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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샤안 아빠 2013. 2. 1.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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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시 갖은고초를 당하며 전란을 겪은  광해군은 선조의 두째 아들로 태어났다 .

그가 3 세때 그의 어머니인 공빈 김씨가 죽었고 임진란때 얼떨결에 세자로 책봉 된것이다  


선조가 죽고 왕으로 등극한 그는 정치다운 정치를 한번 하겠 다고 마음 먹고 

임진 왜란으로 피폐한 정국을 바로 잡아 보려 했다. 
어느편에도 쏠리지 않는 이원익을 영의정으로 임명하는 한편 ,

다 타버린 궁궐도 새로 복원하려고 애를 썼다.


대동법을 실시 민생도 구제 해보려 하였다. 
하지만 왕권을 유지 하기 위해서 왕위 방해를 했던 영의정 유영경을 비롯하여 왕권의 위협 대상인 임해군을 죽였고 영창대군도 무자비하게 죽였다.

계모 인목 대비도 덕수궁에 유폐 시키는등 권력을 강화하기위한 각종 시책을 강화하였다  

 

광해군은  대외적으로도 중국의 명나라와 관계도 좋지 않았다 .

이유는 세자 책봉 관계에서 광해군이 장남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명나라가 반대 한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광해군에게는 위로 두 형이 있었는데 

인목 왕후에게서 낳은 영창대군과 공빈김씨 에게서 낳은 임해군이 있었다 .


명나라는 임금으로 책정된 후에도 

조선의 세자 책봉 진상 이라는 명목으로 내정을 간섭하려 했기 때문에 

임금은 명나라를 좋아 할턱이 없었던것이다 . 

임금은 이런 이유때문에 그의 왕위 계승을 방해 했던 소북파를 싫어 했다


.그들은 명나라를 사대(事大)하여 떠받들어야 한다고 주장 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였다.



광해군은 명나라가 싫었기때문에  

소북파들과 자연히 거리를 두게 되었고 이를 이용하려는 대북파들이 광해군을 꼬득이었다.


소북파들은 권력을 장악 하기 위하려 했고 광해군은  위태한 왕권을 유지 하기 위하여 대북파들과 서로 손을 잡는 꼴이었다.


대북파의 정인홍.이언적이 왕이 추진하려던 이황의 문묘 종사를 강력 반대하자 화가난 광해군이 유생들을 성균관에서 모두 퇴출시키는 일을 강행하였다.


자연히 유생들과 임금사이도 이렇게하여 좋아질리가 없었다.


대북파의 전횡을 반대한 소북파들중 100명을 역모로 몰아 죽이는 사건도 이때 일어난 사건이었다



.또 그는 인조의 아우인 능창군을 왕으로 추대한다는 소문을 듣고 능창군을 강화도에 유배 보내 뜨거운 온돌방에 문을 걸어잠거 타죽게 만들어 죽이었을 뿐만 아니라 인목대비 폐모론을 반대한 임진왜란시 원로 대신 이항복뿐만 아니라 기자헌등 기라성 같은 석학들도 귀양을 보낸다 



광해군은  내부적으로는 이렇게 정적에 대한 탄압과 패륜 행위를 서슴치 않는 반면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정책으로 이를 덮어보려 하였다 


그래서 그는 선혜청이 라는것을 만들었고 대동법을 실시하여 그동안 난맥상을 이루던 세금도 경감 시켰으며 농지의 양전 정책을 써서 농토를 더 넓히게하는 정책도 썼다.또 불타 버린 창덕궁도 복원 하는등 그럴싸한 정책을 펴 나갔다.


대외적으로 명나라와 사이가 나뻣다는 것은 앞서서도 서술 했지만 

공교롭게도 중국 동 북부인 만주에 여진족 계열의 후금이란 나라가 명나라에 반기를 들고 일어났다.


 명나라는 조선의 임짐 왜란에 많은 군대를 보내 전투에 지쳐 있었기 때문에 

후금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명나라는 재조지은의 명분을 내세워 임진왜란의 은혜를 갚으라고 요구하며  후금과 싸울 군대를 파병 해줄 것을 요구했다


광해군은  군대 지원을 요청하면 하였지  은혜를 갚으라는 말에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명나라  파병요청을 놓고  광해군은 고민 하지 않을수 없었다

 

중북 동북 3성에서 새로 일어난  후금은  보통강력한  세력이 아니었다

{후금은 옜 백재의 후손이 새운 나라이다]


이를테면 명나라는  지는 해요  후금이라는 나라는 떠오르는 아침해였다

명분을 쫓자니 파병을 해야겠고  실리를 쫓자니 파병을 해서는 않되기 때문이었다


할수없이 강홍립에게 조선군 1만 군을 명나라에 보내었다 .

 

그러나 명나라는 쇠퇴해가는 국가 인지라 보기 좋게 후금에게 패하고 만다 .


광해군은 

 조선군 사령관 강홍립에게 명나라를 위해 싸우는척 하다가 후금에 항복하라는 실리를 택하였다 

 
평소에 품었던 명나라에 대한 적대감을 들어낸것이다. 

광해군은  또 엉뚱한 계획 까지 세우고 있었으니 

임진왜란으로 민심이 소란한 틈을 타 조선 왕국이 정씨 나라로 바뀐다는 소문이 퍼지고있다는 명분을 내세워 서울을 아예 개성과 가차운 파주로 천도 하겠다고 주장을 했다,


그러나 겉으로는 민심 수습 때문 이라지만 속셈은 왕권을 위협하는 모든 세력으로부터 해방 되고 싶은 생각이 앞서 있었다 .


광해군은 서울의 유생들과 능창군, 영창대군, 생각만해도 넌더리가 났다 .

더구나 당파싸움으로 얼룩진 서울을 떠남으로서 자기 혼자만의 세상을 구축하고 싶었던것이다 

경기도 파주 땅은 서울 도성 옮기기에는 아주 적지 였다.


파주 교하는 위치적으로 보아 임진강을 끼고있어 물사정이 어려움이 없고 인근의 대 평야가있어 식량 확보가 쉬울 뿐만 아니라 조선의 한중간 위치에 있어 교통이 사통 팔달이었다.


게다가 중국이나 다른나라에 해상교통이 편리하여 최적지였다.

그리고 주위에는 산이 낮아 산성 수축도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천도 계획은 막대한 돈이 필요했다 .


임진왜란으로 어려워진 살림에 왕의 야망을 위하여 나라의 운명을 건 천도란,,

 허무맹랑한 도박 계획이 될줄은 왕 스스로도 몰랐을것이다


국가의 운명을건 천도를 함부로 거론한 왕도 문제 였지만 나라가 시끄러운때 어느것이 먼저이고 후인지를 생각치 않고 무모한 정책을 따른 조정 대신들도 문제가 아닐수 없었다.


어쨋든 이 계획은 명나라의 원군 파견과 피폐한 민생 문제가 불거지면서 결국 시행 되지 못하고 성을 쌓기 위하여 동원된 백성들의 원망만 높아지는 결과만 낳고 중지하고 말았다. 

광해군 같이 뛰던 대북파들은 왕이 엉뚱한 생각을 제지 하기는 커녕 저희들 권력 유지를 위해 왕이 하는일을 무엇이든지 부축이는 반면 많은 정적을 제거하는데 이용한것이었다. 


광해군의  이러한  행동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 턱이없었다.

바로 능양군이 대표적 인물이었다



능양군은 왕의 배다른  능창군의 형으로 광해군에 의하여 무참하게 죽은 항상 동생을 안타까워 했다.

능양군은 광해군에 의하여 벼슬길에서 밀려난 서인 출신의 이귀,김자점, 김류,최명길, 이괄등이 능양군과 자주 접촉을 갖기 시작 한것이다

 

 

평산 부사로 있던 이귀는 불만이 많았다 .항상 변방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귀가 서울 한양에 나타나면 으례 이괄을 찾았다 두 사람은 모두 비슷한 처지의 서인 이었기 때문 이었다 



" 이번에 함경도 병마사로 제수 되었다며 ? 축하 하네...."


"아니 이사람 사람을 놀리나 ? 함경도로 가라는것은 북방 오랑캐와 싸우다 죽으라는것과 마찬 가지인데 뭐가 축하 할일인가 ?" 


이괄은 함경도 병마사 제수를 받고 못 마땅 하였다 . 
이귀도 마찬가지였다 .서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중앙에서 벼슬 한번 못하고 변두리로만 돌아 다니는 것이 못내 못마땅 하였던 것이다 . 


"요사이 왕이 소북파 놈들의 품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양이야"


"이사람 , 왕이 무언가 , 그런 인간이 왕 자격이 있는 자인가? 능창군을 무참히 죽이고 임진 왜란 때 그렇게 같이 고생한 임해군 까지 죽인것은 좋은데 인목 대비 까지 폐위시킨 패륜아를 보고 왕이라 할수있나?" 
"그럼 무어라고 불러야 옳은가 ?"


"광해군이지 ...나는 왕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아 " 
"하지만 왕은 왕 아닌가?" 
"생각 해보게 선조께서는 인빈 김씨 소생인 신성군을 세자로 책정하려고 했잖았나?" 
"그랬었지..." 
"그굘?신성군 이야 말로 왕 재목 이었는데 신성군이 단순히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광해군을 추천한 정인홍. 이이첨등 때문에 이런결과를 가져 왔지 ..."


"그래도 광해군이 최근 좋은 정책을 많이 내놓고는 있지 않은가?" 
이귀의 말에 이괄이 목청을 높인다 , 


" 허허 자네는 그게 탈이야 .광해군이란 인물이 어떤 사람인가 ?

 인목대비가 낳은 영창대군이 분명히 적출인데 엉뚱하게 이이첨이 놈들 때문에 엉뚱하게 임금이 된것아닌가? 
광해군이 무엇이 그리 대단한 인물인가? 

전쟁 중에 임금 주위에 붙어서 쫓아 다니기만 했지 뭐가 똑똑해 ? 임해군이 난폭 하다고 평들 하지만 그분이야 말로 의리있는 분이야 그런분을 죽이고...."


"내말은 그런 말이 아니고 최근 좋은 정책을 내 놓는 것이 범상치 않다는 얘기지...." 
"그게 무언가?" 
"창덕궁도 복원하고 대동법을 실시하고..." 
이괄은 말을 끊었다


"자네 말 알아 듣겠어 ...그런 정책은 누구라고 못하겠나 . 그만두게" 
이괄이 몹시 기분이 상한 모양이었다 
"....." 
두사람은 잠시 침묵이 흘렀다 .먼저 이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요사이 한양을 파주로 옮긴다고 백성들을 차출하여 원망이 자자한데 알고 있나?" 
이괄은 알고 있다는 듯이 
"천도는 무슨 천도야 ? 이 한양 같이 더 좋은데가 어디있다고 .... 듣기에는 정감록에 정씨 왕국이 계룡산에 들어선다고 들어선다고 하는 풍문 때문에 그렇다고 하는데 그것은 핑계고 광해군이 자기 독자적 왕국을 만들어 보겠다는 속셈이지 ...

 

임진 정유 왜란으로 나라가 온통 피폐 되어있는데 그 많은 돈을 어떻게 조달하려고 어디다 한양을 옮긴다는 엉뚱한 발상을 하고있나?...말도 안되는 소리야 " 
두사람은 왕의 최근 행적을 몹시 못 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이괄이먼저 의미 심장한 말을 꺼냈다 
"이장군 , 광해군 같이 나라를 뒤흔드는 패륜아는 제거 해야 하지 않겠나?" 
"....."


이귀도 이괄의 단도직입적 말에 잠시 당황하였다 
"군사를 동원해야 하는데 함부로 쓰지 못하게 조정에서 하는 통에 군대 동원이 쉽지 않네...." 
"이런.....쯧쯧 훈련 한다고 하면 될것 아냐?" 
"그것도 함부로 못하게 정인홍과 이이첨이 광해군에게 부축이고 있어서 어려워..." 
"자네는 무슨 일이든지 하나 밖에 몰라 ..자네 눈이 왜 두개가 있나 ? 다른 방법이있지..."


"뭔데..." 
"자네가 부임한 평산에는 최근에도 호랑이가 출몰 한다며?..." 
"그렇지..." 
"그것을 이용하는거야" 
이때 평산에는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여 백성들이 두려움에 떨고있었다. 
"기왕에 한양에 왔으니 범사냥을 하는 군사들이 평안도고 황해도고 구분없이 무장 한채로 활동 가능 하도록 해달라고 왕에게 상소를 하는거야 ,그러면 광해군이 그것 까지 못하게 할수 없지...." 
이귀가 무장병들을 동원 도성 진입을 위한 초석이었다 .이귀는 그날 이괄의 집에 머물면서 왕에게 상소문을 작성하였다. 
이괄은 강계 부사로 있다가 대간의 탄핵으로 정계에서 쫓겨난 김류까지 불러 세명이 밤새워 술잔을 기울이며 광해군을 몰아낼 방법을 모의 하고있었다.


세사람은 능양군을 찾아가 거사 계획을 모의 했다 . 1623년 3월 13일 새벽을 거사일로 정하고 계획 대로 하루 전인 12일에 홍제원에 군사들을 집결시켰는데 겨우 700 여명밖에 안되어 군사 동원이라고는 할수 없는 병력이었다 . 
그런데 수상히 여긴 훈련 도감 이확이 이를 눈치 채고 이들을 검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무엇이라고?" 
훈련도감이 자기를 체포 하려 온다는 말에 이귀는 급히 서둘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거사 시간을 앞 당긴것이었다

반란군 선봉장을 맏기로 했던 김류가 늦장을 부리자 이귀가 이괄에게 선봉장을 맡아 줄것을 요청 했다. 
"아무래도 김류 태도가 분명치 않소이다.포졸들이 우리를 체포 하러 오고 있다는데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 만 있을겁니까? 장군께서 선봉장을 맡아 주시지요" 
"그렇지 않아도 김류의 태도가 불안 했더만 역시.....내가 맡겠소 "

이괄은 병사들을 이끌고 창의문 쪽으로 나갔다. 
김류는 반역을 할경우 당할 생각을 하고 고민 하다가 뒤 늦게 이괄군이 창의문으로 나가고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뒤늦게 부랴 부랴 그쪽으로 나갔다 
이괄이 700 명의군사를 이끌고 나가다 일단의 군사들을 만났다 
"이놈들 너희들은 누구냐?" 
이괄이 소리치었다 
김류가 나섰다 
"장군 ,소장입니다 거사 일이 내일 이라 준비중에 있다가 좀 늦었습니다 " 
하고 읍한다


이괄은 금방이라도 김류를 내려 칠것 같은 기세로 김류를 노려 보자 이귀가 귓속 말로 만류한다 .이괄은 흥분을 가라 않히고 당초 계획 대로 김류에게 선봉대장을 맡게 했다 . 
창의문 앞에 도착하니 문이 닫혀 있었다 .안에서는 밖의 동정을 살피는지 조용 하기만 하였다 . 
"창의문 공격하여 문을 열도록 하라 " 
김류의 명령이 떨어 지자 용감한 병사 여러 명이 성위를 기어 올랐다


그러나 성 안에서는 반격이 없었고 성문은 열리어 있었다 
성문 저 쪽에서 일단의 군사 들이 문쪽을 향하여 닥아왔다 
맨 앞에 말위에 탄 능양군이 나타나며 그들을 맞이하였다


창의문 산속에 매복된 군사를 지휘하고 있던 훈련도감 이확은 이광경을 보고 차마 공격 명령을 못내리고 망서린다 .능양군과 이괄을 보니 겁이 더럭 났던것이다. 
능양군과 이괄 이귀 김류 반란군은 아무런 저항 없이 궁궐을 향하여 나갔다 . 이귀가 
"훈련대장 이홍립이 궁궐 주변에 군사들을 배치하고 있다는데 일전을 불사해야 겠습니다 " 
하고 능양군에게 말하자 능양군은 여유만만 하게 
"걱정마오 내가 이미 이홍립에게 말해 두었으니 싸울 필요가 없오이다. 지금쯤 궁궐문은 열려 있을것이오" 
한다


반란군이 궁월문을 들어서자 기다렸다는듯이 훈련대장이 능양군을 따른다 . 
순식간에 인정전을 지나 창덕궁으로 내달았다 . 
왕은 밖이시끄러워지자 도승지를 불렀다 
"왜 밖이 시끄러우냐?" 
도승지가 황급히 보고한다 
" 역모입니다 ." 
"뭐 역모라고 ? 어찌된 일이냐 .누가 역모를 했다는 말이냐?""


"전하 지금 급합니다 .피신하옵소서 ..." 
도승지의 황급함이 극에 달하자 엉겁결에 몰래 궁궐을 빠저나간다. 
"광해군을 찾아라 " 
능양군과 이괄이 명령을 내렸으나 왕은 찾을수가 없었다 .


"궁궐을 빠저 나간것 같습니다 .

일단 서궁에 계신 인목대비를 먼저 찾아 뵙고 이를 알려드려야 합니다" 
이귀가 능양군에게 권한다 .

능양군과 이귀 김류는 서궁에 유폐 당하고있는 인목대비전으로 찾아갔다 
"아니 능양군이 웬일이오 ?" 
인목대비는 왕족이 그리웠는데 능양군이 나타나자 반가워 어쩔줄 모른다


"대왕 대비 마마 지금 광해군을 몰아내고 대비를 모시러 왔습니다 " 
순간 능양군의 말에 대비는 체면도 잊은채 무엇 보다도 반가워 어쩔줄몰라했다 
"광해군이 나를 유폐 시키더니 결국 능양군이 구해주는구려" 
인목대비는 그길로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능양군으로 하여금 임금을 삼는 교서를 내렸다. 

교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광해군 왕위를 폐위하고 능양군을 새 임금으로 왕위를 잇게 함에 즈음하여 이에 광해군의 죄상을 밝힌다


광해군은 재위중 선왕을 독살하고 나를 유폐 시켰을 뿐만 아니라 동생인 영창 대군을 불 태워 죽이었고 형인 임해군 마저 죽도록한 패륜행위를 서슴치 않고 행하였으니 그 첫째 죄상이요 .


그 다음은 조선 의 종묘 사직이 있는 한양을 버리고 경기도 파주에 있는 교하로 서울을 자기 마음대로 천도 하겠다며 과도한 토목 공사를 벌려 민생을 도탄에 빠뜨리게하여 나라의 안위를 위태롭게 한죄가 그 둘째요


급하지도 않은 궁궐 공사에 농사에 바쁜 농민들을 마구 불러 일을 시키고 산에 있는 아람 드리 나무를 마구 찍어 내는등 모든 산이 황폐화 했을뿐만 아니라 과도한 세금을 마구 부과시켜 백성들을 도탄에 빠지게 한죄가 그 셋째이다


이러고도 정신을 못 차리고 광해군은 죄도 없는 많은 선비들에게 트집을 수많은 사람을 잡아 죽였을 뿐만 아니라 이미 벼슬에서 물러나 있는 임진란의 공신 이항복 대감 까지도 북청으로 귀양 까지 가게 하였으니 이는 그 여죄를 묻지 않을수 없노라 .


마지막으로 광해군은 배은 망덕의 죄가 있으니, 재조지은의 은혜가있는 명나라의 임진왜란의 원조로 나라가 지탱된것을 망각하고 오랑캐 나라인 후금에 붙어 명나라를 배신한죄가 있노라 
이에 15대 왕을 폐위하고 오늘 날자로 능양군을 제 16 대 왕으로 명하노라 " 

교서 내용중 선조의 독살설은 인목 대비가 평소에 주장한 사항으로 독살 여부는 확실치 않은데도 인목대비가 자주 가까운 사람들에게 얘기해온 터이었다.

이 말 때문에 광해군은 인목대비를 미워해서 대비를 폐위시킨 주요 이유중에 하나였다.


어쨋든 광해군은 재위중 스스로 살아온 파란 만장한 삶의 콤프렉스를 이기지 못하고  왕위를 능양군에게 넘기고 왕호인 조(祖)나 종(宗)의 칭호를 받지못하고 광해군으로 남아 역사에 뒤안길로 사라지고 만다 . 

사건이후 광해군은 안국신의 집에 피신해 숨어있다가 붙잡히게 되고만다.

이로써 능양군은 조선의 제 16 대 임금에 오르니 이가 곧 인조이다 .이사건을 인조반정이라 부른다


인조는 광해군을 폐한뒤 그의 아들과 부인 유씨와 함께 강화도로 귀양보낸다 .


광해군 문제는  광해군이나 연산군 모양으로  패륜아라는 오명을 받지말라는 

이덕형의 권고로 인조는 광해군을 죽이지는 않은 것이다

.그뒤 광해군은 제주도로 멀리 귀양보내어 조정에는 얼씬도 못하게 하였다

 

.그는 67세까지 제주도에서 외롭게 살다가 인조 27년 이세상을 떠난다

.광해군의 아들은 육지로 도망 가려다 잡혀죽고 왕비 유씨는 자살로 끝을 맺었다. 


광해 임금은, 명에 대항하여 백성을 돌보려한 유일한 조선의 임금님 이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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