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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자이푸르 - 아메르 성(암베르 성) : 황금빛 색감에 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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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기/인도

2019. 3. 21.





델리에서 시작하여 아그라와 파테푸르 시크리를 거쳐 네 번째 도시인 자이푸르에 저녁 늦게야 도착했습니다.

자이푸르는 라자스탄 주의 주도로 라자스탄 주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관광산업이 발달된 곳입니다.

그래서인지 자이푸르로 들어서자 번화가임을 쉽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생활환경이 다른 곳에 비해 좋아 보였습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식사를 마치고 자이푸르에서의 첫 일정인 아메르 성으로 가기 위해 로비에 모였습니다.

전날 저녁 7시쯤 호텔에 도착해 식사 후 대부분의 일행은 각자 방에 들어가 휴식을 취한 반면 몇몇 일행은

시내구경을 나가 피자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왔다고 합니다.

부러움에 우리도 그 나이 때는 그랬었지하며 애써 합리화해 봅니다.

 

 자! 이제 가이드의 안내로 호텔에서부터 5~6명씩 나누어 지프를 타고 자이푸르 시내에서 북쪽으로 11km 떨어져 있는

 아메르 성으로 이동합니다. 용맹한 전사들인 라지푸트족은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 주로 높은 언덕에 성을 세웠기에

 성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대형버스가 아닌 지프나 코끼리를 타고 올라가야 합니다.












좁은 공간에 서로 마주보고 끼어 앉아 작은 지프를 타고 가는 길에 운 좋게도  출근하는 코끼리들과 마주칩니다.

이토록 가까이에서 코끼리를 보게 되는 뜻밖의 즐거움에 친구는 코끼리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덕분에 저는 코끼리를 육안으로 생생히 보며 엄청난 크기에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패키지여행을 선택할 때 그리스 산토리니에서 조랑말을 타고 올라갔을 때의 기억 때문에

     코끼리를 타는 것은 피하는 상품을 선택했는데 대신 이렇게 코끼리와 동행하며 아메르 성으로 향하니

     여행의 즐거움이 더욱 커집니다.

 









여기에도 코카 콜라와 펩시 콜라의 간판이 많이 보이네요.

인도와 네팔에는 왜 이토록 두 콜라회사의 간판이 많은 것일까???






아메르 성 가까이 이르자 좁은 길에 지프 한 대만 통과할 수 있는 공간만 남기고 인도인들에게는 제법 추운 날씨일텐데  

바람막이도 없이 탁자 하나 놓고 입장료(?)를 받고 있습니다. 







어떤 간식들인지 알 수 없지만 참 예쁘게 진열해 놓고 팔고 있네요.

  







지프를 타고 힘 안들이고 높은 언덕 위에 오르니 눈 앞에 펼쳐진 경치가 더욱 시원하고 상쾌하게 느껴집니다.

흰색 차가 지나가니 얼핏 보면 검은 개가 흰색 차 위에 올라타 있는 듯 보이네요.









성문으로 들어가기 전 더 높은 언덕 위를 바라보면  메마른 돌산 위에 자이가르 성이 보입니다.

     전쟁 시 왕실 가족이 아메르 성보다 더 높은 곳에 위치한 자이가르 성으로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도록

     아메르 성과 자이가르 성은 비상지하통로로 연결되어 있다고 합니다


  





[자이가르 성]


1726년 자이 싱 2세 때 완공된 자이가르 성은 단 한 번도 적에게 점령당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서쪽 성문인 찬드 폴로 들어가려면 아그라 요새에서 본 것과 같이 뜨거운 기름을 부어 적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경사진 돌길을 올라가야 합니다.








성벽에는 적을 향해 활을 쏘던 구멍과 총을 쏘기 위한 서로 다른 모양의 구멍들이 있습니다.

올라오는 적을 향해 쏘아야 하기에 살짝 경사지게 구멍이 파여 있네요.

아래 작은 구멍은 뜨거운 기름을 붓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데 아그라 요새에서는 쉽게 이해 되었는데

이곳의 벽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기름을 부었을지 이해가 되지 않네요.








카츠와하 왕조의 힌두 왕 바하리말이 자신의 딸을 무굴제국의 악바르 황제와 결혼시키고 만 싱 왕은 악바르가

신임한 악바르 군대의 사령관이었기 때문인지 총알 구멍이나 화살 자국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아메르 성(영어로는 암베르 성)과 자이가르 성은 아라발리 구릉지의 칠 카 틸라(독수리 언덕) 위에 세워진 요새입니다.  

산 위에 지어졌기에 이곳의 돌들을 이용해 요새를 보다 수월하게 지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과거 오랫동안 카츠와하 왕조의 수도였고 지금은 유명 관광지이기 때문인지 아메르 성 아래 마을은 시크리 성 앞

마을과는 달리 계획도시처럼 건물들이 조화를 이루며 잘 정비된 느낌을 받습니다.








서쪽 성문인 찬드 폴(달의 문)로 들어갑니다.









      지프를 타고 온 관광객들은 과거 평민들의 출입문이었던 찬드 폴(Chand Pol)로 들어오게 됩니다.  

      찬드는 달의 신 찬드라를 가리키므로 '달의 문'이라고도 합니다.

흰 대리석의 멋진 표지석 설명에 의하면 이 문의 위층에는 팀파니와 다른 악기들이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철문이 열려있는 것을 보니 올라가 볼 수도 있는 것 같은데 패키지 여행이라 단독 행동은 할 수 없으니

재빨리 표지석만 찍어봅니다.









[위에서 내려다 본 동쪽 성문 수라즈 폴]




코끼리를 타고 오는 관광객들은 동쪽 성문인 수라즈 폴(Suraj Pol, 태양의 문)로 들어오게 됩니다.

해가 동쪽에서 뜨기 때문에 태양신 수리야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으로 왕과 왕실 가족의 출입문이었습니다. 

 






제가 찍은 사진에는 새들이 없는데 친구가 찍은 사진에는 새들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네요.

사람들이 없을 때를 기다려 사진을 찍는 저와 달리 사람들 모습을 사진에 담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의 성향을

새들도 알고 있나봅니다. 이렇게 친구와 즐겁게 사진을 찍고 있는데 혼자 자유여행을 온 관광객 한 분이

우리에게 다가와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합니다.

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이 별로 없는데 그분 덕분에 이곳에서 함께 기념사진도 찍었네요. 감사합니다!












아메르 성은 4층 구조로 각 층마다 넓은 안마당이 있는데

찬드 폴로 들어서면 첫 번째 안마당인 자렙 초크(Jaleb Chowk)가 있습니다.

군인들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면 전리품을 들고 퍼레이드를 하던 곳이었으며

마하라자가 불시에 자신의 개인 경호원들을 이곳에서 시찰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마하라자란 인도의 왕을 일컫는 말로 마하는 크다는 의미이니 우리나라 말로는 '대왕'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래서 아메르 성을 처음 지은 왕을 '라자 만 싱'이라고도 하고 '마하라자 만 싱'이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안마당에서 계단으로 올라가기 전 오른쪽 경사진 길로 들어가면 실라 데비(Shila Devi)’ 신전이 나옵니다.

우리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은 후 곧바로 계단을 올라 두 번째 안마당으로 갔기 때문에 보지 못했는데

실라 데비 신전의 은으로 장식된 화려한 이중문의 사진을 보니 이태리 피렌체에서 본 천국의 문과 매우 비슷합니다.

20여 년 전 첫 유럽여행 때 갖고 간 카메라가 망가져 사진을 단 한 장도 못 찍었기에

아쉽게도 천국의 문을 찍은 사진도 없네요.








싱 폴(Singh Pol, 사자의 문)을 통과해 두 번째 안마당으로 가기 위해 돌계단을 오릅니다.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임에도 검게 변해버린 곳들이 그대로 있습니다.

아마도 마하라자 만 싱이 천연 색소와 재료를 이용하여 이 성을 채색하였는데 이 채색기법을 아직까지도 밝혀내지 못해

복원이 어렵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은은한 밝은 색감만으로도 수백 년 전 당시의 고상한 건축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싱 폴(Singh Pol, 사자의 문)과 왕실 부엌(Rasoda, the Royal Kitchen)]


계단을 올라 사자의 문으로 나오면 두 번째 넓은 안마당이 있습니다.









두 번째 안마당 오른쪽에는 왕실 부엌이 있고, 가운데에 가네쉬 문이 있고, 왼쪽에 디완이 암이 있습니다.

오전 8시를 갓 넘긴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관광객들이 많지 않아 전체적 분위기를 온전히 느낄 수 있어 좋습니다.







[싱 폴(Singh Pol, 사자의 문)]




왕실 부엌(Rasoda, the Royal Kitchen)에는 음식재료들을 보관했던 것으로 보이는 창고들이 많이 있습니다. 

건물 오른쪽 창고 위에는 창문이 뚫려있지 않은데 왼쪽 창고 위에는 작은 창문이 뚫려있네요.

재료에 따른 보관방법이 다르기 때문이겠지요.

어느 건물이든 하나하나 살펴보면 생활의 지혜가 곳곳에 숨어있어 건물을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상식이 부족해 그냥 지나치는 것들이 너무 많아 좀 더 많은 것에 관심을 기울이며 살아야 겠습니다.






왕실 부엌에서 유명한 요리사들이 아메르 통치자와 그의 손님들을 위한 음식을 준비하였다고 쓰여 있습니다.









두 번째 안뜰에 들어서서 제일 먼저 제 눈을 사로잡은 건물은 가운데에 있는 가네쉬 문이지만 가이드가 먼저 디완이 암

앞에서 아메르 성에 관한 전반적인 설명을 하기에 잠시 눈길을 돌려 가이드의 설명에 귀를 기울입니다.









해가 산등성이 뒤로 모습을 드러내며 동쪽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사진 오른쪽 건물이 디완이 암입니다.

디완이 암 앞에서 아메르 성의 첫 번째 안뜰의 전체적 풍광을 바라보며 가이드로부터 설명을 듣는데

예습할 때 전혀 접하지 않았던 미나 사람들이라는 말을 처음 듣습니다.

아메르는 6세기부터 미나(Meena) 사람들이 최초로 거주해 온 마을이었는데 라지푸트족 카츠와하 왕국의 라자 카킬이

12세기 초 미나 사람들을 정복한 후 600년 동안 라지푸트족이 이곳을 지배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라지푸트족에 대한 인식이 안 좋다고 합니다.







디완이 암(Diwan-i-am)은 왕의 공식 접견실로 백성들의 고충과 요구를 들어주던 곳입니다.

다른 요새의 디완이 암과 달리 붉은 사암과 대리석의 40개 기둥들 가운데 바깥의 모든 기둥들은 두 줄로 되어 있습니다.

또한 아메르 성의 다른 건물들은 황금 빛을 띠고 있는데 디완이 암만 붉은 사암으로 지어졌습니다.

그런데 위층에 격자무늬 창이 있는 회랑(galleries)은 주변 건물과 같은 황금빛인 것으로 보아

무굴제국의 황제 자한기르(악바르 황제의 아들이자 아메르 성주 비하리 말의 외손자)가 방문했을 때

성의 호화로움을 감추기 위해 디완이 암의 장식을 회칠로 가렸다고 하는데 그때 이중으로 된 기둥 사이를 회칠하고

건물의 천연염료를 벗겨내 본래의 붉은 사암이 그대로 드러나도록 한 것은 아닌지 서툰 추측을 또 해봅니다.










디완이 암의 기둥머리마다 코끼리와 연꽃 따위로 아름답게 조각되어 있습니다.

처음 지었을 때 얼마나 화려했으면 자한기르의 시기심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그 화려함을 감춰야만 했을까요?

지금의 디완이 암의 모습만으로는 상상이 잘 안됩니다.









가이드의 설명이 끝나고 잠시 황금빛 건물의 색감에 감탄하며 성 전체를 조망해봅니다.







여행 후 복습을 하면서 예습할 때 미처 몰랐던 것들을 알아가는 재미도 있고 여행에서 느꼈던 삶의 교훈도

보다 깊이 오래 되새길 수 있기에 블로그를 활용해 사진과 이야기를 남기고 있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사진기술을 배워 사진에도 신경 쓰며 여행기를 남기고 싶다는 욕심이 처음으로 들기 시작합니다.

사진은 사진 전문가들이 찍은 멋진 사진을 보면 되지 하고 정확한 정보수집에만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었는데

아메르 성은 시시각각 변하는 전체적인 건물 색감도 신비롭고 건물 하나하나 독특한 매력이 있기에

좋은 사진기로 사진기술을 발휘하여 멋지게 찍어보고 싶다는 욕망을 샘솟게 합니다.









친구가 찍은 사진에는 또 저 멀리 새들이 날아오기 시작하더니 바로 가까이 머리 위로 날아가고 있네요.

 







한 여성이 망원렌즈가 있는 사진기로 사진을 찍고 있네요. 아메르 성은 사진 촬영솜씨가 좋은 분들에게는

더욱 매력적인 곳입니다. 지나친 화려함으로 사치스러움이 앞서 거부감이 드는 궁전과는 달리

제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본 외국의 궁전들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건축물입니다.

또한 사진 아래 첫 번째 안뜰의 사리를 입은 여성들의 앞에 있는 입구가 레스토랑 1135 AD의 입구인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안뜰에서 찍은 식당 안내판인데 빛의 세기에 따라 색감을 달리하는 성 자체도 인상 깊지만

태양과 사자 등 정교한 조각과 멋진 필기체로 쓰여있는 하얀 대리석 안내판 또한 아메르 성의 기품을

더 한층 돋보이게 해줍니다.








청소를 하는 여성분도 사리를 입고 있네요. 여행을 하는 이유에는 색다름을 보고 느끼기 위함도 있기에 일하는 데

불편할지 모르겠지만 사리를 입은 모습이 자신의 전통을 사랑하는 모습 같아 그저 좋아보이기만 합니다.







파키스탄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인도 북서부에 위치한 라자스탄 주는 인도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주입니다.

라자스탄은 용맹한 힌두교 전사 부족인 라지푸트족이 지배하고 있던 곳으로 라지푸트들의 땅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라자스탄은 광대한 타르사막이 있는 지역으로 무굴제국이 라자스탄에 거주하는 라지푸트족을 공격하기 시작했을 때  

산악지대나 사막과 같은 척박한 환경의 부족이 대체로 강인한 것처럼 라지푸트족은 무사계급인 크샤트리아 출신답게  

무굴제국의 공격에 거센 저항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라지푸트족의 소왕국 가운데 하나인 카츠와하 왕국의 힌두 왕 비하리 말(또는 바르 말)은 악바르의 아버지

 후마윤 황제 때부터 무굴제국에 협력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력이 아닌 혼인정책을 통해 라지푸트족을

 다스리고자 했던 악바르는 비하리 말에게 동맹관계를 제의했고, 비하리 말은 자신의 큰 딸(자한기르의 어머니)

 무굴제국의 황제 악바르와 결혼시킴으로써 자신의 왕국을 지켜냈습니다.

 또한 비하리 말은 입양한 손자 만 싱을 악바르의 군대에 보냈고

 그 후 만 싱은 악바르의 깊은 신임을 받아 군 최고사령관이 되었습니다.


 사령관 만 싱은 동족인 라지푸트족을 평정하는데 앞장섰고, 마침내 대부분의 라지푸트족은 악바르의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융합정책에 하나씩 굴복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치토르의 성주는 사령관 만 싱의 수 차례에 걸친

 투항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만 싱이 치토르를 공격하여 치토르 성 주민 수만 명과 군인들이 죽었습니다.

 그 결과 무굴제국의 악바르 황제는 영토를 넓혀 인도의 북서부지역을 실질적으로 차지하게 됩니다.










그 후 악바르 군대의 총사령관이었던 '만 싱'이 카츠와하 왕국의 왕위에 오른 후 1592년 붉은 사암과 흰 대리석을 이용해

힌두양식과 무굴[이슬람]양식을 혼합하여 현재의 모습인 아메르 성을 짓기 시작하였습니다.

150년 후인 1727년 사와이 자이 싱 2세가 물 부족으로 수도를 아메르에서 자이푸르로 옮기기 전까지 계속 건물을

추가하였습니다. 이렇듯 혼인동맹을 통해 라자스탄 일대에서 가장 큰 세력으로 성장한 카츠와하 왕조는 라자스탄 제일의

강국임을 과시하기 위해 웅장한 아메르 성을 건설하는데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 결과 그 당시 얼마나 화려하고 웅장함을 자랑했을지 지금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8시가 넘어가니 7시 30분 부터 일을 시작하는 코끼리들이 관광객들을 태우고 하나 둘 성문 안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수라즈 폴(태양의 문) 앞에 바퀴 달린 대포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자이가르 성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바퀴 달린 대포가 있다고 합니다.








보다 쉽고 안전하게 타고 내릴 수 있도록 코끼리의 등높이와 맞게 담이 쌓아 있네요.

과거 왕족들도 이곳에서 코끼리를 타고 내렸을지 아니면 코끼리를 꿇어앉히고 타고 내렸을지 궁금하네요.











코끼리의 근무시간은 오전 730분부터 오후 1230분까지이며 2인에 왕복 1100루피라고 합니다.

80마리의 코끼리가 하루 900명의 관광객을 실어 나를 수 있는데 코끼리에 대한 학대를 예방하기 위해

한 마리 당 하루에 실어 나를 수 있는 인원에 제한이 있다고 합니다.

코끼리 한 마리에 두 명이 탈 수 있으니 하루 최대 다섯 번 정도 오가는 것이겠네요.

그러면 아메르 성에 오르는데 20~30분 정도 걸린다 하니 하루 5시간 정도 일하는 것이 되는데

예전에는 기사를 포함하여 네 명을 태우고 하루 종일 일해야 했다니 얼마나 고통의 나날들이었을까요.

코끼리와의 빈번한 접촉사고로 인해 코끼리의 운행을 중단해 줄 것을 정부에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현지인들과 달리

2006년 외국인 관광객이 떨어져 사망한 사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옛 왕족들이 코끼리를 타고 이동하였기에

여행사는 옛 왕족들의 삶을 경험해본다는 상품으로서의 매력을 버리기도 어렵고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즐기는 관광객들의 호기심이 있는 한 코끼리는 계속 이곳에서 일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디완이 암 옆에는 멋진 아치형 기둥들로 이루어진 27 카케리스(kacheris)라는 아름다운 회랑이 있고

기둥 옆 오른쪽에 있는 작은 직사각형 문으로 들어가면 터키탕인 함맘(Hammam)이 있습니다.








“27 kacheris / offices”라고 쓰여 있어 자료를 찾아보려 했지만 이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습니다.

어쨌든 kacheri는 사무실(office)을 의미하므로 27개의 사무실로 사용된 건물이라는 것은 확실한데

무슨 사무실이었는지에 관해서는 정확한 정보가 없습니다.

다만 27명의 회계사들이 세입에 관한 백성들의 청원을 기록하고 왕에게 변론해주던 곳이라는 설명이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도 신문고가 있었지만 디완이 암과 같은 곳이 보여주기 식이 아닌 얼마나 제대로

그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였는가가 중요하겠지요.







여행 준비를 할 때 이미 알고 있을 정도로 암베르 성과 반드시 연관되어지는 유명한 곳인 마오타 호수와 3단으로 된

4분 정원이 이곳에서 내려다보인다고 하는데 아홉 개의 잎사귀 모양의 아치형 기둥들의 아름다운 선들과 화려한

가네쉬 문에 매료되어 미처 회랑의 끝에 서서 밖의 경치를 볼 생각을 못했네요.

다른 일행들이 밖을 내려다보는 것을 보면서도 걸음이 왜 그쪽으로 향하지 않았는지...

그런데 친구도 바로 아래에서 성으로 올라오는 코끼리를 찍느라 마오타 호수와 3단으로 구성된 4분 정원을 찍지 않았네요.

같은 공간에 있어도 보고 듣고 느끼고 좋아하는 것이 다 다르니 다름을 인정하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새삼 교훈을 일깨워줍니다.

    








디완이 암과 27개의 사무소에서 눈길을 돌려 이제 가네쉬 문(Ganesh)을 여러 각도에서 찍어봅니다.

가네쉬 문은 왕과 왕족들만 출입했던 문으로 많은 아름다운 문양의 프레스코가 건물의 우아함을 더해줍니다.

     2층과 3층 벌집 모양의 창문들 역시 안에서는 밖을 내다볼 수 있지만 밖에서는 안이 잘 보이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가네쉬 문 위층에 있는 대리석으로 된 세 개의 격자창(jalis)으로 왕실여자들이 밖을 내다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궁의 여인들이 내다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니 세력이 있는 여인들이 차지했겠지요.









건물 자체도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지만 모든 프레스코도 완벽하게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습니다.








건물 아래 기단에는 무슨 용도인지 아치형의 깊은 구멍이 있습니다.

일행 가운데 몇 분이 저 구멍 안에 책상다리[가부좌]를 하고 앉아 사진을 찍습니다.

그것을 본 친구는 좋은 생각이라며 자기도 찍어달라 합니다.

여러 장의 사진을 찍어주었는데 위의 화려한 프레스코 때문에 정말 멋지게 나왔습니다.

이곳을 방문하실 분들은 한번 시도해 보세요!









출입문 바로 위에 힌두교의 대표적 신 가네쉬(Ganesh)가 그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이 문을 가네쉬 문 또는 코끼리 문이라고도 합니다.

가네쉬는 파괴의 신 시바와 파르바티의 아들로 사람의 몸에 코끼리 얼굴을 가진 지혜와 행운의 신입니다.

또한 시작의 신이며 일상생활에서의 모든 장애물을 제거해주는 신’이기에 힌두교도들이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제일 먼저 찾는 신입니다. 매년 913일부터 23일까지 가네쉬 생일축제가 인도전역에서 열릴 정도로 힌두교 신들

가운데 가장 사랑받는 신입니다.









[가네쉬 폴 천장 문양]








가네쉬 문을 통과하면 디완이 카스와 쉬시 마할과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세 번째 뜰이 나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안뜰은 경비병들의 숙소와 왕실 부엌, 백성들의 청원을 듣기 위한 디완이 암이 있는

외궁이어서인지 정원이 없었는데 내궁이 시작되는 세 번째 뜰로 들어오니 아름다운 넓은 정원(Aram Bagh)

궁전 건물들 사이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수크 만디르 (디완이 카스)로 가기 위해 좁은 통로를 지나갑니다.

왼쪽으로는 후궁들의 거처로 보이는 작은 방들이 있고 오른쪽에는 벌집모양의 창들이 나있습니다.










수크 만디르(Sukh Mandir) 또는 디완이 카스(Diwan-i-Khas)정원을 사이에 두고 쉬시 마할(유리 궁전)과 마주보고

있습니다. 표지석 설명에 의하면 왕실 가족들이 여름의 한낮에는 더위를 피해 이곳에서 생활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앞은 탁 트여있는 크고 긴 직사각형의 하나의 방으로 되어있으며, 그 앞에는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대는

분수가 있는 정원을 내려다보며 더위를 식힐 수 있도록 넓은 대리석 베란다가 있습니다.

수크 만디르 오른쪽 유리문 안에 자세히 보이지는 않는 가마(?) 비슷한 것이 있는데 가이드가 이것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네요.

수크 만디르에서 유명한 것 중 하나가 백단향으로 만든 문이라고 하는데 안쪽에 있는 문인 것 같습니다.

백단향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나무로 인도가 원산지라고 합니다.

아래 사진은 수크 만디르 왼쪽에 있는 문인데 너무 훼손이 많이 되었네요.[위 사진 왼쪽에 보이는 문입니다.]






[수크 만디르의 문]









[아메르 성 수크 만디르의 냉방시설]



[아그라 성의 냉방시설]


또한 아그라 성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원리로 작동되는 냉방시설이 있습니다. 즉 좁고 긴 아치형 벽에 있는 촘촘한

작은 구멍을 통하여 조용히 물이 흘러내리도록 하여 그 물은 다시 대리석 바닥 유리 아래 깊이 파여 있는 수로를 통해

정원으로 흘러들어가고, 그 물을 받아 정원의 식물들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된 자연냉방장치입니다.

건조한 기후지역에서 물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잘 이용한 시설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화병모양의 파인 빈 공간이 많은데 분명 그 안에 화려하고 값진 장식들이 있었을 텐데 이곳도 영국식민지 시절

많은 피해를 입었던 것 같습니다.

 






[수크 만디르의 스테인드글라스]



[수크 만디르의 천장]







수크 만디르에서 나와 오른쪽 작은 문으로 들어가 네 번째 안마당으로 갑니다.







세 번째 안마당에서 성벽을 사이에 두고 네 번째 안마당인 만 싱 1세의 궁전 광장이 있습니다.









이곳은 파스텔톤의 연분홍색과 노란색의 담장에 꽃 무늬의 프레스코가 있습니다.

그런데모두 비슷한 꽃들로만 그려 있는데 무슨 꽃인지 궁금하네요. 분명 어떤 의미가 있을 텐데...








네 번째 안마당 한 가운데에는 시원한 공기가 순환될 수 있도록 사면이 기둥들로만 이루어진 정사각형의

바라다리(Baradari) 또는 파빌리온(Pavilion, 정자)이 있습니다.

힌디어로 Bara12, dar는 문을 의미하므로 바라다리는 각 면에 3개씩 총 12개의 문이 있는 건물을 말합니다.

이곳에서 무희나 음악가나 시인들이 통치자 앞에서 공연을 하였다고 합니다.








남쪽에 있는 만 싱 왕의 궁전(Palace of Raja Man Singh)은 아메르 성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25년에 걸쳐 건축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25년에 걸쳐 건축될만한 건물이 아닌 것 같은데 그토록 오래 걸린 이유가 궁금해지네요.










네 번째 안마당 주위에 있는 제나니 데오르히(the Zenani Deorhi, Ladies' Apartment)는 만 싱 왕의

12명의 왕비들과 그녀들의 어머니 그리고 후궁들이 살던 많은 방들이 있는 건물입니다.

각 방들은 거의 폐허처럼 방치되어 있지만 남아 있는 장식들로 미루어 상당히 화려했을 것 같습니다.

어떤 왕비가 왕의 부름을 받고 가는지 알 수 없도록 건물 안은 마치 미로처럼 되어 있습니다.

에서 내려다보면 각각 출입문이 따로 있고 각기 벽으로 막아놓아 옆에서 생활하는 다른 부인과의 사생활을

최대한 보장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여성들은 바깥세상을 구경할 수 없었으니 사방 담으로 둘러싸인 이곳에

갇힌 채 평생을 보내야 했을테니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이제 이 성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랐습니다. 

오른쪽에 반쯤 보이는 초록색 돔이 있는 건물은 가네쉬 문 3층인 수하그 만디르(Suhag Mandir)입니다.

하나의 커다란 방으로 된 수하그 만디르(Suhag Mandir)는 가네쉬 폴 건물 앞과 모양과 색이 비슷합니다.






[가네쉬 폴 앞쪽]


수하그 만디르의 문으로 들어가면 가네쉬 폴 앞쪽에서 보았던 세 개의 대리석 격자창(jalis)이 있는데

그 작은 사각형 창문을 통해 디완이 암이 있는 두 번째 뜰과 저 멀리 첫 번째 뜰까지 훤히 내려다보입니다.






따라서 내궁 밖으로는 나올 수 없었던 왕실여자들이 수하그 만디르의 창문으로 디완이 암에서 열리는

공식행사 뿐 아니라 첫 번째 뜰에서 열리는 군인들의 열병식도 내다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궁에서는 볼 수 없는 재미있는 곳이어서 일행 모두 두 명씩 작은 창문 앞에 쪼그리고 마주앉아

밖을 바라보며 마치 과거로 돌아간 듯 기념사진을 찍으며 즐거워 합니다.








위에 오르면 세 번째 뜰에 있는 정원이 내려다보이므로 위에서 정원(Aram Bagh) 전체를 조망하기에 좋습니다.

이슬람양식의 정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하학적인 조경을 볼 수 있는데 이 정원 또한 4분 정원으로 정확한 대칭을 이루고

있습니다. 하얀 대리석으로 된 기하학 문양의 보도와 연못 가운데 있는 옥좌(玉座)가 직선으로만 된 4분 정원과는 또 다른

우아함을 뽐내고 있습니다. 연못에는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대는 분수가 있는데 아쉽게도 우리에게는 보여주지 않고 있네요.

아마도 관광객이 많이 몰려드는 시간에 분수를 작동시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동물들이 보이기만 하면 사진을 찍는 친구는 어느새 원숭이를 포착했네요.











미로와 같은 좁은 통로를 지나고 또 지납니다.










카스 마할과 마주보고 있는 자이 만디르(Jai Mandir, 승리의 홀) 또는 쉬시 마할(Sheesh Mahal, 거울궁전)

왕비의 방으로 아메르 성에서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건물입니다. 
















쉬시 마할에서 뿐 아니라 아메르 성에서 눈여겨 봐야 할 것이 벽 밑부분 하얀 대리석에 새겨진 매직 플라워라고 합니다.

여행 가기 전에는 몰랐는데 외국인들은 매직 플라워를 꼭 봐야할 것으로 소개하고 있네요.

매직 플라워는 꽃 주위를 맴돌고 있는 두 마리의 나비와 7가지의 독특한 디자인(물고기 꼬리, 연꽃, 코끼리 코,

사자의 꼬리, 전갈, 옥수수속, 두건을 쓴 코브라)을 갖고 있는 꽃이라고 합니다.








당시 관습에서는 여성이 열린 공간에서 잠을 자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기에 왕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쉬시 마할의 천장과 벽면 전체를 작은 크기의 거울과 크리스털 유리들을 이용해 아름답게 장식함으로써

어두운 밤 촛불 두 개를 켜놓으면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효과를 내도록 한 것이라고 합니다.

낮에도 자연광이 반사되어 화려하고 정교한 모자이크의 반짝임에 매료당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메르 성 가장 높은 통로를 지나면서 찍은 창으로 궁 안의 여인들이 밖을 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으로

당시 여인들은 남성들에게 눈에 띄면 안 되었기 때문에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도록 약간 경사지게 구멍을 뚫어놓았습니다.








마치 미로처럼 가이드를 따라 좁은 통로를 이리저리 지나다보니 아주 좁은 개방형 화장실(Ltrines)이 있습니다.

중국 베이징 사합원에 갔을 때 판자로 된 매우 열악한 개방형 화장실을 사용해야 해서

동행했던 젊은 여성들이 기겁했던 적이 있었는데 비록 이곳은 현재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화장실은 아니지만

판자가 아닌 돌로 되어 있어 사합원의 공용 개방형 화장실보다는 좋아 보입니다.

유럽의 유명 궁전 가운데에는 화장실 자체가 없었던 곳도 있는데 그에 비해서는 그 당시 궁전 안에 화장실을

구비해 놓은 것은 상당히 선진화된 문명국이었음을 나타내고 있는 증거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표지석 설명에 의하면 쉬시 마할과 만 싱 궁전 사이에 있는 이 화장실(Latrines)은 아마도 왕과 왕실 가족이 사용하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 모두 공급되었으며 성 안에 이와 같은 화장실이 100개 쯤 있다고 합니다.







[터키 에페스의 수세식 화장실]


에페스의 고대 수세식 화장실에서 터키인 현지 가이드가 적나라한 포즈를 취해주어 일행이 크게 웃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나네요.









배수시설에 눈길이 잘 가는 제가 바닥에 있는 벌집 모양의 둥근 돌을 보자마자 지나가듯 혼잣말로 "하수시설인가?"라고

했더니 가이드가 그 말을 놓치지 않고 대부분 하수시설인 줄 아는데 물 저장소라고 설명해 줍니다.

아메르 성의 주요 물 공급원인 마오타 호수의 물을 끌어올려 성 안의 여러 물 저장 탱크에 보관한 후

성 안의 모든 사람들과 정원에 물을 공급했다고 합니다.

.








한 사람만이 겨우 지날 정도의 미로와 같은 좁은 통로를 돌고 돌아 기념품 가게를 지나 환한 빛을 받을 무렵

가이드가 왼쪽에 화장실이 있다며 다녀오라 합니다. 저는 화장실에 다녀오지 않아 화장실 시설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는데 아마도 관광객용 화장실은 이곳 하나뿐인 것 같습니다. [사진 오른쪽]


사진 속 엄청난 넓이의 커다란 솥으로는 몇 백 명의 식사를 만들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오드리 헵번 사진이 있어 재빨리 찍어봅니다. 아래 전시된 조형물 또한 멋진 작품이라 함께 찍어 봅니다.







[쌀을 담아두었던 돌항아리]





표지석의 설명에 의하면 터널(the Tunnel)은 중세시대 궁전이나 요새에서 아주 흔히 발견되는 것으로 은밀한 이동이나

비상탈출구로 사용되었습니다. 아메르 성의 터널은 자이가르 성 랑 마할(Rang Mahal) 가까운 지점까지는 지하통로로

연결되어 있고 그 다음부터는 지붕이 없이 겉으로 드러난 채 자이가르 성까지 이어져 있다고 합니다.

이 터널은 만 싱 궁전과 부인들의 거처인 제나니 데오르히와 디완이 카스로도 접근이 가능해 왕의 부름을 받은

부인이나 후궁이 남들의 눈에 띄지 않고 은밀히 왕에게 갈 수 있는 비밀통로로도 사용된 곳입니다.

이 터널에는 횃불이 계속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이 터널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 같은데 화장실 간 일행들이 나오자마자 이동할 텐데

혹여 피해를 줄까봐 표지석만 찍어봅니다.

 







출구쪽으로 가까이 가보니 트리폴리아 게이트(Tripolia gate, 세 개의 문)라는 표지석이 있습니다.

서쪽에서 궁전으로 통하는 문인데 세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합니다. 즉 첫 번째 안뜰인 잘렙 초크(Jaleb Chowk)

만 싱 궁전(the Man Singh Palace)제나니 데오르히(the Zenani Deorhi)어어진다고 하니,

이 통로도 위의 터널처럼 왕의 부름을 받은 왕비나 후궁들이 은밀히 오가던 비밀통로였던 것 같습니다.







이제 성문 밖으로 나갑니다.









인상 깊은 아메르 성에서 나와 주차장으로 내려가는데 아침 일찍 도착했던 탓인지 성으로 들어갈 때는 보지 못했던

거리 상인들이 꽤 많이 서있습니다. 다른 관광지와 달리 이곳의 상인들은 어린 아이들이 아닌 건장한 남성들이 많습니다.

이곳에서 파는 상품들은 주로 티베트 불교에서 명상할 때 사용하는 싱잉볼(singing bowl, 노래하는 그릇)인데

사실 인도에 가기 전에 이 싱잉볼을 사오려고 마음 먹었는데 여러 명의 일행과 함께 움직여야 하는 패키지이기도 하고

싱잉볼은 재료가 중요하기 때문에 눈길을 피하며 앞으로만 전진합니다.

그러나 건장한 남성이 끈질기게 사 줄것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어린 아이들이 사달라고 요구하는 것과 달리

굵은 목소리로 건장한 남성이 이런 저런 물건을 내밀면서 살 것을 고집하니 마치 강요처럼 느껴집니다.

이것도 편견이고 그 사람은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고 있는 것인데 잠시 제가 평정심을 잃고

"필요없다고 여러 번 말했잖아요"라고 천천히 분명하고 강하게 얘기합니다.

이것도 이 나라의 하나의 생활상이고 이런 다름을 경험하며 자신을 되돌아 보기 위해 여행을 하는 것인데

목소리가 약간 높아진 것에 금세 반성합니다.













자이푸르로 돌아가는 길에 아메르 성의 외부 모습을 친구가 열심히 찍었네요.

오른쪽 아래 약간의 물이 보이는데 이곳이 마오타 호수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진에서 본 것과는 달리 호수물이 말라 바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호수를 보니 카츠와하 왕국(1037-1727) 물 부족과 인구증가로 인해 수도를 아메르에서 자이푸르로

옮길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근 언덕에서 흘러드는 빗물을 모아 아메르 성과 일반 백성들에게 물을 공급해 주었던 호수였다는데

인도가 지금도 오랜 가뭄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현실을 지금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서히 자이가르 성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자이가르 성]


아메르 성과 자이가르 성은 터널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의 유적군으로 여겨지며 언덕을 빙둘러 엄청난 길이의

성벽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패키지 방문지에 여름 궁전이라 불리는 이곳은 빠져있어 포기하고 있었는데 가이드가 이곳에 잠시 정차하더니  

내려서 기념사진을 찍으라고 합니다. 자이푸르 호텔에서 아메르 성으로 올 때 보지 못했는데 다행히 아메르 성에서

자이푸르 하와마할로 가는 길에 이 호수가 있었네요. 지나가면서 흘끗 보는 것이 아닌 버스에서 내려 기념사진을

찍을 여유까지 주는 가이드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차에서 내리니 탁 트인 공간이 기분을 상쾌하게 해줍니다.







아메르와 자이푸르 사이에 위치한 만 사가르(Man sagar) 호수 한 가운데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궁전은

잘 마할(Jal Mahal)로 원래 5층 건물인데 3층까지 물에 잠겨있어 현재는 그곳까지 갈 수는 없다고 합니다.

잘 마할은 왕의 가족들이 무더위를 피해 여름에 거주했던 곳이기에 여름궁전이라고도 불립니다.

이 호수는 철새도래지로도 매우 유명한데 180여 종의 많은 새들을 관찰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아쉽게도 스모그 때문에 잘 마할뿐 아니라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나하가르 성이 있는 아라발리 언덕과 함께

전체적 풍광을 선명하게 감상할 수는 없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신비한 느낌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