한 여인의 모습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녀가 호로페르네스를 유혹할 때 저렇듯 고혹적인 눈빛의 저 자태로 바라보지 않았을까 생각도 됩니다.

 

한 쪽 구석에 조금은 외롭게 전시되어 있는 생각보다 작은 크기의 이 그림을 보고 순간 멈칫 놀랬습니다.

눈빛이 바로 저를 쳐다보고 있는 듯 살아있는 매우 강렬한 눈빛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름답지만 왠지 그녀의 눈빛을 바라보기가 겁이 나 그녀를 똑 바로 바라보기가 어려웠습니다.

제게는 참 충격적인 그림이었습니다.

 

그리고 전시된 클림트의 작품 중 <Philosophy ,1899-1907>  

몽환적이면서도 조금 섬뜩한 느낌이 들었지만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제가 사 온 클림트 화보집에는 없네요.

 

 

 

다음은 벨베데레궁 미술관 기념품점에서 사온 책갈피들입니다.

 

 

[Vincent van Gogh : Vincent's House in Arles, 1888] 

 

 

 [Paul Cezanne : Fruits, 1879]

 

 

 

 

 

 

책갈피용 고갱의 그림은 잘려있어 아쉬움에 같은 그림의 엽서도 샀습니다.

 

[Paul Gauguin : Nafea Faa ipoipo? (When will you marry?), 1892]

 

 

고갱 [1848-1903] : 프랑스 파리출생, 후기인상파

다섯 아이의 아버지인 평범한 증권 거래인이었던 고갱은

40세의 늦은 나이에 화가가 되고자 하는 열망 때문에 부인과 다섯 아이들을 버리고 파리로 떠납니다.

그는 1888년 10월부터 9개월간 아를에서 반 고흐와 지내기도 했으나

반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르는 정신 발작적 증세를 일으켜 그와 결별을 합니다.

그 후 마르세이유로 떠나고, 그 다음에는 1891년 남태평양의 타히티섬으로 가

그 섬의 여인들을 모델로 강렬한 원색을 종합적으로 사용하여

타히티섬의 독특한 분위기를 그림 속에 그대로 투영시킵니다.

 

타히티섬을 소재로 그린 그의 그림들을 보면

고갱은 이방인이 아니라 그 자신이 타히티사람이 되어버린 것처럼

그 섬의 토속적인 독특한 분위가 물씬 배어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갱의 그림이 좋습니다.

 

 

 

 

 

 

다음은 현지에서 사 온 책자에 실린 에곤 쉴레의 작품들입니다.

 

 

 

 

 

 

 

 

 

사실 저는 에곤 쉴레에 대해서는 잘 몰랐는데

체스키 크롬로프 여행에서 에곤 쉴레의 미술사적 비중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러나 벨베데레에서 본 그의 그림들이 저에게는 큰 의미로 다가 오지는 않았는데

쉴레의 그림(아래 여인의 그림)에서 그의 그림의 매력을 조금은 엿보게 됩니다.

 

 

 

 

 이렇게 하궁과 상궁의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회의 그림들을 다 구경한 후

지하실로 옷과 소지품을 찾으러 가니 그곳에서

고갱과 반 고흐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2절지 크기의 대형 포스터를 쌓아놓고 무료로 배부해주고 있었습니다.

사실 화질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기념으로 갖고 싶어 친구와 둘이

반 고흐와 고갱의 그림 둘 중 어떤 것을 집을까 고민 고민하다가 두 개 다 가질 수 없냐고 물어보니

여자직원은 단호히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너무도 그림을 갖고 싶어 하는 우리의 마음을 읽었는지 남자직원이 두 개다 가져가라고 말해줍니다.

아마도 관람객 모두가 서양인들인데 멀리 서 온 동양인은 저희 둘 뿐이어서 배려해준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