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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비엔나 - 쉔브룬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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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기/오스트리아

2008.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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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통편                : 18번트램(서역방향) Margaretengurtel 하차

                                                    U4(지하철) 타고 Schonbrunn역 하차 후 도보 5분

                                                    그러나 2008.9.15 - 11.1까지 쉔브룬역이 폐쇄된다고 하네요.

                                따라서 트램 10번, 58번이나 버스 10A를 타고 쉔브룬역에서 하차하셔야겠습니다.

                       관람 시간             : 오전 8:30 - 오후 5시 [11월-3월 : 오후 4:30까지]

                                                    궁전 내부 사진촬영 금지

                       궁전내부관람료    :  35분짜리 Imperial Tour 1인당 9.5유로 - 22개의 방 구경

                                                     2인용 티켓을 구입하니 11.73유로

 

                       유네스코문화유산 :  1996년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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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이 잠시 멈췄을 때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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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베데레궁에서 많은 미술작품들을 감상하느라 쉔브룬궁전에 도착한 시간이 벌써 4시를 넘겼습니다.

조금 있으면 해가 질것 같은 분위기라 걸음을 재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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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긴 건물들을 따라 한참을 걸어 드디어 정문에 도착하니

합스부르크 문장인 독수리황금상이 날개를 활짝 편 채 궁을 호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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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인데다 문 닫을 시간이 가깝기에 방문객들이 별로 없어서일까요?

아니면 나무들이 없어서 일까요? 넓은 궁전안뜰이 다소 썰렁해 보입니다.

이렇듯 거대한 궁전에 나무들이 없는 이유는 나무들이 많으면 자객들이 숨어들어

쉽게 몸을 숨길 수 있어 찾아내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하던데

쉔브룬궁전 또한 그런 이유에서인지 나무가 보이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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쉔브룬을 유명하게 하는 것은 궁전과 정원의 화려함과 함께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주앙이 초연된 곳이며

모차르트가 6살 때 쉔브룬궁전에서 그의 놀라운 재능을 보여주었던 곳으로

이때 모차르트가 거울의 방에서 마리 앙투아네트와 결혼하겠다고 한 곳이 바로 이 궁전이라고 합니다.

영화 아마데우스 처음에 이에 대한 장면이 나온다고 하는데

아마도 모차르트가 경박한 웃음과 행동으로 어느 방의 테이블 밑으로 기어들어가

여자아이와 장난치던 그 장면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유추해봅니다.

<아마데우스>는 정말 재미있게 보았던 영화인데 살리에르의 연기에 더욱 집중하며 봤던 기억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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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쉔부른은 1961년 케네디대통령과 후르시초프가 만나

동서냉전을 허무는 시금석을 마련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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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은 색의 아름다운 건물은 어떤 용도의 건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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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쉔브룬 궁전내부관람 티켓 앞면 : 쉔브룬궁과 정원 ?x-content-disposition=inline& 글로리테] 

 

쉔브룬궁전에는 모두 1441개의 방이 있는데 그중 46개의 방만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물론 정원구경은 무료지만 내부구경은 유료입니다.

22개의 방을 구경할 수 있는 Imperial Tour(35분)는 1인당 9.5유로인데

2인용 티켓을 구입하니 11.73유로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Gate A로 향하긴 했는데 어디로 들어가라는 것인지?????

잠시 헤매다 겨우 방향을 잡아 실내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실내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세세한 기억은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진촬영이 금지된 대신 schoenbrunn.at/en/things-to-know/360-view.html를 방문하시면

360도로 왕실내부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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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content-disposition=inline [Andreas Moller : Marie Theresia, 1727]

 

쉔브룬궁전을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시킨 마리아 테레지아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6세의 장녀로

첫사랑인 프란츠 1세와 결혼하여 5남 11녀를 둔 미모의 황후였습니다.

카를 6세 서거 후 공주가 왕위를 계승할 수 없다는 법률 때문에

그녀의 남편인 프란츠 1세가 신성로마제국의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그러나 실권은 합스부르크가 출신의 마리아 테레지아에게 있었으며

마리아 테레지아황후 시대가 합스부르크왕가의 최고의 전성기였다고 합니다.

비엔나 시내 신 왕궁 남서쪽에 있는 광장이 바로 마리아 테레지아광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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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isabeth-Lousie Vigee Le Brun(1755-1842) : <_SPAN><_SPAN>Marie Antoinette 1783]<_FONT><_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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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테레지아여왕의 막내딸(15번째 자녀)이 바로 마리 앙투아네트입니다.

그래서 쉔브룬궁에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 루이16세와 14살 때 정략결혼하기 전까지 

그녀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방도 있습니다.

‘천일의 앤’으로 더 잘 알려진 영국의 헨리 8세의 왕비인 앤 블린 만큼이나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

이 두 왕비 모두 모함에 의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져가야만 했던 비운의 왕비이기도 하지요.

 마리 앙투아네트는 1793년 37살 때 파리 콩코르드광장에서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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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content-disposition=inline [Elisabeth-Lousie Vigee Le Brun : Marie Antoinette en Chemise 1783] 

 

사실 역사란 보는 각도에 따라서 기록하는 사람의 인생관에 따라서

정반대의 해석이 내려지기도 하기에

가장 못 믿을 것이 역사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역사적 시각도 그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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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content-disposition=inline [Vigee Le Brun : Marie Antoinette and her children at Versailles 1788]

[사진 출처 : Vigee Le Brun - Marie Antoinette Gallery]

 

그녀를 가장 사치스러운 왕비로 평가하며 프랑스대혁명을 옹호하는 쪽이 있는가하면

그 모두가 그녀에 대한 모함이었으며 실제 그녀는 기품 있고 자상한 왕비였다고 평하기도 하지요.

어쩌면 이 두 가지 모두 사실일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프랑스와 앙숙인 합스부르크가 출신의 이방인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시기도 분명 있었을 것이고,

프랑스혁명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녀를 희생양으로 삼았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왕가의 딸로 가난이 무엇인지 모르고 자라났기에

비록 서민들의 힘든 삶을 피상적으로는 알고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당시의 귀족들이 그러했듯

그녀도 사치스런 생활을 매우 일상적인 일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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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베르사유궁전에서 보았던

지나치게 호사스럽고 지나치게 장식적이었던 실내장식에 대한 부정적 시각 때문에

사실 저는 쉔브룬궁전의 내부보다는 그냥 외부만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곳까지 와서 또 안 들어 가보기도 아쉬워 친구의 뜻에 따라 들어가 보기로 합니다.

그런데 궁전 내부는 전형적인 로코코양식이라고 하는데

예상 밖으로 화려한 금장식도 없고 방의 규모가 생각보다 크지 않습니다.

흰색나무에 무늬장식만 있을 뿐 엄격한 규율과 통제 속에서 생활해야하는 다른 왕가들과는 달리

합스부르크가는 자유로운 생활을 했다는 데 궁전의 내부에서도 전혀 답답함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금색의 화장실과 거울의 방 천장화 그리고

온통 벽면이 대형 거울과 커다란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는 방도 인상 깊었지만

자개로 만든 중국풍의 대형 8폭 병풍과

진한 청색의 아주 자그만 자기들이 벽면에 많이 진열되어 있는

Chinese Round Cabinet도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외에도 Blue Chinese Salon도 있는데

역사에 일천한 지식밖에 없는 저로서는

합스부르크가가 왜 이토록 중국문화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모르겠군요.

1636년 후금이 국호를 청으로 바꾼 해이니 아마도 청과의 교류가 있었던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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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폐관시간이 임박해오는 관계로 빠른 시간 내에 실내를 구경한 후

기념품점으로 향합니다.

각국의 인형을 수집해 진열해놓는 것이 어려서부터의 저의 꿈이기에

그곳에서 눈에 띄는 인형하나를 골라 가격을 물어봅니다.

수제품이 아니어서인지 지금까지 모은 인형들과는 달리 값이 저렴합니다.

이것 저것 구경할 시간이 없어 선뜻 그 인형을 포장해달라고 하는데 시간이 지체돼

친구에게 먼저 정원을 구경하고 있으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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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제가 사온 인형(14.90 유로)인데

Sisi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오스트리아 최후의 황후인 엘리자베스(1837-1898)입니다.

11살에 왕위에 오른 신성로마제국의 프란츠 요셉황제의 부인이며

역대 합스부르크왕가에서 가장 뛰어난 미모를 소유한 왕비로

오스트리아인들에게 아직까지도 가장 사랑받고 있는 왕비입니다.

비엔나소개책자 표지에도 쉔브룬궁전 기념품점의 플라스틱 백에도

쉔브룬궁전의 사진들보다 그녀의 사진이 전면에 커다랗게 새겨져 있을 정도니

가히 그녀의 인기를 능히 짐작할 만합니다.

오스트리아인들은 '사운드 오브 뮤직'은 몰라도 Sisi를 모르는 사람들은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녀가 이토록 큰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이유는

완벽한 외모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해 애썼으며

자유로운 생활을 갈망하는 그녀가 엄격한 왕실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불행한 삶을 살았고

1898년 단지 왕족을 죽여 유명해지고자하는 이탈리아의 무정부주의자에 의해

송곳과도 같은 가는 칼에 가슴이 찔려 사망한 비운의 왕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들이 그의 연인과 함께 권총자살을 한 후

씨씨는 죽는 순간까지도 검은 상복을 입고 지낸 우울한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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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FONT>Franz Xavier Winterhalter<_FONT><_SPAN><_SPAN><_SPAN><_FONT> :?x-content-disposition=inline a portrait of Elizabeth of Bavaria]

 

독일 바바리아 출신으로 160cm정도의 키에 허리가 20인치밖에 되지 않는 그녀는

자신의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방에 운동기구를 설치해 놓고

운동과 다이어트에 집착했는데 그로인해 식욕부진의 결과를 초래했다고 합니다.

그녀를 특징짓게 하는 것은 부채와 긴 머리카락인데

그녀는 머리손질을 하는 데만도 3-4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녀가 이렇듯 긴 머리카락을 고집하고 있었던 것에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기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자유분방한 생활을 동경하는 씨씨가 통제로부터의 도피방법으로 생각해낸 것이었죠.

유명한 오페라 ‘오페라의 유령’에서 여주인공 크리스틴 다에가 데뷔무대에서 입은 의상이

위에 올린 씨씨의 초상화를 참고로 해서 제작된 것이라고 합니다.

 

지도를 보니 Sisi 박물관은 U3를 타고 Herrengasse역에서 내리면 있네요.

 

 

 

 [부다페스트 : 어부요새와 마차시성당]

 

1867년 씨씨가 헝가리여왕으로 즉위하는 대관식이 열린 곳이 바로

부다페스트에서 투어버스 안에서 잠깐 보았던 마차시성당이라고 합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마치시성당 정류장 앞에는 'Sisi Restaurant'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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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에서 두번 째가 부다페스트의 엘리자베스다리]<_FONT><_SPAN><_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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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프란츠 요셉황제는 씨씨의 대관식을 기념하여 부다페스트 도나우 강에 엘리자베스다리를 건설했다고 합니다.

부다페스트여행 할 때 웬 엘리자베스다리? 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다리가 바로 씨씨를 위한 다리였군요.

그러나 원래의 엘리자베스다리는 2차 세계대전 때 파괴되었고 지금의 다리모습과는 다르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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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을 포장하는 데 시간이 지체되어서 궁 밖으로 나오니 벌써 날은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궁의 건물을 바라보고 오른쪽 끝 지점쯤에 건물 뒤쪽에 있는 정원으로 가는 길로 발길을 빠르게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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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content-disposition=inline [쉔브룬 궁전의 글로리테(Gloriette)와 정원]

 

궁의 뒷쪽에 있는 정원으로 왔지만 생각보다 상당히 넓어 친구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겨울이라 사람들도 별로 없고, 빠르게 날은 어두워져서 앞이 잘 보이지가 않습니다.

할 수 없이 출구 쪽 방향의 정원시작점(사진 오른쪽)에서 친구를 기다립니다.

 

저 멀리 정원의 언덕 끝에서 그리스풍의 글로리테(Gloriette) 개선문이

황금빛을 강하게 뿜어내고 있습니다.

정말 아름답습니다.

마리아 테레지아가 프러시아전쟁(1871-1872)에서의 승리기념으로 건립한 건물로

쉔브룬궁전과 궁전의 정원이 잘 보일 수 있도록 언덕 위에 지어졌습니다.

그래서 글로리테의 테라스에 있는 카페에서 쉔브룬의 전경을 내려다보며

잠시 여행이 주는 평화와 여유를 선사받을 계획을 세웠었건만

겨울이라 어둠이 너무도 빨리 찾아들어

멀리서만 황금빛의 멋진 건물을 바라만 보아야 했지요.

먼저 정원을 찾은 친구라도 글로리테까지 올라갔다 오기를 바라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저 멀리 어둠 속에서 친구의 모습이 실루엣처럼 보이기 시작합니다.

친구도 나와 함께 있었다면 어둠이 내려도 글로리테까지 올라갔을 텐데

제가 인형을 포장하느라 시간이 걸려 친구까지도 좋은 기회를 놓치게 되어 미안했습니다.

안내방송에서는 방문객들에게 정원에서 나올 것을 알리는 멘트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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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km의 드넓은 정원 한가운데는 커다란 넵튠분수가 있습니다.

Schoen은 '아름다운', brunn은 '샘, 분수'의 뜻이라는 쉔브룬(Schoenbrunn)에

분수가 없다면 이상하죠.

프랑스풍의 바로크정원에는 필수적 요소이기도 하고요.

이렇듯 ‘아름다운 샘’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17세기 초 마티아스황제가

당시 이곳에 있던 사냥터에서 아름다운 샘을 발견한 후

이곳에 성을 지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물론 그 때의 성과 지금의 쉔브룬궁은 규모면에서 많은 차이가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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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정말 아름답습니다. 외벽이 모두 황금색으로 칠해진 쉔브룬궁은 

야경에서 비로소 황금색의 찬란한 빛의 진수를 느낄 수 있습니다.

더욱이 파란색이 농담을 달리하며 뒷 배경으로 멋지게 펼쳐져 있는 드 높은 하늘은

쉔브룬궁의 화려한 위엄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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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국땅에서 보는 초승달도 우리나라의 초승달과 똑 같이

다정하게 윙크하며 작별인사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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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짧은 시간의 쉔브룬궁의 방문이었지만

참 좋은 인상을 받고 정문을 나섭니다.

 

 

 

그런데 숙소로 돌아오기 위해 4호선에서 6호선으로 환승하는데

내린 곳에서 바로 반대방향에서 탈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 또한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보르비꽁트성 -> 베르사유궁 -> 쉔브룬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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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베르사유궁]<_FONT><_SPAN><_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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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오스트리아를 600여 년간이나 지배해온 막강한 권력과 광대한 영토를 소유했던

합스부르크왕가는 프랑스와 18세기 중엽까지 적대관계였습니다.

그런데 프랑스의 태양 왕 루이14세(1638-1715)에 의해

파리 외곽에 화려한 베르사유궁전(1668-1685)이 지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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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쉔브룬궁]<_FONT><_SPAN><_SPAN><_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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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합스부르크왕가출신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레오폴트 1세는 베르사유궁보다 더 큰 궁전을 짓고자

1696년에 바로크양식의 베르사유궁전을 모방해 쉔브룬궁전을 짓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잦은 전쟁으로 인한 재정적 어려움과

공사도중 레오폴트 1세(1640-1705)가 사망함으로써 완성되지 못하였고

약 50년 후인 1744-1749년 마리아 테레지아황후에 의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쉔브룬궁전은 마리아 테레지아황후(1717-1780)의 여름별장이었다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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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베르사유궁]<_FONT><_SPAN><_P><_SPAN><_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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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코끼리열차를 타고 돌았던 베르사유궁은 정말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넓었는데

쉔브룬궁은 걸어서도 충분히 구경할 수 있는 규모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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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트 리고(Hyacinthe Rigaud) : 루이 14세의 초상화(Portrait of Lousie XIV)]<_SPAN><_FONT><_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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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에서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베르사유궁전 또한 루이 14세의 충신이자 재정고문 푸케의

보르비꽁트성(Vaux-le-Vicomte)을 시기하여 루이 14세에 의해 지어졌다는 점입니다.

 

 

[보르비꽁트성(Vaux-le-Vicomte) : 사진출처 - 보르비꽁트 홈페이지]

 

푸케가 자신의 성을 짓고 루이 14세를 초청하여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정말 멋진 향연을 베풀었는데

자신의 궁전보다 더 아름답고 훌륭한 성을 소유하고 있고, 호사스런 향연까지 베푸는 푸케를

괘씸하게 여긴 루이 14세는 푸케가 자신보다 더 훌륭한 성을 소유했다는 이유로

재산축적과정을 조사하도록 지시함으로써 마침내 푸케는 전 재산을 몰수당하고

종신형을 받고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고 합니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옛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었던 거죠.

푸케는 향연을 베푼 다음날로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고

루이 14세는 정원건축사 앙드레 르 노트르, 건축가 루이 르 보 등 보르비꽁트성을 만든

3명의 주역들에게 보르비꽁트성보다 더 웅장하고 화려한 궁전을 짓도록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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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rre Patel(1648-1708) : Palace of Versailles]<_FONT><_SPAN><_SPAN><_SPAN><_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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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루이 14세는 푸케의 보르비꽁트성을 시기해서 베르사유궁전을 지었고

[베르사유의 면적 2만평, 방의 개수 700개, 전체길이 680m

          정원의 넓이 - 프랑스혁명 전  200만평, 혁명 후 250만평, 1천여개의 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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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폴트 1세는 베르사유궁전을 시기해서 쉔브룬궁전을 짓게 된 것이지요.

[쉔브룬궁의 방의 개수 1441개, 정원의 넓이 - 50만평]

 

 

그런데 규모면에서는 베르사유궁에 못 미치지만 보르비꽁트성이 더 예술적가치가 있다고 평한다는데

저 또한 베르사유궁에 갔을 때 짧은 시간동안 베르사유궁의 진면목을 느끼기에는

너무 광대한 규모라 사실 깊은 인상은 받지 못했던 탓인지

화면상으로 보는 보르비꽁트성이 더 멋지고 화려한 것 같네요.


어쨌든 푸케의 예술적 안목이 없었다면 프랑스에는 결코 베르사유궁과 같은

화려하고 장엄한 궁전은 세워지지 않았을 것이고

프랑스에서 베르사유궁과 같은 어마어마한 궁을 짓지 않았다면

오스트리아에도 쉔브룬궁과 같은 거대한 궁이 존재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나 그러한 궁전들을 짓기 위해 백성들에게는 얼마나 핍박을 가했을지....

 

 

보르비꽁트성 홈피주소 : http://www.vaux-le-vicomte.com/en/visite-virtuelle-chateau.php

  

베르사유궁 홈피주소    : http://www.chateauversailles.fr/fr/vuduciel/en.html

 

쉔브룬궁 홈피주소        :  http://www.schoenbrunn.at/en/things-to-know/360-view.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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