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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사르나트 유적 발굴지(Sarnath Excavated 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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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기/인도

2019. 5. 28.

 

 

 

사르나트는 바라나시에서 10km 이상 떨어져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부처님께서 6년의 고행 끝에 부다가야 보리수(pipphala, 삡팔라)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으신 후 한때 고행을 함께 했던 다섯 명의 수행자들에게 자신이 깨친 깨달음의 내용을 가장 먼저 전하기 위해 부다가야에서 250km(현대에 만들어진 최단 거리로 2560여 년 전 부처님 당시와는 다름)나 떨어진 이곳 사르나트로 홀로 걸어오셨습니다.

따라서 이곳 사르나트는 부처님께서 최초로 설법 즉 처음으로 법의 바퀴를 굴리신 초전법륜지이며, 다섯 수행자들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모두 최초의 제자들이 되었기에 불(부처님) · 법(부처님의 가르침) · 승(승려), 삼보(三寶)가 처음으로 이루어지게 된 곳으로 불교신자라면 반드시 방문하고 싶은 성지입니다.

 

 부처님 4대 성지 :

부처님이 태어나신 네팔의 룸비니 (탄생지) 

깨달음을 얻으신 인도의 부다가야 (성도지) 

최초로 설법하신 인도의 사르나트 (초전법륜지)

열반에 드신 인도의 쿠시나가라 (열반지)

 

 

 

 

 

 

 

 

사르나트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들과 참배객들이 찾는 이곳은 사르나트 유적 발굴지 (Sarnath Excavated Site, 고적공원)입니다. 비록 현재는 폐허처럼 보이지만 마우리아왕조(B.C. 370-B.C. 180)와 굽타왕조시대(320-550)에는 1500여명의 스님들이 이곳에 머물며 공부하던 곳이었으며 수많은 불탑과 승방들이 있었던 곳입니다. 불교경전에도 “부처님께서 바라나시 선인들이 머무는 사슴동산(녹야원(鹿野園))에 계셨다.”라는 문장이 상당히 많이 나오는 곳으로 불교에서는 매우 중요한 성지입니다. 건축물들이 거의 파괴되어 기단만이 남아있지만 마우리아왕조시대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시대에 해당하는 시대인 것을 감안한다면 유적이 발굴되어 이나마 보존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됩니다.

 

 

 

 

 

이렇듯 불교가 당시 인도에서 번성하고 아시아 여러 나라로까지 전파될 수 있었던 것은 인도 마우리아(Mauryan) 왕조의 아소카 대왕 때문이었습니다. 아소카 대왕은 기원 전 3세기 인도 남부를 제외한 인도 전역을 최초로 통일한 왕으로 마가다왕국 마우리아왕조의 전성기를 이끈 제 3대 왕입니다. 그는 왕위에 오르기 위해 그리고 왕위에 오른 후 학살 및 숱한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쟁으로 인한 잔혹성과 비참함에 대해 크게 깨닫고 깊이 참회하며 불교에 귀의한 후 불교를 국가통치이념으로 삼고, 인접국가에까지 불교를 전파하며 소승불교의 터전을 닦은 성군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인도 전역에 수 천 개의 사원이 세워졌고 이곳에도 많은 탑과 승방과 석주(石柱, 돌기둥)가 세워졌으나 굽타왕조 이후 8세기 중반 힌두교의 번성과 함께 불교가 쇠퇴하였고, 12세기 이슬람이 북인도를 침입하면서 거의 파괴되어 지금 우리가 보듯 흔적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거의 파괴된 상태의 승당(僧堂)과 탑들만이 남아 있는 다소 황량해 보이는 무채색 유적지에 산뜻한 색감의 승복을 입으신 미얀마 비구니 스님[수행자]들을 보니 저절로 기분이 맑아지는 것만 같습니다.

 

 

 

 

 

 

 

 

 

 

[왼쪽 : 다메크 스투파    오른쪽 : 자이나교 사원]

 

 

 

 

 

 

 

 

[아소카 석주  (ASHOKAN PILLAR ) ]

 

아소카 대왕은 불교에 귀의한 후 불교성지를 비롯하여 수많은 곳에 석주((石柱, 돌기둥)를 세웠습니다. 석주는 인도 전역 뿐 아니라 지금의 파키스탄, 네팔 등에서 지금까지 60여개가 발견되었으며 계속 발굴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석주가 바로 사르나트의 아소카 석주입니다. 아소카 대왕이 사르나트가 부처님께서 처음으로 설법하셨던 초전법륜지임을 표시하기 위해 이곳에 석주를 세웠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소카 석주 위에 있던 네 마리의 사자상 때문에 더욱 유명합니다. 지금은 사르나트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이 사자상은 예술적 가치가 매우 높은 아름다운 조각상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소카 대왕은 인도 역사상 최고의 성군으로 추앙받고 있는 왕이며, 인도를 최초로 통일한 왕으로 이슬람의 무굴제국이 등장하기 전까지 광대한 영토를 지배했던 거대제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강력한 왕이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증명해 주는 것이 바로 아소카 석주에 새겨진 비문들(아소카 칙령)입니다. 따라서 1950년에 제정된 인도의 국가 문장(紋章)과 인도 루피의 문양으로 아소카석주의 사자상이 채택될 정도로 이 돌기둥들에 새겨진 비문은 매우 중요한 역사적 자료이며, 서로 등을 맞대고 있는 네 마리의 사자상은 예술적으로도 매우 뛰어난 작품입니다. 또한 인도국기에 있는 24개의 바퀴살을 가진 수레바퀴모양의 파란색 문장(紋章) 또한 아소카 사자상의 받침대에 조각되어 있는 법륜(法輪, 법의 바퀴, 부처의 가르침)입니다. 24개의 바퀴살은 24시간과 24절기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아소카 칙령의 내용에는 동물보호 및 학대금지, 타종교에 대한 존중, 비폭력 등 생명존중과 화합의 정신 담겨있다고 합니다. 즉 아소카 대왕은 통치의 잔혹성에 대한 통렬한 참회를 통하여 불교로 개종하였지만 자신의 종교만을 고집하지 않고 모든 종교를 평등하게 보호하였으며 백성들에게도 다른 종교를 배타적으로 대하지 말 것을 가르쳤던 것입니다. 수많은 종교가 존재하고 있는 인도에서는 매우 중요한 가르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소카 석주에 새겨진 칙령]

인도의 국가문장과 국기 그리고 인도 루피에 아소카 석주위의 사자상 또는 법륜이 새겨질 수 있었던 것은 인도가 강력한 힘을 가진 독립된 나라임을 상징하는 것뿐만 아니라 아소카 대왕이 인도 역사에서 성군으로 추앙받는 왕이기 때문입니다.

 

 

 

 

 

 

 

 

[메인 사원 터]

 

 

 

 

[다메크 스투파 (Dhamekh Stupa)]

 

Dhamekh는 ‘진리를 (마음으로) 관하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부처님께서 다섯 수행자에게 최초로 설법하신 장소를 기념하여 마우리아왕조의 아소카 대왕이 세운 이 거대한 탑은 굽타왕조시대(320-550)에 증축되었습니다. 따라서 하단은 마우리아양식이고 상단은 굽타양식(간다라미술+인도 고유양식)으로 지어졌습니다.

☆ 스투파(stupa) : 부처님 사리를 모셔두었던 반원형 무덤 건축물인 사리탑.

파고다(pagoda), 탑파(塔婆) 또는 탑은 산스크리트어인 스투파에서 유래된 단어들

 

 

 

 

 

 

이 탑에는 벽을 깊이 파 불상을 모시는 작은 공간인 감실(龕室, niche)이 8개가 있는데 그 안에 모셔졌던 불상들은 없어져 지금은 볼 수 없습니다. 감실이 8개인 이유는 불교의 가르침인 8정도(正道)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시계방향으로 돌며 탑돌이 하는 참배객들과 스님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다르마라지카 스투파 (Dharmarajika Stupa)]

 

다르마라지카 스투파(Dharmarajika Stupa)는 아소카 대왕에 의해 기원전 3세기에 세워진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1794년 바라나시를 지배하던 마하라자(왕)가 자신의 왕궁의 건축자재로 이 스투파의 벽돌들을 사용하기 위해 파괴해버려 지금은 기단만이 남아있을 뿐 당시의 웅장한 스투파의 모습을 상상하기는 힘듭니다. 그때 이 스투파 안에 모셔졌던 녹색 대리석의 사리함이 발견되었는데 그 안에 있던 돌로 된 작은 상자는 현재 인도의 콜카타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지만 초록색 대리석의 사리함과 사리는 강가(갠지스) 강물에 버렸다고 합니다.

☆ 사리(舍利) : 부처님이나 승려 등 성자를 화장한 뒤 나오는 구슬모양의 작은 결정체.

 

 

 

 

 

 

 

 

 

사슴동산 : 

사르나트는 산스크리트어로 ‘사슴의 왕’을 뜻하는 사란가나타(Saranganatha)가 줄어든 말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한자로는 녹야원(鹿野園) 즉 사슴동산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지금도 사슴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우리는 사슴이 있는 곳까지 가지 않아 보지는 못했습니다.

사르나트가 사슴동산으로 불리게 된 전설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르나트의 숲속에는 각각 500마리의 사슴들을 거느리고 있는 데바와 보살 두 사슴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라나시를 통치하던 왕은 사슴사냥을 무척이나 즐겨 사슴들이 거의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사슴무리의 왕이 바라나시의 왕을 찾아가 하루에 한 마리씩 순서를 정해 사슴을 바칠 테니 사슴사냥을 중지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바라나시 왕이 이를 수락하여 하루에 한 마리씩 사슴을 바치던 중 새끼를 밴 어미사슴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이 어미사슴은 자기들의 왕인 데바에게 찾아가 자신의 순서를 새끼를 낳은 후로 늦춰 줄 것을 간청했으나 데바 왕은 거절했습니다. 어미사슴은 다시 다른 무리의 왕인 보살 왕을 찾아가 간청을 하니 자식을 아끼는 모성애에 감복한 보살 왕은 그 청을 받아들여 대신 자신이 스스로 바라나시 왕에게 갔습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바라나시 왕이 연유를 물으니 보살 왕은 사정을 말하고 자신이 대신 죽으러 왔노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바라나시 왕은 사슴 왕의 자비심에 크게 감동하여 그 후 어느 누구도 사슴을 사냥하지 못하도록 명령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사르나트에는 사슴들이 마음대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사슴무리의 왕인 보살 왕의 이야기가 바로 부처님의 전생담입니다.

 

사슴동산 뒤로는 최근에 조성한 한국절도 있다고 합니다.

 

 

 

 

사르나트 고고학 박물관

금요일 휴관, 카메라와 휴대폰 반입금지

사르나트유적지를 구경한 후 정문을 나와 정문입구 오른편에 있는 단층 건물로 향합니다. 이곳은 20세기 초 영국의 학자들에 의해 사르나트유적지에서 발굴된 수많은 불교유물들(B.C. 3세기~A.D. 2세기)을 보존 전시하기 위해 1904년에 설립된 고고학 박물관입니다. 박물관에 들어서자 아소카 석주 위에 놓여있던 네 마리 멋진 사자상이 있습니다. 생각보다 상당히 커서 놀라고 섬세한 조각의 아름다움에 또 한 번 놀랍니다. 사자상의 받침대에는 법륜 사이에 코끼리, 소, 말, 사자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박물관의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아소카 사자상을 비롯하여 8대 성지로 나누어 부처님의 생애를 조각한 팔상도와 초전법륜상(5세기), 덮개 파라솔 등 눈여겨 볼만한 훌륭한 유물들이 전시되어있습니다.

때마침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관람하는 학생단체가 있었는데 초전법륜상 앞에서 길고 자세한 가이드의 설명을 진지하고 열심히 듣는 모습이 참 예뻐 보였습니다. 그런데 앞의 가이드의 설명이 끝날 때까지 우리의 가이드가 차례를 기다리는데 좀처럼 설명이 끝나지 않습니다. 초전법륜상은 전법륜인을 맺고 결가부좌를 하신 채 다섯 비구에게 설법을 하시는 부처님의 모습을 조각한 것으로 굽타왕조시대(473년경으로 추정)의 불상 가운데 최고의 걸작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 전법륜인(설법인) : 왼손과 오른손의 엄지와 검지의 끝을 맞대고 나머지 손가락들은 편 모양

 

 

 

 

 

[차우칸디 스투파(Chaukhandi Stupa, 迎佛塔)]

 

사르나트 유적지와 사르나트 고고학 박물관을 구경한 후 전용버스를 타고 바라나시로 향하던 중 독특한 모양의 건축물이 보여 재빠르게 사진을 찍어봅니다. 이것은 부처님께서 보드가야에서 사르나트로 오셔서 다섯 명의 수행자를 다시 만난 곳임을 기념하기 위해 4세기~6세기 굽타왕조 때 세운 탑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후 북인도를 침입하여 무굴제국을 세운 이슬람왕조의 악바르 황제가 부왕 후마윤의 방문을 기리기 위해 1588년 스투파 위에 8각 기둥형태의 이슬람사원을 세워 지금과 같은 모양이 된 것이라고 합니다.

 

 

 

 

 

사진에서 알 수 있듯 계단을 따라 탑 위에 오를 수 있는데 그 위에 오르면 사르나트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