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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연천] 연천역 급수탑과 증기기관차, 주상절리, 당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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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국내여행기

2021. 1. 19.

 

오늘은 몇 년 전 가족들과 함께 다녀온 연천의 이곳저곳을 소개해보겠습니다.

 

 

연천역 급수탑 (공원)

 

기차역이 아담하고 예쁘네요. 이 역을 보자마자 이 역의 모습과 매우 비슷한 경강역이 배경이었던 최진실 주연의 영화 <편지>가 생각났답니다. 

 

 

 

 

 

 

연천역 맞은 편은 시야가 탁 트여 있습니다. 지금은 지방에 가도 시골 느낌을 받기 어려운데 기차역 때문인지 잘 정비된 거리지만 옛 정취가 느껴집니다. 

 

 

 

오른쪽 한반도 조각에 연천의 관광지를 소개하는 안내판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고대산과 재인폭포는 별도로 소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곳이 연천의 최고의 관광지인 것 같습니다. 전철 1호선이 연천역까지 연장된다고 하니 좀 더 많은 분들이 연천을 찾아 올 것 같습니다.

 

 

 

 

건물 벽에 그려진 증기기관차가 검회색 연기를 내뿜으며 곧 벽을 뚫고 튀어나올 것만 같습니다. 연천역은 일제 강점기인 1912년에 영업을 개시하였고 1958년 구 역사를 완공하였다고 합니다. 오래된 건물이지만 벽을 멋지게 그림으로 꾸며놓으니 최신식 큰 건물보다 정감이 넘칩니다. 우리나라도 유럽처럼 옛 모습을 잘 보존하여 그 지역만의 특색을 살려 여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면 참 좋겠습니다. 어디를 가나 비슷비슷하다면 굳이 여행을 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림의 미카 3형 244호 증기기관차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글로 유명한 임진강에 전시되어 있는 증기기관차입니다. 연천역 건물이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벽화와 급수탑과 증기기관차 모형이 모두 매우 잘 어우러집니다.

 

 

 

 

‘미카’라는 글자에서 알 수 있듯 이 기관차는 미카형 증기기관차입니다. 미카형은 텐더식 증기기관차로 장거리 운행을 위해 기관차 뒤에 대량의 물과 석탄 등의 연료를 별도로 실은 탄수차(炭水車, 텐더)를 연결하여 운행하는 열차를 말합니다. 따라서 거대한 탄수차가 기관사의 후방시야를 가려 신호를 제대로 볼 수 없게 하고 후진을 방해하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미카 3-161호 증기기관차]

또한 미카형 증기기관차는 차바퀴 배열이 2-8-2인 증기기관차로, 탄수차를 제외한 기관차의 작은 바퀴가 앞뒤로 각각 2개씩 있고 그 사이에 큰 바퀴가 8개임을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카형은 일제강점기인 1919년 미국에서 도입하기 시작하였으나 1927년부터는 일본에서 제작하고 조선총독부 철도국 경성공장에서 조립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곳에 전시된 미카 3-161호는 현재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철도박물관에 보존되어 있으며 이곳에 있는 것은 모형입니다. 야외에 전시되어 있지만 관리가 매우 잘 되어 있어 멋진 자태를 당당히 뽐내고 있습니다. 1967년 디젤 전기기관차가 등장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진 증기기관차를 실물크기의 모형으로나마 깨끗한 상태로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게 되니 반가울 따름입니다.

 

 

 

 

뿌연 연기를 내뿜고 칙칙폭폭 소리를 내며 달리던 증기기관차를 영화에서 많이 보았을 것입니다. 시뻘건 화구(火口) 안으로 화부가 석탄을 삽으로 퍼서 넣는 장면도 자주 등장했었지요. 이렇듯 증기기관차는 화실(火室)에서 석탄을 태워 → 물이 있는 보일러를 가열하고 → 끓은 물은 증기로 기화되어 → 그 증기의 압력에 의해 실린더 안에서 피스톤이 왕복운동을 하고 → 피스톤에 연결된 로드(금속 막대기)가 피스톤의 운동을 실린더 밖으로 전달하여 바퀴를 회전시킴으로써 기차가 움직이게 됩니다.

 

 

 

 

 

 

여기서 잠깐 철도의 역사를 살펴보고 갈까요?

1776년 스코트랜드 출신의 제임스 와트는 기존 증기기관의 단점을 개량하여 효율성을 높여 상용화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1804년 영국인 리처드 트레비식은 최초로 고압증기의 힘으로 움직이는 증기기관차를 만들어 마차철도에 적용시켰습니다. 그러나 마차를 위한 철로가 증기기관차를 버티지 못하여 그가 발명한 기관차는 큰 관심을 끌지 못하였습니다.

1814년에 ‘철도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잉글랜드 출신의 조지 스티븐슨이 증기기관차를 만들어 마차철도에서의 운행에 성공하여 탄광에서 마차 대신 석탄을 운반하는 데 이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가 발생하여 끊임없이 연구에 매진하였습니다. 그 결과 조지 스티븐슨은 연철레일을 개발하여 1825년 영국에서 최초로 증기기관차를 이용한 본격적인 철도가 개통되었습니다. 이때 그가 제시한 선로의 궤간은 현재까지도 사용되고 있는 철도의 표준궤가 되었습니다. 이로써 증기기관차를 이용하여 대량의 화물을 운송할 수 있게 됨으로써 증기기관차는 산업혁명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1830년에는 영국 리버풀-맨체스터에 화물뿐 아니라 여객수송도 증기기관차가 견인하는 ‘세계 최초의 근대적인 철도’가 개통되었습니다. 이후 전 세계적으로 철도의 붐이 일어나 세계의 교통수단의 혁명을 가져오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는 1899년 한성(노량진)과 제물포 사이에 개통된 경인선입니다. 미국이 경인선철도부설권을 획득하였으나 자금난으로 일본에 의해 완공되었습니다. 경인선 개통과 함께 모가형 증기기관차가 최초로 수입되었습니다.

이후 열강들의 외교적 압력 속에 경부선철도부설권은 일본이, 경의선철도부설권은 러시아의 후원으로 프랑스가 획득하였습니다. 그러나 프랑스의 자금난으로 1899년 박기종의 대한 철도회사가 경의선과 경원선 철도부설권을 허가받았으나 경의선과 경원선 철도부설권 모두 러일전쟁 중 일본이 군사적 목적으로 불법적으로 획득하였습니다. 철도부설권을 강탈한 일본은 러일전쟁(1904~1905)을 일으킨 후 군인과 전쟁 물자를 실어 나르기 위해 1905년 경부선과 경의선을 급속하게 완공하였습니다.

일제 강점기인 1914년에는 호남지방의 미곡을 일본으로 수송하기 위해 호남선이 개통되었고, 같은 해에 군사적 목적으로 경원선이 개통되었습니다. 이렇듯 모든 철도가 일본의 자본과 기술에 의해 설치되었지만 일본은 전쟁을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부설하였을 뿐이고 철도의 모든 용지를 무상으로 탈점하였습니다. 이후 1928년에 함경선 등의 간선철도가 개통됨으로써 X자 형태의 간선 철도망을 구축하였습니다.

 

 

 

 

 

 

 

연천역 급수탑은 인천에서 원산을 오가는 경원선 유일의 급수탑으로 일제 강점기인 1914년 그 중간지점인 연천에 세워졌습니다. 연천역 급수탑 완공시기를 어느 관광포털에서는 1919년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용산에서 원산까지의 경원선이 완공된 시기가 1914년이니 1914년이 맞는 정보일 것 같습니다. 상자형 급수탑이 먼저 지어지고 원통형 급수탑은 그 후에 설치되었다고 합니다.

 

 

 

 

 

[연천역 상자형 급수탑]
[연천역 원통형 급수탑]

석탄을 태워 물을 끓여 증기로 움직이는 증기기관차는 물이 없으면 꼼짝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증기기관차가 달리는 곳에는 기관차에 공급해줄 물을 저장해 놓는 급수탑이 반드시 설치되어 있어야 했습니다. 연천역 원통형 급수탑은 실제로 보면 엄청난 높이와 둘레로 최대 100톤까지 물을 저장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급수탑에는 급수관과 기계장치가 양호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고 하는데 내부를 볼 수는 없었습니다. 이곳은 입장료를 받고 들어오는 곳이 아니기에 부모를 동반하지 않은 동네 아이들이 이 안에서 놀다가 떨어질 수 있으니  문은 잠궈두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연천수레울아트홀 야경 / 역고드름 / 숭의전 제례]

연천은 경기도 최북단에 위치하였으며 북한의 장풍군과 접한 지역으로 위도상 38선 이북에 있기에 해방 이후 소련이 관리하던 지역이었습니다. 그래서 1950년 6.25 전쟁이 반발하기 전까지 이곳은 북한의 최남단이었기에 이 거대한 원통형 급수탑을 좌표로 삼아 미군이 무차별 폭격을 가하였기에 원통형 급수탑과 상자형 급수탑에는 총탄자국들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학곡리 고인돌 (백학면) / 구석기 축제, 전곡리 유적 (전곡읍) / 숭의전 (미산면) / 빙애여울 두루미 (중면)]
[한반도 지형 / 임진강 주상절리]

 

연천 근처에 가시면 연천역 급수탑은 한번 쯤 꼭 가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연천 임진강 주상절리

 

 

절리(節理)는 암석의 표면에 규칙적으로 발달하는 갈라진 틈(혹은 금)을 말합니다. 따라서 주상절리(柱狀節理)는 긴 다각형 기둥모양의 절리를 일컫는 말로 주로 현무암에서 많이 나타나는 지질현상입니다. ‘대부분의 주상절리는 바닷가에 나타나지만 이곳의 주상절리는 강 주변에서 볼 수 있어 국내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문 예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코로나 발생 이후에는 캠핑이 금지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제가 갔을 때는 정말 많은 차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물놀이를 즐기거나 캠핑을 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굳이 가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당포성

 

안내판 글씨가 작게 보여 그대로 옮겨봅니다.

당포성은 임진강과 당개나루터로 흘러드는 하천이 형성한 삼각형 모양의 절벽 위에 만들어진 고구려성이다. 강에 접해 있는 두 면은 절벽이기 때문에 별도의 성벽을 쌓지 않았으며 평지로 연결되어 적이 쉽게 공격할 수 있는 나머지 한 면(동쪽)에만 높고 견고한 성벽을 쌓아 내부를 성으로 사용하였다.

한강 유역에서 후퇴한 고구려는 6세기 중엽 이후 7세기 후반까지 약 120여년 동안 임진강을 남쪽 국경으로 삼았는데, 임진강 하류에서 상류 쪽으로 덕진산성, 호로고루, 당포성, 무등리 보루 등 10여 개의 고구려 성을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하였다. 당포성이 위치하고 있는 곳은 강이 크게 굽어 흐르면서 강물의 흐름이 느려져 쉽게 강을 건널 수 있는 여울목으로 양주 방면에서 북상하는 신라군이 임진강을 건너 개성으로 진입하는 길목에 해당하기 때문에 고구려의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당포성은 고구려시기에 처음 축조되었지만 신라가 점령한 후에는 성벽을 고쳐 쌓아 계속 사용하였다. 이 때문에 성 내부에서는 고구려 기와와 함께 신라 기와들이 많이 출토되었다. 

 

 

 

 

 

주차장에서 동벽까지 몇 분 정도는 걸어가야 합니다.

 

 

 

당포성 동벽 위에 서있는 한 그루 나무를 보니 쓸쓸함보다는 자신의 임무를 다하고자 하는 고구려 장수의 넋인 양 뿌리 깊게 박혀 어떠한 풍파에도 쓰러지지 않는 기개가 느껴집니다. 

 

 

 

 

 

중심 성벽이 받게 되는 하중을 분산시키기 위해 3단의 보축성벽을 쌓았습니다. 

성 밖의 저지대에는 너비 6m, 깊이 3m의 대형 해자를 파서 적이 쉽게 성벽을 오르지 못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성의 규모는 높이 6m, 폭 31m, 길이는 50m이고 노출된 성벽은 너비 15m, 높이 6.5m 정도라고 합니다. 

 

 

 

 

 

잡초처럼 무질서하게 자라난 야생화들이 질긴 생명력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습니다. 민초들의 삶과 같다고 해야 할까요?

 

 

 

 

나무 계단을 올라 홀로 당당히 서있는 인상적인 나무에 가까이 가봅니다. 무엇인가 뭉클함이 느껴졌습니다. 이 나무가 없었다면 저는 어쩌면 당포성에서는 별다른 감흥을 못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며 홀로 서있는 나무를 보니 영화 <세라핀>도 생각나네요.

 

 

 

동벽 위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봅니다. 물 위에 떠 있는 지저분한 것들이 많아 기분이 상쾌하지는 않습니다.

 

 

 

숲 속에 보이는 것들이 마치 동물처럼 보여 무엇일까 한참을 궁금해 했답니다. 나무를 깎아놓은 것인지 풍화작용에 의해 깎인 암석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연천 학곡리 고인돌

 

연천 학곡리 고인돌은 며칠 전 양구선사박물관 여행기에 소개해 드렸었죠. 역사학도가 아니라면 굳이 가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