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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 내몽고] 제 2일 : 북경(9) - 자금성 어화원 & 신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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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기/중국

2010. 9. 11.

  

 

 

고궁 (자금성) 

[개방시간] 연중무휴   (5월 - 9월) 8:30 ~17:00  / (10월 - 4월) 8:30 ~ 16:30   * 입장권 판매는 폐관 1시간 전까지

                 * 신무문 고궁박물원 - 월요일 휴관 

 

 

 

 

 

 

 

 

 

가로등과 지붕의 기와에 특히 눈길이 많이 가는 저는 또 지붕만을 찍어봅니다.

건물의 권위를 알려주는 잡상의 수가 많이 줄었네요.

그런데 왼쪽 건물의 암막새가 오른쪽 건물의 암막새에 비해 훨씬 긴 것 같네요.

잡상의 수로 보아 오른쪽 건물이 왼쪽 건물에 비해 더 중요한 건물인가 봅니다.

사진들을 살펴보니 어화원 안에 있는 밑의 사진에 있는 정자의 지붕인 것 같습니다.

 

 

 

 

나무도 없는 드넓은 마당과 건물들의 위압적인 권위만을 느끼며 가이드를 따라

설렁 설렁 기웃거리다보니 자금성의 정원인 '어화원'에 다다랐네요.

어화원을 들어서야 비로소 자금성에서 아름드리 나무들과 꽃을 구경할 수 있는데

유럽이나 일본의 정원처럼 인간의 손에 의해 이리 저리 다듬어지고 잘 짜여진 정원이 아니라

꽃과 나무들의 자연미를 최대한 살려준 느낌입니다.

 

 

 

 

[연리지?] 

 

어화원에는 연리지(연리목)가 십여 그루가 있다는데 제대로 못보고 지나쳤네요.

다행히 어화원에 특이한 나무가 있어 위의 사진을 찍었는데 이 나무도 연리목 또는 연리지 같습니다.

정면에서 두 뿌리가 합쳐진 밑둥부터 위로 찍었어야 하는데 아쉽네요.

충북 제천 청풍문화재단지에서 본 연리목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인데.... 

어화원에서 가장 인기있는 연리목의 사진을 보니 더욱 아쉽네요.

북경에서 사온 여행책자에까지 없다니....

 

가이드님은 왜 연리지를 설명 안해줬을까? 아니면 내가 딴짓하느라 못들었나??

여행 전에 자금성에 대해 조금만 자세히 공부를 했어도 쉽게 얻는 정보였는데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우리가 관광할 코스의 개략적인 설명만 보고 같더니 이런 낭패가....

 

 

 

  

 [사진 : LSW]

 

일행 중 한 분도 이 나무를 찍었는데 사람들을 피해 찍기 위함인지 밑부분을 역시나 안 찍으셨네요.

그러나 나무의 기괴한 손놀림을 보다 자세히 볼 수 있어 좋네요.

두 나무가 서로 한 팔씩 위로 올려 '사랑해요'라는 하트모양을 만들고 있는 것 같지 않나요?

사진 중앙 왼쪽에는 가는 가지 두개를 위로 쭉 뻗음으로써

마치 메뚜기 같은 곤충모양까지 연출해 보여주는 센스 있는 나무네요.

 

 

 

 

 

 

 

[충북 제천 '청풍 문화재 단지' 안에 있는 연리목]

 

'청풍 문화재 단지' 편에서 올렸었지만 다시 한 번 연리지와 연리목에 대한 설명을 옮겨봅니다.

 

가까이 자라는 두 나무가 맞닿은 채로 오랜 세월이 지나면 서로 합쳐져 한 나무가 되는 현상을 연리(連理)라고 한다.

두 몸이 한 몸이 된다하여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과 흔히 비유하였다. 알기쉽게 '사랑나무'라고도 부른다.

나무가지가 서로 이어지면 연리지, 줄기가 이어지면 연리목이다.

연리목은 가끔 볼 수 있으나 가지가 붙은 연리지는 매우 희귀하다.

가지는 다른 나무와 맞닿을 기회가 적을 뿐 만 아니라 맞닿더라도 바람에 흔들려 버려 좀처럼 붙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국 전설상의 새와 나무인 비익조와 연리목에서 유래된 비익이라는 새는 암수의 눈과 날개가

각각 하나이기 때문에 항상 나란히 한 몸이 되어서 난다 하며, 연리라는 나무는 두그루의 나무이지만

가지가 서로 연결되어 나무결이 상통한다는 데서 남녀간의 깊은 정분을 뜻한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는 당나라 6대 황제 현종과 양귀비의 비련을 그린 '장한가'에서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고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도다>라고 읊었다. 

 

어화원의 연리지에도 다음과 같은 슬픈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고 합니다.

한 궁녀가 자금성 북쪽에 있는 경산에 드나드는 나무꾼을 사랑하게 되었답니다.

이 사실이 황제에게 발각되어 화가 난 황제는 환관들에게 그 나무꾼을 매질하여 죽이도록 했습니다.

슬픔에 잠긴 궁녀는 사랑하는 나무꾼을 따라 자결을 했습니다.

그러자 황제는 신하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나무꾼 같은 저런 천민에게도 사랑이 있느냐?"

"예, 사랑은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라고

신하가 대답하자 황제는 크게 놀랐다고 합니다.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한 나무꾼과 그 사랑을 쫓아 자결한 궁녀는

어화원에 연리목(연리지)이 되어 다시 만나 사랑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어화원에서 가장 눈길이 많이 갔던 것이 초록 식물을 면사포처럼 쓰고 있는 이 돌이었습니다.

이 돌은 중국의 대부분의 정원에는 반드시 놓여있다는 태호석인 것 같습니다.

큰 돌은 곰이 발을 들고 있는 모습 같고 그 앞의 돌은 입을 벌리고 풀을 뜯어먹는 것 같이 보이네요.

 

 

 

 

  

이번에는 사진기 배터리에 문제가 생겨 눈으로 더 많이 보자는 생각에 사진을

많이 안 찍었더니 기억의 한계로 어화원은 더 더욱 생각나는 것이 별로 없네요.

 

오른쪽 나무 뒤로 보이는 건물이 어화원 네 모퉁이마다 하나씩 있다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상징하는 정자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빠르게 앞으로 전진하며 이렇게 멀리서 눈으로만 보고 지나쳤답니다.

 

자 여기에서 잠시 '세미원'편에서 올린 중국, 일본, 한국의 정원에 대해 복습해 볼까요?

우리나라의 정원은 ‘동산 원()자를 안 쓰고 나라동산 원()자를 쓰는지.

 

서울대 권영걸 교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광활하고 울창한 숲과 같은 중국정원은 원림(園林)이라 합니다.

규모가 작은 일본정원은 울타리가 쳐진 관상의 대상이라는 의미를 가진

울타리가 있는 밭 원()자를 쓴 정원(庭園)입니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정원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최대한 살리려는 중국정원에 가깝지만

중국정원처럼 규모가 크지도 않고, 일본정원처럼 기교와 절제미로 치장되어 있는 좁은 공간도 아니기에

짐승을 기르는 임야라는 뜻의나라동산 원()자를 써서 정원(庭苑)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느 나라의 정원이 마음에 드시나요?

 

 

 

[자금성 15C] 

 

15세기 명나라 때 그린 자금성과 지금의 자금성은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1420년에 어화원이 조성되었다고 하는데 이 그림 속에는 나타나 있지 않네요.

 

 

 

 

 

 

저는 일행을 따라가다 또 담장 너머로 살짝 내밀고 있는 지붕을 찍어봅니다.

이렇게 위와 앞만 보고 가다보니 어화원의 아름다운 길은 미처 눈여겨 보지 못했네요.

 

 

 

 

[퇴수산 & 어경정]

 

가이드님이 이곳에서 잠시 서서 이 인공산에 대해서 설명해줍니다.

그런데 이곳에 어떻게 '山'자를 붙일 수 있는지 중국사람들의 과장법을 이곳에서도 느끼게 되는군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산을 동경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작은 모형산이라도 궁궐에 만들어

마음을 달래려는 중국인들의 자연에 대한 애착심과 풍류를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쨋든 여러 개의 기괴한 모양의 바위들을 붙여 만든 인공산인 퇴수산 위에는 어경정이 있습니다.

이곳에 오르면 궁궐 밖의 북경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한 번 궁에 들어오면 밖으로 나가기 힘든 궁중의 생활에서 이곳은 특별한 곳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곳은 황제가 황후 및 가족들과 함께 이곳에 올라 중추절(음력 8월 15일)과

중앙절(음력 9월 9일)의 궐 밖의 축제를 구경하곤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황제와 황후는 이곳을 어떤 방법으로 올라갔을까요?

몸소 걸어서 올라가지는 않았을 테고 분명 가마를 타고 올라갔을 텐데????

 

이곳은 어화원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여서인지 수많은 사람들이 주위에 모여 있어

사람들을 피해 재빠르게 사진을 찍어야 하기에 전체적 모습은 찍기 힘듭니다.

사진 밑으로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습니다.

 

 

 

 

 

 [퇴수산 & 어경정]

 

퇴수산에는 동굴과 폭포도 만들어 놓았다는데 동굴은 가운데 길게 뚫어놓은 부분을 말하는 것이겠지만

폭포는 사진의 아래 중앙부분의 긴 돌인지 윗 부분 중앙에 사각형으로 뚫어놓은 부분인지

위로 길게 세워 놓은 돌들을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네요.

어쨋든 비가 오면 돌들에 나있는 구멍들과 이 긴 돌로 흘러내리는 빗줄기가 폭포를 연출하는 것이 겠지요.

비가 오면 자금성 월대의 용들의 입에서 나오는 물줄기와 함께 이곳도 멋진 장면을 보여줄 것 같습니다.

 

10m 높이로 쌓아 올린 이 인공산의 재료는 태호석으로 중국의 정원마다 태호석이 있는데

만약 태호석이 없으면 권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가이드님이 설명해주시네요.

검은 색을 띄고 있는 이 기괴한 모양의 돌들은 중국의 쑤저우 부근의 호수인

태호(太湖) 속에서 채취하는 것이기에 태호석(太湖石)이라 불리는 것 같습니다.

구멍이 숭숭 뚫린 것은 석회석이 오랜 시간 동안 호수 물 속에 잠겨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기괴한 모양의 태호석들을 붙여 퇴수산을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접착제가 무엇인지 접착력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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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카파도키아의 우치사르]<_FONT><_SPAN><_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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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화원의 구멍이 숭숭 뚫린 태호석을 보니 문득 터키 카파도키아의 괴뢰메와 우치사르 등이 생각나네요.

그때의 나이가 지긋하신 터키인 영어가이드님은 지금도 저곳에서 열심히 안내하고 계실까? 

프라하 크룸로프와 오스트리아 짤츠부르크에서의 현지인 가이드님들도 모두 나이가 있으신 분들이었는데

나이가 들어서도 열정적으로 일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답니다.

 

 

 

 [연화문]

 

이제 퇴수산 바로 앞에 있는 연화문으로 나갑니다. 사진 왼쪽 밑에 '出口'라고 써있네요.

다른 단체여행객 가이드는 사진에서처럼 저런 깃발을 들고 다니는데 우리의 가이드는 아무런 표식도 없이

다닙니다. 인원이 14명 뿐이어서 였을까 아니면 촌스럽다고 여기기 때문이었을까????

문득 바티칸박물관을 구경할 때 현지 가이드님이 자신이 들고 있던

노란우산을 표식으로 하겠다며 노란우산을 높이 들고 다니던 모습이 생각나네요.

이렇게 사람이 많을 때는 촌스러워도 무엇인가 표식이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화원의 출입문인 연화문은 지금까지와 달리 작아서인지 귀엽게 보이기까지 합니다.

오문에서 설명할 때 사진이 없어 아쉬웠는데 이 사진에서 조금이나마 출입문의 둥근 징이 보이네요.

자금성의 출입문들에는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가로, 세로 각 9개씩의 둥근 징이 있습니다.

9는 홀수로 10 이하의 수에서 가장 큰 숫자이기에 행운을 상징하는 숫자로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문에서만 모든 사람들이 만지며 지나가지 다른 문에서는 만지는 것 같지 않더군요.

 

 

 

 

 

연화문과 마주보고 있는 어화원 출입문과 그 뒤로 누각이 보입니다.

드넓은 공간만 걷다가 갑자기 좁아진 공간에서 자색 담장이 가까이 눈 앞에 나타나니

아름답다는 느낌보다는 왠지 섬뜩한 느낌이 먼저 드는 까닭은 무엇일까?

 

 

 

 

 

 

 [신무문(神武門 : 썬우먼)]

 

이제 다시 넓은 공간으로 나오니 사람 사람 사람입니다.

와! 하루 관광수입이 대체 얼마일까????

세계인구의 1/5 이상을 차지하는 자국민들의 관광수입만으로도 엄청날텐데...

 

남북으로 계속 걸으면 한 시간 남짓 걸릴 정도로 세계 최대 규모의 궁전이라는 자금성에 출입문은

동(동화문), 서(서화문), 남(오문), 북(신무문)에 각 한 개씩 단 네 개뿐입니다.

 

우리는 남문인 오문으로 들어와 드디어 자금성의 북쪽 끝에 있는 '신무문'에 도착한 것입니다.

신무문이라는 현판 아래 '고궁박물원(故宮博物院)'이라는 현판이 또 있습니다.

청의 마지막 황제인 선통제(푸이)가 1924년 구테타로 자금성에서 쫓겨난 후 황제들의 서슬이 시퍼런

권력의 역사를 뒤로한 채 1925년 10월 10일 '자금성'은 '고궁박물원'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천안문에 크게 써있는 글자들은 번자체에서 다시 간자체로 바꿔 썼다고 하는데

'고궁박물원'이라는 현판의 글씨는 몇 년도에 쓴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번자체로 써있네요.

글씨가 매우 멋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문학가이자 서예가인

곽말약(궈모어루어 : 1892-1978)이 쓴 것이라고 합니다.

곽말약은 중국의 대문호이자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거두였지만 말년에 권력에 철저히 아부하며

자신의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그가 보여 준 치졸한 말과 행동들은

우리나라의 대문호였던 이광수를 떠올리게 합니다.

 

자금성 정문인 천안문에는 마오쩌뚱의 초상화가, 자금성 후문인 신무문에는 마오쩌뚱 정부에

지나치게 아부하며 부끄러운 삶을 살았던 곽말약의 글씨가 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런데 신무문도 새로 보수되었는데 '신무문' 현판은 여전히 만주어와 한자어가 나란히 병기되어 있네요.

정문인 천안문에는 아예 현판을 떼어버리고 국장을 걸어놓았는데 왜일까???

청왕조도 이민족의 역사가 아닌 한족의 역사로 중국역사의 폭을 넓히기 위한 의도였을까요?

 

 

 

 

 

 [신무문]

  

자! 이제 신무문을 나왔으니 못보고 지나친 것이 생각났다고 해서 다시 들어갈 수는 없답니다.

다시 들어가려면 입장권을 또 사셔야겠지요.

그러면 저도 우리의 가이드님처럼 지금까지 본 자금성의 코스를 복습해 볼까요?

전문(북경내성의 정문) - 천안문(자금성의 남쪽 정문) - 단문 - 오문(고성박물관의 정문) 

- 태화문 - 태화전 - 중화전 - 보화전 - 건청문 - 건청궁 - 교태전 - 곤녕궁 - 곤녕문

- 천일문 - 어화원 - 연화문 - 신무문

 

휴!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을 다시 확인하고 가야겠지요?

흔히 자금성에는 9,999칸 또는 8,704칸이 있다고 하여 우리의 방의 개념으로 9999개의 방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중국고대의 건축은 4개 기둥사이의 면적을 1칸으로 친다는 것입니다.

즉 자금성에서 가장 큰 건물인 태화전의 경우는 동서로 12개의 기둥이,

남북으로 6개의 기둥이 있으니 <11X5> 즉 무려 55칸이나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방의 개념으로 치면 실제로 현재 남아있는 방의 개수는 980개라고 합니다.

 제가 갖고 있는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책들에도 모두 4,702개의 궁실 또는 9,999개의 방으로

설명되어 있어서 그렇게 믿고 있었는데 건축관련 글을 읽다보니 틀린 정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북경에서 사온 여행책자는 설명은 거의 없어서 실망이고....

 

 

 

 

 

 

 

 

[사진출처 : DAUM 영화]

 

 

 자! 드디어 답답한 궁중생활을 간접적으로나마 빠르게 엿본 뒤

푸이(1906-1967)가 3살 때 태화전에서 황제 즉위식이 거행될 때 용상에 올려놓지 못하도록

발버둥 치고 소리 지르며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던 모습을 떠올리며

저도 어서 서민의 자유로운 생활 속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경복궁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위압감 속에서 2시간도 채 안되는 시간이었지만

나무도 없는 황량한 자금성을 구경하고 나니 찌는 더위에 더 몸이 지치는 것 같습니다.

 

 

 

 

 

 

 신무문을 나오면 저 멀리 보이는 산이 경산공원입니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경산은 명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가 목을 매 자살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런 아픈 역사를 갖고 있는 산이지만 저 산 위에서 자금성 전체를 조망하는 것이 장관이라고 하네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저 산도 인공산이라는 사실!

즉 자금성을 빙 둘러 너비 52m, 깊이 6m 그리고 3.8km에 이르는 길이로 

해자(성 밖 주위를 빙 둘러가며 땅을 파 물을 채운 것)를 만들면서

그곳에서 파낸 흙과 14장의 벽돌을 바닥에 깔기 위해 자금성 바닥을 7m까지

파내면서 나온 흙으로 만든 인공산이 바로 저 앞에 보이는 경산이라고 합니다.

 궁궐 뒤에는 산이 둘러싸고 있어야 귀신도 막아주고 풍수지리학상 좋다고 해서

산이 없는 이곳에 이렇게 인공산을 만들어 놓았다니

또 다시 중국인들의 수적 우세에 두려움마저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조금만 시간을 내서 저 경산공원에 올라가서 자금성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도 있었을텐데

네 대의 버스에 네 명의 가이드가 동행하니 우리가 부탁해도 힘들었을 것 같네요.

유럽여행을 할 때 산이나 높은 성 위에 올라 마을 전체를 조망하는 경치가

늘 가슴 설레는 감동을 선사해주곤 했는데....

특히 하이델베르크, 아테네, 체스키 크룸로프, 징그트 길겐, 산토리니의 전경은

지금도 가슴을 뛰게 합니다. 만약 노을 지는 경산공원에서 자금성을 보았다면

분명 손 꼽히는 멋진 전경 중 하나가 되었으리라 생각하기에 아쉬움이 더 남습니다.

 

 

 

 

 

자금성의 후문인 신무문으로 나오면 성벽을 빙둘러 있는 해자를 볼 수 있습니다.

해자는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성을 보호하고 목조건물인 자금성을 휘감아 돌며

방화기능도 담당했다고 합니다. 물론 상징적인 방화기능이었겠지만...

 

 

 

 

 

 

 

이렇게 해서 약 1시간 반 동안 또 하나의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구경했네요.

대체로 2시간~2시간 30분이 걸린다고 하는데 우리는 너무도 빨리 자금성을 휙휙 지나왔나보네요.

아니면 모두 시간을 정확하게 지켜 시간이 많이 단축되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천천히 하나 하나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는 타입인데

빠른 속도로 자금성을 구경해야 하니 이런 저런 감정을 느낄 겨를도 없었지만

책이나 사진으로만 보던 자금성에 와봤다는 것만으로도 제 삶에 감사해야겠지요.

  

 

 자세한 정보를 원하시면 베이징관광국 홈피를 방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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