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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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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국내여행기

2021. 1. 22.

 

 

 

오늘은 2019년에 다녀온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작품들을 복습해 봅니다. 감상은 작품의 내용과 상관 없는 지극히 제 개인적인 감상이 대부분입니다. 

 

 

 

 

[백남준 <다다익선>]

텔레비전 모니터 1003개로 만든 백남준의 그 유명한 비디오아트 <다다익선>이 제 기능을 못하고 어두운 기운만 내뿜고 있으니 많을 수록 좋다는 제목이 무색해 보였습니다.

 

 

 

 

1층 전시실에 드가의 <14살 어린 무용수>가 있는 작품이 독특해 보였습니다. 배경은 사진처럼 보였고 드가의 조각만 그린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작가의 이름과 작품명은 확인할 수가 없네요.

 

 

 

[드가 <14살 어린 무용수 (Small Dancer Aged 14), 파리 오르세 미술관]

이 사진은 제가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갔을 때 찍은 것입니다. 거의 같은 각도에서 찍은 것인데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은 드가의 조각만 그린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젊은 모색'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주최하는 한국 신진작가 발굴 프로그램이라고 합니다.

 

[정희민 <그의 촉촉한 입안에서 당신이 서있는 들판을 바라보았다>]

추상미술은 작가의 의도나 작품의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기에 저는 그저 색감이 밝으면 눈길이 가는 편입니다. 이 작품도  매력적인 작품이었는데 제목을 보아도 추측하기 어렵습니다. 제목이 저에게는 더 난해함을 안겨줍니다. 중앙의 커다란 원이 입인 걸까요? 촛농이 흘러내리는 듯한 느낌을 받기에 촉촉함보다는 축축함이 느껴집니다. 앞에 설치되어 있는 것은 제목의 들판을 표현한 것 같습니다.

 

 

 

 

[윤두현 <모하비 낮밤>(부분)]

검색을 해보니 작품명의 모하비는 ‘macOS 모하비’의 모하비로 컴퓨터 운영체계인 macOS가 제공하는 바탕화면 시리즈 중 애플의 15번째  macOS 운영체제라고 합니다. 컴퓨터 바탕화면의 사막이 미국 캘리포니아 주 ‘모하비’ 사막이기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상당히 큰 작품으로 작품 내용은 몰랐지만 경쾌하고 밝은 느낌이어서 기분을 즐겁게 해 준 작품이었습니다. 

 

 

 

 

[주세균 <Notional Flag>(부분)]

모래로 작업한 설치작업이니 들어가거나 밟지 않도록 주의해 달라는 글이 적혀 있습니다. 각국의 국기에 대해 잘 아시는 분은 눈치채셨겠지만 이 국기들은 각국의 국기의 디자인들을 뒤섞어 놓은 작품입니다. 그래서 제목이 <National Flag>가 아니라 <Notional Flag>인 것입니다. 

 

모래 위에 빠르게 그림을 그렸다가 재빨리 지우고 다시 다른 그림을 그리는 것은 TV를 통해 자주 보았는데 대부분 손으로 흑백의 모래만을 이용하여 작업하는 것이었는데 이렇듯 세밀하고 큰 작품을 색 모래를 사용하여 그리다니 놀랍기만 합니다. 저도 미대생이 그린 색 모래를 사용한 작품을 갖고 있지만 이렇게 큰 작품은 처음 보았습니다. 

영상에서 알 수 있듯 세계 각국의 국기 디자인을 먼저 평면 바닥에 그린 후, 그 위에 색 모래를 동일한 두께로 정교하게 쌓아 표현한 작품입니다. 

 

주세균 작가는 오랜 시간에 걸쳐 작업한 작품을 다 쓸어내 버리는 행위예술까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심오한 철학적 의미를 가득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김희원 <Someone's Candle> 32인치 LED 디스플레이, 4K 비디오, 2015]

요즘에는 이런 형식의 작품들을 자주 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불타고 있는 초가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고해상 카메라로 촬영된 극사실주의 영상으로 가상의 세계와 실재의 세계의 경계의 벽을 허무는 작품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조용히 응시하고 있는 중앙의 초가 언젠가는 소멸하듯 인간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직시해야 할 수밖에 없는 운명임을 암시하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임옥상 <6.25 전의 김씨 일가> 종이부조에 수묵채색, 1990]

종이부조로 입체감을 주고 10폭 병풍과 초가집을 배경으로 한 김씨 일가를 수묵으로 은은하게 채색하니 6.25 전의 분위기가 더욱 진하게 느껴집니다. 당시의 소박한 한복과 두루마기를 그대로 재현하였고 해방 후 어려운 시기였지만 높은 명도로 밝게 표현하여 희망을 암시하는 듯 하여 따뜻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나 제목이 <6.25 전의 김씨 일가>이듯 6.25 이후 김씨 일가는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는 암시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함을 낳게 하는 작품입니다.

 

[임옥상 <6.25 후의 김씨 일가> 종이부조에 수묵채색, 1990]

그러한 궁금증을 바로 옆에 나란히 전시되어 있는 <6.25 후의 김씨 일가>에서 답을 주고 있습니다. 분단의 아픔과 민족상잔의 비극을 재치있게 표현한 이 작품에서 열강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휘둘려야 하는 힘없는 나라의 슬픔이 더욱 진하게 느껴집니다.

 

 

 

 

 

[노상균 <끝> 캔버스에 시퀸, 1999]

미술작품이든 운동경기든 음악이든 미디어를 통해 보고 듣는 것과 직접 보고 듣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이 작품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시퀸은 빛을 받으면 반짝이는 성질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작품 앞에 서면 밝고 은은하게 빛나는 끝없이 이어지는 원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끝없는 우주로 팽창되어 나가는 것 같기도 하고 중심점이 도드라져 밖에서 안으로 원을 그리며 마침내 하나의 점에서 끝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정말 멋진 작품입니다. 노상균(1958 - ) 작가는 2000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었었다고 합니다.

 

 

 

 

[장리석 <그늘의 노인> 캔버스에 유채, 1958]

반가운 그림을 보았습니다. 1958년 국전 대통령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아쉽게도 빛이 너무 심하게 유리에 반사되어 사진을 제대로 담을 수 없었습니다. 앞의 그늘을 붉게 표현하였고 햇살이 내리쬐는 뒷 배경은 노란빛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우산은 살이 부러졌을 것 같이 낡아 보이고 소박한 한복에 조끼를 입고 흰 고무신을 신은 그 당시의 전형적인 시골 할아버지들의 모습입니다. 흰 수염에 희어진 머리, 깊게 패인 주름, 지나온 세월에 기력을 거의 빼앗겨 쏟아지는 잠을 못이기고 축 늘어진 어깨가 늙어감의 안타까움을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배경은 밝고 평화롭게 처리하여 고단함 속의 평온함도 동시에 느껴지는 멋진 작품입니다. 장리석 화백은 1919년 103세로 별세하셨습니다.

 

 

 

 

[윤명로 <바람 부는 날 MIX 1029> 린넨에 아크릴릭, 홍채, 2009-2010]

이 작품을 보는 순간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가 연상되었습니다. 설명을 읽어보니 역시나 겸재로부터 영감을 받아 그린 ‘겸재예찬’의 연작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보이지 않는 바람을 이미지화하여  겸재의 작품세계를 녹여낸 추상화인 것입니다. 

 

 

재료로 쓰인 홍채(紅彩)는 사전에는 안 나와 있고 영어 iridescence는 '무지개빛깔, (무지개빛깔로의) 변색현상'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홍채가 정확히 어떤 재료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빛의 반사에 의해 보는 각도에 따라 미묘하게 색이 변화하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을 많이 본 것 같아 찍은 것인데 작가와 작품명을 도저히 알 수가 없네요.

 

 

[하종현 <탄생-A> 캔버스에 유채, 실, 1967]

이 작품에서 샤머니즘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고 설명되어 있는데 제 개인적 감상은 익살스런 표정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처럼 보이기도 하고 반대로 시인 유치환의 <깃발> 속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방색의 색감만을 본다면 작품 설명처럼 무속적인 느낌도 들긴 하네요. 그런데 반원의 흰색과 노란색 때문에 삶은 달걀을 잘라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작품 감상은 보는 사람 마음 가는대로 즐겁게!

 

 

 

[서동진 <팔레트 속의 자화상> 나무 팔레트 상자에 유채, 1930년대]

자신이 사용하던 팔레트 덮개 안쪽에 자화상을 그린 작품입니다. 텅 빈 팔레트를 보니 극도의 빈곤으로 인해 돈이 없어 담뱃갑 속 은박지에 그림을 그려야 했던 이중섭이 떠오르네요.

 

 

 

[김기창 <모임> 화선지에 수묵담채, 1943]

운보 김기창(1913-2001)은 20세기 우리나라 화가 가운데 대중에게 가장 사랑받는 화가 중 한 분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지 않을까요? 청각장애로 인해 말씀도 어눌하였던 작가는 한국농아복지회를 창설하고 농아들을 위한 복지에도 힘쓰셨습니다. 그러나 친일행적이 이슈화되며 화가로서의 대중의 관심도 조금씩 식어갔던 것 같습니다. 세계적인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도 나치당원 전력 때문에 비판과 옹호가 엇갈리고 있지요. 어릴 적 곱디 고운 김기창의 그림들을 좋아했고, 한때 독일에 가서 카라얀이 지휘하는 차이코프스키 음악을 듣고 싶은 꿈을 꾸었었기에 묘한 감정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김환기 <새벽 #3> 캔버스에 유채, 1964-1965]

김환기(1913-1974)는 점화로 유명한 한국 추상미술의 제1세대 작가입니다. 그의 작품이 2016년 63억이 넘는 가격에 팔려 한국미술품 최고가를 경신하여 신문과 TV에서 크게 다루었었지요. 그래서 그림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분이라면 김환기 화백을 모르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그의 그림은 2019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132억에 가까운 액수에 낙찰되며 또다시 한국미술품 최고가를 경신하였습니다. 얼굴 없는 화가 뱅크시는 이러한 경이적인 액수로 거래되는 미술품 경매를 비웃으며 자신의 작품이 소더비 경매에서 고가에 낙찰되자마자 액자 뒤에 미리 설치된 파쇄기를 원격으로 조종하여 풍선을 든 예쁜 소녀의 그림을 가늘게 세로로 잘라버리는 퍼포먼스를 펼쳤었지요. 이렇듯 미술품 경매는 거대 자본가와 권력자들의 그들만의 리그이긴 하지만 스포츠와 영화, 음악, 미술 등 각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달주 <샘터> 캔버스에 유채, 1958]

이달주(1921-1962)의 <샘터>는 1960년 국전에서 특선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모딜리아니처럼 인물을 길게 늘려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그림의 질감과 소재에서 박수근의 작품과 비슷한 느낌을 받습니다. 젊은 세대에게는 낯설겠지만 이런 토속적인 분위기의 그림들을 많이 보며 자라온 나이 든 세대에게는 따스한 정감을 전해주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 멀리 초가 토담집과 머리에 무엇인가를 이고 걸어오는 여성이 있어 이 그림이 더욱 돋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왼쪽 여인은 똬리를 머리에 얹지도 않은 것 같은데 빨랫감이 든 커다란 무거운 양동이를 손으로 잡지도 않은 채 중심을 잘 잡고 있습니다. 그 옛날 어머니들의 모습을 되새겨보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진하게 느끼게 해주는 따스한 작품입니다.

 

 

 

 

 

[하인두 <자화상> 캔버스에 유채, 1957]

하인두(1930-1989)는 해방 후 제1세대 작가군에 속하는 작가로 한국적인 추상화를 실현하는데 선구자적 역할을 한 화가 중 한 분이라고 합니다. 강한 직선과 강렬한 원색을 사용하여 벽에 걸린 그림 한 점을 배경으로 팔로 얼굴을 감싸고 있는 작가의 모습을 표현한 이 작품에서 예술가로서의 처절한 고뇌가 느껴집니다. 

 

 

 

 

[빈센트 반 고흐 <슬픔>, 연필, 펜, 잉크로 드로잉, 1882]

하인두의 <자화상>을 보니 반 고흐의 그림이 연상됩니다.

 

 

 

 

 

[허백련 <유산해조도> 화선지에 수묵담채, 1959]

허백련(1891-1977)은 이름이 익히 잘 알려져 있는 남종화의 대가입니다. KBS의 '진품명품'에서도 작품이 소개되고 자주 이름이 거론되는 유명한 분이시죠. 

 

 

 

 

 

 

[천경자 <청춘의 문> 종이에 수묵채색, 1968]

동양화가인 천경자(1924-2015)는 우리나라 현대 여류화가 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진 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안타깝게도 말년에 <미인도> 위작 논란으로 '자신의 그림도 못 알아 보느냐'는 비판과 '내 작품을 내가 못 알아 보겠느냐'로 법적공방이 오랜 기간 계속되었죠.

<청춘의 문>은 무성영화시대의 은막의 여왕 '그레타 가르보'를 모델로 그린 작품입니다. 보자마자 그레타 가르보네라는 것을 금세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그녀의 특징이 그대로 잘 나타나 있습니다. 

최대한 유리에 반사되는 물체가 보이지 않도록 찍었는데 관람객들 모습이 반사되어 아쉽네요.

 

 

 

 

 

 

 

[박노수 <휴식> 화선지에 수묵담채, 1956]

박노수(1927-2013) 의 이 그림을 다시 볼 수 있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동양화의 여백의 미를 살리며 수묵담채로 흐르는 듯한 굵은 선으로 화장을 하고 담배를 피는 서양인들을 모델로 하여 간결하게 그린 이 그림이 왠지 어려서부터 무척이나 좋았답니다.

 

 

 

 

 

[박래현 <노점> 화선지에 수묵채색, 1956]

1956년 국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여 익히 눈에 익은 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남편인 김기창과 함께 6.25 전쟁 당시 친정인 군산에서 피난생활을 할 때 그린 작품입니다. 20대 때 볼 때는 유명한 그림이라는 것에 대한 선입견 때문이었는지 못 느꼈는데 지금 보니 그 당시 군산에 저런 높은 건물이 있었나 하는 의문이 듭니다. 저만 그렇게 보이는 것이지 모르겠지만 허름한 판자 건물처럼 보이지 않고 시멘트 건물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전쟁 중인데도 건물들과 거리도 깨끗하고 검은 피부의 인물들은 두툼한 입술과 코 때문에 아프리카 여성처럼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고단한 여인들의 삶을 표현한 것이라는 설명에 납득되지 않습니다. 서양식 옷을 입은 여성들은 이목구비가 있는데 저 뒤에 한복을 입은 사람들은 이목구비도 없습니다. 작가의 어떤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왼쪽 여성은 옥수수를 가득 담은 커다란 광주리를 들고 있습니다. 한국전쟁 원조식량이 옥수수죽이었음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권진규 <마두(馬頭)>, 김정숙 <누워있는 여인>, 백문기 <L 부인의 초상>, 최의순 <수난자의 머리>, 김세중 <토르소>, 김종영 <가족, 작품 65-7>]

권진규(1922-1973)의 <마두>도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한국 현대조각의 거장이지만 그의 작품 700여 점에 대한 반환소송으로 춘천 옥광산 업체 대일광업과 유족 간의 오랜 법정다툼이 진행돼 왔었죠. 유족의 승소로 마무리되어 대일광업에 의해 대부업체 창고에 담보로 잡혀있던 권진규의 작품들이 온전히 서울시립박물관에 기증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백문기(1917-2018)의 <L 부인의 초상>은 제1회 국전에서 특선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뒷줄의 갸름한 얼굴의 앞가르마를 한 청동조각상입니다.

 

김정숙(1917-1991)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 조각가라고 합니다. <누워 있는 여인>은 풍만한 몸매의 관능미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김세중(1928-1986)은 광화문의 충무공 이순신장군상으로 유명한 조각가입니다. 노천명, 이해인과 함께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여류 시인인 김남조의 남편이기도 합니다. 제가 갖고 있는 시집을 보니 1984년 애송 시인 조사에서 1위가 윤동주, 2위가 김남조였네요. 

 

 

 

 

 

 

가족 중 몇 분은 미술관에 들어가지 않고 미술관 앞 이곳 연못에서 기다리고 계셔서 조급한 마음으로 작품들을 감상해야 했답니다. 

 

 

[김혜원 <평화로 잇는 미소>, 1988]

이곳에서 새언니가 싸온 유부초밥과 과일도 맛있게 나눠 먹으며 물속에서 유영하는 잉어들도 구경하고 즐거운 한때를 보내기에 좋은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물 위에 부유물이 많아 지저분했습니다.

 

 

 

 

 

 

조각공원

[왼쪽 뒤 : 곽인식 <끝없는> / 왼쪽 앞 : 최만린 <태>]
[니주마 미노루 <성>]
[조성묵 <돌들의 축제>]

 

[다나베 미쓰아끼 <서울, 벼, 열전도>]

 

[김경옥 <평화 - 99>]

 

[김정숙 <아치 날개> 이승택 <무제 마이산에서>]

 

[최기원 <위대한 탄생> / 백현목 <발아>]

주차장을 향해 빠르게 걸음을 옮기며 조각 작품들을 곁눈질해봅니다.

 

 

 

 

[서울대공원 장미축제]

장미축제도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들어가 보았는데 끝 무렵이어서인지 예전의 장미축제에 비해 풍성함과 화려함이 많이 부족했습니다.

 

 

꽃길과 TV 조각 작품이 있으니 산책하는 기쁨이 배가 되었습니다. 

 

 

 

여러 번 서울대공원에 왔었는데도 이 경치가 왜 눈에 안 들어왔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서울대공원과 과천국립현대미술관은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다양함이 가득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