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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 내몽고] 제 2일 : 북경(6) - 천안문 광장 & 천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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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기/중국

2010. 8. 16.

 

 

 

 

 

정양문 전루를 감상하며 가이드를 따라 잠시 걸으니

가이드님이 이제 좁은 지하도를 건널텐데 매우 복잡하니 가방을 조심하며 잘 따라오라 합니다.

 

 

 

 

 

 

 지하도는 매우 좁고 낡았는데 많은 사람들로 앞 사람과 딱 붙어 발걸음을 옮겨야 할 정도입니다.

이 지하도에도 공안들이 검문검색을 합니다.

그러나 외국인들은 거의 검문하지 않고 자국민과 중국 소수민족들을 철저히 검문검색한다고 합니다.

반정부 민주화시위와 소수민족의 독립운동시위를 막기 위한 목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검색대를 지나 사람들에 밀려 정신도 없이 지하도를 건너는데

갑자기 지하도 벽에 있는 포스터가 눈에 들어옵니다.

저는 처음에는 정대세인 줄 알고 반가움에 찍었는데

스페인 FC바르셀로나팀의 아시아투어 중 중국축구팀과의 축구경기를

알리는 포스터였네요. 그래도 리오넬 메시가 활짝 웃고 있으니 때마침 잘 찍었네요.

 

 

 

 

 

 

 

지하도에서 나오면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하얀 천막의 검색대가 나옵니다.

가방등의 소지품을 레일 위에 놓고 엑스레이 검색대를 통과한 후 소지품을 찾아야 합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었던 광경이라 너무 유난스러운 것 아닌가 생각해보지만

5.4 운동, 천안문 사건 등을 거쳐 민주화시위에 여전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고

티벳과 위그르족의 분리독립 시위가 이곳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베이징올림픽을 계기로 취해진 조치가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것 같습니다.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천안문광장 전체에 울타리가 쳐져있습니다.

그래서 지하도마다 횡단보도마다 세워져있는 검색대를 통과해야만

천안문광장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천안문 광장 건너편으로 보이는 서양식 건물은 철도박물관으로

원래 전문 기차역(경봉철도 정양문기차역)이었다고 합니다.

 

 

 

 

 

환경친화적인 하얀색 전동경찰차가 순찰을 돌고 있네요.

만약 울타리를 넘어 몰래 천안문광장으로 들어오려 시도했다가는 이 경찰들에게 체포되겠지요?

광화문광장에도 많은 경찰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중국이나 우리나라나 광장집회에 매우 예민한 것은 똑 같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광화문광장은 천안문광장에 비하면 아주 아주 작은 공원에 불과해

중국인들에게 광장이라고 소개하면 고개를 갸우뚱 거릴 것 같습니다.

광장은 모름지기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탁 트인 개방된 넓은 공간이어야 하는데....

특히 내몽고의 루이광장은 정말 부러웠습니다.

 

그런데 사이렌 경광등이 우리나라 경찰차와 똑 같은데 차 크기에 비해 무척 크네요.

이 큰 광장에서 경고 싸이렌을 울리려면 이 정도는 되야겠지요.

 

 

 

 

 

 

 

철도박물관은 낡은 기차역을 베이징올림픽을 맞이하여 대대적으로 보수해

박물관으로 변신 2008년 8월 정식으로 개관되었다고 합니다.

 

 

 

 

 

 

천안문광장 주변에는 철도박물관 이외에 또 하나의 아름다운 서양식 건물이 보입니다.

붉은 색 지붕의 이 건물을 보니 부다페스트 국회의사당 생각이 나서

재빠르게 찍었답니다. 그러나 무슨 건물인지는 모르겠네요.

인민대회당의 시계탑과 닮았는데???

 

 

 

 

  

 

 

[사진 : KDH] 

 

서양식 건물 앞에 서양인들이 모여 있으니 이 사진만 보면 마치 유럽에 온 것 같네요.

베이징 어디를 가나 이렇게 서양 단체관광객들을 자주 볼 수 있답니다.

우리 일행 중 고등학교 영어선생님은 외국인들만 보면 서슴없이 가서 말을 거네요.

친구와 저도 외국을 여행하면서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어야 할 텐데

필요한 때 이외에는 외국인이 말을 걸어와야만 말을 하는 소심함때문에...

능숙한 회화실력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교성도 외국어를 배우는 지름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분들의 현지가이드가 중국인인 것 같네요.

패키지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가이드를 잘 만나는

것이라 하던데 저분들 모두에게 흡족한 여행이 되었으면 싶네요.

우리도 좋은 가이드님 덕택에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었답니다.

 

 

 

 

 

 

천안문광장 중앙에는 인민영웅기념비가 우뚝 서있고 저 멀리 인민대회당이 보입니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59년 건설되었으며

전인대(전국인민대표대회)가 열리는 곳으로 우리나라 국회의사당과 같은 곳입니다.

중국에서 가장 큰 단위의 화폐인 100위안의 뒷면에 인민대회당이 있을 정도로

중국의 권위의 상징물처럼 여겨지는 건물입니다.

입장료가 있으며 가방은 보관소에 맡겨야 하나 사진기는 허용된다고 합니다.

 

인민대회당의 지붕을 받치고 있는 56개의 기둥은 중국의 56개 민족을 상징하며

가이드님의 말에 의하면 중앙에 있는 만인대회당은 만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전인대는 1년에 1번 열리는 데 각 직할시와 성에서 간접선거로 선출된 소수민족

대표자들은 저마다 전통복장을, 군인들은 군복을 입고 인민대회당으로 모여든다고 합니다.

이 때는 천안문광장 전체가 주차장으로 사용되어 개방이 안된다고 하는데

전통복장을 한 각 지역의 대표자들을 보는 것도 하나의 큰 축제의 현장이 될 것 같습니다.

 

이러한 권위의 상징인 인민대회장이 한 때 본연의 정치적 역할보다는

각종 문화 공연장으로 변모해 대관료수입이 굉장했다고 합니다.

며칠 전 타계하신 앙드레 김 패션쇼도 이곳에서 열렸었고

가수 강타도 바네스와 함께 2006년 이곳에서 콘서트를 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업화를 우려하는 여론의 힘으로 인민대회당의 위상을 되찾고자

인민대회당 옆에 국가대극원을 건립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가운데에 보이는 것이 인민대회당 시계탑입니다.

 

찜통 더위를 피하려 양산을 쓴 사람들이 많습니다.

베이징은 날씨도 무덥고 하늘은 회색빛이고 공기는 탁해 살기에는 적합한 곳은 아닌 것 같습니다.

베이징도 사계절이 뚜렷한 곳이라는 데 다른 계절의 베이징은 어떤지 궁금해집니다.

 

 

 

 

 

 

 마오쩌뚱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모택동기념관(모주석기념관)을 들어가려면

입장료는 없으나 사진기와 가방은 보관소(유료)에 맡겨야 한다고 합니다.

모자도 쓰고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신성시 여기는 장소라고 합니다.

신분증도 반드시 지참해야 한다고 하니 외국인들은 필히 여권을 지참하시길...

 

가이드는 버스에서 중국인들이 생각하는 모택동과 등소평을 비교 설명해 주었습니다.

중국인민들의 평생소원 중 하나가 모주석기념관에서 모택동을 보는 것일 정도로

모택동은 신격화된 인물이지만 등소평(덩 샤오핑)은 중국인들에게 위대한 인물일 뿐이기에

모택동과 등소평을 같은 수준에 놓고 평가하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모주석기념관과 만리장성 만큼은 성지처럼 여겨

시골에서 올라온 중국인들은 몇 시간을 기다려서라도 반드시 들르는 곳이라고 합니다.

모주석기념관의 모택동시신은 수정관에 미이라로 보관되어 있는데

정해진 시간에만 볼 수 있고 중국인 관람객들이 하도 많아

2~3시간 길게 줄을 서 기다려야 입장할 수 있는 것은 기본이고

일단 들어간다 해도 시신을 볼 수 있는 시간은 1분도 채 안된다고 합니다.

그것도 지나가면서...외국인들에게는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일거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모주석기념관 앞을 지나며 길게 줄을 서있는 중국인들을 보며

끈끈한 민족성을 느껴보고 싶었는데 모주석기념관 앞 이동식철문은 굳게 닫혀있습니다.

가이드도 아쉬운지 이 앞을 지나면서 '사람들이 없네요.' 합니다.

 

 

 

 

 

 

 

천안문광장의 인민대회당 맞은 편에는 <중국국가박물관 (중궈 궈자보우관)>이 있습니다.

 

 

 

 

2003년 처음 개장한 후 2009년 25만 평방미터까지 확장 공사를 실시해

재개장한 중국 종합박물관입니다.

 

 

 

 

 

 

 

 

박물관 앞에 있는 주황색 시설물 위의 숫자는 박물관 총 입장객수를

나타낸다고 가이드님이 설명해주네요.

 

 

 

  

 

 

대형 전광판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북경의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저런 것이 있구나하며 계속 천안문을 향해 걸음을 내딛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행해지는 국기 게양식과 하강식이 볼 만하다고 하니

시간되시는 분은 꼭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에서 1919년 일어난 3.1 운동에 고무되어 같은 해 5월 4일

중국의 지식인과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에 저항했던 5.4운동이 일어났던 곳.

1989년 4월 15일 후야오방 총서기의 사망과 장례식을 계기로 민주화를 열망하는

학생, 지식인들이 천안문 광장에 모여 민주화와 부패관리 엄단을 요구하나

중국공산당은 이를 난동으로 규정하고 진압을 시도했고 정부의 태도에 울분한

더 많은 학생들과 지식인들이 단식투쟁에 동참하게 되었고

마침내 6월 4일 장갑차를 앞세운 인민해방군이 천안문광장에 진입해

수 천명의 어린 학생들과 시민들을 장갑차로 밀어 내고 무차별 사격을 가하는

대학살을 감행한 천안문사건이 발생한 비극의 역사의 현장.

아무런 무기도 없이 맨주먹 뿐이었던 그들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하고

장갑차로 밀어버려야 했던 인민해방군은 상부의 명령을 따를 수 밖에 없었겠지만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피로 민주를 바꾸자'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치던 젊은 대학생들이

유혈진압에 모두 혼비백산하며 흩어지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구호를 외치며 스크럼을 짜고 당당히 맞서며 죽어간 대학생들도 많았으리라 추측해봅니다.

그들의 민주화운동이 비록 실패로 돌아가 중국의 민주화는 이뤄내지 못했지만

지금 베이징의 천안문광장에 서보니 민주화란 형식적인 단어일 뿐

겉으로 보기에는 그들과 우리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광장이 정말 넓긴 넓군요. 약 100만명이 동시에

모일 수 있는 장소라니 도심에 있는 광장 중 세계최대라고 합니다.

1966년 문화대혁명 때는 마오쩌뚱의 부름에 100만명의 홍위병들이 이 광장에 집결했다니

그 위세에 마오쩌뚱에 반대하는 베이징시민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낄 수 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2008년 올림픽성화가 우리나라 서울에 도착했을 때 중국국기인 오성홍기를 든 수 천명의 중국인들과

티벳에 대한 더 이상의 학살을 중지하라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화시위대와의 충돌을 기억하시죠?

우리나라에서 자유롭게 우리의 의사를 표현하는 데도 오히려 중국인들에게 밀려

우리나라 시민들이 도망을 치고 중국인들이 오히려 사냥감을 잡는 듯 뒤쫓았죠.

우리나라에서 조차 경찰들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는 나라라고

흥분하는 글이 많이 올라왔었죠.

그런데도 우리나라 신문에서나 인터넷에서 잠시 흥분했을 뿐 이내 잠잠해졌죠.

외교적 실리 때문에 여러 입김들이 작용했겠지요.

 

이렇듯 중국인들이 집단주의적이고 쉽게 흥분하는 것은 붉은 색이 사람을 흥분시키는 색이고

혁명이라는 말을 어려서부터 듣고 자라났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몇 천명의 중국인들에게도 맥없이 무너져야했던 우리나라에서의 평화시위였는데

천안문광장에 운집한 100만명의 홍위병의 모습은 상상만 해도 섬뜩해집니다.

마오쩌뚱에 의해 대학생과 고교생들이 스승과 지식인들을 죽이는 참극을 저질렀던 사건.

이렇듯 숱한 피로 얼룩진 이 현장도 지금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것처럼

깨끗한 화강성바닥만이 이 넓은 광장을 뒤덮고 있을 뿐입니다.

 

저 멀리 보이는 중국 민주화의 상징이 된 천안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며

자유민주와 조국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사진 : LSW]

 

1945년 일본이 항복을 선언한 후 장제스(장개석)가 이끄는 국민당과 마오쩌뚱이 이끄는 공산당의

전투가 시작됐습니다. 4년 후인 1949년 10월 1일 마침내 승리한 마오쩌뚱

천안문 문루에 올라가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을 선포했습니다.

천안문광장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기념식장으로 정비된 후

오늘날까지 중국의 상징처럼 이어져 오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천안문(톈안먼)에는 마오쩌뚱의 대형 초상화가 걸렸습니다.

마오쩌뚱의 초상화 양 옆으로는 역시나 빨간 바탕에 흰글씨로

'중화인민공화국만세', '세계인민대단결만세'라고 써있습니다.

혁명의 상징으로 공산당이 붉은색을 사용하기에 공산당을 빨갱이라고 부르며 자란 세대이기에

붉은 색을 좋아하는 저도 저런 큰 붉은색 현판을 보니 왠지 섬뜩한 기분이 듭니다.

 

 

 

 

 

천안문 앞에는 돌사자상(그림 하단)과 돌기둥처럼 생긴 화표(华表 : 사진 오른쪽)가 있습니다.

화표에는 구름과 반룡(蟠龙)문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천안문의 자리에 15세기 초 명나라 영락제가 수도를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옮기면서 1417년에 세운 성문은

승천문으로 낙뢰로 한 차례 또 다시 이자성의 난으로 명조가 멸망하면서 소실되었습니다.

그 후 1651년 청나라 순치제 때 재건되며 <천안문>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정양문에서 천안문까지의 길이가 800m에 달하고 천안문의 높이는 33.7m에 이릅니다.

360년이란 긴 세월을 버텨온 목조건물인데도 여전히 튼튼해 보입니다.

 

 

 

 

 

 

 

 천안문 앞에 놓인 아치형 다리 위에 역시나 공안요원이 부동자세로 서 있네요.

초록색 우산으로 햇빛을 가려주는 것이 이색적입니다.

인민을 배려하는 마음이 전해지는 장면입니다.

 

명, 청대의 황제 24명이 거쳐 간 유서 깊은 황궁의 정문 [고궁박물원이 된 지금의 정문은 '오문']

 그것도 황제만이 출입할 수 있었던 중앙의 문 위에

마오쩌뚱 초상화가 걸려있는 것을 보니 권력의 무상함을 실감합니다.

 

그러나 1989년 미국기자가 중국을 방문 중인 고르바초프에게 천안문에 걸려있는

모택동의 초상화에 대해 질문하자 고르바초프는 모택동 초상화는 영원히 그곳에

걸려있을 거라고 대답했다고 가이드님이 설명해주더군요.

모택동은 과연 소련의 레닌도 프랑스의 나폴레옹도 해내지 못한

영원한 국민들의 추앙의 대상으로 남을 것인지 세월만이 그 답을 알겠죠.

 

 

참고로 모택동 초상화 위 휘장은 소수민족인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를 몰아내고

나라를 되찾은 한족(중국인)이 만주어로 쓰여진 천안문이라는 현판을 없애고 

그 자리에 천안문 위에 오성홍기(중국기)가 그려져 있는 중국 국장을 대신 걸은 것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