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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고흐를 좋아하시나요? -오르세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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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기/프랑스

2005. 9. 7.

 

 

오늘 우연히 supermaket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과자케이스를 발견하였다.

그 상품이 출시된지는 벌써 몇달은 된 것 같은데 나는 이제서야 고흐의 그림과 만나게 된 것이다.

밀레의 그림은 본 적이 있기에 아마도 뒤에 숨겨져 있었던가 보다. 

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흐의 '정오의 휴식(낮잠)'과 '라 크로의 수확풍경'이

그려져 있는 과자를 cart안에 넣었다. 고흐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값비싼 머그(잔)을

사 놓고 바라보기만 해도 흐믓해 할 정도로 고흐를 사랑하는 내 친구가 생각났다.

 

이렇듯 고흐의 그림에 매료되어 있는 분들은 꼭 한 번 프랑스의 

'오르세 미술관(Musee de Orsay)을 방문해 보라고

적극 권하고 싶다. 사진으로만 보던 고흐의 그림과 난생 처음

직접 마주했을 때의 그 놀라움의 순간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색감의 신비로움과 강한 붓의 터치

그리고 고흐의 남다른 광기에 가까운 열정적인 삶의 기운이

그의 그림으로부터 뿜어져 나와 내 눈의 동공을 넓히고 심장이

두근거리게하여 저절로 입을 벌려 탄성을 지르게 하는 듯하였다.

 

어릴 적 '달과 6펜스'를 읽었을 때는 고흐보다는 고갱이 더 마음에 다가왔으나

그 후 Don Mclean의 'Vincent'를 좋아하게 되고

고흐에 관한 여러 책들을 읽으며 그의 작품의 진가를 좀 더 깊이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직접 고흐의 그림을 접하고 나니

아! 이래서 많은 사람들이 고흐의 그림을 좋아하는 것이구나! 라고 

비로소 경험을 통해 그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오르세미술관 : 파리에서 사온 엽서사진

 

 

세느강가에 자리하고 있는 오르세미술관은 파리 오르세역을 개축하여

만들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고 훌륭한 미술관이었다.

전시된 작품들도 우리들에게 아주 친숙한 인상파회화와

19세기 미술작품들로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걸작들이었다.

더욱이 천장이 유리로 되어 있어 자연광이 미술관 안으로 그대로

들어오도록 설계되어 있어 전시된 그림들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하였다.

 

 

 

 

               

 

 사진출처 : Unknown

 

미술작품 못지않게 철도역이었을 때 있었던 커~다랗고 우아한 시계가 유리벽면 높이

아치모양의 유리로 된 천장과 멋드러진 조화를 이루며 그대로 걸려져 있었다.

기차역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며 예술과의 만남을 시도한

프랑스의 예술적 감각에 다시 한번 경탄을 금치 못하게 하는 곳이었다.

 

 

 

 

      

 

 

 

전시 방법 : 1848~1914년까지 시대순으로 전시

 

감상 순서 : 1층 전시장 부터 감상한다.  [앵그르, 들라크르와, 밀레, 루소, 쿠르베, 드가, 마네,

                                  모네, 르느와르 등의 방이 있음] 

                 다음 1층 전시장 끝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간다.

                                 [고흐, 루소, 고갱, 쇠라, 시냑, 로트렉 등]

                 마지막 코스인 2층으로 내려간다.

                                 [19세기 말 살롱 회화와 자연주의, 상징주의, 보나르, 드니, 발로통 및

                                   로댕, 부르델, 마이욜 등의 조각 그리고 아르 누보 가구들] 

 

 

시간     : 화,수,금 10:00 - 18:00  / 목요일 10:00 - 21:45

           일요일 9:00 - 18:00

           (6월 20일~9월 20일 - 오전 9시 개관)

 

Close    : 월요일

사진촬영 : 플래쉬 없이 가능

위치     : 12호선 Solferino역, RER C선 Musee d'Orsay역 하차

기타          :  무료로 유모차 대여

 

 


       

 

 

 

 

Vincent Van Gogh의 일생

1853년 5월 30일 네덜란드에서 가난한 목사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기 일년전 같은 이름을 지어 준 형이 태어났으나 

곧 죽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날도 5월 30일이었다. 이렇게 운명의 장난처럼 그는 세상을 떠난 그의 형 이름 빈센트 반 고흐라는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게 되었다. 이로인해 그는 항상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에 대해 매우 혼란스러워했다.

 

1880년 27세에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기 이전 그는 미술상 점원, 학교 교원, 서점 점원, 신학교 입학, 갱부들과의

고생스러운 생활 등 여러 곳을 전전하는 방황과 계속되는 실패로 가난과 절망에 빠져 들게된다. 그때 형에게 실망해 편지를

완전히 끊어버렸던 화상(畵商)으로 성공한 동생 테오가 1881년 보리나쥬로 형을 찾아왔다. 테오는 1년 전 여름 화가가 될 것을

결심하고 데상 공부를 시작했던 형 빈센트가 그려 온 스케치들을 보고 후원자가 될 것을 결심한다. 그러나 고흐는 살아 생전에

단 한 점의 그림을 팔았을 뿐 화가로서도 성공을 거두지 못하여 궁핍한 생활을 해야했다. 이러한 불운한 천재 화가 고흐에게

동생 테오는 그가 숨을 거두기 전까지 그의 절대적 정신적, 경제적 후원자 역할을 해 주었다.

 

1884년 31세에는 유화를 많이 그렸고 1885년에는 농민들의 인물 습작에 몰두했다. 1986년 신경과민 증세가 점점 심해지자

그해 3월 파리로 가서 테오와 함께 지내며 로트렉, 모네, 샤슬리, 피사로, 드가, 르노아르, 들라크로아, 고갱 등 당시 유명한

화가들과 사귀었다. 1987년 인상파 화가들과 많이 사귀었으며 음주와 퇴폐적인 생활로 건강을 해쳤다. 1886년에서 1888년

3년간의 파리시절 2백여점의 유채를 그렸다. 1888년 2월, 파리를 떠나 아를르로 가 노란 색의 집을 빌어서 거주하며 작품에

정열을 쏟으며 190여점의 유채를 그렸다. 고흐 하면 <해바라기>, <해바라기>하면 고흐를 떠올릴 정도로 그는 해바라기를 즐겨

그렸는데 그의 10년이란 짧은 화가로서의 인생 중 자살하기 불과 3년전 1888년에야 그를 대표하는 <해바라기>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프랑스 로오느 강변 아를르 마을에서 탄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해 10월 고갱이 아를르에 와서 공동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고갱은 늘 고흐의 그림을 비판했다. 고흐는 이에 매우 감정이

상해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고갱이 고흐가 그린 자화상을 보고 또 다시 왼쪽 귀를 잘못 그렸다고 비판하였다. 그러자 고흐는

자신의 왼쪽 귀를 도려내어 자신이 그린 자화상의 귀에다 대고 고갱에게 꼭 같지 않느냐고 소리쳤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이듬해 1889년 5월 생 레미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 병원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지내며 1년간의 생 레미 시절

150여점의 작품을 그렸다. 이듬해 동생 테오가 파리의 교외 오베르로 데려갔다. 7월 27일 또 다시 발작증세가 일어나 심장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방아쇠를 당길 때 손이 떨려서 탄환이 훨씬 옆으로 빗나가 이틀 뒤인 7월 29일에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나이 겨우 37세였다. 이 3개월의 짧은 오베르 시절 동안 놀랍게도 80여점의 유채를 그렸다. 마지막까지 동시대의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한 채 불행한 인생의 막을 내렸지만 그의 인생은 결코 헛되지 않았던 것이다....

 

형의 죽음을 접한 테오도 10월 정신 착란을 일으켜 1891년 1월 우트레히트에 묻혔으나 얼마 후 테오의 유해를 오베르로 옮겨

그의 형 곁에 나란히 묻히게 된다.

 

      ** 자료 참조 : 어빙스톤의 <빈센트, 빈센트, 빈센트 반 고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