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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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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함께하는 산책/외국서적

2021. 1. 17.

 

 

발칙한 유럽 산책

 

지은이 : 빌 브라이슨

옮긴이 : 권상미

펴낸곳 : 21세기북스

총 390쪽

 

코로나로 인해 국내여행이든 해외여행이든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앞으로의 해외여행을 꿈꾸며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 산책’을 읽어보았다. 그런데 여행기라기보다는 이야기꾼의 한 편의 소설책을 읽는 기분이었다. 여행정보를 얻기 위해 읽은 독자라면 이 책에 대해 매우 실망했을 것이다. ‘OO 미술관에 들어갔다. 그리고 나왔다.’하는 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나면 어느 도시를 가봐야지 하는 생각보다 어디는 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 책이다. 즉 각 도시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아니 작가가 느끼는 개인적 시각의 단점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작가가 남자이다 보니 내가 하는 여행과도 사뭇 다르다. 술에 만취해 실수를 저지르고, 다른 것에 비해 유독 함부르크 유흥가에 대해서는 열변을 토하듯 자세히 설명하고, 출발해 달리는 기차에 올라타 다리에 피가 나도 해보고 싶었던 것을 해봐 흐뭇해 한다. 호텔이든 음식점이든 직원과의 마찰도 많은데 혹시 작가의 말투에도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살짝 들기도 한다.

 

어릴 적 읽었던 <김찬삼 여행기>에서 아직도 생생히 기억에 남아있는 얘기가 있다. 배를 쫄쫄 굶은 상태에서 산을 오르고 오르다 사람들이 앉아 무엇을 먹기에 혹시 얻어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다가가 보았더니 그들이 먹고 있는 것은 살아있는 벼룩(?)이었다는 것이다. 쥐를 먹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그 책을 갖고 있지 않아 확인할 수는 없는데 김찬삼 작가는 각 도시의 독특한 문화와  민족성에 대한 평가는 자제하고 객관적 사실들을 전달하는 데 충실하였던 것 같다. 

 

이와는 달리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 산책>은 단정적 표현들이 많다. 그러한 표현들을 솔직하다고 찬양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여행 작가’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솔직하다는 것이 무엇일까? 비판적이면 솔직한 것이고  긍정적 시각으로 바라보면 위선일까? 

 

나는 세계여행을 하는 이유는 다름을 인정할 줄 아는 이해의 폭을 넓히고 보다 많은 색다른 경험을 통해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은 인터넷이란 문명의 이기(利器)가 있어서 안방에서 세계 곳곳의 자연과 풍습, 실생활을 알 수 있지만 직접 경험과 간접 경험에는 큰 차이가 있기에 돈을 모아 떠나려고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해외여행을 하면서 좋았던 추억들이 너무도 많아 자잘한 불편이나 불쾌감은 기억에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다. 어쩌면 친구가 완벽한 스케줄을 짜놓은 상태에서 출발하는 배낭여행이었기에 가능한 결과였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나는 파리보다는 브뤼셀이 불친절하다고 느꼈고, 피렌체의 우피치미술관에서는 별 감흥을 못 받았는데 작가는 호평을 하였다. 그에 반해 나는 피렌체 도시 자체는 좋았는데 작가는 매우 비판적이다. 같은 것을 보고도 느끼는 감상은 다 다를 수밖에 없으니 여행에 관한 책들은 참고만 하는 것이 좋겠다.

 

그러나 이 책을 여행기가 아닌 소설처럼 읽는다면 참 재미있는 책이다. 여행하면서 겪었던 자신의 상황이나 모습을 가감 없이 톡톡 튀는 재담으로 표현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남에 대해 비판적이듯 자신에 대해서도 미화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매우 즉흥적인 여행을 감행하며 유럽 여러 나라를 누볐기에 개인적인 일화를 많이 쏟아내며 여행기를 쓸 수 있었다. 따라서 여행하며 보고 듣고 느끼고 배운 경험으로 여행경비 그 이상을 축적할 수 있는 자본주의 혜택을 톡톡히 누리는 말재주꾼이니 좀 더 긍정적 시각으로 공감하며 각 여행지에 대해 보다 상큼하고 신선하고 독창적으로 발칙하면서도 재미있게  여행기를 써주면 좋겠다. 그런데 대부분의 여행기가 긍정적 시각이어서 비딱한 시선의 빌 브라이슨의 책이 더 많은 인기를 끄는 이유라 하니 책을 보다 많이 팔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전략인지도 모르겠다.

 

1951년 미국에서 출생한 빌 브라이슨은 20대부터 거의 대부분을 영국에서 생활하여 영국과 미국 시민권을 모두 갖고 있는 작가이다.

그는 1972년 21살 때 혼자 배낭을 메고 룩셈부르크에 첫 발을 내딛은 것이 유럽여행의 첫 시작이었다. 네 달 동안 룩셈부르크, 벨기에, 영국, 아일랜드, 스칸디나비아,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를 두루 돌아다녔다.

1973년에는 혼자 하는 여행이 외로웠는지 고등학교 동창 카츠와 함께 유럽 여행길에 올랐다. 그러나 작가는 이것은 큰 실수였다고 고백하고 있다. 24시간을 한 시도 떨어지지 않고 같이 살을 부대끼며 몇 달을 함께 여행한다는 것은 서로에 대한 인고의 배려가 없이는 힘든 여정일 수밖에 없다. 취미와 관심의 대상이 같아야 하고 식성도 어느 정도 비슷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 너무 많은 것을 양보해야 하고 매일 매일 서로의 접점을 찾기 위해 아까운 시간들을 허비해야 한다.

그러나 둘이 하는 여행의 장점은 낯선 곳에서의 위험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 줄 수 있고 무엇보다 좋은 것을 봤을 때 함께 감탄사를 연발해줄 상대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혼자 하는 여행은 때로 진한 고독에 울적함도 찾아들 수 있지만 완전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으니 이 또한 포기할 수 없는 장점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나도 언젠가는 혼자만의 세계여행을 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길 희망해본다.

 

‘발칙한 유럽 산책’은 1973년 여행 이후 1990년 작가가 혼자 유럽 최북단 노르웨이 노르 곶(North Cape)에서 터키 이스탄불까지 배낭여행을 한 후 쓴 여행기이다. 그런데 1973년 친구 카츠와 가봤던 곳을 최대한 많이 들르며 여행하였다. 대체로 안 가본 여행지를 가는 것이 일반적일 것 같은데 작가는 이 책에서 친구와 함께 했던 여행에 대한 불만을 자주 토로한 것으로 보아 그때의 여행이 많이도 아쉬웠나 보다. 또한 20대 초반에 한 여행과 마흔이 가까운 나이에 혼자 하는 여행과는 큰 차이가 있을 테니 같은 곳을 여행하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다.

 

작가는 코펜하겐에서 집에 전화를 걸려고 시도는 했지만 덴마크 어로 녹음된 안내 음성만 들려서 통화를 할 수가 없어서 세 번의 시도 후에 포기했다고 한다. 그런데 시도한 통화에 대해서는 연결이 되었든 안 되었든 요금을 내야 한다는 호텔 여직원의 말에 항의했지만 어쩔 수 없이 요금을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나는 이 경우와는 조금 다르지만 너무도 피곤하여 런던의 호텔방에 있는 전화로 집에 안부 정도만 묻고 끊었는데 10만원이 넘는 전화비가 나와 깜짝 놀랐던 경험이 있다. 지금은 휴대폰이 있어 이런 일을 당할 염려가 없지만 휴대폰이 없던 그 시절에는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 같다.

 

스웨덴 예테보리 편에서 스톡홀름으로 가는 아침 고속 열차표를 사기 위해 실랑이해야 했던 일화를 내가 겪었다면 나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동양인을 무시한다고 해석했을까?

 

나도 오로라를 보는 것이 나의 희망목록 중 하나였는데 한 달의 여유를 갖고 가야한다 하니 망설여진다. 작가는 오로라를 보기 위해 세계 최북단 함메르페스트에서 여러 날을 머무르며 따분한 일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갑자기 온갖 잡다한 일을 할 시간이 생겼다. 가령, 양쪽 신발 끈이 정확히 같은 길이가 될 때까지 부츠의 끈을 몇 번이고 다시 묶었다 풀기를 되풀이했다. 지갑 속을 가지런히 정돈하고, 코털도 다듬고, 도무지 할 일이 없을 땐 뭘 할지 기나긴 목록도 작성했다. 어떨 땐 양손을 무릎에 올려놓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기도 했다. 혼잣말을 중얼거리기도 했다.”

코로나로 인해 가족도 직접 못 만나고 병원에만 갇혀 지내야 하는 환자분들의 삶이 이렇지 않을까?

 

대부분의 도시에 대해 안 좋은 추억만 기록한 작가가 벨기에 브루제(부뤼헤)와 이탈리아 카프리 섬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감탄하였다. 나는 카프리 섬은 너무 짧은 시간만 머물렀기에 다시 가보고 싶다. 작가는 “걸으면서 볼거리가 이렇게 많은 곳도 없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정말 그랬다. 카프리는 곳곳이 정말 아름다웠다. 물론 ‘푸른 동굴’이 그 정점을 찍었지만 작가는 그곳의 아름다움은 경험하지 못했던 것 같다. 작가가 말한 산꼭대기에 있다는 티베리우스(제2대 로마의 황제로 말년을 카프리 섬에서 보냈다)의 저택 유적지도 방문해 보고 싶다.

“브루제 같은 곳은 오늘날 매우 드물다. 나는 하루 동안 이곳을 다녔는데 내내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나는 흐로닝테 미술관에도 가고, 베긴 수도원과 나팔수선화가 만발한 수도원 정원에도 가보았지만, 그날 하루는 브루제의 너무도 완벽한 아름다움에 들떠서 주로 거리를 걸었다.” 

 

스위스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지만 베른의 경치는 매우 빼어나다고 기술하고 있다.

 

작가는 “누가 뭐래도 비엔나는 내가 가본 곳 중에서 가장 웅장한 도시임에 틀림없다.”고 하였다. 나 또한 오스트리아 빈은 다시 가고픈 도시이다. 그는 “<제3의 사나이>에서 오손 웰스와 조셉 코튼으로 인해 유명해진 회전 관람차 따위가 있는 놀이공원을 지나 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나는영화 속 대 관람차가 빈에 있는지 몰랐는데 빈에 다시 갈 기회가 생긴다면 대 관람차가 있는 공원도 가봐야겠다. 어릴 때 본 영화지만 마지막 엔딩 장면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 명장면 중의 명장면이다.

 

덴마크 코펜하겐 극장에서 텅 빈 다른 구역의 좌석들을 놔두고 몇 안 되는 사람들이 좁은 곳에 밀집해서 앉아야만 했던 일화도 재미있었다. 작가는 “덴마크 사람들은 바보스러우리만치 법을 잘 지킨다. 덴마크에서 가장 심각한 범죄라야 자전거 절도다.”라고 기술하고 있는데 텅 빈 극장 안에서도 철저히 자기 좌석을 고수하는 덴마크 사람들의 준법정신에 경외감을 느낀다. 그래도 적절한 융통성도 필요한 것 같다. 

 

오슬로 호텔에서 아침마다 메이드가 ‘비오 텍스 블로(Bio Tex Bia)라고 씌어 있는 조그만 물건을 놓고 가는데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알 수 없어 빨랫비누라고 결론짓고 세탁비누로 사용했는데 나중에 변기 세척제라는 것을 알았다는 일화는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했을 것 같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에 대한 생각은 나와 비슷했다.

“마지막으로 루브르에 간 것은 1927년 카츠와 함께였는데, 그때도 방문객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모나리자>는 다른 건물에서 군중의 머리 틈새로 간신히 보이는 우표 그림 같았는데, 상황은 지금도 별반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작가는 퐁피두센터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퐁피두센터 같은 건물에 대해 정말 맘에 안 드는 점은 그저 과시하기 위한 구조물이라는 사실이다. (파리는 이런 건물들로 질식사할 지경이다.) 퐁피두센터를 설계한 리처드 로저스는 세상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건물을 확 뒤집어서 배관을 온통 밖에다가 설치했어요. 나 정말 쿨하죠?”

 

나도 퐁피두센터 외관에 대해서는 비슷한 생각이지만 퐁피두센터 안에 있는 상점들에서는 다른 곳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독특한 디자인의 물건들이 많아 그곳에서 몇 가지 기념품을 샀었다. 게다가 아치형 통로는 전체가 유리로 되어있어 파리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리고 퐁피두센터 안에는 현대미술관도 있는데 2001년에 내가 갔을 때는 입구에 앤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가 있었다.

 

작가는 소피아 편에서 “밴드는 <페르난도스 하이드어웨이>, <러브 레터스 인 더 샌드>, <그린 도어> 등 세계의 다른 곳에서는 지난 20년 동안 아무도 듣지 않았던 음악을 연주”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팻 분의 <러브 레터스 인 더 샌드 (Love Letters in the Sand)’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팝송 가운데 하나로 Daum에서 서비스를 중지시켜 많은 돈만 날린 상태지만 블로그 배경음악으로도 구매했던 팝송이다. 

 

 

 

다음은 흥미있던 부분과 훗날 내가 유럽여행을 할 기회가 생긴다면 참고하고 싶은 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마틴 길버트가 쓴 진중하고 후세에 길이 남을 책 <제2차 세계대전>을 들고 르와얄 거리에 있는 분위기 좋은 작은 바로 향했다. 이 책은 실로 대중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조금 읽다 보면 곧 주변을 멍하니 살피면서 말을 걸 사람이 없나 찾게 만드는 책이다.

 

덴마크 암스테르담:

스무 살 때 나는 개방성과 관용, 마약과 섹스 그리고 나이 스물에 하지 못해 안달인 여러 악행에 대한 느긋한 태도 때문에 암스테르담을 좋아했다. 실은 열렬히 존경해 마지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이상하게도 이 모든 것이 지긋지긋하다. 암스테르담 주민들은 이런 톨레랑스(자신과 다른 종교, 종파, 신앙을 가진 사람의 입장과 권리를 인정하는 것)의 전통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함부르크 : 

함부르크는 두 호수를 끼고 건설된 도시인데, 둘 중에 작은 호수가 비넨알스터다. 지도를 보고 함부르크에 이런 호수가 있는 줄은 알았지만 어떤 글이나 사진으로도 이토록 아름다운 곳일 줄은 몰랐다.

오후에는 내내 거대한 아우센알스터 주변을 산책했다. 처음부터 오후를 모두 거기서 보낼 생각은 없었지만 호수가 정말 아름다워서 도무지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코펜하겐 : 

스칸디나비아 페리를 타고 여행할 때 필요한 요령을 하나 전하고 싶다. 절대 기차에서 제일 먼저 내리지 말자. 사람들은 제일 먼저 내린 이가 배의 주요부로 나가는 길을 알 것이라 믿고 모두들 그 뒤를 따라가기 때문이다. 

 

스트뢰게트는 세계에서 가장 긴 보행자 거리다. 실은 거리 하나가 아니라 콩겐스 광장과 티볼리 쪽에 있는 코펜하겐의 다른 광장인 시청 광장 사이에 펼쳐진 약 1.5km가 넘는 5개 거리를 가리킨다. 코펜하겐에 관한 여행 기사들은 모두 스트뢰게트에 관해 격찬을 해대지만, 나는 항상 왠지 실망스럽다고 느끼곤 한다. 

덴마크 국립 박물관은 웅장할 뿐 아니라 소장품도 상당하다. (중략) 그 다음으로는 뉘칼스버스 조각관으로 갔다. 어떤 박물관은 소장품은 근사하지만 건물이 보잘 것 없고, 다른 곳은 건물만 번듯하고 소장품이 형편없지만, 이 조각관은 둘 다 훌륭하다. (중략) 그러나 마지막 순서로 아껴둔 최고의 박물관은 오스트리 안네 공원에 있는 히르슈프룽 컬렉션이다. 이 박물관은 어느 모로 보나 나무랄 데가 없다. 도심에서 기분 좋게 산책할 수 있는 거리에다가, 오스트리 안네 공원은 짧지만 주의 깊게 살펴본 내 경험에 따르면 코펜하겐 최고의 공원이다. 

 

 

예테보리 :

지도에서 보면 덴마크는 딱딱한 바닥에 떨어져 산산이 깨진 접시 조각 같다. 

 

방은 쾌적하고 비즈니스맨용 객실 같은 분위기였지만, 작았고 전등은 20촉짜리에 불과했다. 유럽인들은 이렇게 어두운 등으로는 책을 읽을 수 없다는 걸 언제 깨우칠는지!

 

 

스톡홀름 :

나는 부유하면서도 동시에 사회주의를 견지했다는 점에서 스웨덴을 흠모하면서 자랐다. 나는 이 두 가지가 누구나 겸비해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부모가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뇌종양에 걸린 아이가 강제로 퇴원당해 죽을 수도 있는 나라. 1989년 캘리포니아에서 그랬듯이 보험회사으이 실적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보험회사가 1만 4천여 명이나 되는 중병환자들의 보험을 합법적으로 말소할 수 있고 이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로마 :

레이 태너힐의 <역사 속의 섹스>를 보면 18세기 프랑스 귀족 사회의 남녀는 화장실에 함께 가는 것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으며, 때로는 활발한 대화를 중단하지 않기 위해 저녁 식사 후에 다 같이 노상 변소에 가기도 했다고 한다. 

 

 

피렌체 :

피렌체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문화재를 간직한 곳으로 유네스코에 따르면 문화유산과 같은 볼거리가 스페인 전체보다 더 많은 도시다.

 

 

밀라노와 코모 :

이탈리아가 전쟁에서 지자 무솔리니가 피신해 간 곳이 코모 호수라고 읽은 기억이 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사람의 마지막 도피처였다면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역시 이유가 있었다. 코모는 아름다운 작은 도시로 깨끗하고 완벽했다. 역시 이름이 코모인 50m 길이 호수의 남쪽 끝에 자리한 고상 도시였다. 

 

 

스위스 :

14세기 이탈리아 인으로 산다는 게 어땠을지 상상해 보라. 일단 1345년에는 6개월 내내 멈추지 않고 비가 내려 이탈리아 상당 부분을 호수로 만들어버렸을 뿐더러, 곡물 재배가 아예 불가능했다. 경제는 무너졌고 은행들은 파산했으며 먹을 것이 없어 수천 명이 굶어 죽었다. 2년 후에는 끔찍한 지진이 로마, 나폴리, 피사, 파도바, 베네치아 등 이탈리아를 뒤흔들어 사람들이 더 죽고 대혼란이 찾아 왔다. 그런 다음에는 이제 상황이 좀 나아질 때도 되었을 무렵에, 이름 없는 선원들이 제노바 항에 들어와 이렇게 말했다. “몸이 으슬으슬 떨려요.”

그리고 며칠 안에 엄청난 전염병이 유럽 전역을 휩쓸기 시작했다.

그러나 흑사병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1360~1361년, 1368~1369년, 1371년, 1375년, 1390년과 1405년에 되찾아왔다. 그런데 이 시기들이 유럽에서 대대적인 교회 건설 붐이 일었던 기간과 일치한다는 게 흥미롭다. 

 

 

오스트리아 :

제인 크레이머가 <유럽인>에 썼듯이, 오늘날 오스트리아인들은 오스트리아계 유대인을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도 오스트리아는 유럽에서 반유태 정서가 가장 극심한 곳이다. 크레이머에 따르면 여론조사 결과 오스트리아 국민 가운데 약 70%는 유대인을 싫어하며, 20%를 약간 넘는 수치는 유대인을 적극적으로 혐오한다. 그리고 인구의 10분의 1이 조금 못 되는 사람들은 유대인에 대한 거부감이 심하여 ‘유대인을 보면 실제로 메슥거리는 증상을 보인다’라고 말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