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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각산 승가사 - 사모바위 - 청수동암문 - 문수봉 - 대남문 - 문수사 - 구기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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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국내여행기

2019. 4. 26.




아주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함께 오르던 삼각산 문수사였기에 평소에 많이 걸으며 체력을 키우지 않았다 하더라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는데 아니 이게 어찌 된 일! 승가사에서 대남문을 거쳐 문수사로 가는 길은 바위 바위 바위 뿐이다.

급경사가 많고 평지는 거의 없다. 등산객들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흙을 밟고 싶은데 돌길뿐이다.

절에 가는 것 이외에는 산에 오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것은 완전 등산이다.

바위를 잡고 오르내리느라 손바닥이 아프다.

예전에 아버지와 오르던 길로 가면 힘들지 않은데 왜 이 길로 가자 했냐고 오빠에게 나는 투덜댄다.












승가사에서 출발해 얼마 걷지 않았는데도 숨이 차고 무릎이 아프기 시작한다.

겨우 겨우 발을 옮겨 옮겨 가며 오르고 오르니 독특한 모양의 커다란 바위가 나타난다.

사모바위라는 표지판 때문에 누군가를 사모하는 바위라 생각해서 가운데 큰 돌이 얼굴이고

오른쪽 돌이 어깨를 나타내나 추측했는데 사모 관대의 사모 즉 모자를 닮았다 해서 사모바위라 이름 붙였다 한다.

물론 모자바위라 쓰여 있었어도 나는 어머니와 아들 바위라 생각했을 것이다.

사진으로 보니 사모바위와 오른쪽 삼각형 모양의 바위 사이에 끼여 있는 바위의 모양이 도마뱀이나 거북머리 같다.







겨우 해발 560m 밖에 안 되는데도 나는 헉헉 거리고 발은 안 떨어지고 땀은 나 겉옷은 벗어 가방에 넣은 지 오래다.

그런데 대남문까지 아직도 1.7km나 더 가야 하다니...

대체 누가 승가사에서 대남문까지 오르는데 40분 밖에 안 걸린다고 했단 말인가!!!







어쨌든 전진하는 수 밖에는 방법이 없으니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다리를 이끌고 사모바위에서 대남문 쪽으로 향하니

서울시내가 한 눈에 들어올 정도로 탁 트인 풍광이 펼쳐진다.

오빠는 멋진 풍광에 취해 굳이 설악산을 찾을 필요가 없겠다며 한껏 들떠 휴대폰에 눈 앞의 전경을 담기에 바쁘다.

힘이 들어 주저앉고 싶지만 놓칠 수 없는 자연의 선물에 나도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사진에 담는다.

왼쪽 저 멀리 높이 솟아 있는 롯데월드타워가 희미하게 보이고, 가운데 오른쪽으로 남산의 서울타워가 보인다.

그러나 예전과 달리 수많은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 자연경관을 해치니 아쉽다.

이토록 아파트와 주택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있는데도 무주택자들이 많고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는지

알 수가 없다.









저 멀리 오른쪽으로 보이는 네모바위가 사모바위이고 가운데 우똑 솟아 있는 큰 바위들의 집합체가 비봉인 것 같다.

그렇다면 저 산능선을 비봉능선이라고 하는 것인가???







승가봉을 지나 문수봉으로 가는 관문이라고 한다.

문득 관악산 연주암 경내로 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지나야만 하는 조금은 겁이 났던 바위틈 길이 생각난다.








삼각산의 여러 봉우리들을 보니 수많은 꽃과 식물들을 볼 때마다 이름을 몰라 미안하기만 한데

봉우리 이름 또한 하나도 모르니 오랜 세월의 모진 풍파를 다 겪으며 견뎌 온 자연의 숭고함을

무의미하게 여기는 것 같아 미안해진다. 문득 김춘수의 시 '꽃'이 떠오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중략]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산을 오르며 처음 등산객과 마주쳤다. 등산배낭에 장갑까지 끼고 오르고 있다.

이곳은 완전무장한 등산객만 다니는 길인가 보다.

경사진 바위를 겨우 기어올라가니 마지막에 아주 비좁은 바위틈이 있다.

등산화도 신지 않은 오빠는 쉽게 올라가는데 나는 또 쩔쩔매기 시작한다.

무게 중심이 뒤에 있으면 위험할 것 같아 가방을 벗어 옆에 올려놓고 바위틈으로 올라가려 해보지만

가방은 자꾸만 미끄러져 내려오고 또 내려온다. 그러나 마침내 가까스로 올라가는데 성공!











힘들게 바위틈 사이에서 실랑이하며 겨우 올라왔더니 이제는 다시 쇠줄을 잡고 내려가야 하는 급경사가 나온다.

오른쪽에는 추락주의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다.

쇠줄을 붙들고 조심 조심 내려가는데 마지막에 급경사의 난관에 봉착한다.

가방을 아래로 던져놓고 내려가려 하니 너무 높아 가방 안에 있는 휴대폰이 깨질까 염려되어 던지지도 못하고

어떻게 내려가야 할 지 난감해 하고 있으니 등산복을 완벽하게 갖춰 입은 날렵한 몸매의 중년 여성이

가방을 아래까지 대신 가져다 주겠다고 한다.

나는 나의 관점에서 내 가방으로 인해 그분이 위험할 것 같아 괜찮다고 하니 굳이 달라고 한다.

할 수 없이 미안한 마음으로 건네주니 날다람쥐처럼 쉽게 내려간다.

간신히 엉금엉금 내려가니 오빠는 엄마 병간호 하느라 몸이 완전히 망가졌나 보다고 빨리 운동을 시작하라고 한다.









내가 한 발 한 발 옮기는 것도 힘들어하며 산을 오르는 덕분에 오빠는 여유 있게 유유히 꽃에 취하고

산능선에 취해 가며 풍경 하나 하나 놓치지 않고 휴대폰에 담으며 산행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청수동암문을 오르는 길은 급경사지만 수많은 나무계단이 놓여져 있어 위험하진 않다.

하지만 지친 다리를 이끌고 수많은 계단을 오르는 것 또한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사실 문수봉을 오르는 갈림길에서 청수동암문으로 가다보니 저 멀리 위로 성벽문이 보여 대남문인 줄 알고

이제 다 왔구나 하는 기쁨에 어영차! 마지막 힘을 짜내며 계단의 끝에 다다랐으나 그것은 착각이었을 뿐!








대남문이 아니라 청수암문이란다. 아, 얼마나 더 가야 된단 말인가!







대남문까지 아직도 0.3km를 더 가야 한단다.







겨우 겨우 문수봉 앞까지 왔다. 문수봉으로 오르는 갈림길에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는데

오른쪽을 가리키는 표지판은 문수봉을 바로 타는 바위능선(암릉) 길로 위험구간임을 알리기 위해  

'문수봉 어려운 길 0.4km'라고 쓰여 있고, 왼쪽을 가리키는 표지판은 '문수봉 쉼터 0.4km'라고 쓰여 있었다.

그 갈림길에서 우리는 나 때문에 어려운 길을 피해 청수동 암문을 거쳐 문수봉을 오르는 길로 왔는데

문수봉 앞에서 어려운 길을 택해 올라 온 젊은 남녀를 만났다. 내가 그 길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물으니

여성은 쇠줄이 다 설치되어 있어 그렇게 위험하지 않다 하고,  

남성은 한 사람만 겨우 다닐 수 있고 바로 옆은 낭떠러지여서 무서웠다고 한다.

문수사에 도착해 공양주보살의 말을 들으니 그 길은 매우 위험한데 다리 짧은 사람은 디딤돌까지 발이 닿지 않아

더욱 위험하다고 한다. 그래서 초보자는 절대 접근 금지!!!

20대 때 백운대를 쇠줄을 잡고 바들 바들 떨며 조심 조심 천천히 발을 떼며 올라가는데 

바로 뒤에 오던 어느 20대 초반의 여성이 빨리 올라가지 않는다고 내게 짜증을 내

그 다음부터는 조금이라도 위험한 바위산은 안 오르는데 만약 문수봉을 오르는 갈림길에서

어려운 길을 택했다면 나는 도중에 돌아서서 다시 우회길로 올라와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문수사나 대남문으로 가는 방향 표지판이 없다. 오빠의 방향감각을 믿고 발길을 옮긴다.

 







한 등산객이 꿀맛의 점심식사를 하나보다.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았던 성벽이 휴식처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보니 평화로워 보여 좋다.







드디어 대남문이 보인다.








대남문을 지나니 문수사 안내판이 보인다. 이승만 전대통령을 그의 어머니가 문수사에서 기도로 얻었다는 것은

문수사에 걸려있는 스님들과 함께 찍은 이승만 전대통령의 기념사진을 보고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암행어사 박문수도 그의 아버지가 문수사에서 기도를 하여 얻은 인물이라는 것은 미처 몰랐다.








드디어 문수사에 도착했다. 나로 인해 거의 세 시간 가까이 걸려 문수사에 도착했기에 공양시간을 넘겨 버렸다.

그래서 오빠가 먼저 공양시간 안에 문수사에 도착해 사정을 말씀드리고 점심공양을 할 수 있도록 했기에

공양주보살에게 미안한 마음을 안고 공양을 마친 후 커피도 마시며 잠시 아픈 다리를 달랠 수 있었다.







부처님오신날 준비로 연등과 팔각등을 주지스님이 직접 달고 계셨다.








영험하기로 유명한 기도처인 문수동굴은 예전의 자연 그대로의 천연동굴 모습이 아니라 

입구에 인위적인 건축물을 조성해 놓았다. 습기가 많이 차 관리가 어려워서 였을까?

내부도 바위동굴이라는 것을 알 수 없도록 깔끔하게 현대식으로 탈바꿈 시켜놓았다.

예전에는 그야말로 천연동굴이었는데 지금은 법당의 느낌이 강하다.

몇 십 년 만에 올라와 보니 이곳 저곳 많이 변해 있다.
그러나 부모님과의 추억이 깃든 문수사의 이곳 저곳을 둘러보니 마치 고향에 온 듯 편안하고

부모님과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문수사는 동쪽으로는 보현봉이




서쪽으로는 비봉이 절을 감싸고 있다.

 





문수사에서 나와 부모님과 오르내리던 구기계곡 방향으로 내려온다.

한참을 내려오니 거북 모양처럼 보이는 커다란 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구기계곡으로 내려오며 6살 때였나 아주 어린 시절 모래로 매우 미끄럽던 이 길을

아버지 손을 꼭 잡고 달려내려오던 추억에 젖는다.

한 고개를 넘으면 또 한 고개가 나오고 한 고개를 넘으면 또 한 고개가 나오던 그때의 추억.

산을 한참을 올라 깔딱고개를 넘으면 양옆으로 쌓아있는 작은 돌탑들이 있었는데 보이지 않아 아쉽다.

작은 돌을 찾아 조심스레 올려놓는 것이 하나의 재미였는데 지금은 누군가가 다 치워버렸는지 아쉽다.







내려올 때도 아직 다리에 힘이 없어 거북이 걸음으로 내려오다 잠시 쉬며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봄을 알리는 꽃들을 담아본다.







비록 오빠의 잘못된 정보로 힘들게 힘들게 문수사를 다녀왔지만 몇 십 년만에 문수사에 들러 구기계곡으로 내려오니  

부모님을 그 어느 때보다 가까이 느낄 수 있어 좋았고 멋진 풍광까지도 덤으로 선물 받았으니 더없이 행복하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보니 엄지발톱들이 검게 변해있고 엄지발가락은 벌겋게 부어 아프다.

다음에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녀올 수 있도록 게으름에서 벗어나 평소에 많이 걸으며 체력을 키워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