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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 내몽고] 제 2일 : 북경(10) - 스차하이 후통 인력거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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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기/중국

2010. 9. 26.

 

 

 

 

 

다시 전용버스를 타고 스차하이로 가는 도중에 '전취덕(全聚德)'이라고 쓰인 패루를 친구가 포착했네요.

저곳이 바로 그 유명한 오리구이 전문점 '전취덕'이겠죠? 

 

 

 

 

 

 

 

 

자! 이제 우리를 실은 전용버스가 스차하이 근처에 정차합니다.

길 오른쪽에는 많은 인력거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가이드님은 여기서 1시간 동안 휴식시간을 갖는답니다.

대신 스차하이와 후통을 안내할 가이드를 소개합니다.

발음은 어눌하지만 한국말을 어법에 맞게 제대로 구사할 줄 아는 젊은 청년입니다.

 

 

  

 

 

 

 

인력거들이 번호 순서대로 질서정연하게 대기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인력거번호를 기억하라는 스차하이 가이드의 주의를 들으며

우리 일행 모두는 둘씩 짝을 이루어 인력거에 오릅니다.

사실 인력거 투어라고 해서 사람이 걸으며 끄는 수레를 생각했는데

자전거를 개조한 현대식 수레네요.

 

 

  

 

 

 

 

스차하이는 입장료가 없는 개방형 공원이기에 걸어서 천천히 구경할 수도 있고

인력거를 타고 현지가이드의 재미있는 설명과 함께 골목관광을 할 수도 있습니다.

단, 인력거 골목 관광은 20달러를 지불해야만 가능합니다.

우리는 제한된 시간에 후통과 스차하이를 제대로 구경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돼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선뜻 인력거에 올랐던 것입니다.

 

 

 

 

 

 

 인력거 투어를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걸어서 후통과 스차하이를 관광하는 사람들도 많아 보입니다.

인력거투어가 아니면 사합원의 안을 제대로 구경하는 것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자금성의 붉은 담과 황토빛의 지붕만 보다가 연회색의 담장과 고급주택을 보니 제 마음까지도

차분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길 중앙에 세워진 담장은 무슨 의미일까요?

중국인들은 담장 쌓기를 좋아한다는데 이 담장도 단순히 그런 의미에서 세워진 것일까요?

 

 

 

 

 

우리의 인력거를 끄는 청년은 부채를 들고 더위와 싸웁니다.

늘 이 무더위와 친구되어 살아 온 탓인지 힘들게 패달을 밟으면서도

그다지 힘들어 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며 열심히 사는 모습이

좋아보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인력거 투어비용 20달러를 지불하는 것만 생각했지

인력거를 끌었던 사람에게 팁을 주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도 못해 골목관광을 마친 후

그냥 내리고 더욱이 감사하다는 인사도 하지 않았던 것 같아 나중에 얼마나 미안했던지....

 

 

 

 

 

 

이 민속촌은 관광거리가 아니어도 주차하기가 매우 불편한 곳인데

인력거가 양방향으로 오고가니 주거지로는 적절한 곳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곳의 이 집들이 북경에서 가장 비싸다고 합니다. 믿어지시나요?

 

 

 

 

 

 

 

이 골목길의 담을 보면 모두 회색입니다. 자금성에서 보았던 자색의 담장은 황제 이외에는 사용할 수

없었다는 것을 이곳에서 확인해보네요. 좁은 골목에 다닥 다닥 들어선 집들이지만 담장의 높이는 꽤 높습니다.

중국의 담 높이는 보통 3m가 넘기에 안을 들여다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러한 담장문화는 남을 믿지 못하는

중국인들의 폐쇄성을 말해준다고도 하고 이민족의 침입에 대비한 것이라고도 합니다.

반면 한옥의 담장은 보통사람이 서면 머리가 보일락 말락한 높이입니다. 일부러 까치발로 서서 보지 않으면

안채가 보이지 않도록하여 최소한의 사생활을 보호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발돋움을 하면 안에 있는

사람과 밖에 있는 사람이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소통의 장이기도 했습니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한옥담장 위로 기와가 우아한 곡선의 미를 선보이는 한옥이 얼마나 아름다운

건축물인지 이 골목 양쪽에 들어서 있는 단조로운 사합원과 높은 담장을 보며 더욱 실감하게 됩니다.

 

 

 

 

 

 

 

중국에서는 이런 좁은 골목길을 후통(胡同)이라고 합니다.

중국도 개발의 힘에 밀려 많은 좁은 골목길이 없어지고 있지만 요즘 후통이

외국인들의 관심을 끌면서 오히려 관광지화되어 가고 있다고도 합니다.

특히 베이징에서 유일하게 중국의 전통가옥인 사합원(쓰허위안)이 밀집되어 있는 이곳은 정부에서

관광지화하기 위해 사합원을 국가 중점보호문물로 지정해 엄격히 관리하고 있으며 

국가에서 10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합니다.

 

 

 

 

 

 인력거를 타고 좁은 골목길을 따라 조금은 심심한 회색담의 사열을 받으며 지나다보니 스차하이 가이드가

언제 벌써 와 있네요. 그는 손을 들어 이 후통 끝에 있는 집 안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장난끼 가득한 얼굴로 얼마나 구수하고 재미있게 설명을 잘 하던지....

만약 인력거 투어에 이 가이드의 재치있는 설명이 없었다면

조금은 실망을 안겨다 준 민속마을 관광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인력거 투어를 끝내고 가이드의 이름을 물으니 '윤성'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구경한 사합원은 대문 위에 툭 튀어나온 둥근 표시가 두개인 곳입니다. 둥근 표시가 많을 수록

중요한 건물이라고 합니다. 표식이 두개인 사합원이어서인지 중국의 전통가옥이라해서 

기대를 했는데 마당은 좁고 정돈되지 않은 어수선함만이 우리를 반깁니다.

사진에 보이는 건물은 남쪽에 있는 행랑채입니다. 사합원에서 가장 좋지 않은 방이

남쪽에 자리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중국인들은 남향집을 선호해 거의 모든 사합원이 남향이기 때문에

남향을 등지고 앉은 남쪽 행랑채는 사철 내내 햇빛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온돌문화가 없는 사합원의

남쪽 행랑채는 매우 춥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쪽 행랑채는 하인들이 살거나 창고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반대로 남쪽을 향하고 있는 북쪽에 자리한 안채격인 정방(正房)은 사시사철 볕이 들어오기에

집안의 가장 어르신이나 주인이 기거한다고 합니다.

 

 

 

 

 

 가이드는 우리 일행을 작은 방 안으로 안내합니다.

차 한 잔을 마시며 이 집의 역사에 대해 가이드로부터 잠시 설명을 듣습니다.

이 집의 가격이 한화로 60억 정도된다고 합니다. 와!

하루 입장료 수입이 3~4천만원이나 된다고 합니다. 또 다시 와!

그리고 가이드 말 중에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중국 국회와 한국 국회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아냐는 것입니다. 그의 대답은 걸작이었습니다.

한국 국회는 싸우지만 중국 국회는 싸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실 중국은 양당체제가 아니니 싸울 일이 없다는

조금 우리의 눈치를 보는 말을 덧붙입니다.

 

 

 

 

 

 복을 불러온다는 빨간색과 황제의 색인 금색의 술이 달린 등이 달려있네요.

황제 이외에 금색을 사용할 수 있었다는 뜻인가 아니면 최근에 달아놓은 것일까?

 

 

 

 

 

이곳은 아들의 신혼방으로 복을 불러 온다는 붉은 색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실제로 이방은 재물이 많이 들어온다는 명당자리라고 가이드가 설명합니다.

그래서 모두들 부귀영화를 꿈꾸며 한 명씩 이곳에 앉아 사진을 찍어봅니다.

창문에 커다랗게 장식되어 있는 '기쁠 희(喜)'가 두개나 있는 '쌍 희(囍)'자를 넣어서...

돈만 많으면 무슨 소용있겠어요. 사는 것이 기쁘고 즐거워야지.

 

 

 

 

 

 

 

하루 종일 관광객들로 붐빌텐데 이곳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매우 불편할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실제로 생활한다고 하지만 저는 의심이 많아서인지

생활은 북경에 있는 고급 아파트에서 생활하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대학생인 이집 딸은 학교도 안가고 부자 아버지를

둔 덕에 집에서 그냥 놀며 지낸다고 합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동쪽에 위치한 이 방은 아들 방 답게 별다른 장식이나 가구 없이 매우 깔끔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아들이 이곳에서 자는 것은 아니고 민박손님들이 묵는 방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합원에는 화장실도 없는데 불편하지 않을까요?

화장실도 개방형화장실인데... 그러나 실제로 이런 곳에서 묵어야

그 나라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들방이 해가 뜨는 동쪽에 자리한 반면 서쪽방에는 딸이 산다고 합니다.

가이드는 서쪽에 사는 딸이 시집을 가면 그 남편을 서쪽방에 산다고 해서 '서방님'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역시 장기는 신선놀음의 상징이죠.

 

 

 

 

사진 오른쪽 흰 티에 검은 바지를 입은 조금 뚱뚱하신 분이 현재 이 집의 주인입니다. 수수한 모습이시죠?

이 집은 388년 전 과거에 합격한 사람의 집이라고 합니다. 명, 청 시대의 고관들이 이런 집에 살았다니

모든 것이 큰 중국에서 주택은 황제의 위세때문이었는지 매우 소박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청렴한 관리였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합원(四合院)은 위의 사진들과 한자에서 알 수 있듯 동서남북 사방이 합쳐진 □ 자 모양의

중국 전통가옥을 말합니다. 즉, 가운데 마당이 있고 본채와 사랑채등 4개의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는

구조입니다. 그러나 이 전통가옥들도 마오쩌둥에 의해 주도된 문화대혁명(1966-1976) 시기에

대부분 파괴되고 현재는 50여 채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새마을 운동으로 

전통가옥들이 대부분 사라진 것과 같은 역사적 비운이라고 해야할까요?

 

 

 

 

 

가장 집값이 비싼 동네라는 명성과 어울리지 않는 식품점의 모습입니다.

 이 마을에는 20만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고 하는데 편의시설은 별로 보이지 않네요.

 

 

 

 

 

 

 

사합원은 사방이 건물로 막혀있기 때문에 환기가 잘 되지 않는 단점때문에 화장실을 집 안에 둘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신 50m마다 공동화장실이 있다고 합니다.

가이드는 우리에게 사진 오른쪽 끝에 있는 건물을 가리키며 그곳이 화장실이니

한 번 구경해보고 오라고 합니다. 모두들 보고는 눈들이 휘둥그레졌지요.

 

중국에서 가장 개방된 문화가 바로 이러한 화장실 문화라고 합니다.

칸막이가 없거나 있다고 하더라도 매우 낮아 일어서면 옆사람이 다 보입니다.

일본은 혼탕 문화가, 중국은 화장실 문화가 이방인들을 깜짝 놀래키는 것이죠.

우리나라는 어떤 문화가 외국인들에게 충격적일까요?

 

 

 

 

 

 

 

 녹색기와는 보지 못했는데 가이드는 녹색기와는 황제의 딸이나

황제의 조카가 시집왔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스차하이 가이드는 한국의 민속촌은 사람들이 살지 않지만

북경 민속촌인 이곳은 사람들이 직접 거주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곳은

조선시대에 세도있는 양반들의 거주지였던 서울의 북촌 한옥마을과 비교될 수 있는 곳이지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용인 민속촌과 비교될 곳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한옥이 주는 지붕의 우아함움도 없고 담장의 운치도 없는데

어떻게 사합원이 양쪽으로 잘 보존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올 수 있는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곳을 지나는 내내 우리의 한옥이 얼마나 멋스러운지 새삼

큰 자부심이 느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이 북경에서 가장 비싼 동네로

국회의원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 하네요. 이 말을 들으니 주체의식과

문화적 자긍심이 매우 강한 민족이라는 생각을 하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