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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산문 [여행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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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함께하는 산책/국내서적

2021. 1. 29.

 

 

여행의 이유

지은이 : 김영하

펴낸곳 : ㈜문학동네

214쪽

 

 

이 책이 출판되었을 때부터 읽고 싶었던 책이었지만 이제야 손에 잡게 되었다. 많은 지적지식을 포함하고 있으면서도 작고 얇은 부피의 책이어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어 더욱 좋았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글재주가 없고, 글재주가 있는 사람은 말솜씨가 없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작가 김영하는 글과 말 모두 재주를 타고 난 것 같다. 그런 재능을 가진 작가가 여행을 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여행에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 그는 “여행이 내 인생이었고, 인생이 곧 여행이었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여행을 시작할 때 마음이 편해지는 부류이기에 그는 여행을 선택이 아닌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책은 제목이 말해주듯 작가가 여행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현재까지도 여행을 즐기며 여행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서술한 산문집이다. 그래서 여행지에 대한 정보나 작가의 느낌은 배제되어 있다. 대신 독자에게 ‘당신은 왜 여행을 하였고, 여행을 하고자 합니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책이다.

 

나는 “여행이란 무엇을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버리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라는 말을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는 글귀이다. 다양하고 넓은 세계를 경험하며 턱없는 욕심과 쓸데없는 걱정들을 버리라는 뜻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가는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인용하였다.

“실뱅 테송은 『여행의 기쁨』에서 괴테를 인용하면서 ‘여행을 할 때 나는 언제나 가능한 한, 모든 것을 낚아챈다’라고 말한다. 이어서 그는 ‘여행은 여행자가 외부 세계에 감행하는 습격이며, 여행자는 언젠가 노획물을 잔뜩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약탈자다’라고 덧붙인다.”

 

이렇듯 여행을 하는 이유는 각자 다 다를 것이다.

김영하 작가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행은 우리를 오직 현재에만 머물게 하고, 일상의 근심과 후회, 미련으로부터 해방”시키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말에 나도 전적으로 동감한다. 해외 여행에서는 '오직 현재에 살라'는 현자들의 지침을 의도하지 않아도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얼마 전 읽었던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산책』을 읽으며 여행을 상당히 즉흥적으로 하는 이유가 글을 쓰기 위함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이 책에서 작가가 해답을 주고 있다. 치밀한 계획을 세운 작가의 여행은 나중에 쓸 소재가 없고, 실패담이 별로 없기에 글로서의 재미를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도 여행안내서가 아닌 전문여행기를 쓰려면 작가의 여행은 보다 많은 글의 소재를 얻기 위해 의도적인 무계획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해외 배낭여행의 경우 철저한 계획을 세우고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꼼꼼하게 계획을 세우고 배낭여행을 해도 예기치 못한 상황은 늘 발생하고,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까지 계획을 세우고 가는 것은 아니기에 뜻밖의 일들은 항상 일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계획 없이 해외 배낭여행을 하게 되면 제한된 여행기간 동안 우왕좌왕하느라 쓸데없이 낭비되는 시간이 너무 많아 질 것이 분명하다. 물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 경제적 풍요로움이 있다면 특별한 계획이 필요 없겠지만...

그런데 문득 여행 작가는 여행 후의 작업을 염두에 두고 여행을 떠나야하기에 때로는 여행이 스트레스가 되지는 않는지 궁금해진다.

 

김영하 작가는 ‘그 많은 여행 중에서 가장 이상했던 여행’은 ‘2017년과 2018년에 걸쳐 방영된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라는 TV프로그램과 관련한 일련의 여행들일 것’이라고 한다. 출연자들의 지식과 경험을 배경삼아 시청자는 집에서 별다른 수고로움 없이 구석구석을 흥미 있게 여행할 수 있었던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면서 출연자들에게는 시청자들의 비평과 화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도 의식해야 하는 저당 잡힌 자유 속에 여행 아닌 여행을 했던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제작진들의 고충도 자세히 언급하였는데 여행의 낭만과 즐거움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고난의 행군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로인해 제작진들은 시청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시청률과 화제성으로, 유명 인사들은 더욱더 이름을 날릴 수 있는 기회로 보상을 받았으니 시청자뿐 아니라 모두에게 즐겁고 의미 있는 여행으로 기억되리라 생각한다.

 

이 책에서 반가운 이름도 만날 수 있었다. 바로 김찬삼 여행가이다. 작가는 김찬삼 여행기에서 기억에 남는 것으로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운해’라는 사진을 꼽았다. 그래서 작가도 처음 비행기를 타게 되었을 때 가장 기대했던 것이 바로 ‘구름의 바다’였다고 한다.

나도 첫 유럽여행에서 로마행 비행기 창문을 통해 끝없이 펼쳐진 환상적인 ‘구름의 바다’를 보고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 신비로움이란 말로 형용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그 이후 새하얀 구름으로 뒤덮인 멋진 세계를 다시 보기 위해 창가좌석을 고집했지만 그런 행운은 다시 못 만나고 있다. 여행자라면 꼭 한 번쯤은 구름이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예술세계를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

 

작가는 “이델베르트 폰 샤미소의 소설 『그림자를 판 사나이』를 읽지 않은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사실 나는 이 소설을 읽은 기억이 없다. 제목조차 처음 들은 것 같다. 이 기회에 한번 읽어봐야겠다. 하지만 <그림자를 판 사나이>라는 제목으로 인해 까맣게 잊고 있었던 소설 제임스 크뤼스의 <팔아버린 웃음>을 생각나게 하였다. 아주 오래 전에 읽은 책이라 제목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지 검색을 해보니 현재 <팀 탈러, 팔아버린 웃음>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고 있다.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또한 이 책에서 미처 몰랐던 구글 아트앤컬처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나는 주로 Olga’s Gallery에서 미술작품들을 검색하였는데 이제 이 웹사이트도 많이 애용해야겠다.

 

카프카의 관점, 카프카의 카오스, 오디세우스의 변화를 통해 호메로스가 전하는 여행자가 지녀야 할 바람직한 태도, 르몽드·버거킹·카를슈타트 백화점 등의 주주인 억만장자 니콜라 베르그뤼앙과 숙박공유업체 에어비앤비의 창업자 브라이언 체스키의 생활방식, 베이징 대학생 기숙사에서 느꼈던 사회주의 국가 엘리트들의 인식, 작가로 산다는 것, 인종차별에 근거한 흑인에 대한 칭찬, 작가가 호텔을 좋아하는 이유와 영화 <사랑의 블랙홀>, <리더스 다이제스트>, 중국의 고대 병법서 <36계>, 입국 심사관이 간혹 '안녕하세요?'라고 서툰 한국어로 인사를 건네는 이유, 여행자에게 너무 큰 관심을 갖는 현지인을 조심하라는 조언 등 적은 부피의 책이지만 알찬 지식과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담겨있는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