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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한 파묵 [내 이름은 빨강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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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함께하는 산책/외국서적

2020. 12. 7.

 

 

 내 이름은 빨강 1, 2  

지은이 오르한 파묵 / 옮긴이 이난아 / 펴낸곳 ㈜민음사

 

 

‘내 이름은 빨강’은 2006년 터키 작가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오르한 파묵의 장편 역사추리소설이다. 터키 세밀화의 황금기인 오스만 제국의 세밀화가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궁정화가로서의 자긍심과 질투, 동·서양 화법에 대한 갈등, 그로인해 벌어지는 살인사건 및 남녀 간의 애정을 다룬 소설이다. 이 소설은 프랑스 ‘최우수 외국 문학상’(2002), 이탈리아 ‘그린차네 카보우르 상’(2003), 인터내셔널 임팩 더블린 문학상(2003)을 수상할 정도로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작품이다.

 

두 권의 책(1권 363쪽, 2권 359쪽)으로 구성된 적지 않은 양의 소설로, 오스만 회화사에 관한 역사적 지식이 무지한 탓인지 1권은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으나 1권을 바탕으로 하여 2권은 보다 수월하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살인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추리소설이라고 하지만 주제는 ‘원근법을 사용하는 서양화가들의 인간 중심적 세계관과 투시법을 이용하여 세밀화를 그려내는 오스만 제국 화가들의 신 중심적 세계관의 충돌’이라 할 수 있다. 오래전 터키 이스탄불(‘이슬람인들이 많이 산다’는 뜻)에 갔을 때 보스포루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아시아지구와 유럽지구로 나뉘어 공존하고 있는 이스탄불의 독특한 지리적 특성을 직접 보았을 때 묘한 기분이 들었었다. 이렇듯 동서양의 이질적 문화의 대립과 충돌, 종교 간의 갈등을 보다 직접적으로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이스탄불에서 성장한 작가이기에 이러한 소재의 소설이 탄생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보스포루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저 멀리 보이는 아시아지구와 유럽지구로 나뉘어 있다]

 

이 소설의 배경은 오스만 제국의 전성기인 16세기 중엽을 막 지나 변화의 물결이 찾아들기 시작하는 16세기 말 오스만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현 터키의 수도는 앙카라)이다. 소설 속 등장인물은 가공인물뿐 아니라 이슬람 세밀화의 대가인 비흐자드와 화원장 오스만과 술탄(오스만 왕조의 지배자) 등 실존인물들도 등장한다. 오스만은 궁정 화원장 나카쉬 오스만이며, 술탄은 오스만 제국의 12대 술탄 무라트 3세(1546~1595, 재위 1574~1595)이다. 이 소설에서 언급하고 있는 ‘화원들이 제작한 <축제의 서>의 할례 의식 장면을 그린 100점의 그림’은 실제로 화원장 오스만의 지휘아래 16세기 말에 제작된 ‘인티자미의 <축제의 서>’를 가리킨다. 이 <축제의 서>는 이스탄불에서 50여 일 동안 베풀어진 술탄의 아들들의 성대한 할례(포경수술) 의식을 기념하기 위해 축제의 과정을 시간순서에 따라 세밀화와 함께 기록한 필사본이다.

 

따라서 16세기 오스만 제국의 역사와 미술사에 대한 사전지식을 어느 정도 습득한 후에, 그리고 이 책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는 화원장 오스만의 지도하에 제작된 <축제의 서>의 그림들, 비흐자드가 ‘휘스레브와 쉬린’의 이야기를 그린 그림 몇 점만이라도 미리 보고 이 소설을 읽는다면 각 등장인물의 이야기와 당시 미술 사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오스만 제국과 이슬람 문화에 관한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읽는다면 이 소설의 진가를 제대로 느끼기에는 좀 무리가 있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역사적 지식을 요하는 소설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제목은 왜 ‘내 이름은 빨강’일까? 그것은 화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색이기 때문인 것 같다. 화가는 색을 통해 보고, 느끼고, 들으며 세계와 공감하기에 에니시테는 죽는 순간 ‘모든 세계가 색으로 이루어져 있고 모든 것이 색임을 나는 보았다. 나를 다른 모든 것들과 구별하는 힘이 색에서 나온 것이고 지금 나를 사랑으로 껴안고 세계와 연결해 주는 것도 색이란 걸 깨달았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여러 가지 색 가운데 왜 굳이 ‘빨강’일까? 이 소설이 한 여성에 대한 절대적 사랑과 계속되는 살인 그리고 동서양 문화의 충돌을 동시에 다루고 있기에 열정적 사랑, 낭자한 피, 공포와 갈등을 상징하는 빨강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나아가 작가는 ‘그분’ 즉 신을 붉은색 존재라고까지 표현하고 있다.

 

이 소설은 카라와 셰큐레의 두 연인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주인공이 카라와 셰큐레라고만 보기도 어렵다. 각 인물마다의 비중이 적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각 장마다 하나의 주인공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각 장의 주인공은 사람뿐 아니라, 개·나무·금화·빨강 심지어 죽은 몸과 죽음 자체까지도 자신에게 할당된 공간에서 각자의 느낌과 생각과 주장을 세밀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마치 평면적이고 비현실적인 공간속에 서양의 원근법을 배제하고 모든 인물들을 동일한 크기로 그려내는 16세기 오스만 회화의 특징을 보여주려 하는 것 같다.

 

이 소설은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 있다.’라는 예기치 못한 첫 문장으로 시작된다. ‘죽은 몸’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죽은 후 시체가 되어 묘에 묻히지도 못한 채 버려진 자신의 슬픈 영혼에 대해 넋두리하는 엘레강스의 이야기는 시체에게도 생각과 느낌이 실재할 것만 같은 섬뜩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간추려 보면,

이스탄불 최고의 미인 셰큐레세밀화카라는 사촌지간으로 카라는 24살, 셰큐레가 12살이었을 때 카라는 셰큐레에게 불타오르는 정염을 털어놓는 실수를 범하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셰큐레의 아버지인 에니시테는 가난한 자신의 조카 카라를 딸에게서 떼어놓기 위해 그를 이스탄불에서 떠나보낸다.

카라는 이스탄불을 떠나기 전 셰큐레에게 사랑의 징표로 페르시아 문학의 최대 비극적 러브스토리인 ‘휘스레브와 쉬린’의 이야기 가운데 ‘쉬린이 나뭇가지에 걸린 휘스레브의 그림을 보고 그를 사랑하게 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을 그려 주었다.

 

에니시테는 “술탄께서는 이슬람 천 년 기념 달력이 제작되는 해에 자신과 제국이 유럽의 화풍을 그들 못지않게 사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하신다.”며 서양화풍으로 그려진 그림이 들어갈 술탄의 밀서를 비밀리에 제작한다. 사실은 에니시테가 이탈리아 베네치아 궁전 벽에 걸린 어느 귀족출신의 ‘초상화’를 본 후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그가 누구인지 금세 찾아낼 수 있을 정도로 너무나 정교하게 그린 ‘이야기의 일부로서의 그림이 아니라 그림을 위한 그림’에 깊은 감명을 받아 술탄을 설득하여 인간 중심적인 ‘베네치아 스타일’을 수용한 <축제의 서>를 비밀리에 제작하게 된 것이다. 16세기 오스만 회화의 인물들은 신분을 알 수 없도록 그리기에 반드시 인물의 설명이 함께 기록되었다고 한다. ‘각각의 그림들은 하나의 이야기의 부분들’‘이야기가 없는 그림은 상상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전통화풍인 신 중심의 이슬람 세밀화를 고수하는 화원장 오스만과 인간 중심의 서양화풍을 도입하려는 에니시테는 사이가 벌어지게 된다.

진정한 예술은 서체 그 자체이며 그림은 글씨를 돋보이도록 해주는 부차적인 요소에 불과할 뿐”이라는 소설 속 서예가 제말의 말에서 이슬람문화의 그림과 글씨에 대한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진정한 의도가 무엇이든 시간이 흐르면 우리는 벽에 건 그림을 숭배하기 시작할 테니까 말이다.”라는 소설 속 술탄의 말을 통해서도 기하학적 무늬 이외에는 일체의 성화를 금하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이슬람사원에는 글씨만 있고 그림이 없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에니시테는 술탄의 밀서를 제작하기 위해 조카인 카라를 다시 불러들여 살인자를 찾도록 한다. 이스탄불로 떠난 지 12년 만에 에니시테의 부름을 받고 다시 에메랄드 골목에 있는 셰큐레의 집을 방문한 카라는 그림 속 휘스레브처럼 말을 타고 가던 중 창문에서 밖을 내다보는 셰큐레의 얼굴을 우연히 스치듯 보게 된다. 그 순간 카라는 다시 ‘휘스레브와 쉬린’의 책 속의 그림처럼 그녀를 향한 맹목적 사랑으로 활활 불타오른다.

박물장수 에스테르는 비록 글씨는 읽을 줄 모르지만 직감이 탁월한 유대인여자로 이 둘 사이에서 편지를 전달해주는 중매쟁이 노릇을 한다.

하지만 카라와 셰큐레 사이에는 여러 장애물이 있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난한 병사와 결혼한 셰큐레는 페르시아 전쟁에서 실종된 남편을 4년째 기다리고 있는 두 아들(셰브켓오르한)을 둔 24살의 유부녀이기 때문이다.

또한 셰큐레의 시동생인 하산은 ‘셰큐레를 향한 무례하고 집착에 가까운 사랑’을 하며 어떻게 해서든 친정에서 살고 있는 셰큐레와 아이들을 다시 데려와 결혼하려 한다.

 

세밀화가들의 아버지격인 화원장 오스만은 생의 끝자락에서도 ‘헤라트파 거장들의 걸작과 마주하는 것’이 여전히 자신을 미소 짓게 하는 것이라 한다. 그는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설명을 할 수도 없다.’라고 단언한다. 이렇듯 신의 눈으로 내려다보는 세계를 세밀하게 그림자도 없이 평면적으로 그리는 정통화풍의 이슬람 세밀화에 대해 절대적 찬사를 보내는 인물이다.

오스만을 미소 짓게 하는 헤라트 화파(畵派)의 정점에 있는 거장이 바로 ‘휘스레브와 쉬린’의 이야기를 그린 비흐자드이다. 헤라트 화파의 후예들은 자신의 개성은 철저히 배제하고 비흐자드와 같은 거장들의 그림을 그대로 정확히 모사하여 ‘화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는 것’이 최고의 경지에 다다른 화가라는 신앙과 같은 믿음을 갖고 있다.

살인자는 자신이 저지른 살인마저 미술의 스타일에 비유하며 ‘스타일(화풍, 즉 한 화가를 다른 화가들과 구분할 수 있게 하는 그 어떤 것)이라는 것은 단지 개인적인 흔적을 남기는 오류’이며 살인에서처럼 화가 자신을 드러내는 ‘서명과 스타일’은 개성이 아닌 결함이라고 주장한다.

 

술탄의 밀서 제작에 참여한 네 명의 세밀화가는 화원장 오스만이 ‘도제 시절부터 길러낸 네 명의 젊은 장인들’로 엘레강스, 올리브, 나비, 황새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이들은 서로 자신이 오스만의 신임을 받을 수 있는 단연 으뜸의 세밀화가라고 자부하며 서로를 질투한다. 그 가운데 한 명인 엘레강스는 밀서의 마지막 그림에 에니시테가 ‘뻔뻔스럽게도 원근법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려 넣으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반 이슬람적이고 이교도적인 일종의 ‘스타일’이라고 하는 화가의 개성을 드러내는 ‘베네치아 스타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누구도 감히 시도해서는 안 되는 엄청난 죄라고 생각하기에 겁을 먹은 엘레강스는 그러한 사실을 알리려 한다. 그러나 멍청한 엘레강스가 그 사실을 발설하는 순간 나머지 세밀화가들도 공범자라는 위험에 처하게 되기에 어쩔 수 없이 살해하였다고 살인자는 고백하고 있다.

 

술탄은 살인자를 밝혀내기 위해 죽은 엘레강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말의 그림을 나머지 세 명의 세밀화가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을 그리도록 명령한다. 거장의 그림을 정확히 기계적으로 그대로 모사하는 것에 익숙해있는 세밀화가들이 그린 말의 그림에서 과연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금박 입히는 솜씨가 뛰어난 엘레강스는 그가 금박을 입힌 그림들이 너무도 우아해서 엘레강스라고 불리게 되었다.

올리브는 족보가 몽고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장인 집안 출신이다. ‘가장 조용하고, 가장 감수성이 예민하고, 가장 죄책감을 많이 느끼고, 또한 가장 음흉한 사람’이다.

나비는 직접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보다는 ‘스타일과 서명에 관한 세 가지 일화’를 들려주며 ‘스타일은 곧 불완전함’이고, ‘완벽한 그림이라면 서명’이 필요 없으며, ‘서명과 스타일이란 결함 있는 그림을 그리고도 뻔뻔하고 어리석게 자만하는 자의 변명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또 다른 일화를 통해 견본 그림을 무시해서는 안 되며 ‘서명이나 변형을 전혀 하지 않고 정확하게 재현’해내야 재능 있는 화가라고 우회적으로 주장한다.

황새는 오직 그림을 그리기 위한 목적으로 직접 전쟁터에 갔다 살아 돌아온 최초의 이슬람 세밀화가다. 소재보다는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세부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이들 중 누가 엘레강스를 죽인 살인자일까?

이 모든 사건의 원인 제공자인 에니시테는 무사할 수 있을까?

‘휘스레브와 쉬린’처럼 카라는 살해당하고 셰큐레는 자살을 할까?

추리소설은 결말을 알고 읽으면 재미가 반감되지만 사실 <내 이름은 빨강>은 단순한 소설이 아니기에 결말을 안다고 해서 흥미를 잃을만큼 가벼운 책은 아니다. 그래도 결말은 앞으로 읽을 독자를 위해 비밀로!

 

이 소설 속에는 기록해두고 싶은 흥미있는 이야기와 생각들이 많이 담겨있다. 몇 가지 소개하면,

 

에니시테의 “훌륭한 화가는 자신의 그림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종국에 가서는 우리 마음속의 풍경까지 바꿔 놓는다.”

“다르게 그림을 그리는 게 곧 다르게 본다는 것을 뜻할까?”

 

그리고

살인자가 '그림과 장식, 그리고 아름다운 책을 좋아하는 칸과 샤, 술탄들의 애정'을 세 계절로 나누어 설명하는 대목.

셰큐레가 말하는 ‘꿈이 세 가지 일에 쓸모 있는 이유’

에니시테와 술탄의 대화.

‘헤라트와 시라즈에서는, 장인 세밀화가들이 너무 많은 작업을 한 결과 말년에 장님이 되는 것을 장인의 과도한 열정의 징표로 보았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위대한 장인의 노력과 기예에 대한 신의 대가라고 생각하여 자랑거리로 삼곤 했다.’ 더 나아가  스스로 바늘로 눈을 찔러 장님이 된다는 이야기.

‘커피가 이성을 마비시키고 위궤양과 허리 디스크와 불임의 원인이 되는 사탄의 음료’이므로 ‘커피를 마시는 것은 죄악’이며 커피숍을 없애야 한다는 후스렛 호자의 주장.

유럽에서의 개의 존재와 이스탄불에서의 개의 존재에 대한 비교.

‘책 제본에 쓰이는 아랍산 풀에는 물고기의 뼈와 꿀이 들어가 있고 종이는 계란과 녹말로 만든 아교로 광택을 내기 때문에 흰개미들, 수천 가지의 벌레들이 우리의 책을 사각사각 갉아먹어’ 버린다는 이야기.

도제시절 발바닥에 매를 맞는 견습생들.

비극적 사랑이야기 ‘레일라와 메즈눈’ 등 페르시아의 유명한 서사시와 여러 옛날이야기들.

이 외에도 그냥 흘려 읽을 수만은 없는 다양한 이야기와 색다른 생각들이 곳곳에 그림처럼 자리하고 있다.

 

 

 

 

[아야 소피아]

 

소설 속에서는 아야 소피아 사원 뒤에 궁정 세밀화가들의 작업장이 있다고 한다.(p. 101)

그런데 이것이 사실인지 아니면 아야 소피아가 여전히 가톨릭과 이슬람교의 종교적 갈등의 불씨를 안고 있는 곳이기에 가상으로 설정한 것인지 확인할 수가 없다.

아야 소피아와 톱카프 궁전을 갔었지만 궁정화가들의 작업장에 대해서는 전혀 정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터키에서 출간 후 45일 만에 11만 부라는 경이적인 판매고를 올렸다고 하니 만약 이 소설을 먼저 읽고 갔었다면 확인이 가능했을 지도 모르겠다.

 

 

사족 :

‘레일라와 메즈눈’은 ‘레일라와 마즈눈(Majnun)’이 일반적 표기인 것 같다.

2권 218쪽 밑에서 9째 줄 ‘일한국인들’은 ‘일 칸국인들’이 맞는 표기인 것 같다.

2권 219쪽 8째줄 ‘화풍로’는 ‘화풍으로’의 오자인 것 같다.

2권 273쪽 밑에서 2째 줄 ‘세밀화가장의 유력한 후보로서 가장 죄가 의심스러운 황새를...’에서 ‘세밀화가장의 유력한’의 의미를 모르겠다. ‘세밀화가 중 가장 유력한’ 또는 ‘세밀화가 중의 유력한’의 오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