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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 내몽고] 제 3일 : 북경(13) - 만리장성(거용관 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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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기/중국

2010. 12. 9.

 

 

 

북경에서의 세 번째 날이 밝았네요. 오늘은 만리장성을 잠깐 들른 뒤 내몽고(네이멍구)로 갑니다.

그래서 5시 30분에 모닝콜, 6시 15분 아침식사, 6시 45분 집합, 7시 출발

그러나 또 정시에 출발하지 못하고 지체하네요. 왜일까????

우리팀은 다 왔지만 버스가 4대가 함께 움직이니 다른 버스 일행때문에 그런가 봅니다.

어차피 버스마다 가이드가 한 명씩 배치되어 있으니 따로 행동해도 될 것 같은데...

 

호텔에서 거용관(쥐융관)까지는 약 75km이니 팔달령고속도를 타고 달려도

복잡한 북경시내를 빠져나가야 하니 버스로 1시간은 더 소요되겠네요.

 

 

 

만리장성 : 198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춘추시대와 전국시대 때 군웅 할거하던 왕조들이 서로의 국경에 성을 쌓으며 부분적으로 성벽이 형성.

                → 진나라(B.C. 221 ~ B.C. 208) 시황제가 중국을 통일 후 기존의 성벽을 이용해 연결하고 증축하면서

                    현재의 장성(長城)의 기틀을 마련 [동쪽으로는 조나라, 연나라 때 부분적으로 형성되어 있던 성벽들을 

                    서쪽으로는 진나라 소왕 때 건설한 기존 장성을 이용해 서로를 연결하고 연장]

                    이 때 비로소 만리장성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 함.

                    목적 - 방어적목적 또는 유목민과 농경민족 문화를 구분하는 경계선이라는 추측에는 이견이 존재.

               → 당, 송, 원나라를 거치며 계속 보수

               → 명나라 때 대대적으로 확장 [현재 보존되고 있는 것이 명청대의 것]

                   

               길이 - 명나라 때 지은 만리장성의 동쪽 끝은 하북성 발해만 연안의 산해관(산하이관)이며

                         서쪽 끝은 실크로드가 시작되는 감숙성의 가욕관(자위관)으로 동서로 약 6,400km이다.

                         관리당국의 관리 소홀과 주변주민들이 건축 재료로 이용하기 위한 개인적 용도로 훼손하여

                         현재 보존되고 있는 장성의 길이는 2,700km

 

               성벽의 폭 - 보통 윗쪽은 4~5m이며 아래 쪽은 9~10미터.

               성벽의 높이 - 6~9m

 

               개방구간산해관장성 [만리장성의 서쪽 끝]

                               거용관장성 [베이징에서 가장 가까운 관문. 경사가 심함. 케이블카 없음]

                               팔달령장성 [베이징 교외에 위치. 케이블카 있음, 가장 많은 관광객들이 몰리는 곳]

                               모전욕장성 [베이징 시내에서 차로 1시간 40분 거리. 케이블카 또는 활차(모노레일) 이용] 

                               금산령장성 [하북성(허베이성) 청더에 위치. 케이블카 이용]                             

                               사마대장성 [현재 보수공사로 2013년까지 폐쇄]

                               이외에 황화성장성, 수관장성, 고북구장성이 최근 개방되었으며

                               다른 장성들은 보수공사를 거쳐 지속적으로 개방할 예정

               장성위치 -  [서쪽] 산해관 - 거용관 - 수관 - 팔달령 - 모전욕 - 황하성 - 고북구 - 금산령 - 사마대 [동쪽]

 

 ※ 참고로 2009년 4월 중국은 만리장성의 동단기점을 산해관장성에서 후산장성을 

    '만리장성의 동단기점'이라고 수정하여 발표. 따라서 만리장성의 총 길이는 8851.8km라고 주장.

 

 

 

 

드디어 만리장성 주차장에 버스가 서고 저는 대체 만리장성이 왜 그렇게 유명한 거야? 하는

호기심을 안고 내릴 준비를 합니다. 날씨가 너무 무더워 치마를 입고 만리장성에 오를 수 있냐고 물어보니

가이드님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혹시나 해서 가방에 바지를 챙겨 버스에서 내립니다.

 

 

 

 

 

이곳도 아침 안개 때문일까요? 북경의 회색빛 하늘은 여전하네요.

그러나 아침 공기는 어디에서나 상큼한 설렘을 가져다 줍니다.

 

 

 

 

 

 

와! 저기 올라가는 사람들 좀 봐! 올라가기도 전에 걱정부터 앞섭니다.

북경의 날씨는 살인적이라 모두들 아침 일찍 올라갔다오기 위해 서둘렀나봅니다.

 

 

 

 

 

 

 

등산을 싫어하는 저이기에 저 많은 사람들을 비집고 더 더욱 40분 만에 저 위까지 올라갔다 온다는 것에

'이것은 극기훈련도 아니고...'하는 꾀가 먼저 생겨납니다. 

 

 

 

 

 

 

[로마의 콜롯세움]

 

 

 

[로마의 포로 로마노]

 

로마의 콜롯세움과 포로 로마노는 사진이나 영화로 너무 많이 보아왔고 파괴된 상태라 

큰 감흥이 없을 줄 알았는데 들어서는 순간 알 수 없는 묘한 기운에 이끌려

절로 와! 하는 탄성이 일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건만

 

 

 

 

 

 

 

만리장성은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달라 전혀 감흥이 일어나지 않네요.

깔끔하게 단장되어 있는 것은 좋은데 오래된 역사의 흔적은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넓은 주차장 옆 담장을 뒤덮고 있는 초록빛 덩굴과 나무들이 저를 더 반깁니다.

이 나무들은 1992년 유물복원사업 당시 심은 것이기 때문인지 아직 우람함을 자랑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나무들이 너무 크게 자라면 산세를 가리게 되니 지금 이 상태로의 높이가 가장 적당한 것 같습니다.

너무 자신을 뽐내다가는 제일 먼저 잘릴 위험이 있으니 이 나무들도 알아서 자신의 몸을 보호하겠지요.

 

 

 

 

 

[사진 : KDH]

 

'천하제일웅관'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문루가 만리장성 입구에 우뚝 서있습니다.

사실 일본도 한 번 밖에 가보지 못했고 중국도 이번이 처음 방문이지만

일본의 건축은 막 꽃단장을 마친 새색시처럼 섬세하고 장식적이고 여성적이라면

중국은 늘 대장부로서의 기개를 자랑하듯 장대하며 통일감이 있고 남성적인 것 같습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건축은 지나치게 장식적이지도 않고, 지나치게 크기와 규모만 자랑하지도 않는

그 둘을 모두 아우르는 중도의 단아한 기품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직간접적으로 우리나라는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고, 일본은 우리나라문화의 영향을 받았으니

전체적으로는 비슷하나 세부적으로 독특한 영역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으로 탄생된 문화이기 때문이겠죠.

 

 

 

 

 

 

 

[사진 : KDH]

 

문루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장성입구'라는 글자가 새겨진 성문이 보입니다.

이렇듯 철옹성과 같은 성채와 성벽을 쌓은 위대한 과업도 청나라의 전신인 금과의 전쟁 때는 

만리장성을 지키던 장수가 오히려 반군인 만주족과 손을 잡고 길을 터주고 자금성까지

진입할 수 있도록 도와 명을 멸망케 했으니 아무리 좋은 무기와 방호체제를 구축한다해도

민심을 잡지 못하면 모두가 무용지물이라는 교훈의 장이 된 것이 바로 이 만리장성입니다.

또한 청나라 때는 군사적 목적을 상실하고 몽골과의 국경선 역할만으로

만족해야 했기에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방치되었습니다.

그것을 1992년 중국의 유물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지금의 모습을 되찾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성벽을 따라 잠시 오르다 아래를 내려다 보니 커다란 건물들이 숲을 이루고 있네요.

이 건물들의 용도는 무엇이고 언제 지어진 것일까???

교과서에 실린 사진은 만리나 되는 긴 성벽뿐이었는데 정말 예상 밖의 풍경이네요.

 

 

 

 

 

 

 

거용관(居龍關)은 '머무를 거'에 '용 용' '기관 관'자를 씁니다. 따라서 만리장성은 흔히 용으로

표현되었다 하니 '머무르기 위한 장성의 관청'이라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겠지요.

또한 안내 표지판에는 '역사적으로 어서(御署), 묘우(廟宇), 유학 등 다양한 건축시설도 있었다'고

설명되어 있으니 어서(御署)란 '임금 어'에 '관청 서'를 쓰니 저 건물들은 

황제가 이곳으로 행차했을 때 황제가 거처할 행궁과 신들을 모시는 사당,

그리고 주둔군을 위한 관청일 것으로 추측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거용관 장성은 북경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관문이기에 황제가

이곳을 자주 왕래했다고 하니 만리장성에 이만한 시설이 있는 것에 의아해할 필요는 없겠네요.

 

 

 

 

 

 

따라서 거용관장성과 달리 다른 장성에는 이러한 커다란 건물들은 볼 수 없겠지요.

 

 

 

 

 

사진 위 중앙에서 왼쪽에 버스 뒤로 보이는 아치형의 관문이 운대(과가탑)입니다.

 

 

 

 

 

[패루와 과가탑 - 사진 : KDH]

 

이곳의 패루도 전문대가와 이화원에 있는 패루 못지 않게 크고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네요.

패루 뒤에 있는 관문에는 현재 불탑인 과가탑은 없어지고 대좌만이 남아있는 운대가 있습니다.

1346년 원나라 때 승려 덕성이 교통의 안전을 기원해 건립한 것으로

중국에 현존하는 대좌 중 규모가 가장 크고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합니다.

아치형문 안과 양쪽 외벽에는 만다라꽃과 작은 불상들이 조각되어 있고, 정 중앙에는

인도 전설에서 큰 뱀을 잡아먹는 금시조와 뱀신이 그려 있다고 합니다.

또한 다라니경과 조탑공덕비에 인도의 옛 언어인 산스크리트어, 위그르어, 티벳어,

몽골어인 파스파문자, 서하문자, 한자 등 6개국어로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덩그마나 대좌만 남아 있는 이 과가탑은 원나라(1271~1635) 때의 불교문화와

고대 문자 및 여러나라의 문화 교류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라고 합니다.

원나라 유적을 보니 문득 원의 칭기스칸이 이끄는 몽골군들이 말의 입을 틀어막고 몽골고원과 중국을 잇는

대요충지인 거용관을 급습해 잠들어 있는 금의 방위군들을 대패시키는 장면을 떠올리게 하네요.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두 번째 돈대까지는 넓은 길로 되어있고 그 위부터는 비좁은 계단길이 계속됩니다.

 저 멀리 사진 중앙에 제일 높은 건물이 '천하제일웅관'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문루입니다.

문루에서 조금만 걸어 올라오면 커다란 비석이 있습니다.

사진 속에서도 사람들이 비석 주위에 빙 둘러 멈춰 서 있는 모습을 보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중국사람들 특히 남자들은 어김없이 이 비석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습니다.

무슨 이유일까요?

 

 

 

 

 

 

그 비석에는 불지장성비호한(不至長城非好漢)이라고 써있습니다.

'장성에 오르지 못하면 사내대장부가 아니다'라는 뜻이니

나는 이제 사내대장부라는 증거를 남기기 위한 것이겠지요.

이 말은 마오쩌뚱이 한 말이라고 하니 가이드님의 말에 의하면 중국인들은 북경에 오면

다른 곳은 못가도 마오쩌뚱기념관과 만리장성은 반드시 들른다고 하니

이 비석이야말로 중국인들의 자긍심을 한껏 고양시키기에 충분한 것 같습니다.

[好漢 : 의협심이 많은 사나이]

 

 

 

 

 

[사진 : LSW]

 

그리고 성벽 초입에는 수 많은 자물쇠들이 입을 꼭 다문 채 소리없이 사랑을 속삭이고 있습니다.

 

 

 

 

 

자! 이제부터는 급경사의 비좁은 계단길이 시작됩니다. 계단의 높이도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치마를 입고는 신경쓰여서 도저히 올라갈 수 없는 높이입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바지를 꺼내 입는 해프닝을 벌입니다.

다행히 사람이 하도 많아 전혀 다른 사람에게 신경쓰는 분위기는 아닙니다. 휴!

 

서울에서 출발할 때 기상악화로 현지사정에 의해 케이블카 탑승이 불가할 경우 만리장성 거용관으로

도보여행을 한다고는 했기에 걸어 올라갈 것을 예상하고는 왔지만 만만치가 않네요.

그런데 파업 중이라 케이블카가 운행하지 않아 거용관장성으로 변경했다고 했는데

서울에 와서 검색해보니 케이블카가 운행되었다고 하는데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인지????

하지만 만약 만리장성 관람으로 인해 시간이 더 지체되었다면 내몽고로 들어가는 데

더 큰 문제가 발생되었을 것이기에 현지 가이드분들이 더 잘 알아서 결정했으리라 짐작됩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사람들이 앞으로 진행을 못한 채 그대로 계단에 서 있습니다.

 

 

 

 

 

한참을 지체한 뒤 겨우 계단을 오르고 있는데 우리 일행 중 대부분은 벌써 올라갔다 내려오네요.

우리는 목적지까지 올라갔다오면 집합시간에 늦을 것 같아 친구와 저는 여기에서 그냥 내려가기로 합니다.

여기까지 올라오는데도 헥! 헥! 거렸기에 아쉬움 없이 뒤돌아 섭니다.

 

 

 

 

[사진 : KDH]

 

일행의 사진을 보니 목적지까지는 올라가야 만리장성의 진가를 느낄 수 있을 것도 같네요.

군대를 갔다 온 남자들에게는 무엇인가 다른 느낌을 전달 받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왜 만리장성을 자꾸 거부하려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몇 사람의 야욕을 위해 너무 많은 무고한 백성들의 목숨이 하찮게 여겨진다는 것도 싫고

방어용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호전적 분위기가 느껴지고

이것을 건설하기 위해 백성들은 얼마나 굶주렸을까 생각하니 안타깝고....

그러나 이것으로 인해 후손들은 막대한 관광수입을 얻고 있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하나 부정적으로 생각해야 하나 내 자신도 갈팡질팡하네요.

 

 

 

[사진 : LSW]

 

아마도 저 위 성채(성벽을 순찰하는 병사들의 휴식처이자 요새)가 우리의 목적지였나 봅니다.

평지에서 걷는 것은 자신 있는데 등산과는 아직 친해지지 않은 상태라 저 높이만 봐도

대단한 과업이었다는 감탄보다는 힘들다는 생각밖에 없으니 이곳에 묻혀있는

헤아릴 수도 없는 수 많은 사람들의 원혼때문은 아니었는지 괜시리 자기합리화를

해보지만 이내 그렇다면 콜롯세움에서는????하는 의문이 고개를 듭니다. *^.^*

 

 

 

 

 

가다가 중지 곧하고 다시 내려오는 길에 진나라 병사의 모습과 병기를 복원해 놓은 돈대에서

우슈복장을 한 귀여운 소년 소녀들이 사진촬영을 하고 있습니다.

똘똘해 보이는 잘 생긴 소년을 보니 배우 이연걸이 생각나네요.

 

 

 

 

 

만리장성에 대해 별 감흥을 못 느끼는 저를 위해 마치 깜짝 이벤트 선물이 주어진 것만 같습니다.

까만 복장의 소년은 장난끼가 가득합니다. 자신도 멋진 폼을 어서 보여주고 싶어 그 열정을 자제하기 힘든가 봅니다.

 

 

 

 

 

 

저 매서운 눈초리... 관광객들은 아이들의 당찬 자세에 잠시 만리장성은 잊은 채

그들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습니다.

 

 

 

 

 

 

역시나 나이가 있으니 자세도 안정되고 카리스마도 있어 보이네요.

 

 

 

 

 

 

 

올라갔다 와야한다는 부담감때문에 그냥 지나쳤던 기념품가게를 집합시간이 가까와 또 힐긋 보기만 하고

지나쳐야 합니다. 약간은 조잡해보이기도 하지만 찬찬히 구경하면 독특한 무엇인가를 발견할지도 모르는데

아쉽지만 시간 있을 때 민속인형이나 사자고 위안하며 돌아섭니다.

 

 

 

 

 

친구가 화장실을 간 동안 저는 주변을 구경해봅니다.

기왓장을 이용해 얕은 담장을 연출한 것이 특색있게 보입니다.

 

 

 

 

기와를 이용해 답답함을 해결한 얕은 담장 너머로 만리장성 입구를 지키고 있는 문루가 보입니다.

 

 

 

 

 

 

 

거용관 장성은 관리가 매우 잘 되는 것 같습니다. 1992년 복원되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그 많은 관광객들이 오가는 곳이건만 쓰레기 하나 보이지 않습니다.

 

 

 

 

 

 

 

저 건물은 또 무엇일까?

 

 

 

 

좀 더 가까이 가보니 건물 앞 돌담(?)에 '거용관장성박물관'이라고 써있네요.

목조 건물 양 끝에 돌기둥이 있는 것이 독특합니다.

'서관(書館)'이라면 서점이라는 뜻인데 저곳이 서점????

 

 

 

 

 

 

뿌연 하늘 밑으로 만리장성이 희미하게 작별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내몽고로 출발하기 전 거용관장성에서 가까운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전용버스를 타고

달려가고 있는데도 만리장성은 계속 우리의 시야에서 벗어나지를 않습니다.

와! 정말 길기는 길구나! 이제서야 만리장성의 가치가 조금은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서울과 부산의 거리를 400km로 볼 때 왕복으로 8번을 오가는 거리보다 길게 험준한 산을

구비 구비 돌며 형성된 만리장성이 우리가 탄 버스를 계속 따라오는 것 같을 수 밖에 없겠지요.

 

 

 

여기서보니 경사가 더욱 급한 것 같네요. 천혜의 요새에 자리하고 있는 거용관장성(거용새)이

처음 축조된 것은 춘추전국시대의 연나라 때였습니다. 그 후 1368년 명나라 시조 주원장이

원나라가 다시 중원을 침입할 것을 대비해 대대적인 보수 및 증축한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장성이 바로 명나라 때 지어진 것입니다. 

 

 

 

 

 

 

이곳은 물까지 있으니 적군의 침입은 더 한층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만리장성을 쌓은 후 그 안에 살던 백성들은 전쟁의 불안으로부터 과연 해방돼 행복했을까요?

 

혹자는 진시황제가 만리장성을 건설하기 위해 30만 명의 군사와 수 백만 명의 가난한 백성들과 죄수들을 동원했고

그들 중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공사 중 죽었는데 그 시체들은 그대로 그곳에 만리장성의 재료와

함께 묻혔기에 만리장성을 '세계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고 비꼬기도 한다지요.

더 나아가 중국과 대만은 역사교과서에 만리장성을 평양까지 확장해 그려놓고 교육시킨다고 하니

그들에게 있어 만리장성은 중국의 동북공정을 더욱 견고히 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는

역사왜곡의 좋은 유물이기에 더 자긍심을 갖고 열광하는 것은 아닌지....

우리나라도 우리의 문화에 대해 커다란 자긍심을 갖을 수 있는 

역사교육을 보다 강화해야 할텐데 점점 국사교육에 소홀해지니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