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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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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음악 이야기/외국 영화

2010. 12. 20.

 

 

 

내가 좋아하는 외국 감독들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최고의

영화로 뽑았다는 글을 읽고 상영관에서 꼭 보려 했는데 미국에서

그 영화를 먼저 본 오빠가 너무 잔인하다고 해서 포기했었다.

<양들의 침묵>이나 <올드 보이>와 같은 영화인가해서...

영화감독이 꿈인 아이도 영화 뿐 아니라 소설에도 매료되어

꼭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할 정도였지만 책장이 좀처럼 넘어 가지 않았다.

그런데 기회가 되어 이 영화를 DVD로 보았는데 생각보다 끔찍하거나 역겨움은 덜 했다.

오히려 살인마와 행운을 거저 거머쥐려는 한 남자의 쫓고 쫓기는 잔혹한 이야기인데도

장면마다 멋진 그림이 되고 아름다운 풍경이되고 강한 포스를 내뿜는 모델이 된다.

 

 

 

 

 

 

[살인마 안톤 쉬거 - 하비에르 바르뎀]

 

무엇보다 안톤 쉬거역의 하비에르 바르뎀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가 이 만큼

호평을 받았을까? 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바르뎀의 연기는 일품이었다.

초지일관 저 무표정한 얼굴과 독특한 헤어 스타일은 살인마로서의

최고의 연출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스페인 출신의 하비에르 바르뎀은

이 영화로 2008년 아카데미영화상 뿐 아니라 여러 권위있는 영화상에서

남우조연상을 휩쓸었다. 그런데 왜 나는 이 배우를 보면서 뜬금없이

이탈리아 배우 마르첼로 마스트로야니가 계속 생각나는 것일까?

 

 

 

  

[감독 : 조엘 코엔과 에단 코엔 형제]

 

방송에서 조엘 코엔과 에단 코엔 감독을 천재 형제감독이라고 하도 극찬을 해서

그들의 영화를 한 번쯤은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모든 행운에는 피의 댓가가 뒤따른다!'라는 포스터의 카피처럼

현실에서도 도가 넘는 탐욕에 대한 응징의 벌은 반드시 내려질까?

현실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어마 어마한 현금(240만 달러)을 우연히 손에 쥔 남편과 공범이 된 부인은 살인 청부업자

안톤 쉬거와 대면했을 때 마치 자신은 아무런 죄도 저지르지 않은 선량한 시민인 것처럼 말을 한다.

남편이 거금을 갖고 있음을 알면서도 단 한마디의 양심의 소리를 밖으로 내뱉지 않았던

그녀이기에 그녀도 남의 돈을 훔친 공범임에 틀림없는데 말이다.

 

 

 

 

 

 [카우보이 를루인 모스 - 조쉬 브롤린]

 

사람의 목숨보다는 돈가방을 우선시한 사냥꾼 모스는 분명 냉혈한이고

남의 물건을 훔친 도둑임에도 이 영화에서는 살인마에게 쫓긴다는 이유만으로 

관객들로하여금 자칫 모스를 선한 인간으로 오해하도록 만드는 것 같다.

그것이 바로 형제감독이 노리고 있는 현실의 숱한 거짓 속에

속고 사는 어리석은 인간들에 대한 비웃음인지도 모르겠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그것이 주려는 메시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여기에서 말하는 노인이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영화의 제목 속의 노인은 단순히 나이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

물질만능주의에 오랜 시간 동안 물들어 일확천금만을 노리는

생각이 늙은 사람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또한 이렇듯 요행만을 바라며 쉽게 살아가려는 자들에 대한

죄에 대한 응징은 반드시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은 아닐까 하고

이 영화의 난해함을 조금이나마 풀어보고도 싶다.

모스는 돈가방을 들고 멕시코로 도피를 시도했지만 결국 그곳까지

살인청부업자는 그를 찾아 오고 끝내 그에게 죽임을 당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그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이 영화는 죄를 진 후 선량한 마음으로 회개한다고 해서 그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은 죄에 대한 벌은 반드시 받게된다는 것을 강조하기도 한다.

죽어가는 사람이 물 좀 달라는 말을 무시한 채 돈가방만을 챙긴 후

그곳을 떠난 뒤 양심의 가책 때문에 다시 그 장소로 갔으나

그 사람은 이미 살해당했고 자신마저 살해의 위협에 빠지게 된 것이

그 한 예라고 볼 수 있다. 죄를 진 후 용서를 빈다고 해서 이미 지은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 죄에 대한 대가는 반드시 받는 것임을

일깨워 줌으로써 애초에 죄를 짓지 말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는 것 같기도 한다.

 

 

 

 

 

[보안관 벨 역 - 토미 리 존스]

[사진출처 : 영화 다음] 

 

이 영화에서의 경찰은 참 무기력한 것 같다. 사건이 터진 후에야 나타나

어쩔 수 없이 그냥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인간들이 이 세상을 탐욕과 살인과 퇴폐가 난무한 세상으로 만들어버려

신도 손을 놓고 방관할 수 밖에 없다는 의미일까?

질서를 잃어버린 사회, 양심을 던져버린 사회,

동전의 앞 뒷면의 선택에 의해 삶과 죽음이 결정되는 생명경시의 사회,

그리하여 그 어디에서도 편히 쉴 수 없고

그 어느 곳으로도 도망칠 수 없는 사회

이 영화 속 현실은 정말 너무 편협되게 부정적인 것 같다.

 

그러나 이 영화 속에서도 어린 청소년들에게서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살인마가 크게 다쳤을 때 진심어린 표정과 말로 걱정해주는 소년이 있었고

모스가 피를 흘리며 멕시코 국경다리에서 만난 불량배들 중 한 명이 맥주는

돈을 받지 말고 그냥 주라는 말에서 그래도 아직 이 지구에도 희망은

남아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추측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