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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나 [말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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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함께하는 산책/국내서적

2021. 1. 2.

 

 

말그릇

지은이 김윤나 / 펴낸곳 카시오페아 / 311쪽

 

젊을 때 자기계발서는 몇 권 읽어보았지만 대체로 마음을 다스리는 법에 관한 것이었다. 마음수양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얼굴의 생김새는 바꿀 수 없지만 마음가짐에 의해 인상은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을 잘 하는 사람들을 크게 부러워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특히 교양 있는 척 꾸민 듯 한 부자연스런 말투에는 말의 내용과 상관없이 거부감을 느꼈다. 주위에서 소위 말을 잘한다는 평을 듣거나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지나치게 자신을 과신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그들의 지식이나 상식을 부러워했지 말솜씨를 부러워하지는 않았고, 내 주위의 사람들 가운데 특별히 말을 잘 하는 사람을 좋아했던 것 같지도 않다.

 

TV나 라디오에 출연해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말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은 말솜씨가 첫째 조건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말의 기술까지 배워가며 후천적 말솜씨를 습득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말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망 자체가 없었던 것 같다. 교양 있는 말은 지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지혜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학교에 다녀본 적 없는 어르신이 소위 상류사회의 고학력의 어른보다 교양 있는 말솜씨를 갖은 경우도 많다. 말투는 투박할지 몰라도 마음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책도 여러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지만 결국은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 말의 기술은 정확히 말해 마음의 기술인 것이다. 마음이 변하지 않는 한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말 그릇’의 크기와 깊이는 변할 수 없다. 말하는 기술만으로는 일정기간 자신과 남을 속일 수는 있어도 언젠가는 본마음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는 웬만해서는 감정 표현을 하지 않는 ‘호수형’에 대해 “감정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명확하게 표현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라고 충고하고 있다.

이 말도 사실이지만 평정심을 잃지 않는 훈련을 하면 스스로 해결하는 강한 힘이 생기기 때문에 굳이 상대에게 명확하게 표현하는 연습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상대는 대부분 이 책에서 말하는 ‘폭포수형’일 것이기 때문이다. ‘폭포수형’은 남을 쉽게 비판하고 남에게 습관처럼 충고를 하지만 막상 자신이 그러한 입장에 처하게 되면 즉각적인 반감을 표출하는 경우가 많다. 아직 변화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변할 생각조차 없는 상대를 향해 명확한 감정을 표현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호수형’보다 ‘폭포수형’이 남의 말에 더 큰 마음의 상처를 받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자기 확신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흔히 비유하듯 갈대는 바람에 흔들리기는 해도 부러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신에 대한 사랑이 너무 깊은 사람들, 자기 확신이 너무 강한 사람들이 한순간에 부러지는 것이다. 자살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일기장을 보면 주로 자신의 이야기만 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물론 이 책에서 말하는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공식에 갇혀있기 때문에 나 또한 이러한 생각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어딘가에 낙서되어 있던 이 말이 참 좋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면 후련하다가 찜찜해지고, 하고 싶은 말을 안 하면 답답하다가 잘했다 싶고.”

“쓸데없는 과소비는 물건이라도 남는데, 쓸데없는 감정소비는 후회만 남더라.”

 

 

경험에 의해 나이가 들수록 “침묵은 금이다”라는 명언이 가슴에 더욱 와 닿는다. 물론 아직 자아형성이 안된 어린 아이들에게는 결코 침묵이 금이 될 수는 없다. 그들을 대할 때는 말솜씨가 필요하다. 그러나 성인들 사이에서는 이 책에서 말하는 “내가 참고 말지”라는 상대를 무시하는 건방진 마음가짐이 아니라 자신을 먼저 객관적으로 되돌아보고 원인을 분석하고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명확한 감정 표현을 전달했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상대에 따라 결과는 자신이 예상한 것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는 늘 자신의 관점에서 나의 말을 해석하기에 나의 생각과 감정을 바르게 표현한다고 해서 반드시 바르게 전달된다는 보장은 없다. 따라서 자신의 감정을 바르게 표현하여 전달하는 것 이상으로 내가 먼저 남의 말이 유창하건 서툴건 간에 상대의 말 그 자체와 그 이면에 감춰진 말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지혜를 갖추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러니 상대를 변화시키려고 애쓰는 노력을 자신에게 쏟는 것이 더 빠른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말의 힘보다 실천하는 힘이 훨씬 더 강하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삶의 태도를 보고 상대가 변화하는 것이지 나의 말에 의해 상대가 변화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마음이 변하면 말의 변화는 저절로 뒤따라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오래 전에 읽었던 사마끼 가쓰토시의 「일하기 싫을 때 읽는 책」중에서 인상 깊게 다가왔던 글을 또다시 되새겨본다.

 

마음이 변하면 태도가 변한다.

태도가 변하면 행동이 변한다.

행동이 변하면 습관이 변한다.

습관이 변하면 인격이 변한다.

인격이 변하면 운명이 변한다.

운명이 변하면 인생이 변한다.

 

 


다음은 <말그릇>에서 발췌한 내용들이다. 

 

이 책은 ‘왜 우리는 나이 들어서도 성숙한 대화를 하지 못할까’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되었다. 마흔을 넘기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사람의 인격이 표정 안에 고스란히 새겨지기 때문이다. 말도 그렇다. 경험이 많아지고, 삶의 연륜이 더해질수록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세상에는 ‘몰라서’하는 말이 있고, ‘알면서도’ 하는 말이 있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몰랐다’며 피해갈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사라진다. 어른이 되어 간다는 무게감에는 말에 대한 책임감도 포함되어 있다. p. 279

 

세상에는 세 가지 종류의 ‘연결(connection)’이 있다. 바로 나 자신과의 연결, 타인과의 연결, 세상과의 연결이다. p. 27

 

말에 힘이 없으니 힘이 생길 때까지 생떼를 쓴다. p. 34

 

사람들은 딱 자신의 경험만큼 조언해 준다.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은 진심이지만 그것은 사실 그들의 말일 때가 많다. 상대방의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대답을 함께 찾아보는 대신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말을 해주고 싶어 하는 것이다. p. 37

 

‘말솜씨’는 여전히 탐나는 능력이지만, 나이가 들고 관계가 복잡해질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깊이 있는 말이지 듣기 좋은 말이 아니다. 말로 영향력을 끼치려고 하기 전에, 말 그릇 속에 사람을 담는 법을 배워야 한다. p. 37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잘 모른다. 그것이 속상함인지, 당황스러움인지, 슬픔인지, 놀람인지. 그 정체를 배운 적이 없다. 그저 낯선 상황,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판단이 들면 반사적으로 아무 감정이나 골라잡아 내지른다. p. 63

 

감정으로부터 도망가기 시작하면 외로워지고 억울해진다. ‘이게 아닌데.’, ‘무엇인가 잘못되었어.’ 하는 찝찝함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의도하지 않은 쪽으로 말을 하기 시작한다. 잘못 선택한 감정이라도 일단 들어선 길이기에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제대로 된 감정과는 점점 멀어진다. ‘마음과 일치하는 말’을 하려면 먼저 감정과 친해져야 한다. 감정과 말을 엇갈리지 않게 연결시키는 능력이야말로 넉넉한 말 그릇이 되기 위한 핵심 요소다. p. 65~66

 

‘실망해서 화가 난 것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망과 화는 전혀 다른 감정이다. p. 70

 

감정을 품어내는 힘은 분명 개인의 자존감과 깊은 관련이 있다. 대화 중에 참지 못하고 무작정 감정을 쏟아내는 사람의 내면에는 낮은 자존감이 자리하고 있다. p. 83

 

첫 번째 유형은 ‘폭포수형’이다. 기분이 나빠지면 마음에 담아두지 못하고 말을 쏟아내야 속이 후련해지는 스타일이다. (중략) 폭포수형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평가할 때 ‘뒤끝이 없고 쿨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이런 유형은 자신의 감정을 책임질 능력이 부족한 것이다. 그러면서 타인의 감정까지 경계 없이 휘저으려는 사람들이다.

두 번째 유형은 ‘호수형’이다. 이 유형의 사람들은 웬만해서는 감정 표현을 하지 않는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악취가 피어오른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가 참고 말지.’, ‘말해서 뭐해.’ 하면서 감정을 꾹꾹 눌러두면, 그것이 마음속에서 차고 넘쳐 결국에는 준비되지 못한 상태로 터져버린다. 아주 사소한 사건에도 욱하며 터지게 되어 있다.

마지막 유형은 ‘수도꼭지형’이다. 시원하게 혹은 따뜻하게 물의 온도를 선택하고, 사용하지 않을 때는 흐르지 않게 잠가두고, 또 필요할 때는 원하는 만큼 조절해서 사용한다. (중략) 이렇게 감정 표현이 정확한 사람은 목적에 맞는 말을 꺼내어 사용할 줄 안다. p. 91

 

‘폭포수형’이라면 감정을 정확하게 느끼고 보유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하고, ‘호수형’이라면 감정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명확하게 표현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p. 92

 

대화를 하다 보면 종종 ‘나의 말’과 ‘상대방의 말’이 너무 달라 갈등을 일으킬 때가 있다. p. 99

 

공식의 차이가 오해를 부른다.

상대를 ‘적’으로 만들고 싶다면 나의 공식만 고집하면 된다. 반대로 성숙한 대화를 하고 싶다면 사람마다 가진 공식의 차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차이를 ‘문제’로 바라보지 않고 같이 풀어야 할 ‘과제’로 바라볼 때, 당신의 말 그릇은 흔들리지 않는다. p. 124 

 

<침묵의 기술>이라는 책에, 이런 문장이 있다.

“나이든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너무 많은 말을 해서 듣는 이를 피곤하게 하는 것부터 피해야 한다. (중략) 젊은 사람들 앞일수록 조심성을 잃지 말아야 하며, 그 조심성은 존중의 수준으로까지 격상될 필요가 있다.” p. 277~278

 

나이 들수록 나의 말 그릇이 제대로 깊어지고 있는지, 적당히 채워지고 비워지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어야 한다. 해를 넘길 때마다 나이와 주름살을 확인하듯 자신의 말 그릇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p. 278

 

당신이 아직 기억하고 있는 아픈 말도, 당신을 겨냥한 채 작정하고 내뱉은 말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설령 당신의 눈에 그렇게 보였더라도 말이다. 그들도 우리처럼 자신의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상태에서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있는 상처 많고 두려움 많은 존재들이다. 그들도 우리처럼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어서, 또는 사랑한다는 이유로 준비되지 않은 말을 서둘러 꺼내는 존재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투르고 또 한참 서투르다. p. 306

 

우리 모두는 말실수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분명 내 것인데도, 잘 다듬어지지 않은 감정과 생각과 습관은 그 자체로 살아 움직여 수없이 많은 갈등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말 그릇을 인식한 사람, 멈추고 돌아보는 사람, 다시 시작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은 그 후회의 시간을 조금씩 줄여나갈 수 있다. 조금씩 자신의 말 그릇 안에 마음과 사람을 담아낼 수 있다.

당신이 하는 말이 누군가를 일으키고, 다시 달리게 할 수 있기를. 누군가를 위로하고, 사랑할 수 있기를. 무엇보다 당신의 소중한 사람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지길 응원한다. p. 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