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grassive Rock

Anarchia 2007. 1. 27. 06:54

Eels - Novocaine for the Soul

Life is hard, and so am I
You'd better give me something so I don't die.
Novocaine for the soul
Before I sputter out.
인생은 힘들지, 나도 힘겹고.
내가 죽는 걸 보기 싫으면 무언가를 줘야 할거야.
영혼을 위한 마취제
내가 타들어가 소멸하기 전에.

Life is white and I am black,
Jesus and his lawyer are coming back.
Oh my darling, will you be here
Before I sputter out.
생명은 하얗고, 나는 까맣지.
예수님과 그의 변호사들이 돌아오고 있어.
오 나의 그대여, 여기 올 것인가요
내가 타들어가 소멸하기 전에.

Guess who's living here with the great undead.
This paint-by-numbers life is fucking with my head,
Once again.
누가 이 위대한 좀비와 살고 있는게 누굴까?
이 네모네모 퍼즐같은 인생때매 환장할 지경이야,
또 다시.

Life is good and I feel great,
'Cause mother says I was a great mistake.
Novocaine for the soul
You'd better give me something to fill the hole
Before I sputter out.
인생은 괜찮고, 기분도 환상이야
엄마가 그랬거든, 나는 크나큰 실수로 태어났다고
영혼을 위한 마취제
그 구멍을 채우기 위해 내게 뭔가를 줘야 할거야
내가 타들어가 소멸하기 전에.





Mark Oliver Everett은 1963년 4월 9일에 버지니아주에서 군인 아버지와 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또한 저명한 미국 물리학자 Hugh Everett III 박사의 손자이기도 하였고, Elizabeth라는 누나가 있었다.
그는 6살 때 이웃집 창고 세일에서 15불짜리 간이 드럼세트를 사면서(부모님께 선물받으면서) 악기를 처음 접하기 시작했다. 보통 아이들이 일주일이면 그만두는 데 비해, E는 이후 10년동안 계속 드럼을 즐겼다.
E가 본격적으로 접하게 된 첫 앨범은 Neil Young의 "After the Goldrush"였다. 누나인 엘리자베스가 이 앨범에 푹 빠져 매일같이 들으면서 그도 곁들이로 들었고, 역시 이 앨범에 심취하게 되었다.

Mark Oliver Everett이 E가 된 사연은 꽤 재밌다. 그에게는 신기하게도 같은 Mark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들이 많았고, 그들은 서로를 구분하기 위해 각자의 성을 따 스스로를 이니셜로 불렀다. 따라서 Mark Oliver Everret은 M.E였지만, 나중엔 M을 붙이는 것도 귀찮아 아예 E로 이름을 바꿔 버린 것이다.

E는 험난한 10대를 보냈다. 폭력과 음주 등 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저지르면서 그는 학교에서 퇴학당했고, 주유소에서 알바를 뛰며 살기 시작했다.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는 음악에 더욱 심취하게 되었고, 다락방에서 먼지나 먹고 있던 누나의 기타를 찾아 내어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하였다. 물론 그는 이미 집에 있는 피아노로 간단한 곡들을 여러번 작곡해 보았다.

탈도 많았던 10대의 막바지에, E는 처음으로 가족의 비극을 겪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다. 본래 아들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버지라는 걸 감안하면, 10대에 이런 일을 겪은건 인생에 전환점이 될 수 있는 큰 일이다. 게다가 10대때 고생이 심했던 E같은 인물에겐 더더욱 그럴 것이다.

결국 E는 20대가 되면서 버지니아주를 떠버리기로 작정한다. 소유물 전부를 차에 싣고, 3000마일이나 떨어진 LA로 이주해 버린 것이다. 그는 창고같은 집을 잡고, 꽤나 반사회적인 일상을 보내기 시작한다: 아침에 일어나 4트랙 카세트에 곡을 녹음해 보고, 엿같은 일 하러 갔다가 퇴근한 후 가사를 쓰고 녹음을 하고, 밤에 자러 가는.

그는 이런 암울한 인생을 매일같이 지냈고, 7년이 지난 91년 드디어 레코드사와 정식 계약을 맺고 앨범을 냈다. 그는 92년 "A Man Called E"라는 앨범을, 93년 "Broken Toy Shop"이란 앨범을 냈다.

95년이 되면서 그는 다른 이름으로 활동하기를 원했다. 그는 드러머 Butch와 베이시스트 Tommy Walters를 만나면서 Eels를 조직하였다. 밴드의 형태이긴 하지만 작사와 작곡은 99% 그가 행하였으니 실질적으로는 원맨 밴드나 다름없다. 하지만 정식 밴드의 형태를 갖추면서 그는 라이브 무대에 더욱 편히 설 수 있었고, 음악적으로도 좀 더 확장할 수 있었다.
-(출처) Eels 공식홈피(http://www.eelstheband.com) 및 AMG(allmusic.com)-

이렇게 하여 나온 앨범이 Eels의 96년 앨범이자 데뷔앨범인 Beautiful Freak이다. 이 앨범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락이 틀림없지만 현악기가 깔려 있고, 오르골 사운드, 힙합 리듬, 몽환적인 분위기, 마치 영화음악같은 구성, 그리고 염세주의의 극치를 달리는 가사. 그의 음악은 흡인력이 있었다. 매니아와 대중에 모두 어필할 수 있는 그런 음악이었다.



Eels의 데뷔앨범, Beautiful Freak



첫 싱글 Novocaine for the Soul이 얼터너티브 차트 1위를 기록한 건 따라서 전혀 이상할 게 없멀티미디어는 결과였다. 그는 영혼의 고통(Novocaine for the Soul), 일상에서 보이는 세상의 암담한 모습(Susan's House), 평범함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사람에 대한 처절한 사랑(Beautiful Freak),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소외감(Guest List), 거짓으로 가득찬 세상에 대한 거부(Mental) 등, 우울한 단면을 표현하는 곡들로 일관했으며, 이를 서정적인 음악과 메마른 보컬, 예술적인 가사로 풀어내었다. 그의 메시지는 자폐적이지만, Kurt Cobain처럼 파괴적인 폐쇄성을 띠지는 않았고, Radiohead처럼 무작정 우울해하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만의 눈으로 본 세상을 그대로 그렸으며, 자신의 자폐성을 음악으로 승화시키는 법을 아는 인물이었다.

상처받은 영혼을 마음껏 발산하는 방법을 그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음악은 우울하지만 일말의 희망이 느껴졌고, 또한 결정적으로 음악 자체가 워낙 뛰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