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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phia 2012. 6. 30. 05:18

http://www.bada.tv/common/app/movie.html?act=listbody&page=1&no=189977

위를 한번 클릭하시면 미국의 한 의사이야기를 접하실 겁니다.

왜 문믈이 날까요?

출처 : 마리아처럼(거룩한 내맡김)
글쓴이 : 프랑스김혜영데레사 원글보기
메모 : 사랑의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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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phia 2011. 2. 27. 20:56

 

 

파티마 성모님

 


우리나라 프로테스탄트(개신교) 신자들 대다수는,
가톨릭 신자들이 하느님을 믿기보다 마리아를 믿는다고 알고 있다.

 

심지어 일부 개신교회에서는

“가톨릭은 마리아를 여신으로 숭배하는 ‘마리아교’”라고 가르치기도 한다.

또한 성당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성모상 앞에 머리 숙여 절하는 것 자체가 우상숭배라며 비판한다.

 

이러한 오해를 피하려고 787년 제2차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일찍이 성인들이나 성모 곧 사람에게 드리는 공경을 하느님 흠숭과 구별하였다.

 

구약의 성경말씀에 따르면
우상숭배나 미신적 행위에 대한 금지(탈출 20,4; 레위 26,1)는 신자들이 지켜야 할 의무였다.


그런데 천주 성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이 가시적 인간의 모습을 갖춘 이후로
모상 금지는 더 이상 구약시대의 의미를 갖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초대교회는 모상 사용을 오랫동안 경고해 왔고,
때문에 그리스도의 초상보다는 상징을 택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교리의 순수성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성화상 공경에 대해
적대감을 지닌 사람들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역사 안에 나타난 성모 발현과 메시지를 알아보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발현의 주된 메시지는 회개와 기도가 대부분이다.

 

성화상의 공경

성화상 공경하는 행위는 성상(聖像 : 하느님이시며 구세주이신 그리스도의 형상,
성모 마리아와 성인들의 상)이 상징하는 그 대상에게 공경을 드리는 것이다.

 

이는 국민이 국기 앞에 경례하는 것과 같다.
국기에 대한 예를 표하는 행위는

국기가 상징하는 나라의 위상과 역사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행위인 동시에,
그럼으로써 조국애 고취와 민족애가 더욱 함양되는 이치와 같다 하겠다.

 

성화상은 주로 그리스도를 그리는데,
전에는 육신도 형체도 갖지 않으신 하느님을 결코 그림으로 나타낼 수 없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시어 사람들 가운데 사신 이후로,
이제는 하느님에게서 본 것을 그릴 수 있다.

 

그러나 그 성상 자체에 신성(神性)이나 덕능(德能)이 있다고 경배하면
우상 숭배가 되고 십계명 중 첫 계명을 어기는 것이 된다.

 

천주교는 십계명 중 첫 계명(출애20,3~4; 신명5,6~7)에 대해

개신교처럼 무조건 형상 제작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이를 신 자체로 숭배 하려고 만드는 것을 금한다고 해석한다.

 

구약시대부터 하느님께서는 강생하신 "말씀"으로 성취된 구원을

상징적으로 가리켜 주는 형상들을 만들도록 명령하시거나 허락하셨다.


구리뱀(민수21,4~9; 요한3,14~15)과 계약의 궤와
케루빔(출애25,10~22; 1열왕 6,23~28) 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성화상을 성당이나 가정에 모시는 것은 무언의 신앙 고백이며 기도를 고무시키고,
사람의 심정을 성스럽게 자극하여 성상이 표시하는 인물의 덕행과 위업(僞業)을 본받게 한다.

 

솔로몬 왕도 하느님께 성전을 지어 바칠 때(열왕기6, 32)에

커룹과 야자나무와 활짝 핀 꽃을 새겨 넣고 그 조각품 위에 금을 씌워 하느님을 찬양하는데 사용하였다.

 

이처럼 하느님의 권능을 상징하는 조각상이나 그림들은 그분께 드리는 찬양이요,
경배의 또 다른 표현일 뿐 결코 우상 숭배가 아닌 것이다.

 

 

 
마리아의 집


사도 요한이 예수님께서 어머니를 부탁하신 말씀을 받들어

깊은 산 속 안전한 곳에 손수 집을 지어 드리고 돌보아 드렸다.

건물 윗부분은 많이 파손 된 것을 복원한 것이며, 아주 작은 집으로, 대략 20여평이 채 못 된다.
독일인 수녀가 꿈에 계시를 받고 찾아내게 되었다고 한다.

 

성모님 발현

성모 발현은 성모 마리아가 정상적이고 자연적인 방법을 초월한 특이한 방법으로
어떤 특정인에게 나타난 현상으로 교회에서는 여러 곳의 성모 발현과 그 발현 때 이루어진

사적(私的 )계시를 인정한 바 있다.


사적(私的) 계시는 공적(公的) 계시의 진실성을 확인하고 재조명할 뿐만 아니라
변천하는 시대의 특수 상황에서 신앙이나 윤리에 관한 가르침을

효과적으로 실천하는 방법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보조적인 계시라고 할 수 있다.

 

사적 계시가 진실한 것이 되려면 언제나 성서와 전승 및 교회의 가르침에 일치하고,
또 그것을 통해 교회에 유익을 주고 하느님의 영광을 증진시켜야 한다.

 

사적 계시 및 이에 결부된 신비 현상에 지나친 관심을 가질 때
흔히 오류나 기만에 빠져 신앙 생활에 큰 해독을 끼칠 수가 있다.

 

성모님의 발현 때 전해지는 메시지가 사적 계시에 해당하며,
이 사적 계시의 진실성을 증거하기 위해 흔히 기적이나 신비 현상 등이 나타난다.

 

하지만 그 메시지들이 복음 자체는 아니므로,
교회 역시 그 메시지들이 복음을 대치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따라서 성모 발현의 어떠한 메시지라도 그것이 공식적인 교도권의 교의에 부합되어야만
진정한 사적 계시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과달루페의 성모 발현

1531년 12월 9일부터 12일까지

가톨릭으로 개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한 멕시코 원주민 성 후안 디에고에게 발현하셨다.


성모님은 멕시코의 테페약(Tepeyac) 산에서 발현하셨는데,
1492년 콜럼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후 유럽의 열강들에 의해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화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을 때였다.

 

당시의 아메리카 대륙은 지금과 같은 국경이 없었으며
지금의 멕시코는 당시에 아즈텍(Aztec) 제국으로 불리고 있었는데,
스페인이 멕시코를 정복한 지 10년째 되는 해로서 원주민들은 정복자의 폭정에 시달리고 있었다.

 

발현 장소는 원주민들이 신전을 세웠던 테페약 언덕이었고,
성모님은 인디언의 피부를 하고 장밋빛 옷에 푸른 망토를 두르고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약간 숙인 모습으로 발현하셨다.

 

성모님은

“나는 평생 동정이며, 하느님의 어머니임이 알려지기를 원하고,
어려울 때에 정성을 다해 나를 찾는 이들에게 나의 자비를 드러내도록

 이 자리에 성당을 짓기를 바란다”고 하셨다.

 

당시 멕시코의 종교는 다신교 형태여서 많은 신들을 섬기고 있었다.
그 신들 중에서도 전쟁의 신인 휘트잘르포크틀리에게는

싸움에서 이길 때마다 인간을 산 채로 제물로 바치곤 하였다.

 

퀘트잘코틀(Quetzalcoutl)이라고 불리는 최고신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날개 돋힌 뱀을 상징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서기 7백년 경에 그들 가운데 나타났던 예언자였다.

 

그는 콜롤라(Cholula)에 나타나서 개화된 문명의 지식을 가르친 일이 있었고
이교신앙과 혼합된 형태의 이상한 의식을 가르쳤는데 가톨릭 교의와 매우 유사했다.

그들이 이 전설적인 스승에게서 배운 의식은 후에 그리스도 신양을 받아들이는데 상당한 도움을 주었다.

 

후안 디에고(Juan Diego)는 멕시코시티의 쿠아우티틀란(Cuautitlan)이라는 작은 마을에 사는

57세의 가난하고 낮은 계층의 인디언 농부로서 이 이름은 그의 세례명이며

원래의 이름은 쿠아우틀라테우악(Cuautlatehuac, 독수리같이 말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인디언들이 처음으로 세례를 받은 것은 스페인인들이 멕시코에 건너간 지 3년이 지나서였고,
이 최초의 세례자들 중에 후안 디에고와 그의 아내 마리아 루치아도 있었다.
그들은 세례를 받은 후 규칙적으로 미사에 참례했다.

 

하지만 쿠아우티틀란에는 성당이 없어서

약 14마일(40리) 정도 떨어진 프란치스코 수도원의 미사에 참례해야 했다.
그리고 그곳까지 가려면 테페약(Tepeyac)이라는 산을 넘어야만 했다.
 
그런데 아내 마리아 루치아가 열병으로 죽고 나서
디에고는 그의 숙부 요한 베르나르디노가 사는 톨페틀락(Tolpetlac)으로 이사했다.

성당까지 약 9마일 정도의 거리였으며 숙부의 집은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숙부 역시도 세례를 받은 독실한 신자였으며 후안 디에고를 무척 아꼈다.

 

멕시코시티 변두리에 있는 테페약 산에 성모님이 발현하신 것은
12월 9일에 두 번, 12월 10일에 한 번, 그리고 12월 12일에 두 번이었다.

 

12월 9일 토요일 이른 아침, 후안 디에고는 미사에 가기 위해 테페약 산을 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려 그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춥고 황량했던 그곳에 갑자기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울려왔기 때문이었다.

 

그 소리는 마치 희귀하고 신기한 새들의 노래 같았다.
그리고 환한 빛에 의해 새벽의 어둠은 밀려나고 없었고
동시에 산 위에서 그를 부르는 부드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소리가 들려오는 지점을 찾아 산에 올라갔을 때 그 꼭대기에는 한 부인이 서 계셨다.
그 부인은 그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하셨다.

부인은 태양처럼 빛나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옷을 입고 있었고
부인이 서 있는 바위는 보석처럼 빛났으며 주위는 무지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는 부인의 앞에 엎드려 부인의 말씀을 들었다.
"나의 사랑을 받는 이여, 너는 내 말을 명심해 듣도록 하여라.
 나는 하늘과 땅을 만드신 하느님의 어머니 성 마리아다.

 

 나는 너희가 나의 사랑, 나의 자비, 나의 구원과 보호를 증거하기 위해
 이곳에 하루바삐 성당을 세우기를 바라고 있다.

 

 나는 나를 사랑하고 믿으며,
 나의 도움을 청하는 지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자비의 어머니다. 


 나는 그들이 탄원하는 소리를 듣고 있으며 그들의 모든 슬픔을 위로하고 있다.

 그러므로 너는 나의 요청을 듣고 멕시코 주교관에 가

 이 언덕 위에 나를 위한 성당을  세워야 한다는 것을 밝히고
 그것이 나의 간절한 소망임을 전하도록 하여라.

 

 네가 지금 본 것도 모두 전하여라. 
 나의 뜻이 이루어질 때 내가 기뻐할 것이며
 너희들에게 보상을 내릴 것도 확실히 전하여라.."

 

디에고는 자신의 비천한 신분에서 오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주교관으로 달려가
용기를 내어 주교관 문지기에게 주교님을 뵙게 해달라고 청했다.

 

멕시코의 초대주교는 스페인 인으로서
돈 프레이 요한 데 주마라가(Don Fray Juan De Zumarraga)주교였다.

그가 인디언들에게 사도적 열성과 사랑을 지닌 인물이라고는 하지만 후안의 말을 믿기 어려웠다.

 

주교관에서 나온 후안 디에고는 성모님이 기다리고 있을 테페약 산으로 다시 발길을 옮겼다.

정상에 이르기까지 좌절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거기서 성모님이 기다리고 계실 터이므로

한시도 지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성모님을 뵙고는
"니나미아(Ninamia)" 라고 인사하며 그 앞에 엎드렸다.

이 말은 멕시코의 비천한 계층의 사람이 윗사람에게 하는 인사말이었다.

 

그리고는 주교가 자신의 말을 믿지 않더라는 것과
자기처럼 비천한 신분보다는 모든 사람이 믿을 만한 사람을 보내라는 청을 드렸다.

 

하지만 성모님은 온화하면서도 단호한 태도로 다시 말씀하셨다.
"잘 들어라. 너는 나에게 많은 사자들과 천사들이 있다는 것을 모르느냐?
 나는 그들을 시켜 내 말을 전하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너를 선택한 것은 네가 나의 청을 받아들여
 너의 중재와 도움으로 나의 뜻이 이룩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내 뜻을 받아들여 내일 다시 주교에게 가거라.
 그리고 주교에게 내 말을 전할 때에도 내 이름을 들어 말을 하고  내가 요구하는 성당의 건립이
 그가 마땅히 수행해야 할 일임을, 그것이 나의 뜻임을 강조하여 말하여라.
 또한 너를 보낸 이가 하늘의 여왕이신 성 마리아라는 것도 밝히도록 하여라."

 

12월 10일 일요일, 주일 미사가 끝난 후 그는 다시 주교관으로 향했다.
하지만 막상 주교 앞에 서자 설움이 북받쳐 그의 발 앞에 엎드려 울먹이며 성모님의 뜻을 전했다.

 

이번에도 주교는 인디언의 말을 믿지 못한 채
"다시 올 때에는 사실을 입증할 만한 증거물을 가져오라" 고 하였다.

 

후안 디에고는 주교의 앞을 물러나와

다시 테페약 산 위에서 성모님을 만나 주교의 말을 전했다.


성모님은 그의 말을 듣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만일 그러하다면 주교가 요구한 분명한 표적을 보여주도록 할 테니  내일 다시 이곳에 오너라.

 네가 그것을 가지고 간다면 다시는 너를 의심하지 않을 것이며  너의 참된 믿음을 인정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네가 겪은 고통에 보상을 내릴 것이다.“

 

성모님께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드린 후 그는 마을로 돌아와 숙부 요한 베르나르디노의 집에 들렀다.

그런데 숙부가 열병에 걸려 몹시 위독한 상태였다.
급히 마을의 의사를 불러왔으나 도움이 되지를 못했다.
그런 채로 그날 밤을 보냈다.


그리고 성모님과 약속한 날인 12월 11일이 밝았지만

위독한 노인을 간호하느라 성모님과의 약속을 지킬 수 가 없었다.

그 다음날은 12월 12일 화요일이었다.


후안 디에고는 첫 새벽에 집을 나서서 프란치스코 수도원으로 향했다.
숙부가 병자성사를 받도록 하기 위해 신부님을 모시러 가야 했다.

 

그런데 수도원으로 가자면 테페약 산을 넘어야 했으므로
그는 성모님을 만나게 되면 지체될까봐 그 산의 다른 길을 택하여 가려고 했다.
그러면 성모님의 눈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산의 중턱에서 그는 성모님과 마주치게 되었다.
"네게 무슨 일이 있느냐? 지금 어디로 가는 중이냐?"고 성모님이 물으셨다.

그는 솔직한 심정으로 모든 것을 말씀드렸다.


그러자 성모님은 그에게 부드러운 어조로 말씀하셨다.

"잘 들어라, 후안 디에고.
 이제 네가 걱정할 일은 없다. 조금도 근심하지 말아라.
 네 숙부의 병도, 그밖에 네게 일어나는 모든 일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네 곁에 있지 않느냐?
 내가 너희의 진정한 희망이며 구원이 아니란 말이냐?
 나의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너희에게 또 무엇이 있단 말이냐?

 이제 너를 괴롭히며 불안케 하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진정으로 나는 네가 네 숙부의 병이 이미 완쾌되었음을 믿기 바란다."

 

성모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의 마음은 평화를 되찾았으며
숙부의 병이 완쾌되었다는 믿음이 생겼다.


성모님은 분명하고 단호한 어조로 말씀을 계속하셨다.

"네가 나를 처음 만나서 나의 요청을 받던 산 위로 가거라.
 그곳에 가면 형형색색의 장미꽃들이 있을 것이다. 
 그것들을 주워 모아 이곳으로 가져오너라."

 

그는 곧장 산 위로 올라갔다.
그러자 그곳에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치 아름다운 장미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지금까지 그곳은 엉겅퀴, 가시덤불, 선인장 등으로 뒤덮여 있었던 곳이고,
더욱이 12월이면 그런 잡목들마저 완전히 얼어붙는 곳이었다.

 

그는 너무나 놀랐지만 주교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 꽃들을 자신의 틸마에 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곧장 산을 내려와 다시 성모님께 가져갔다.

 

성모님은 그가 가져온 꽃송이들을 보시자 손수 그의 틸마에 꽃을 가지런히 놓아 주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후안아, 이 장미꽃들이 네가 주교에게 가져갈 표적이다.
 이 꽃을 그에게 가지고 가서 어떤 말도 보태지 말며 보고 들은 사실만 말하도록 하여라.

 

 내가 너를 그곳에 가서 장미를 발견하고 놀란 사실만을 말하여라.
 그러면 그는 네 말을 믿게 될 것이며 내가 요청한 성당이 세워지는 날까지 그의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말씀을 마치신 후 성모님은 디에고를 떠나 모습을 감추셨다.
그는 그 신기한 장미꽃들을 들고서 주교관으로 급히 갔다.


이번에도 하인들은 그를 문전박대하며 괴롭혔다.

그러다가 후안 디에고의 틸마에 담겨진 것들이 장미꽃 임을 알고는 무척 놀라서 주교에게 들여 보내주었다.

 

주교를 만나자 그는 자신이 보았던 사실들을 그대로 전했다.
"이것이 바로 성모님께서 보내신 것입니다. 받아주십시오" 라며 조심스럽게 싸들고 왔던 장미를 펼쳐보였다.


그러자 그 꽃송이들은 다채로운 색깔과 온갖 향기를 발하며 바닥에 떨어졌다.

그런데 주마라가 주교는 그 순간 자리에서 일어나 후안 앞에 무릎을 꿇었다.
입술은 떨렸으며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후안의 틸마에 고정되었다.


놀란 후안이 주교의 시선을 따라 자신의 틸마를 내려 보았을 때 그는 깜짝 놀랐다.

그 틸마에는 때 묻은 자국은 전혀 없었으며 테페약 산에서 자신에게 발현하셨던
그 성모님의 형상이 그대로 나타나 있었던 것이다.

 

 

 

주마라가 주교는 후안에게 깊이 사과한 후 허리를 굽혀

후안의 목에서 틸마를 벗겨 자신의 기도처인 소성당으로 가져갔다.

 

주교를 성모님의 발현 장소에 모셔 드리고, 그리고 성당을 짓겠다는 확답을 받은 후
후안 디에고는 병석에 누워 있는 숙부에게 돌아갔다.


그런데 숙부는 놀랍게도 완전히 회복되어 있었다.

숙부의 말에 의하면, 디에고가 신부님을 모시러 간 사이에 빛나는 옷을 입으신 성모님께서 오셨는데

그분이 오신 순간에 자신의 병이 완전히 치유됨을 느꼈다는 것이었다.
12월 12일이었다.


성모님은 숙부에게 그의 조카 후안 디에고를 통해서
당신이 하시는 일에 대해 모두 알려주시면서

테페약 산 정상에 세워질 성당에 당신의 성화가 안치될 때 그 성당 이름이
"과달루페의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 마리아" 라고 불러야 한다는 말씀도 하셨다.

 

그래서 숙부는 조카와 함께 주교를 찾아가 성모님에게서 들은 바를 직접 전했다.
주교는 그 모든 사실들에 깊은 감명을 받고는 그 성화를 모든 사람들이
마음대로 볼 수 있게끔 자신의 개인 경당에서 큰 성당으로 옮겨 놓았다.

 

인디언들이 그것을 보게 되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고
성모님께 대한 사랑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확신대로 그것은 성모 공경의 새로운 시발점이 되었다.

 

과달루페(Guadalupe)라는 이름은 루르드나 파티마처럼 성모님께서 발현하신 지점의 이름이 아니다.
성모님의 발현지는 테페약(Tepeyac) 산이었다.

 

라달루페라는 이 이름은 성모님께서 직접 붙여주신 것으로,
성모님께서는 당시의 인디언 언어로 말씀하신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들어 성모님의 말을 분석해 본 결과
"데 과달루페"(de Guadalupe)라고 들렸던 것은 아즈텍어로 테 콰틀라소페우
(Te Coatlaxopeuh)를 테 과틀라소페우(Te Quatlaxopeuh)로 잘못 들었던 것이라 한다.
두 단어의 발음이 유사하기 때문이었다.

 

테(Te)는 '돌'을 의미하고 콰(Coa)는 '뱀'을 뜻한다.
틀라(tla)는 영어의 the와 같다.
소페우(xopeuh)는 '쳐부수다', '박멸하다'는 뜻을 갖는다.

 

그러므로 성모님이 요한 베르나르디노를 통해서 주신 메시지의 마지막 문장인
"그 성화는 과달루페의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 마리아'로서 알려지게 될 것이다."
에서 그가 잘못 들었던 '콰틀라소페우'는 '돌뱀을 쳐부수다' 또는 박명하다'는 뜻이다.


이로써 볼 때 성모님의 메시지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당신이 언급하신 돌뱀은 아즈텍인들이 섬기는 날개돋힌 신 퀴트잘코틀(Quetzalcoutl)임이 분명하다.
퀴트잘코틀은 아즈텍 인디언들이 해마다 이만 명 이상의 여자와 아이들을 피의 제물로 바치던 신이었다.

그런데 성모님께서는 그러한 돌뱀의 우상을 물리치시고 그곳을 당신의 지배하에 두시고자 하셨던 것이다.

 

한편 이 같은 의미의 인디언어가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스페인의 유명한 성모 순례지인

 '과달루페' 라는 명칭으로 옮겨졌다.

 

역사상으로 볼 때 과달루페의 발현만큼 한 민족에게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은 없었다.
성모님의 발현 후 7년간에 걸쳐 당신 멕시코 인구의 거의 전부에 해당하는
약 8백만 명에 달하는 멕시코 인디언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그리하여 오늘날 멕시코는 인구의 90% 이상이 가톨릭 신자인 가톨릭 국가가 될 수 있었다.

 

이처럼 성모님은 그들을 돌뱀(사탄)의 지배에서 구하셨고,
그곳을 사탄의 지배에서 해방시킴으로써 당신과 특별한 인연을 맺게 하셨던 것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성모님을 원죄 없으신 분으로 인정한 것은
1854년 교황 비오 9세에 의해서이지만,

 

동방교회에서는
이미 8세기 경부터 12월 9일에 성모님의 원죄 없으신 잉태 축일을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성모님이 후안 디에고에게 처음 발현하신 날은 12월 9일이었다.

 

한편 교황 베네딕도 14세는 과달루페의 성모를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 마리아라 인정하면서, 시편 147장을 인용하여
"이같은 일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일입니다" 고 언급하였다.

 

1737년 4월 27일에는 과달루페의 성모가 멕시코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는데
그러자 당신에 유행하던 전염병이 자취를 감추는 기적이 일어났으며
12월 12일이 과달루페의 성모 축일로 선포되었다.

 

한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당신의 첫 번째 사목 방문지로,
그리고 교황으로서는 최초로 1979년 1월 25일부터 30일까지 과달루페를 순례했다.

 

*성모님의 성화가 새겨진 후안의 틸마는

당시의 아지텍 제국의 모든 남자들이 외투로 둘러입는 커다란 천이다.

 

그 틸마는 본래 매우 큰 것이었지만 성모님의 모습이 나타난 곳만을 잘라내어 모시고 있는데
성화가 나타난 후 470년이 지난 오늘까지 조금도 변함없이 본래의 상태대로 있다.

 

후안 디에고는 1548년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오늘날 멕시코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 되고 있으며
2002년 7월 31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다.

 

 

 

기적의 메달 성모 발현

이 기적은 1830년 11월 27일 파리 뤼뒤박에서 일어난 것으로,
성 뱅상 드뽈(St. Vincent De Paul)에 있는 사랑의 자매회의 한 수녀인

성녀 카타리나 라부레에게 발현하신 사건이다.

 

상아빛 흰 비단옷을 입고 계신 성모님께서는 지구 모양의 작은 구를 딛고 계셨으며,
양손을 내려뜨리고 계셨는데, 귀한 보석으로 꾸며진 그 손에선 빛줄기가 딛고 계신

그 구를 향해 뻗혀 흐르고 있었다.

 

성모님께서 설명하시길,
‘이 구는 전 세계 특히 프랑스와 각 개인의 영혼을 나타내는 것’이며,
눈부신 빛줄기는 나에게 구하는 이들에게 부어줄 은총을 상징하는 것’ 이라고 하셨다.

 

이 발현 중에 타원형과 같은 후광이 복되신 성모님을 둘러싸기 시작했는데,
그 위부분에는 『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여,
당신께 호소하는 우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란 글이 적혀 있었다.

 

그 때, 그 수녀는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지금 이 모양대로 메달을 만들어라.

 이 메달을 지니는 이마다, 특히 목에다 걸고 다니는 이는 은총을 받을 것이며,
 믿음을 갖고 그렇게 하는 이에겐 더한층 풍부한 은총을 받을 것이다."

 

곧 그 메달의 다른 쪽면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 면에는 M자가 적혀 있었고, 가로놓인 막대기 위에는 십자가가 놓여 있었다.

 

 

그 아래에는 두 개의 심장이 있는데,
하나는 가시로 둘러싸여 있었으며(예수성심),
다른 하나는 날카로운 칼에 찔려 있었다. (마리아 성심)

그리고 12개의 별들이 이 모든 형상을 둘러싸고 있었다.

 

성모님은 모든 죄와 허물에서 벗어난 오묘하고 아름다운 여인으로서,
이를 상기하기 위하여 그분은 상아빛 흰옷을 입고 계시며,
원죄 없이 잉태하신 마리아로 불리게 되는 것이다.


또한 성모님은 인류의 어머니로서 우리를 위하여 하느님의 온갖 은총을 지니고 계신다.

성모님 손에서 흘러나오는 눈부신 빛줄기는 이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발아래 지구를 딛고 계심은 세상의 여왕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가리키는 것이고,
메달 뒷면의 M자는 마리아(Maria)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 위에 십자가가 있음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성모님의 위대한 신비가 나옴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들 두 개의 성심 중 하나는 예수님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모님의 것으로써,
그 두 분 사이의 깊은 일치와 닮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즉 그 성심은 골로타의 희생 안에서 서로 밀접히 일치해 있는 것이다.

 

12개의 별은 복되신 성모님의 성덕과 12사도들을 뜻하고,
특별히 성모님을 여왕으로 모신 수많은 성인들이 받게 된 영광의 왕관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원죄 없으신 성모님의 잉태와 전 인류의 어머니로서의 마리아께서 인류를 보살피신다는 사실과,
그리고 이 지상의 여왕이 되심을 이 기적의 메달을 통해 드러내 보이셨다.

 

많은 어려움을 겪고 난 뒤, 드디어 메달이 만들어져서 전 세계에 보급되었으며,
너무나 많은 기적과 은총이 이 메달을 통하여 이루어졌으므로
사람들은 자연히 이 메달을 ’기적의 메달’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 발현으로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에 대한 신심이 고조되었으며,
교황 비오 9세는 1854년 12월 8일에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믿을 교리로 선포하였다.

 

그런데 가톨릭 교회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믿을 교리로 선포한지 4년째 된던 해인 1858년 2월11일부터 7월16일까지
18회에 걸쳐 루르드에서 베르나데트에게 발현하셔서 성모님은 당신을
’원죄 없이 잉태된 자’(Immaculata Conceptio)라고 밝히셨다.

 

그러나 이 메달은 결코 「부적」같은 미신적 행위로 사용해서는 안된다.
이 메달을 지니고 다니실 때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마리아처럼 예수님을 본받고자 하는 마음으로 매일 마리아께 메달에 새겨진 아래의 기도를 바치시는 것이 좋다.

(마리아 사전, 364-368쪽 참조,)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님,
 당신께 다가가는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라 살레트의 성모 발현

프랑스 알프스에 위치한 라 살레트(La salette) 근방에서

성모통고축일 전날인 1846년 9월 19일에 14세의 소녀 멜라니 칼바(Melanie Calvar)와

11세의 소년 막시망 지로(Maximin Giraud)에게 마리아의 발현이 있었다.

 

아이들은 꼬르(이세르) 지방에서 두메 산골로 와서 남의 가축을 치던 중에
한 부인이 눈물을 흘리며 나타났다가 프랑스어로 말씀하시고는
이내 곧 밝은 빛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 부인을 감싸던 밝은 광채는 망치와 못 그리고 쇠사슬과 장미꽃들로 둘러싸인,
그녀의 가슴에 있는 십자가로부터 비치는 듯 하였다.

 

성모님은 당신을 "죄인들의 화해자"라고 일컬으며 당신이 우시는 이유를
"사람들이 주님의 계명을 무시하고 주일을 지키지 않고 있다. 

 세상 것에 너무 빠져서 하느님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금육이니 금식은 잊은 지 오래다"라고 설명하셨다.

 

또한 "회개하고 잘못을 뉘우쳐서 하느님과 화해하라.
내 말을 들으면 하느님의 축복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말할 수 없는 큰 재앙이 곧 닥칠 것이다" 라는 메시지를 남기셨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부모의 의심을 받았고,
라 살레트의 시장으로부터는 발현 이야기를 고집하면 감옥에 넣겠다는 위협을 받을 정도가 되기도 했다.

 

 

멜라니는 교리를 익히지 못해 17세가 되도록 본당 수녀가 영성체를 시키지 않았으며
막시맹은 15세가 되도록 주의 기도와 성모송을 외우지 못했다.

 

그러나 성모님의 발현에 관한 질문을 받으면 정확한 대답을 했을 뿐 더러,
한 사람씩 따로 질문을 받아도 모든 세세한 일까지 완전히 일치되는 대답을 했다.


성모님이 예언하신 재앙인 감자 기근은 1845년에 시작되었다.
유럽은 혹심한 밀 기근을 당해 백만 명 이상이 굶어죽었다.

프랑스의 포도나무들도 모조리 시들어 버렸다.


성모님의 예언대로 아기들은 어머님의 품에 안긴 채 떨다가 죽어 갔다.
1848년엔 "2월 혁명", "3월 혁명", "6월 폭동"이 꼬리를 물고 파리를 휩쓸었다.
이 해에는 또한 프랑스에서 공산주의가 싹트기 시작했다.

 

또한 1870년의 보불전쟁으로 가시화되자 회개의 순례객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성모님이 나타나신 우물에서는 다시 물이 솟아 나왔으며, 그 물을 마시고 수많은 환자가 병을 고쳤다.

 

라 살레트의 관할 주교는 성모님의 발현과 우물물에 의한 병의 치료를 철저히 조사하도록 명령하셨다.

모든 증언과 증거를 검토한 끝에 성모님의 발현이 사실이며,
믿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고, '라 살레트의 성모선교회' 를 세워
"너희는 가서 모든 사람에게 나의 말을 전하라' 고 하신 성모님의 명령을 이행토록 했다.

 

교황 비오 9세와 레오 8세는 모두 그 발현을 승인하였고,
그의 후계자 레오 13세는 성모님이 발현하신 산 위에 대성당을 건립하였다.
교황 비오 12세는 1946년 '라 살레트의 축복 받은 사건들의 100주년'을 선포했다.

 

 

 

루르드의 성모 발현
루르드는 프랑스 남쪽 국경 피레네 산맥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마을로,
1858년 2월 11일 이 후 18회에 걸친 성모님의 발현이 있은 후 유명해졌다.


그 마을 교외에 마사비엘이라고 부르는 굴이 있는데,
이곳이 성모님께서 발현하신 성지이다.

 

이것은 교황 비오 9세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믿을 교리로 반포(1854년 12월)하신 후

3년 2개월째 되는 날이었다.

 

가난한 물방앗간 집 딸로 태어난 13세의 베르나데트는
마사비엘 부근에서 땔나무를 하기 위해 한참 나무를 줍고 있을때
갑자기 큰 바람이라도 불어오는 듯 한 소리가 들렸다.

 

매우 놀라 뒤를 보니 굴속에 아름답고 어여쁜 한 부인이 서 계셨다.

그녀는 몸에 백설과 같은 흰옷을 입고, 허리에는 하늘색의 띠를 두르고,
손에는 백주 금쇄(白珠金鎖)의 묵주를 들고, 깨끗한 맨발로는 두 장미꽃을 밟고,
눈은 황홀하게 하늘을 우러러보고 계셨다.

 

베르나데트는 그녀가 누구이신지 몰랐으나 그 아름다운 모습에 도취되어
무한한 즐거움을 느꼈고 자기도 모르게 묵주를 꺼내어 같이 기도를 바쳤다.


영광송이 끝나자 그 귀부인의 모습은 사라졌다.

그 후 베르나데트는 집에 돌아와서 양친과 본당 신부께 그 이야기를 했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다.

 

2월 14일 베르나데트는 그 귀부인을 잊지 못해 재차 마사비엘을 방문했다.
그녀는 예상한 대로 또 귀부인의 발현을 보았지만,

호기심으로 베르나데트를 따라간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들은 베르나데트의 탈혼 상태에 놀라 함께 묵주의 기도를 바쳤다.

 

이러한 귀부인의 발현은 2월 11일부터 7월 16일 가르멜의 복되신 동정마리아의 축일까지 18회나 되었다.

3월 25일 주님탄생예고(성모영보)축일에 16회째의 귀부인의 발현을 본 베르나데트가

 "오, 부인이여!  당신은 누구시며 당신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 하고 여쭈었더니,


귀부인은 하늘을 우러러보시면서 "나는 원죄없이 잉태된 자다"하고 명백히 말씀하셨다.
그제야 사람들은 베르나데트에게 발현하신 분이 성모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베르나데트 수비루

 

성모님의 발현의 목적에 대하여 베르나데트 에게
"여기에 성당을 세우고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모이는 것을 원한다는 것을  

사제에게 말하여라" 라고 분부하셨고,

 

"죄인의 회개를 위하여 기도하여라" 명령하셨으며,

 

"나는 반드시 너를 행복하게 해 주리라.
 그러나 그것은 이 세상에서가 아니라 저 세상에서이다"하고 고마운 약속을 하셨다.

 

2월 25일 9회 째의 발현에는 "샘의 물을 마시고 세수를 하여라" 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샘같은 것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손짓한 곳을 손으로 파보니 과연 물이 솟아났다.

 

이것이 후에 많은 병자들을 기적으로 낫게 하고,
매일 12만 2천 4백 리터의 물을 내게 하는 루르드 영천(靈泉)의 시작이다.

 

이 영천의 난치병에 대한 효능은 놀랄 만한 것으로서
지금까지 영수(靈水)를 마시거나 혹은 몸을 씻음으로써
희망이 없었던 병자가 완쾌된 예는 얼마나 되는지 모를 정도지만,
1861년까지의 3년 동안에도 백 건 가량의 완치의 실례가 있었고,

 

의사들의 엄밀한 조사에 의해서도
 "그 중의 15건은 적어도 인간의 지식을 초월한 기적이다" 라고 결정되었다.

 

7월 16일 최후의 발현이 있은 후
교구의 주교, 신학자, 과학자 등으로 구성된 조사위원회를 조직하고
발현의 사건에 대하여 충분한 신학적, 과학적인 조사를 하도록 명했는데,
 
그 결론은 각 위원 모두 자연적인 현상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고
초자연적인 현상이라고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에 일치했다.

 

루르드에서의 병자의 완치는 모두가 기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루르드 의국 조사 위원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최초의 55년 동안에도 기적이라고 인정되는 것이 4,445건이나 된다.

 

또한 루르드에 순례하는 병자가 모두 다 완치된다고는 할 수 없지만
누구든지 많은 위안을 얻어 병고를 잘 참게 된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사실이다.

 

리용시의 조각가 파비슈는 베르나데트에게 발현하신 성모님의 모습을 자세히 듣고서
가라라의 대리석으로 그 고결한 모습을 조각하여 그것을 마사비엘의 동굴 안,
바로 발현하신 자리에 안치하고 1864년 4월 4일 그 축성식을 거행했는데,
오늘까지 세상에 유명한 루르드의 성모상이다.

 

루르드 성모님의 전구로 은헤를 받은 신자들 중에는 감사헌금을 한 사람도 적지 않아,
그 헌금으로 성모님의 뜻을 받들어 그곳에 건립된 화려한 성당은

1876년 7월 2일 파리의 대주교에 의해 축성되었다.

 

루르드의 성모 발현은 초자연의 발생이라고 규정하고 이를 기념하는 축일이 2월 11일로

1891년에 설정되어 우선 남쪽 프랑스 일대의 교회에서 준수하게 되었고,
다시 1907년에는 교황 성 비오10세에 의하여 전 세계의 교회에서도 준수하게 되었다.

 

신비의 마사비엘 동굴 (the Crotto of Massabielle)

동굴 안에는 제대가 있고 이 제대에서는 연 중 내내 미사가 바쳐지고 있으며,
동굴 앞에서는 신자들이 밤낮 없이 기도하며 순례자들이 성모님을 통해
하느님께 자신들을 봉헌하는 뜻으로 봉헌한 촛불이 타오르고 있다.

 

 


퐁멩의 성모 발현
1871년 1월 17일 프랑스 퐁멩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외젠느(12세)와 요셉(11세)이라는 소년들에게 발현하셨다.


성모님은
“나의 어린이들아, 언제나 기도하여라!
 하느님께서 너희의 기도를 곧 들어 주시리라!
 나의 아들은 너희의 기도를 즐겨 허락하신다.”고 하셨다.

 

1870년 프러시아 군대가 프랑스 전역을 침략하였고,
국가는 완전히 함락되는 존폐의 위기에 처하였다.

 

달아난 군인들의 횡포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난폭하였으며,
그들은 군대의 명령조차 듣지 않는 공권력이 무너진 무질서 그대로였다.

 

"나는 39년 동안이나 복무해 왔지만 이런 암담한 처지는 생전 처음입니다."
라고 16대 대장은 하소하였다.

 

1871년 1월 17일 아침,
프러시아 군대는 메엔느 지방의 라발 외곽에 포진하고 있었는데,
이 도시는 약 금화 3백만 프랑 상당의 무거운 전쟁 비용을 준비해야만 했다.

 

그날 저녁 무렵, 마을 중앙에 있는 헛간에는 와젠느와 요셉 바르베데뜨라는 두 소년이
아버지의 일손을 거들고 있었는데, 일을 마친 와젠느가 헛간을 나서다가,

공중에서 한 부인을 보았던 것이다.


그 부인은 암청색 옷을 입고 계셨으며 거기에는 별이 빛나고 있었다.

그 부인은 다가오라는 시늉으로 손을 아래로 펴셨고, 그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셨다.

 

요셉 바르베데뜨 역시 몇 분 뒤에 뒤따라 나오다가 그 부인을 목격하였다.
그러나 두 소년의 아버지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막 식사를 마친 후, 소년들은 또다시 아름다운 부인을 보았다.
그래서 학교의 수녀들이 불려왔지만, 그들도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과 함께 있던 두 소년은 아름다운 부인을 보았는데,
별이 빛나는 암청색 옷을 입고 검은 수건을 썼으며 금관을 쓰고 있었다고 증언하였던 것이다.


이리하여 마을 주민들이 두 소년 주변에 몰려왔고,
거기에는 35세의 퐁맹 주임 사제이신 게렝 신부도 있었다.

 

눈 속에서, 동정녀께 드리는 뜨거운 기도가 열기를 더 해갔으며,
마리아 어머니께 대한 대화가 오갔다.

 

주민들이 기도하고 있는 동안 발현은 계속되었고, 사방은 온통 별들로 가득해졌다.
4개의 촛불이 켜진 거대한 푸른 타원형 같은 것이, 그 주위를 둘러쌌던 것이다.

 

주민들은 무릎을 꿇었다.
어떤 이는 눈 위에, 또 어떤 이는 헛간에서 무릎을 끓었다.

 

마리 에드워드 수녀는 문 앞에 무릎은 끓고 로사리오 기도를 선창하였다.
그 부인은 더욱 아름답게 보였고, 기도가 계속되는 만큼 더욱 더 커져보였다.

 

부인의 모습이 더 커지는 만큼 따라서 푸른 타원형도 더 커졌으며,
발현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별들은 마치 타원형을 위해 길을 마련하려는 듯

조금 떨어져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더니 둘씩 짝지어서 동정녀의 발 아래 모여들었다.
이 별빛은 부인의 옷을 여러 색갈로 빛나게 했고, 암청색 웃은 더욱 빛났다.

 

로사리오 기도를 끝낸 주민들은 바리톤의 선율로 마니피캇을 노래했다.
그러자 흰색 깃발이 나타났는데, 거기에는 큰 금색 글씨가 천천히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기도가 계속되는 동안 두 소년은 그 글씨를 보려교 애썼다.
잠시 후 그들은 읽을 수가 있었다.

 

"내 자녀들아, 기도하여라, 하느님은 오래지 않아 대답을 주실 것이다.
 내 아들을 움직이게 하여라."

이 메시지는 주민들을 온통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주임 신부는 "희망의 어머니" 찬미가를 노래하자고 제안했다.
어린이들은 기뻐 날뛰며 온갖 손짓을 다 해가며 성가를 불렀다.

 

"저 미소 지으시는 부인을 보라 !  오 ! 얼마나 아름다우신가 !"
찬미가가 끝날 무렵, 글씨가 새겨진 흰 깃발도 사라졌다.

 

주민들은 이제 보속의 기도를 바쳤고, 보속의 찬미가를 노래불렀다.
"자비로우신 예수여,  이제는 통회하는 우리를 용서하소서 !"

 

슬픈 모습이 동정녀에게서 역력했고, 어린이들에게도 이 슬픔이 반사되었다.
그런 후, 거대한 붉은 십자가가 보였는데, 아름다운 붉은 글씨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적힌 현수막 같이 깃발이 휘날렸다.

 

그 동졍녀는 어린이들에게 십자가를 제시하였다.
슬픈 모습을 하신 동정녀는 특히 요셉에게 깊은 인상을 새겨주었다.

후일, 그는 이렇게 글을 썼다.


“동정녀의 슬픔은 아무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컸습니다.
 몇달 후에 저의 부친이 임종하셨을 때, 슬픔에 북받친 어머니를 보았습니다.
 어머니의 얼굴에 담긴 슬픔이 어린 아이의 마음에 어떤 충격을 주는지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본능적으로 제 마음 속에 떠오르는 모습은 복되신 동정녀의 슬픔입니다.  
 그 동정녀는, 죽어가는 아들을 보시며 십자가 밑에 서 계시는
 예수의 어머니의 슬픈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동안, 군중들은 계속 기도하였다.

붉은 십자가는 사라졌고, 동정녀는 처음 자세를 취하신 다음, 손을 아래로 펼쳐보이셨다.


이제는 흰 십자가들이 그녀의 양 어깨 위에 나타났다.
부인은 다시 한 번 미소를 지어 보이셨다.


주임 사제의 제안에 따라 저녁 기도가 시작되었다.
주민들은 헛간이든 눈 위이든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무릎은 끓었다.

 

거대한 흰 수건 하나가 동정녀의 발에서 나타나, 천천히 하늘로 쳐들렸다.
이윽고 이 수건이 동정녀를 가리워 버렸고, 발현이 끝난 시각은 밤 9 시경이었다.

 

퐁맹의 동정녀는 먼저 당신 아드님께 대해 말씀하시고,
그 다음에 우리의 희망에 서광을 비치는 말씀을 주셨다.


동정녀의 얼굴은 작고 아름다웠으며 18세나 20세 가량으로 보였다고 한다.

 

1872년 2월 2일 라발의 주교는 교회의 조사를 끝낸 후
발현을 공식적으로 인정했고 퐁맹의 희망의 마리아께 대한 신심도 인정했다.

 

1877년 대성당이 건축되고 축성되었으며,
51년이 지난 뒤에 교황 비오 11세는 독특한 방법으로 이루어진 이 발현의 사실성을 인정하고
퐁맹의 마리아께 바치는 성무일과와 미사경본을 인준했다.

 

 

 

녹(노크)의 성모 발현

1879년 8월 21일 성모몽소승천(성모승천대축일) 8부(팔일축제) 전야였다.
이 날 저녁 7시 30분경에 아일랜드의 마요 마을(현재는 녹이라 부른다) 성당 남쪽 벽에서 발현하셨다.

이 발현은 두 시간 동안 지속되었고, 다섯 명이 목격하였다.


비가 쏟아지는 저녁이었으나 발현하신 모습은 전혀 젖지 않으신 채였다.

성모 마리아의 많은 발현 가운데, 아일랜드 녹의 발현은 매우 특이하다.
왜냐하면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발현은 가톨릭 해방령(1829년)이 반포된 지 꼭 50년 후에 있었는데,
그 이후 가톨릭 교회는 적어도 법적으로 보호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성당 남쪽 박공벽에서의 발현을 목격한 목격자들은
“복되신 동정녀는 흰옷을 입고 계셨고, 크고 찬란한 화관을 목에 두르셨다.
 그녀의 손은 마치 기도하는 것처럼 들어 올려져 있었고, 눈은 하늘을 향하고 계셨다.

 그녀 오른편에는 마리아를 향하여 머리를 기댄 성 요셉이 있었고,
 왼편에는 복음사가 성 요한이 서 있었는데, 


 그는 주교복장을 하고서 왼손에는 책을 잡고 오른손은 마치 설교할 때처럼 치켜들고 있었다.

 성 요한 왼편에 제대가 있었고,  그 위에는 십자가 하나와 8주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양한 마리가 있었다.
 제대 뒷 편이 되는 박공벽은 온통 빛으로 둘러 싸여 있었다.“

 

비록 성모님이 한 말씀도 하시지 않았지만 이 발현의 공통된 해석은
아일랜드 백성들이 그들의 "길"을 고수하고 확고히 하라는 말씀으로 알아들은 것이다.

 

마리아는 개인적인 성성을 구체화시키셨다.
성 요한은 교회의 옹호자이고 전파자이며,
성 요셉은 자부적 사랑을,
십자가는 희생을,
제대는 가톨릭 생활에 필수적인 힘의 원천임을 계시하셨다.

 

발현의 모습은 미사성제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희생될 어린양이 있는 제대, 성모님의 몸짓, 주교복을 입은 성 요한의 모습,
그리고 성 요셉의 경건한 태도가 마치 미사 분위기를 말하는 듯하기 때문이다.

 

첫째는 어린양의 신비이다.
이것은 세상의 시초부터 살해된 어린양의 신비로,
이것은 '녹'에서 보여 진 두 달 정도의 어린양으로 상징되었다.

 

두 번째는 여인의 신비다.
이것은 지상의 고통 중에 보여진 태양을 입은 여인의 신비다.
그 여인 동정 모친은 지상의 고통 당하는 교회의 원형이시다.

 

끝으로 하느님 나라의 신비다.
그 도시는 하느님의 영광을 갖게되며 어린양은 그곳의 빛이 되신다.
'녹' 발현에서는 어린양 주변에 가장 밝은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발현은 미사와 관련되는 또 다른 큰 진리를 가리키는 있다.
즉 마리아의 중재가 필요하며, 그 중재의 독특한 성격을 강조하는 듯 보이는데,
그것은 마리아의 영광스러운 승천과 대관 때문이다.

 

모든 은총의 중재자이시며 하늘과 땅의 모후이신 복되신 동정녀에게
더 많이 의지하고 기도하며 당신의 의식이 우리들의 삶 속에 스며들도록 하라시는
초대장으로 보아야 한다

 

발현자체가 전달하였던 것이 무엇인지 말로는 결코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언어적 메시지는 주어지지 않은 것뿐이다.

 

발현 그 자체가 증표요, 언어이다.
그것은 서로 상통하는 영역에서는 어떤 언어보다 상급인 침묵의 방법을 통해 말한 것이다.

 

 '녹'의 메시지는 언어에 비해 훨씬 위대한 것이다.
15명 이상의 사람들이 한가지 계시에 대한 일치된 생각이 바로 발현이요 상징이다.

 

하느님 어좌앞에 중재의 기도를 하면서 성모님이 온통 아름답게 서있을 때
이마에 신비스런 장미가 있었던 상징과 명상적 발현의 고요함은 바로 성모님에 관한 것이었다.

 

성모님은 우주의 여왕인 것처럼 하느님의 어머니요,
우리의 어머니호서 성모님께 예속된 고통 당하는 인류를 위해 모든 나이의 사람들에게 관련되었다.

 

성모님 자신이 순례성당의 첫 번째 꽃이 었다.
성모님은 몸소 교회가 되신다.


성모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나누었던 그 고통에 자신을 예속시킴으로서

몸소 승전 전에 이미 왕관을 받으셨다.

발현시 성모님 오른편의 성요셉은 동정녀의 배필이며 인도자였다.

 

 '녹'발현 7년전 교회가 극심한 박해에 직면하게 될 순간에
교황 비오 9세는 성요셉을 온 교회의 주보로 선언했다.

 

마리아는 당신의 아들로부터 사랑하는 제자 사도 요한을 위탁받았다.
요한사도는 주교로서 공식 설교가였는데 이것이 순직한 '녹'주민들에게 그를 내보인 이유이다.

 

성모님은 요한의 설교를 들었고 요한의 메시지를 기록하라고 명했던 것이다.
이것이 요한사도의 손에 책(묵시록)을 들어 보이게 한 까닭일 것이다.

 

이것은 사도 요한이 말한 하느님의 도성이다.
"그리고 그분은 나에게 거룩한 도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도성은 하느님으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묵시록)

 

그 도시의 한가지 표시는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올 심판을 주관하고 구원을 가져올 도구로서
어린양 뒤에 십자가가 서있는 것이다.

그 천상의 찬란한 광채의 한 줄기가 천상 여왕의 눈을 통해 '녹'에 주어진 것이다.

 

오늘날 '녹' 순례지는 교회의 인정을 받고 있으며
전세계 대표적 마리아 순례지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아일랜드 모든 성인들의 축일인 1973년 11월 6일 투암의 대주교 요셉 컨네인은

아일랜드의 여왕 '녹(Knock)'의 성모마리아 대성전을 새로 짓는 터전을 축성하시고 첫 삽을 떴다.

 

하얀 카라파 대리석의 초석(礎石)은 교황 바오로 6세께서 축성하셨고
1974년 성모승천 축일에 컨네인 대주교께서 제자리에 놓으셨다.

 

'녹'은 젤릭어로 "언덕은 다시 똑같을 수 없다"는 뜻을 나타낸다.
이것은 '녹'이라는 이름이 "녹-뮤르" 즉 '마리아의 언덕'이라는 이름으로 바뀌는 위대한 사건인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1979년 9월 30일에 이 성지를 방문하여 성모 발현 백주년을 기념하셨다. 

 

 


파티마의 성모 발현
포르투갈의 파티마에서 1917년 5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매 13일 6회에 걸쳐 발현(發顯) 한 성모를 말한다.

 

뒤에 가르멜회 수녀가 되어 이 발현에 대해 저술한 루시아(Lucia dos Santos,1907∼2005)와
그녀의 사촌남매 자신타(Jacinta Marto, 1910∼1920)와
프란치스코(Francisco Marto, 1908∼1919) 등 세 목동들만이 성모를 직접 보고 그 말씀을 들었다.

 (단, 프란치스코는 듣지 못했다).

 

사람들의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발현 횟수가 거듭됨에 따라 군중의 수는 획기적으로 늘어났으며,

성모께서 당신의 정체를 밝히겠다고 약속한 10월에는 태양이 지상에 수직으로 떨어지며 회전하고

갖가지 빛을 발하는 `태양의 기적’을 7만 명의 군중이 목격하였다.

 

파티마의 성모는 세 어린이들을 통해 속죄, 로사리오 기도를 자주 바칠 것,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와 고행을 바칠 것, 성직자를 위해 기도할 것,
세계 모든 사람이 성모의 티없는 성심께 봉헌할 것,
그리고 매달 첫 토요일에 속죄의 영성체를 할 것 등을 당부하였으며


이 대가로 많은 영혼이 구원되고 더 끔찍한 세계 전쟁을 피할 수 있으며
러시아의 회개와 세계평화를 가져다 줄 것임을 약속하셨다.

 

1930년에 포르투갈의 주교들은 파티마의 성모발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으며,
1942년 교황 비오 12세는 성모의 요청대로 러시아에 대해 특히 언급하면서
세상을 성모의 티없는 성심께 봉헌하였다.

 

1967년 바오로 6세 교황은 발현 50주년 기념에 개인적으로 파티마를 찾아 순례하였다.

 

 

 

파티마의 어린이들에게 동정 마리아께서 발현하신 것은
세계 제1차 세계 대전 중인 1917년 여름이었다.

 

레이리아 교구의 작은 마을 주민들은 대개가 가난한 사람들이고,
또 소농이었기 때문에 매일같이 들과 가축들을 돌보아야만 했다.
성모님의 발현을 목격한 어린이들도 양치는 일을 맡고 있었다.

 

루치아 도스 산토스는 10세였고,
그녀의 나이 어린 사촌 동생 프란치스꼬와 히야친타가 곧 그들이다.

 

그들은 루치아의 책임 아래 양을 쳤는데,
자주는 아니지만 들판에서 무릎을 꿇고 로사리오 기도를 즐겨 바쳤다고 한다.

 

1916년 여름에는 한 천사가 몇 차례 발현하여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드리는 기도를 가르쳤다는 것이다.

 

1917년 5월 13일은 토요일로 정오경, 한줄기 밝은 빛이 아이들을 비추었는데,
그들은 코바 다 이리아의 나무 위에서 찬란한 모습의 어떤 부인이 나타난 것을 보았다.

 

이 첫 발현 때, 그 부인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그리고 전쟁의 종식을 위해 기도하라고 이르시면서,
매달 13일에 다시 오겠다고 말씀하셨고, 발현은 6월 13일과 7월 13일에도 일어났다.

 

네 번째 발현일인 8월 13일에는

어린이들이 지방 당국으로부터 방해를 받고 코바 다이리아로 가지 못했으나
19일에 그 부인을 만났다.

 

9월 13일, 부인은 전쟁이 끝나도록 로사리오를 바치라고 이르셨다.
끝으로 10월 13일, 그 "부인"은 당신을 "로사리오의 모후"라고 알려 주시고,
기도하고 보속하라고 다시금 이르셨다.

 

그날, 놀라운 천상적인 현상이 일어났는데,
태양이 빙빙 돌면서 하늘에서 떨어져 땅에 쳐 박히는 듯한 신비로운 현장을
수만 명의 군중들이 목격한 것이다.

 

코바 다 이리아에서 본 환시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1930년 10월 13일로
레이리아의 주교는 오랜동안 조사 검토한 뒤에

코바 다 이리아에서의 로사리오 성모 공경을 허가했던 것이다.

 

발현은 보았으나 말씀은 듣지 못했던 프란치스코는 1919년 4월 4일에 선종했고,
동생 히야친타는 1920년 2월 20일에 하느님 품에 안겼으며,
유일한 생존자인 루치아는 수녀가 되어 한 세기 가까운 세월을 살다 2005년 97세를 일기로 영면하였다.

 

파티마의 공적인 메시지는 루르드의 메시지와 거의 같다.
어린 아이들을 통하여 마리아는 죄인들을 위한 기도와 로사리오 기도
그리고 보속 행위를 하라고 요구하셨기 때문이다.


"나는 생활을 개선하고 죄로 인하여 우리 주님을 슬프게 하지 말며,
 로사리오 기도를 바치도록 신자들을 권고하기 위하여 왔다.

 나는 이곳에 나를 위한 성당을 원한다.
 사람들이 그들의 태도를 개선한다면, 전쟁은 곧 끝날 것이다"

 

루르드에서처럼, 파티마의 "발현"은 수많은 순례자가 몰려들게 하였다.
1917년 여름부터 시작된 순례는 놀라운 숫자에 달하였는데,
그들 중에는 포르투갈 인들도 있었지만 다른 나라에서 온 순례자들도 많았다.

 

1931년 5월 13일, 발현에 대한 교회의 공식 인정이 있은 다음부터는 순례자들이 수백만에 이른 것이다.

교황님들도 파티마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비오 12세, 바오로 6세 그리고 요한 바오로 2세가 파티마를 순례하고 기도하였다.

교황님들의 이런 관심이 순례자의 수를 더욱 많게 하였고,
발현 장소에 성전을 짓게 된 계기가 되었다.

 

1942년 10월 31일, 비오 12세는 파티마의 성모 발현 25주년을 기하여
모여든 순례자들에게 라디오-메시지를 보냈다.


성모님께 감사와 충성을 드리고 기도하라고 권하신 뒤,
교황은 세상을 티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에 봉헌하신 것이다.

파티마 사건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1946년 5월 13일, 비오 12세 교황은 파티마 성모상 대관을 위하여 라디오 메시지를 보냈다.

여기서 교황은 "파티마의 장관(壯觀)"은 "티없이 깨끗하신 여왕이시며,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모성적인 자애로운 성심의 활동"이라고 하시고,
마리아의 끊임없는 보호가 포르투갈에 내릴 것이라고 하셨다.

 

또 교황은 마리아가 천상적이며 우주적인 여왕이심을 찬양하시며,
파티마 발현의 중요성을 역설하셨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제3회기 폐막식에서(1964년 11월 21일),
바오로 6세는 마리아께서 만국 공의회와 교회를 축복해 주시며,
이세상의 끝없는 수평선에서 눈을 돌리지 않도록 복되신 동정녀께 열렬히 기도하자고 말씀하시고,
이 천상 어머니께 전 인간 가족을 봉헌하셨다.

 

1967년 5월 13일, 코바 다이리아의 성모 발현 50주년을 기하여,
바오로 6세는 파티마로 가서 기도와 평화의 순례를 하셨다.

 

교황은 복되신 동정녀 공경과 본받음에 대한 권고를 전 교회에서 보내셨는데,
이 권고의 제목은 "교회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이다.

 

여기서 교황은 교회의 어머니의 티없이 깨끗하신 성심에 대한 봉헌을
새롭게 하라고 모든 신자들에게 촉구하셨다.

 

1982년 5월 12일, 요한 바오로 2세는 파티마를 순례하시고,

성모 발현 65주년을 기념하였다.


이때 교황은 동정 마리아의 중재하심에 감사드리고,
세상의 만백성을 마리아의 티없이 깨끗하신 성심께 새롭게 봉헌하셨다.

 

그러나 성모님은 어린이들에게 어떤 "비밀"도 일러주셨는데,
이 가운데 몇 가지 비밀은 요한 23세 교황님께 맡겨졌고,
세 번째 비밀은 성모님의 말씀에 따라 공개되지 않다가 2000년 대희년에 공개되었다.

 

파티마 예언

파티마에서의 성모님의 첫 번째 예언은
지옥의 환시와 1차 세계대전의 종결이었고,

 

두 번째 예언은 또 다른 전쟁의 발발 즉 2차 세계 대전의 발발과,
소련의 대두와 몰락이었는데 이는 1942년에 교회 당국에 의해서 공표되었다.

 

그러나 제3의 예언은 성모님의 고지(告知)로 1960년까지는 발표되지 않았다.
루치아 수녀에 의해 세 번째 계시도 로마 교황청에 알려졌으나, 역대 교황들은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이후 바티칸의 비공개 방침은 그동안 '세상의 종말이 왔다'고 주장하는 사교들을 양산했으며,
81년에는 계시 내용 공개를 요구하는 항공기 납치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2000년 바티칸 국무장관 안젤로 소다노 추기경에 의해 발표된 세 번째 비밀은,

“총격을 받고 땅바닥에 쓰러진 흰옷 차림의 사제에 관한 것” 으로
곧 1981년에 있었던 교황 암살시도라고 발표하였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81년 파티마의 성모 마리아 발현 기념일인 5월 13일에
성 베드로 광장에서 총격을 받았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났고
이듬해 5월 13일 감사 기도 차 파티마를 방문했을 때
다시 스페인 광신도의 암살기도가 있었다.

 

 

 

 

보랭의 성모 발현
1932년 11월 29일부터 이듬해 1월 3일까지 벨기에의 보랭(Beauring)에서
33번에 걸쳐 성모님의 발현이 있었다.

 

이 발현을 목격한 이들은 믿음이 부족하고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았던

브와쟁 집안의 페르낭드(Fernande), 질베르드(Gilberte), 알베르(Albert)와
드장브르 집안의 앙드레(Andre), 질베르트(Gilberte) 등 다섯 명의 아이들이었다.

 

13살의 질베르트 브와쟁은 애덕 수녀회에서 경영하는 수도원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다른 아이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다가 아주 환한 불빛 속에서 성모님의 발현을 목격했다.

 

1932년 12월 8일 이후의 발현은 모두 매일 저녁 6시에서 10시 사이에 계속되었는데
성모님은 아이들에게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것과 순례자들이 올 수 있는

경당을 세우게 하라는 메시지를 전해 주었다.

 

12월 21일에 성모님은
"나는 원죄 없이 잉태된 동정녀(la Vierge Immacul e)이다"라고 말씀 하셨으며

12월 31일에는 현대인의 신앙생활과 가정 생활을 안타깝게 여기시면서
티없이 깨끗하신 마리아 성심을 보여주었다.

 

1월 3일에는 다섯 명의 아이들에게 개별적으로 그들의 생애에 관한 것을 알려 주었으며,

"나는 죄인들을 회개시킬 것이다.
 나는 하느님의 어머니이며, 하늘의 여왕이다. 항상 기도하여라" 라는

말씀을 전해주면서 발현을 마치셨다.

 

마리아 성심의 표시와 메시지

성모님이 발현하신 마지막 여섯 번의 저녁,
현대인의 신앙 생활과 가정생활을 안타깝게 여기시면서 성모님께서는
자주 기도하라고 강조하시면서 팔을 벌려 당신의 황금빛 심장을 보여주셨다.

 

이렇게 그들은 티없이 깨끗하신 마리아 성심의 표시와,
메시지를 받았으며, 성심의 가치가 어떠한지를 똑똑히 알게 되었다.

 

동정녀는 당신을 아이들에게 이렇게 소개하셨다:
"나는 티없이 깨끗하신 동정녀이다" (1932년 12월 21일),
"나는 천주의 모친이며, 하늘의 여왕이다" (1933년 1월 3일).

그리고 세 번에 걸쳐 같은 요구를 하셨다
"많이 기도하여라. 항상 기도하여라."


"성당을 짓고" (1932년 12월 17일),
"사람들이 이 성지로 순례" 하도록 (1932년 12월 23일) 교회에 요구하셨다.

 

거룩하신 동정녀께서는 복음서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나는 죄인들을 회개시킬 것이다."
"내 아들을 사랑하느냐? 나를 사랑하느냐?
 그렇다면 나를 위하여 희생을 바쳐라. 안녕" (1933년 1월 3일).

 

이 발현에 대한 조사가 1934년에 구성된 교황청 위원회에 의해 이루어져
1942년 12월 7일 공적으로 인정을 받았으며,
이듬해 2월 19일 나뮈르(Namur) 교구장 샤뤼(A.Charue) 주교에 의해
공식적인 보랭의 성모 마리아 공경예식이 허락되었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많은 치유사례가 있었는데
특히 신체적인 치유보다는 영성적인 치유와 회개의 사례가 더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바뇌의 성모 발현

바뇌는 오늘날 프랑스 루르드와 포르투갈의 파티마, 멕시코의 과달루페와 함께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성모 발현 성지이다.

 

바뇌는 벨기에 동부 리에주 교구 관할인 루베네에 위치한 작은 산골 마을로
지난 1933년 1월15일부터 3월2일까지 성모 마리아께서 12살 소녀인 마리에트 베코
(Mariette Beco)에게 8번이나 발현해 당신을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라고 말씀하셨다.

 

성모님은  매번 저녁 7시 무렵에
하얀 옷에 파란색 허리띠를 맨 모습으로 고개를 왼쪽으로 약간 기울인 채
미소를 지으며 소녀의 집 정원 전나무 위에 나타났다.

 

성모님은 마리에트를 작은 샘터로 인도한 후
 “모든 민족들을 위해” “병든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려고” 이 샘을 마련했다고 말씀하신 후

 “작은 경당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하셨다.

 

바뇌 성모님의 메시지는 아주 단순하다.
기도할 것을 권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구원을 강조한 것이 모두이다.


종말에 대한 경고나 절박하고 극단적 훈계를 통한 희생과 보속, 참회 등의 권고는 없다.

 

바뇌의 성모님은 당신이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라는 새로운 호칭을 사용해
마리아의 노래(루가 1,46~55)에 나타난 마리아의 가난과 소박함, 겸손을 알려주셨다.

 

또한 마지막 발현에서 “나는 구세주의 어머니,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밝힘으로써
바뇌의 메시지가 마리아에 대한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과 일치함을 확인시켜 주셨다.

 

바뇌 성모 발현의 핵심은 ‘샘물’에 있다.
성모님은 “모든 민족들과 병든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이 샘을 마련했다”고 하셨다.

 

마리아의 샘은 순례자들에게 ‘치유의 샘’이 되었지만
신학자들은 이 샘은 인류를 생명의 샘인 그리스도와 일치시키고자 함을 상징하는 샘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아울러 이 샘은 모든 민족을 구원하고자 하는 구원의 보편성을 드러내 주고 있다고 한다.

 

바뇌의 성모님은 또한 “많이 기도할 것”과 기도하기 위한 “작은 경당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하시면서
“너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약속하셨다.

 

이 메시지의 의미는 ‘구원의 중재자’로서

인간과 함께 전구하는 마리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벨기에 교구장 케르크홉스 주교는 바뇌의 성모 발현을 보고 받고
처음에는 관심을 두지 않다가 병자들의 치유, 계속되는 순례, 냉담자들의 회개,
기도모임 형성 등을 지켜보면서 1935년 3월 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케르크홉스 주교는 2년간의 조사 후 1937년 6월
“성모 마리아가 마리에트 베코에게 발현한 사실은 적어도 개연성이 있다”는
인정과 함께 모든 조사 서류를 교황청에게 보냈고,

 

교황청에서는 1942년 1월2일자 공문을 통해
바뇌의 신빙성에 관한 결정을 교구장 주교에게 위임했다.

 

그러자 케르크홉스 주교는 우선 1942년 3월19일자 사목서한을 발표하면서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에 대한 공식 공경을 허락했고,

 

1949년 8월22일 사목서한에서
“성모 마리아가 마리에트 베코에게 1933년 1월15일, 18일, 19일, 20일과
2월11일, 15일, 20일, 그리고 3월2일에 걸쳐 8번 발현하신 사실은 믿을 수 있는 것으로
아무런 제한 없이 완전히 인정한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바뇌 성지는 교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성모 발현 성지가 됐다.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인 바뇌의 성모님은
발현 당시부터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공경받기 시작했다.

 

1933년 5월25일에는 바뇌의 성모님이 원하셨던
‘작은 경당’의 공사가 착수돼 성모님 발현의 광경을 그린 유리화 창문과 벽에
성모님의 은총에 대한 감사의 선물로 장식한 경당이 세워졌다.

 

이후 1947년 대성당이 건립됐고, 바뇌의 샘물은 1958년에 새로이 축복 됐다.
아울러 가난한 이들과 환자들을 위해 무료 숙박시설과 가난한 어린이들을 위한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의 집’이 세워졌다.

 

또 ‘기도할 것’을 요청한 성모의 권고에 따라 바뇌에서는 매일, 발현 시각인 저녁 7시에

묵주의 기도가 바쳐지고 있다.

 

또 1934년 3월에 결성된 ‘세계 평화를 위한 국제 기도 연맹’은
세계 50개국 이상에서 매일 같은 시각에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다.

 

벨기에 리에주 교구는 1958년 바뇌의 성모 발현 25주년을 기념해
교구를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에게 봉헌했다.

 

바뇌 성모 발현에 관한 연구 조사서 발행과 관련해 교황 비오 12세는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에 관한 공경을 인정하는 뜻을 몬티니 추기경을 통해 전달했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5년 5월25일 바뇌를 순례했다.

 

현재 세계 각지에서 700여개 이상의 바뇌 경당이 봉헌됐고,
국내에서도 대구대교구 구룡포 본당이 바뇌의 성모를 주보로 모시고 있다.

 

 

 

암스테르담의 성모 발현

1945년 3월 25일부터 1959년 5월 31일까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모든 민족의 어머니’라는 호칭으로 발현하셨다.

 

1996년 5월 31일 암스테르담 하아르렘의 주교 보메스 몬시뇰은
당시 보좌주교 푼트 몬시뇰과 함께 성모님을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라는 호칭으로
공경할 것을 공식적으로 허락했다.

 

성모님은 1945년에서 1959년 사이에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의 이다 페르데만(Ida Peerdeman)에서 발현하셨다.

 

그 때 성모님은

 "지금 이 시대에" 당신을 " 동 구속자, 중개자, 변호자"로 공식적으로 인정할 것을 요청하시고

그렇게 될 때에 비로소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는 세상에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 하셨다.

 

1961년 2월11일에는 당신을 "나는 모든 민족들의 여인이며 어머니인 마리아이다." 라는
새로운 호칭으로 소개하셨다.

 

성모님은 이 발현에서
분리될 수 없이 고통스럽게 연결된 십자가앞 에 서있는 모습을 보여주시면서


당신의 펼쳐진 손으로부터 나오는 세가지 빛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은총과 구원과 평화를 뜻한다."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성모님은 위의 기도문을 가르쳐 주시면서
이 기도를 십자가 앞에서나 이 성화 앞에서 매일 바치는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러 나오는 "은총과 구원과 평화"의 선물들을 약속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마리아로 알고 있었으나
 이제 나는 새로이 시작되는 이 시대에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가 되기를 원한다."

 

1996년 5월31일 암스테르담의 보메스(Bomers)주교는
성모님을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라는 호칭으로 공경하는 것을 허락했고.
2002년 3월31일, 암스테르담의 푼트(Punt)주교는 이 발현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1945년부터 1950년 중의 첫 번째 스물 다섯 가지의 메시지들은
일반적 성격을 띠고 있는데 20세기 후반의 정치적, 영신적 혼란을 반영하는 장면들과 경고와 예언들이다.

 

성모님은 교회와 세상을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할 위협적인 위험들과
크나큰 영신적 투쟁에 대해 인류에게 경고하신다.


거듭 거듭 성모님은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지적하신다.

"그리스도께로 돌아가라, 그럴 때에만 진정한 평화가 있을 것이다."

 

1959년 5월 31일에 일련의 여러 발현들이 장엄한 환시로 끝나는데
여기서 성모님은 천상 영광 중에 나타나시고
하얀 불의 성체로부터 온갖 광채와 장엄함 안에서 주님의 형상이 나타났다.

 

이때부터 발현 목격자는 미사 중에 많은 체험과 환시를 보게 되었으며
이 체험들은 "성체적 체험" 이라고 불린다.

이것은 1980년까지 계속되었다.

 

발현의 특징으로는 성모님은 천상 영광 중에 나타나시고
하얀 불의 성체로부터 온갖 광채와 장엄함 안에서 주님의 형상이 나타났다.

 

성모님은 새로운 상본과 기도문을 주셨는데 교회로부터 인준을 받아
기도문은 전 세계에 50개 이상의 국어로 번역되고 수 천 만장의 카드가
여러 나라로 전파되고 있다.
 

 


 

메주고리예 성모 발현
1981년 6월 26일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 서쪽의 한 작은 마을의 6명의 아이들
빅카(16세), 미랴나(16세), 마리야(16세), 이반(16세), 이반카(15세), 자콥(10세) 에게

목격되기 시작한 성모 마리아 발현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그날 오후 늦게 메주교예의 포드브르산에서 전방 2, 3백 야드쯤 되는 지점에
밝게 빛나는 사람의 모습을 산책하던 나타나신 것이다.

 

성모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평화의 여왕이다.
나는 이곳에 많은 참된 신앙인이 있기 때문에 여기에 왔다.
나는 여러분과 함께 모든 세계의 사람들을 회개시키고 화해시키기를 원한다."

 

성모님의 사명은 평화와 사랑 그것이다.
성모님은 우리를 회개하여 우리의 삶을 하느님께로 되돌리도록 돕고자 하시며,
성모님의 역할은 그녀의 아들 예수께로 사람들을 이끄는 것이다.

 

성모님께서는 이 여섯 명의 아이들에게 가까운 장래에 지구상에 일어날 비밀을
가르쳐 주기로 하셨다.

 

성모님께서는 또 볼 수 있는 징표를 남길 것을 약속 하셨다.
"이 징표는 무신론자들을 위해 주어질 것이다.
 믿는 자들은 이미 이 징표를 받았고 믿는 자들이 무신론자들에게 징표가 될 것이다.
 믿는 자들은 징표를 기다려 회개하지 말아야 한다.

 

 곧 회개하라.
 지금이 바로 은총의 때이다.
 여러분은 그분의 은총을 아무리 감사해도 부족하다.
 지금이 바로 여러분의 믿음을 더욱 깊게 할 때이며, 회개의 때이다.
 징표가 나타날 때이면 많은 사람들에게는 너무 늦을 것이다."

 

성모님 발현은 유고슬라비아 정부 당국의 비상한 관심 속에 감시를 받고 있으면서도
사방으로 널리 알려져 여러 나라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있으며,
틀림없는 성모님의 발현이라는 증언이 계속 나오고 있다.

 

사제관, 그리제바코산의 십자가 곁, 야고보 성당 등 자리를 옮겨가며 발현하시는
성모님은 “기도와 단식”이 전쟁을 피할 수 있는 길이라 하시며,
자연법칙을 중지시킬 수도 있음을 거듭거듭 강조하고 계신다. 

 

지금까지의 발현 역사 중에서 가장 오래 지속되고
또 매일 이루어져 횟수로도 벌써 5000회가 넘게 이루어지고 있는 이곳에서의 발현은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 인류를 향한 회개와 평화의 메시지,
앞으로 있을 경고와 기적의 표징을 포함하는 비밀의 중대성 때문에
1981년 이후부터 세계 각지에서 1,500만 명 이상이 순례를 하고 있다.

 

2010년 4월 헤르체고비나 주교들의 요청에 따라 교황청은
성모 발현 현상을 연구할 국제위원회를 설립했고,
로마의 은퇴 대주교 카밀로 루이니 추기경이 이끄는 이 위원회는
교황청 신앙교리성의 방침에 따라 활동 중에 있다.

 

1981년 초에 성모 마리아가 날마다 자기들에게 나타났다고 어린이 6명이 주장하자
관할 모스타르-두브노 교구는 이 주장을 조사할 위원회를 설치했다.

 

당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유고슬라비아에 속해 있었으나 유고 연방이 해체되면서
"발현 현상이 초자연적 성격의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결론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교황청 대변인 롬바르디 신부가 전한 바 있다.

 

이후 1991년 지역 주교회의는
"초자연적 발현이나 계시가 일어나고 있다고 확인할 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해
주교들과 사제들에게 메주고리예 순례단을 공식으로 모집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으며,

 

이어 1996년 교황청은 한 프랑스 주교의 질문에 대해
메주고리예 공식 순례단을 모집해서는 안 된다는 주교회의 입장을 확인하면서도
메주고리예로 순례 오는 개별 신자들에게는 사목적 배려를 해주고 성사를 집전해줘야 한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그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주교들은 신앙교리성에 이 발현 주장에 대한 연구를 요청했다.

2010년 위원회 설립 발표는 오스트리아 빈의 크리스토프 쇤베른 추기경이
메주고리예를 매우 공개적으로 방문해서 교회는 이 마을에 대한 사적 순례들이
기도와 화해의 결실을 맺고 있다는 것을 승인해야 한다고 주장한 지 3개월 만에 이루어진 일이다.

 


성모님 발현의 의미

교회에서 성모발현과 그 발현 때 이루어진 사적 계시를 인정한 곳은 다음과 같다.
-1531년 멕시코 과달루페(Guadalupe)에서 4차례 발현.
-1830년 프랑스 파리 뤼드박에서 발현(기적의 메달)
-1846년 9월 19일 프랑스의 라 살레트(La Salette)에서의 발현.
-1858년 2월 11일 ~ 7월 16일 프랑스 루르드(Lourdes)에서의 18차례 발현.
-1879년 8월 21일 아일랜드의 노크(Knock)에서의 발현.
-1917년 5월 13일 ~ 10월 13일, 포르투갈의 파티마(Fatima)에서의 6차례 발현.
-1932년 11월 19일 ~ 1933년 1월 3일, 벨기에의 보랭(Beauraing)에서의 발현.
-1933년 벨기에의 바뇌(Banneux)에서의 발현 등.

 

교회는 전통적으로 사적계시를 인정해 왔다.
공적계시는 그리스도가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을 통하여 가르치고 보존하고
전달하는 신앙의 유산인 반면에, 사적계시는 신앙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발현과 사적계시가 참된 것인지를 결정하는 이는 관할교구장이며
최종적으로는 교황청에서 판단한다.

 

사적계시에 대한 식별기준은 다음 세 가지이다.
첫째, 교리적 기준으로 사적계시의 내용이 교회의 가르침에 부합해야 한다.

둘째, 심리적 기준으로 사적계시를 체험하는 사람의 인격이 건전한 균형을 갖추고 있어야 하고,
정신착란과 같은 병적 소인이 없어야 하며, 환상이나 환시 속에서 과장되거나 조작된 것이 아니어야 한다.

셋째, 영적 결실의 효과로써 영적인 결실들이 사적계시의 결과로 드러나야 한다.

 

주교와 교황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교회를 운영할 권한과 책임을 받았다.
이것을 교도권이라고 하는데 교도권은 신앙에 관한 모든 사항을 판단함으로써
잘못된 해석과 혼란, 나아가 분열로부터 교회의 일치를 유지한다.

 

성모 마리아의 발현이 보고될 때 교도권은
이 발현이 신앙에 합당한지를 식별하여 최종적으로 판단하게 된다.

 

교도권이 성모 마리아보다 더 높은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권한으로 모든 신앙진리를 결정하고,
교회일치를 유지하는 것이다.

 

신빙성이 없다고 결론 내린 미국 베이사이드 성모 발현
종교개혁자들은 가톨릭교회를 반대하여 마리아 공경을 거부하였다.


그러나 사실 종교개혁에 앞장섰던 마르틴 루터는 가톨릭교회를 반대하고
비판하였지만 그 자신은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이 큰 사람이었다.

 

아무튼 종교개혁자들에 대한 반작용으로 가톨릭교회 안에서는 반이성주의와
초자연적 신비주의에 매력을 느끼며 마리아 신심을 더욱 옹호하였다.

 

또한 성모 발현이라는 기적 현상은 이러한 대중 신심을 더욱 자극시켰다.
이러한 가운데 과장된 마리아 신심 행위가 프로테스탄트를 비롯한
반마리아주의자들에게 비난할 구실을 제공한 것도 사실이다.

 

오늘날 미국에서 시작한 베이사이드 성모신심에 의문이 생겨,
전 인천교구장 나길모 주교님이 미국의 교구장에게 질문을 던져 답변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답변의 내용은 이러하다.
“존경하올 나 주교님,
주교님께서 문의하신 ‘베이사이드 성모 발현’에 대해

도움이 되어 드리고자 그 자료들을 동봉하여 드립니다.

 

성모 발현에 대해 저희 교구에서 철저한 조사를 실시한 바

 그 신빙성이 희박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따라서 브루클린 교구의 공식적이고 확정적인 입장은
이른바 ‘베이사이드 성모 발현’에 대해 신빙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교님께서는
저희 브루클린 교구의 공식적인 견해를 널리 공표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와 유사한 예가 한국에서도 있다.
상주의 황 데레사는 탈혼 상태에서 천주 성삼과 성모님과 천사들과
천당, 연옥, 지옥을 보았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을 겪었다고 주장하면서
그러한 일들을 자신의 여러 책을 통하여 이야기함으로써 성모신심을 잘못 이끌고 있다.

 

특히 1985년에 시작된 ‘나주 성모 발현 사건’에 대해서
광주 대교구장 윤공희 대주교님은 조사위원회를 통해 면밀히 조사를 한 후
교도권의 이름으로 나주 성모 발현을 참된 계시로 보지 않고,
나주 성모 발현과 관계되는 일체의 신심행위를 금지시켰다.


그리고 후임자이신 최창무 대주교님도 이를 재확인하였다.

이에 대해 일부 성직자와 신자들이 반발하였는데,
어떤 경우에도 교도권을 거스름으로써 교회일치를 깨뜨려서는 안 된다.

교도권을 중심으로 일치하는 것이 예수님의 명이고 성모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일치를 깨거나 불순명으로 나아가는 것은 참된 것이 아니다

이처럼 교회사 안에서도 여러 번 성모 발현이 있어왔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앞에 서술한
그동안 역사 안에서 검증된 성모님 발현은, 발현의 목격자를 위한 것뿐 아니라,
전체 교회를 위한 메시지를 주된 내용으로 담고 있다는 것이다.

 

발현에 대해서 교구장들은 복음적 가치를 기준으로 진실성과 항구성
그리고 신앙의 유익함 등을 점검해 보고 신앙인들의 영적 성장에 도움이 된다면
지역교구에서 조사위원회를 거쳐 신앙적인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무엇보다 신앙의 여인이시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이 신앙의 응답은 하느님의 뜻에 기꺼이 열정적으로 응답해야 하는 우리 모두의 전형이 되고 있다.

 

사실 마리아의 모든 특은은 이 신앙의 응답에서 시작된다.
이를 근거로 성모님의 발현이 교회의 일치를 깨거나 불순명으로 나아가는 것은 참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오늘날 피눈물 흘리는 성모라든지, 성모 발현 등을 다루는 내용들은

가시적인 기적이나 기이한 현상에 중점을 둔 경우가 많다.

 

더욱이 상업적인 이익을 위해 과장된 선전을 하거나 성역화 작업을 우선적으로 시행하려고 한다.

그리고 지역교회에서 인정받지 못한 경우에는 로마교회에 조사를 요구하거나
지역교회의 교도권과 가르침에 순명하지 않고 자신들의 과장된 주장들을 관철시키려 한다.

 

교회는 그릇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신자들을

건전한 신앙으로 되돌아오도록 계도할 사명을 지니고 있다.

 

또한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사목자들이나 수도자들의 명확한 신앙관과
올바른 신심이 우선적으로 요구됨을 절감한다.

소경이 소경을 이끌면 둘 다 구렁텅이에 빠진다는 성경말씀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출처 : 수단이태석신부님/수단어린이장학회
글쓴이 : 베로니카~☆ 원글보기
메모 : 성모발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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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phia 2011. 2. 20. 22:13

 

 

성경에 나타난 하느님의 이름 (명칭)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거나 욕되게 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하느님의 이름도 함부로 부를 수 없다. 

 

'하느님' '하나님' '야훼' '여호와' 등등

같은 분을 여러 가지 이름으로 각 종파마다 다르게 부르고 있으며,
그 이름에 대해서 서로 논쟁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감정이 상하기도 하다.

 

그런데 하느님의 이름에 대한 논란이 일어난 근본적인 원인은
그분께서 당신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하게 하신 데에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주 오랜 옛날부터
그분의 이름을 함부로 '발음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역시 그분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2005년에 새로 편찬된 가톨릭 새성경 에서는 하느님의 이름인 '야훼'

가급적이면 자제하고 '주님'으로 표기하고 있다.

 

인류의 역사와 사회적 관습 안에서 이름은

그 사람의 실체를 나타내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부모나 스승의 이름을 함부로 다루지 않는 것을 우리나라도 예의범절로써 가르친다.

신의 이름 또한 마찬가지이다.

 

하느님의 이름은 인간의 이름에 비하여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통하여 다른 신과 구별되며

본질적으로 특징지어지는 가운데,
우리 인간이 그를 알고 또 부를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을 현시하셨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하느님의 이름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하겠다.
하느님의 이름은 하느님의 속성을 알려 줄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실체와 동일시되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통하여 인간과 함께 계시고,
반면 인간은 하느님의 이름을 통하여 그분의 속성을 알게 될 뿐 아니라


그분과의 상호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하느님의 이름은 인간과 하느님의 관계를 나타내는
중요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데 그분은 상당히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하느님 이름의 서로 다른 성경적 기원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의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었으며,
또 어떻게 그분을 불렀을까?

 

이에 대하여 성경 기록자는 서로 다르게 서술하고 있다.

 

구약성경의 문서들은 크게
야훼계(J), 엘로힘계(E), 신명계(P)로 나눌 수가 있는데,
이 문서들의 차이는 하느님에 대해서 약간씩 다르게 나타내고 있다.

 

여러가지 차이가 있겠지만 우선
J(야훼계)에서는 하느님께서 처음부터 '야훼'로 불리웠지만

E(엘로힘계)와 P(신명기계)에서는 하느님께서 다른 이름으로 불리우시다가

나중에 가서야 당신의 이름을 밝히시는 분으로 나타난다.


즉, 성서 학자들이 성서를 연구하던 중 그런 차이점을 발견해서
구약성경을 3가지 유파(야훼계, 신명계, 엘로힘계)의 작품으로 파악하고 있다.

 

먼저 야훼스트(J)계 문헌으로 나뉘는 성서부분에서는
이미 태고사(고대사)와 성조사(족장사)에서 야훼의 이름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다.

 

즉 "야훼계(J)"문서에서는 제3세대의 대표인 에노스 때에
야훼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하기 시작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창세 4, 26).

 

이에 반하여 E(엘로힘계)와 P(신명기계)의 경우에는 다르게 나타나는데,
이 두 문서에 의하면 신명(神名 : 하느님의 이름)의 계시는
이스라엘 역사의 초창기인 모세 시대에 발생한다.

 

즉 그 전에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고 단지
"엘로힘(ELOHIM)"으로 불리우고 계신 것이 야훼계 문헌과의 차이이다.

 

E(엘로힘계)에 따르면 모세가 시나이 산(호렙 산)에서 하느님의 부름을 들었는데
그때까지의 하느님은 비(非)이스라엘인의 신에게도 사용하였던 보통명사
"엘로힘(ELOHIM)"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모세가 자신의 소명을 받고, 하느님의 이름을 물었을 때
하느님은 당신을 "야훼(YHWH)"라고 밝히셨다. (출애 3,1;4b;6;9-15).

 

P(신명기계)의 서술은 조금 더 독특하다.
P의 문서에도 E와 같이 "엘로힘(ELOHIM)"이라는 일반적인 이름으로 태고의 하느님의 활동을 묘사한다.

 

창세기 17,1에 보면 하느님은 성조 아브라함에게
"엘 샤다이(EL SHADDAI : 전능하신 하느님)"란 이름으로 나타나셨다.

 

그러나 출애굽기 6장 2절에서는 창세기 17장을 상기하면서
모세에게 전혀 새롭게 당신의 이름을 "야훼"로 소개하셨다.

 

즉 "나는 야훼다.
나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전능의 신으로 나를 드러낸 일은 있지만
야훼라는 이름으로 나를 알린 일은 없다."(출애 6,2-3).라고 전하고 있다.

 

구약성경에서는 이렇게 하느님의 이름에 대한 차이를 드러내는 여러 전승이 있으며,
이러한 상이한 전승을 대하면서 알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고유한 이름인
"야훼"에 앞선 여러 하느님의 이름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중 아담의 탄생

 

엘(El)

엘(El)은 '하느님'을 뜻하는 셈족어의 보통명사로,
이 단어가 지닌 원래의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지만
대략 권능 있는 자, 지도자, 주관자라는 의미를 지닌 것으로 파악된다.

 

그런데 엘(El)이라는 이름은 하느님께만 쓰인 것이 아니었다.
14세기와 13세기의 형편을 알려주는 고고학적 문헌인 우가릿(Ugarit)문서에 의하면,
가나안의 종교는 다신 종교로서 가나안 만신전에는 수많은 신들이 있었고,
그 많은 신들 가운데 주신(主神)이 바로 엘(EL) 이었다.

 

이 엘(EL)은 모든 신들을 다스리는 최고의 권위를 가진 신들의 아버지,
혹은 신들의 왕이었던 것이다.

 

또한 엘(EL)은 가나안 지방이 농사를 하며 살아가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농사와 관련된 '황소의 엘'이라고도 하였는데
엘은 생명과 다산을 베풀어주는 신으로 여겨졌다.


구약성경에서 이러한 엘(EL)이 "하느님"(God)으로 번역된 경우는 약 250회 정도로,
특히 위대한 능력의 하느님을 나타내는 이름이었다
(창세 17,1;35,11. 민수 23,22. 신명 10,17. 등).

 

또한 창세기에는 사람 이름에 엘(EL)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다.
이는 이스라엘의 신앙이 가나안 성소들을 통하여 전해진 셈족의 유산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며, 천사들의 이름에도 엘(EL)이 들어간다.

 

사람이름이나 천사 이름에 엘(EL)이 들어간 예는,
미카엘(누가 하느님과 같으냐),
라파엘(하느님이 낫게 하셨다),
가브리엘(하느님의 영웅),
임마누엘(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등이다.

 

그때까지는 하느님의 고유한 이름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당시의 최고의 신으로 불리우는 엘(EL)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으로,
최고의 신이 바로 하느님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저 엘(EL)이라고만 부른다면 가나안의 신과 차이가 없기 때문에
성서저자들은 엘(EL)에 다른 수식어를 붙이게 되었다.
그리고 후대의 하느님의 고유한 이름인 야훼에 연결시키고 있다.

 

즉, 비록 가나안의 신과 같은 이름인 엘(EL)로 부르지만
그 앞에 다른 수식어를 붙임으로서 하느님의 독특성과 고유성을 드러내고
이 하느님이 바로 후대에 자신을 계시하시는 야훼 하느님이라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초기에는 최고의 신인 엘(EL)의 어원적 개념을 통해서 하느님의 특성을 표현했다.

그런데 이런 셈족어인 엘(EL)이라는 이름을 지닌 하느님은 몇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로, 가나안의 신처럼 여타의 신들과 친족 관계가 아니라,
그러한 신들을 훨씬 뛰어넘는 압도적인 위엄을 지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둘째로, 하느님은 어떤 자연물중의 하나가 아닌 자연의 배후에 있는 권능
또는 '자연 속에 드러난 자연을 다스리는 의지'로 묘사하고 있다.


셋째로, 히브리 이주민들 사이에서 가나안 '바알' 제의를 반대하여
엘(EL)에 대한 예배가 시행되었다. (하느님이신 '엘(EL)'에게)

 

넷째로, 족장들 이름을 말한 뒤에 엘(EL)이라는 이름을 자주 덧붙이거나,
엘(EL )을 "조상들의 하느님" 또는 "내 아비의 하느님", "네 아비의 하느님" 등으로
지칭하였는데, 이는 하느님과 개별 지도자간의 특별한 관련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특징은 신이 특정한 제의 장소와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최초에 계시를 받았고 또 그 신을 섬기고 있는 인물과 결부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처럼 엘(EL)이라고 불리신 하느님의 특성은
어떤 자연력이나 특정 지역에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종족이나 개별 예배자들의 운명 속에서 작용하는 것이었다.

 

 

 

해와 별을 창조하시는 하느님

 

엘 엘욘(El Elyon)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이는 또 하나의 이름이 
엘 엘욘(El Elyon)이다.

 

히브리어 'Elyon'의 어원은 ala(위로 오른다. 높다)인데,
Elyon은 남성 명사형인 '보다 높은 것'(창세 40,17), "가장 높은 것"(창세 14,8)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El Elyon은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으로 해석 될 수 있다.

 

창세기 14장에서 아브라함이 전쟁에서이기고 돌아올 때,
살렘의 왕이요, 제사장인 멜키체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아브라함을 다음과 같이 축복한다.

 

"하늘과 땅을 만드시고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El Elyon)께  아브람은 복을 받으리라."

 

당시 멜키체덱은 엘 엘욘(El Elyon)의 제사장이었는데
바로 그 신의 이름(엘 엘룐)으로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빌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학자들은 엘욘이 이스라엘 이전 시대 (이스라엘 백성으로 묶여지기
전에)에 예루살렘에서 예배되었던 신이었다고 보고 있다. 
즉 하느님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이름이 이방인들에게도 나타나고 있는데,
그들은 신들을 지배하는 신을 El Elyon(엘 엘룐)으로 숭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El Elyon(엘 엘룐)은 그런 신이 아니라
진실하신 한 분 하느님으로서의 초월적인 본질을 가지신 분이었다. 

 

그런데 이 엘욘이라는 이름은
이스라엘 백성이 성립된 후에 조금씩 그 중요성을 잃어가게 된다.

 

왜냐하면 이 명칭은 보편성과 명확한 정의의 결여로 인하여
유대교와 이교 사이의 구분을 명확하게 하지 못하였기 때문으로
하느님의 독특성을 나타내기에는 부족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후기에 이르러 또 다시 이 이름이 중요성을 띄게 되었는데,
그 당시에 국수적인 유대적 경향을 꺼리는 사조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유대와 이방사이에 두루 쓰일 수 있는
즉 유대와 이방인 사이의 중도적인 성격을 지녔던 이 이름을 선호하게 되는데,
서로를 받아들이기 위한 것이었다고 하겠다.

 

이방인들과 함께 살수밖에 없었던 이스라엘의 공동체들 (디아스포라 : 이방 지역의
유대인 공동체)은 이방인들을 완전히 무시하며 살아 갈 수는 없었다. 


워낙 민족주의적 성격이 강한 이스라엘을 반대하는 경향 속에서
이교의 신들과의 연결점을 형성할 수 있었기 때문에
디아스포라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이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매우 선호했다.

 

 

 
어둠에서 빛을 창조하시다

 

엘 올람(El Olam)
엘 올람이라는 이름도 창세기에 나오는 '하느님의 이름' 인데,


창세기 21장 33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브에르 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그 곳에서
 영원하신 하느님(El Olam) 주님(야훼)의 이름을 받들어 불렀다." 라고  표현되고 있다.

 

아브라함은 여기서 하느님을 엘 올람으로 불러 예배하고 있는데,
'Olam'은 "영구한", "영원한" 등으로 번역될 수 있다.

이 단어는 전후로 무한히 긴 시간의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엘 올람이라는 이름은
초기 시대에 단 한번 브에르 세바의 제의 장소와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원래 이 신의 이름은 그 지역신의 이름이었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에 의하여 채택되어 하느님을 나타내는데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이름은 시간의 변화를 뛰어넘는 신의 영속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영원한 속성을 지닌 하느님을 나타내기 위해서 '최고의 신'의 명칭인 '엘(El)'과 연관시켜 사용한 것이다.

 

최고의 신으로 예배되었던 엘(El)을
시간을 초월한 살아 있는 권능의 신의 개념과 결합하여 사용한 것은 확실한 듯하다.
그리고 이는 참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하느님은 변화하는 자연현상들과 같은 분이 아니라
언제나 유일하고 변함없는 분이기 때문이다.

 

'엘 올람(El Olam)'에 대한 고고학적인 자료들

기원전 15세기의 라스사므라(Ras Shamra)문서에는 '영원한 태양'으로 나타나고,
"영원한 자의 사마스"(Shamash the Eternal One)는 주전 8세기의
카라테페(Karatepe)의 저주 비문에,

그리고 영원한 자인 엘라트(Elath the Eternal One)은
주전 7세기 아랍인의 문서에 나타난다.

 

올람 이라는 단어가 '영원한', '영원한 시간'을 뜻하므로 엘(El)에 적용하여 보면,
구원과 구속에 대한 영원한 약속과 관련된 하느님의 영원성을 표현한 하느님의 이름이며,
하느님의 주권은 시간에 관계없이 모든 시대에 걸쳐 계속 된다는 뜻임을 알 수 있다.

 

엘 로이(El Loi)
창세기 16장 1-14절에 보면 아브라함의 첩 하가르(본부인 사라이의 여종)은
잉태한 후 주인인 사라이(본부인-아이를 낳지 못함)를 멸시하였다.


그러자 사라이가 하가르를 학대하자 하가르는 견디지 못하고 광야로 도망간다.

그때 샘물 곁에서 주님의(야훼) 천사가 하가르를 만나
이스마엘의 잉태와 자손 번성을 약속하는데 이때 하가르가
"나를 돌보아 주시는 하느님"이라고 부른다.

 

 

 

광야의 하가르와 주님의 천사

 

엘 로이는 문자적으로는 "시각의 하느님", "내가 시각으로 본 하느님"
즉 하느님이 친히 시야에 계시된 것을 의미하거나,
모든 것을 보시는 하느님, 그러므로 나도 보시는 하느님을 의미하는 것이다.

 

엘 로이( El Loi)는
"보시는 하느님" 또는 "나를 보시는 하느님"이라는 의미이다.

 

즉 '나는 과거, 현재, 미래까지 세밀히 보시고 계시는 하느님'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엘 로이(El Loi)는 바알(Baal) 종교와 결부되면서 중요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아마르나 서신들과 몇몇 이집트 문서들을 보면
'바알 로이(Baal Loi)'는 에집트에서도 숭배되었던 가나안 신으로 등장한다.

 

아마도 그러한 신의 이름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아
하느님을 El Loi라고 불렀는지도 모르지만,

El Loi 라는 이름은 당신을 섬기는 사람들을 보호하시는 하느님의 특징을

부각시킨 이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도나이(Adonai)

구약시대에 유다인들은 하느님의 이름에 대한 지극한 존경심에서

야훼(Yahweh)라는 이름을 감히 발음하지 못하고 그 대신 일반적인 신을 지칭하던

고대 히브리어  '아도나이'를 사용했다.

이는 '주님' 또는 '나의 주님'이라는 뜻이다.

 

야훼(Jahweh) : 스스로 계신 분

야(JAH) : 야훼

'YhWh' 라는 네 개의 자음으로 이루어진 이 말은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부르는 이름 중의 하나이다.

 

그 단축형인 "야"  (Yhw 또는 Yaho)는 이사야의 경우처럼 이름자 끝에 나타나거나,
알렐루야와 같이 전례용 문구에 사용되기도 하였다.

 

야훼란 이름의 의미에 관해서는 견해가 갈린다.
① `그분이다!' 라는 의미의 환호성이라는 견해
② `있다'는 의미의 동사에서 유래한다는 견 해,
     즉 모세가 하느님으로부터 `나는 곧 나다'라고 들었던 이름을 백성에게 전할 때

     간접화법으로 `그는 곧 그다'라고 했다는 견해,
③ 모세의 질문에 대한 주님의 거절이라는 견해 (소극적으로 유비적인 답변을 하신 예)
④ 주님의 영원성을 강조하여 `나는 곧 나였던 나일 것이다'라고 번역하는 견해,
⑤ 하느님의 속성을 가리키는 자존을 의미한 다는 견해 등이 그것이다.
 
이 모든 설명은 하느님의 이름이
탈출기 3:14에서 동사 `있다'의 형태에 근거를 두고 있음을 간과하는 흠이 있다.

 

문법적으로 야훼는 이 동사의 원인을 나타내는 형식이어서
"그는 있도록 한다.
그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그렇게 존재하도록 한다." 는 뜻으로,
그 이름은 만물의 창조주이신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묘사하는 것이다.

 

다수의 구절에 따르면,
야훼란 이름은 노아의 홍수 전에 성조들에 의하여 알려진 것으로 되어 있으나,
사실은 모세시대에 알려질 그 이름을 성서 기자가 예견하고 미리 쓴 것이다.

호세아는 오직 탈출기 시대부터 하느님이 야훼라 불려졌음을 암시한다.


유배기 이후 야훼란 이름은 부르기가 황송하였고,
인격적인 이름을 가진 잡신들과 구별하며 불경죄를 범하지 않으려는 이념에서
아도나이 또는 엘로힘으로 대신 불렀고, 이런 대용명칭을 부르며 세월이 흐르자
마침내 야훼의 본래 발음을 잊게 되었다.

 

 

 
모세와 떨기나무

 

[탈출 3,14]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있는 나다." 하고 대답하시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있는 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야훼(Jahweh) 하느님의 인격적인 이름

야훼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계시된 하느님의 인격적인 이름이다(출애3,1-15; 34,1-7).


다른 민족의 신들을 하느님으로 추대하지 않던
이스라엘 민족(2열왕 19,l8; 예레 2,11)에게 있어서 엘 또는 엘로힘이
야훼라는 이름으로 알려짐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하느님으로 여겨지게 되었던 것이다,

 

하느님의 이름은 우선 고대 종교의 다신론적인 상황에서는 매우 중요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자기와 관계된 하느님을 인격적으로 안다는 것을 뜻했기 때문이다.

 

"어느 민족이나 저희 신의 이름을 부르며 살지 않느냐?
우리도 자손 만대에 우리 하느님의 이름 야훼를 부르며 살아가자" (미가4,5).

 

그리고 더 나아가서 하느님의 이름은
하느님의 본성을 나타낸다고 여겼기 때문에
하느님의 이름은 존경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이름을 헛되게 불러서도 안되었고(출애 20,7; 신명 5,11),
욕되게 해서도 안되었다(레위 18,21; 24,11).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할 때 신적인 권위를 부여받았고 (신명 18,19; 예레 26,30; 44,16),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한 축복과 저주는 실제로 효능이 있었다 (민수23-24장),

그리고 맹세할 때나 예배를 드릴 때(창세 12,8; 1열왕18,24)는 하느님의 이름을 불렀던 것이다.

 

이와 같이 하느님의 이름은
하느님에 대한 가장 인격적인 접근의 토대가 되었다(시편9, 1; 27,4; 54,1; 91,14).

 

따라서 하느님의 이름을 아는 자들은
하느님의 정체와 인격적인 특성을 알고 있으므로 하느님을 신뢰하고

하느님께 전적으로 투신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야훼라고 불리는 하느님은
사실상 출애굽 사건을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대대로 알려지셨던 분이시다.

 

즉 야훼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에집트의 노예생활로부터 구출하신 이스라엘 민족의 하느님이시다
(출애 20,2; 호세 11,1; 12,10; 13,4).

 

달리 말하자면, 성조들에게 이미 알려진 영원하시고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이제 출애굽 사건과 함께 야훼라는 이름으로 당신 자신을 새롭게
그리고 좀더 구체적으로 계시하셨다고 하겠다.

 

야훼는 활동적인 하느님이시며 야훼의 주권은
역사적 사건 속에 나타난다는 확신을 먼저 보여 주고 있다(출애 3,7-10),

 

그리고 나서 야훼는 모세의 조상들 가운데 활동하셨던
바로 그 하느님이시라고 또한 확인시켜 준다(출애 3,15).

 

이와 같이 살펴볼 때, 하느님의 이름 야훼가 갖고 있는 중요한 면은
언어학적 가치보다는 역사적 연관성에 있다.

 

모세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지시도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의 이름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느님 야훼이시다,"(출애3,15)라고 알리는 것 뿐이었다.

 

사실상 이스라엘 민족은 야훼라는 이름이 지닌 문자적인 의미보다는
출애굽으로써 시작하는 이스라엘의 역사적 경험을 통하여 구체적인 내용을 터득했던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야훼 하느님께서는 구원 행위를 통해서 당신의 이름과 함께

당신 자신을 계시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은
역사적 계시에 그 근거를 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맥락 속에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계시의 하느님이시요,
역사의 하느님이시며, 야훼라는 인격적인 이름을 가지신 분이시라고 오늘도 계속 선포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야훼께 대한 경외심 때문에 그 이름을 두려워하며
감히 부르지도 못하였다.

 

다만 1년에 한 번 대속죄(代贖罪) 날이 오면 대제사장이 성소로 들어가
10회 정도 '야훼'를 외칠 정도였고 그 외침은 신자들이 들어서도 안 될 정도였다.
또한 부르기조차 두렵기만 했던 '야훼'라는 이름은


4개의 자음으로(YHWH) 이루어진 글자 였기에 발음하기도 어려웠고,
그래서 '야훼'라는 이름대신 '아도나이'(주님)라고 불렀다.

 

개신교에서는 '야훼'를 '여호와'라 부르기도 하는데,
여호와라는 발음은 고대 유태인 공동체에서는 발음된 적이 없었던 일로,

이는 근세에 이르러 갈라티누스라는 사람이
자음자 YHWH에 아도나이의 모음자를 인위적으로 갖다 붙임으로써 형성된 발음이다.

 

후에 20세기의 학자들이 'YHWH"(야훼)의 올바른 발음은

 '여호와'가 아닌 '야훼'란 사실을 밝혀냈고,

성서학자들과 전문가들은 '야훼'로 칭호하고 있다.

 

영명(靈名), 세례명(洗禮名)

아담은 살아 있는 것 하나하나에게 이름을 붙여주었고,
하느님께서 아담이 붙여주는 데로 그것의 이름이 되게 해 주셨다.

 

이런 의미에서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모든 생명체에 이름을 붙이는 것을 허용하신 것은
피조물인 사람을 피조물 중의 피조물로 인정하신다는 의미를 갖는 것이다.

 

부르는 이름은 내 몸만이 아니라 내 존재 자체를 움직이는 힘을 가진다.
즉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나를 통제하고 움직이는 권한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이름을 지어준 사람은
나의 영혼에 대한 지배권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도 되는 것이다.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새로운 이름인 영세명을 받는 것은
내 삶의 지배자가 이제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심을 인정하는 행위인 것이다.

 

천주교 신자가 세례 때에 받은 이름인 세례명은,
자기가 특히 존경하는 성인이나 천사의 이름을 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자신의 수호성인으로 특별히 공경하고 보호받으며
그 품행(品行)과 성덕(聖德)을 본받으려 노력하는 데에 의의가 있다.

 

부모가 지어주신 본래 이름을 속명(俗名)이라 하고
세례명을 본명(本名)이라고도 한다.

 

하느님 or 하나님
YHWH 발음에 대해 그동안 천주교 (일부 개신교 포함)에선 야훼,

대부분의 개신교는 여호와를 사용해 왔다.

 

이는 초기에 성경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옮겼느냐에 따라 달라진 결과다.
천주교와 개신교는 절대자에 대해서도  "하느님"과 "하나님"으로 달리 칭한다.

 

그러나 조선에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기독교의 유일신을 옮기기 위해 사용한 호칭은 하느님이었다.

 

최초로 한국어로 번역된 성경
[예수성교 누가복음전서] 에 이 용어가 처음 등장한다.

 

이 번역에 참여한 선교사 존 로스는 선교 보고서에서

"하늘(heaven)"과 "님(prince)"의 합성어인 "하느님"이 가장 적합한 번역어일 것 이라고 기록하였다.

 

중국에서 들여온 한문 기독교변증서
"천주실의" 에서 세상을 창조한 유일신을 뜻하는 단어 "천주(天主)"와도 뜻이 닿아 있다.

 

초기 개신교에서는 상제, 천주, 하느님, 하나님 등 다양한 용어를 사용했으나

개역성서를 펴내는 과정에서 아래아〈ㆍ〉가 홀소리 〈ㅏ〉로 변경되면서

하나님이란 호칭을 쓰기 시작했다.

 

천주교에서는 원뜻과 맞춤법을 참고해 하느님으로 표기하고 있으며,
1977년 천주교와 개신교가 함께 번역한 현대어 공동번역성서에는
신의 호칭으로 "하느님" 이라 표기했다.

 

그러나 대부분 개신교 교파가 하나님이라는 표기를 고수하고 있는 반면,
성공회에서는 하느님으로 표기한다.

 

한편, 한글맞춤법 통일안은 하느님을 표준어로 삼고 있으며
하나님을 개신교에서 이르는 말로 풀이하고 있다.

 

사실 하나님(Hananim)은 '하나'  '님'의 합성어로,

수사 '하나'엔 '님'이란 접사가 올 수 없으므로 '하느님'으로 통일해 써야 한다.

 

사전적 일반적인 의미

종교어로서 「하느님」은 우주를 창조하고 주재한다고 믿어지는 초자연적인 절대자를 뜻하는 말로,
신앙의 대상으로 종교에 따라 여러 가지 고유한 이름으로 불리어지며, 하늘, 황천이라고 정의된다

 

이를 살펴보면 종교에 따라 여러 가지 고유한 이름으로 불리어 진다 라고 한 것으로 보아

가톨릭에서만 사용하는 용어는 아님을 알 수 있다.

 

또한 사전에서는
'그리스도교에서 신봉하는 유일신으로 천지(天地)의 창조주(創造主)이며
전지전능하고 영원한 존재로서, 우주 만물을 섭리로써 다스림,
천주(天主), 개신교에서는 하나님'이라고 덧붙여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같은 사전에서 '하나님'이란 단어를 찾아보면

'하느님을 개신교(改新敎)에서 이르는 말'이라고 간단히 설명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가톨릭의 '하느님'과 개신교의 '하나님'은 결코

다른 단어를 의미하고 있다고는 볼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일반적인 천공신(天空神) 개념으로 볼 때

하느님은 우리말로는 하늘, 한자로는 천(天)의 존칭어인데,
광활하고도 높은 창공은 종교적 궁극자 및 최고원리의 상징으로서

인류 종교현상 속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종교표현이다.

 

종교학자들은
고대인들이 하늘이나 땅을 단순한 현상이나 물체로 예배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나타나는 신적인 힘을 보고 그 거룩함의 신성을 경외한 것임을 밝혀내었다.

 

가장 오래된 문자문화를 지닌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아누(Anu)신,
가나안 지방의 엘(El)신,
그리스의 제우스(Zeus)신들은 모두 천공신(天空神)으로서 다신(多神)들 중에서

그들이 아버지 혹은 천상회의의 임금으로서 권위의 상징이었다.

 

하느님 또는 하나님이란 말을 선교 문답 등에 처음 채택한 사람은
1881년 선교사 존 로스이다.

 

그는 "한국인들이 하늘의 주(Lord of Heaven)" 라는 뜻으로
하나님(Hananim)을 사용하고 있으며, 한자로는 상제(上帝)로 번역했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한자의 신(神)은 귀신(鬼神)으로 번역했다고 전했다.
상제란 중국에서 말하는 하느님인 것이다.

 

서양 선교사들은 여러 용어 가운데  '하나님' 용어를 채용한 것이 가장 좋았으며,

그 결과 한국인들에게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고 기독교를 전파하는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며

그들 스스로도 감사와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1882년과 1883년 스코틀랜드 선교사 존 로스가 처음 번역한 한글판 루카복음 전서에

'하느님'과 '하나님' 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한국 고유의 신앙으로서 받아들여진 하느님

중국에 처음 그리스도교를 소개하는데 성공한 마테오리치(Matteo Ricci) 신부가
유교경전에 나오는 상제 혹은 천(天이) 그리스도교의 하느님과 같은 절대신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여

야훼를 천주(天主)라고 번역하고
유교적 용어를 빌어 그리스도교를 중국 지식인들에게 소개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그가 쓴 「천주실의」(天主實義)를 읽은 조선 후기의 실학의 선구자요
서학(西學)의 학문적 연구를 시작한 이익(李瀷)은
"천주는 곧 유가의 상제이다"라고 평했다.

 

이 근본적 공통점이 그리스도교가 짧은 시일 내에
한국인들의 심성에 깊이 뿌리박을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사실이었다.

 

개신교에서 말하는 하나님
개신교의 경우는 한국 전래의 형태가 구체적인 국내선교나 교리전파에 앞서서
국외에서 성서의 한글번역이 선행되었고,

 

또한 그후 한국 개신교의 공식적인 '하나님' 칭호에 대한 태도는
그들이 시대별로 사용한 성서기록에 의거했기 때문에
곧 그들의 '하나님' 칭호에 대한 변천은 성서 번역사와 연관되어 있다.

 

먼저 대체적으로 한글성서의 번역과 사용시기를 구별해 보면
먼저 개인역시대(1882-1903), 공인역시대(1904-36), 개역시대(1937-51),


맞춤법 통일안에 따른 개정판시대(1952-70),
신, 구교공동번역시대(1971-현재)등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한글성서에서 '하나님'에 대한 칭호를 채용할 때
계속적으로 상관된 개념은 곧 '하늘'(heaven)과 '하나'(one)이다.

 

그리고 이들 개념의 복합, 지역적 방언, 한글맞춤법과
한국어 발음의 변천 등과 밀접한 연관을 지닌 것으로 살펴진다.

 

'하나님'이란 명칭이 옳다고 주장하는 이들에 의하면,
'하나님'은 '하나'를 의미하므로 유일신을 의미하는 것이며,
'크다'를 의미하는 '한'에 통하는 말이므로 신의 위대성을 의미하므로,
다른 어떤 명칭보다 하나님이라는 명칭이 낫다고 한다.

 

하나님과 하느님 사이에 무슨 근본적 차이는 없는 것으로 이들도 인정하지만
개신교의 신개념에 더 가깝다고 생각되는 '하나님'이 더 적절하다고 보고 있다.

 

또한 현재 '하나님'이라고 하면 그리스도교의 신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으나

'하느님'이라고 부르면 그리스도교의 신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통속적인 신을 의미하는 것으로,
특히 무당 종교의 신으로 오해한다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다.

 

이렇듯 기타 토속, 외래종교도 사용하는 신 명칭인 '하느님'과 구별,
개신교의 하나님을 선별 호칭할 필요성,
그리고 국가제정의 공용어 문법체계에 꼭 합치되지 않아도 된다는
독자적 고유명사화 등의 성격을 주장하고 있다.

 

공동번역에 따른 하느님
구약성서는 이스라엘인들이
고대 메소포타미아 및 가나안 지방의 하느님 신앙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좋은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최고신이던 천공신 '엘'신, 혹은 엘로힘(Elohim)은
이스라엘의 고유한 신의 명칭이었던 야훼와 동일시되면서 유일신화 되었고
엘신의 여러 가지 특성들도 수용되었다.


따라서 엘신 밑에 있던 많은 신들은 우상들로 배격되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천사들로 격하되어 하느님의 뜻을 인간에게 알리고
하느님의 영광을 드높이는 사자들이 되었다.

 

한국의 가톨릭과 개신교 학자들이 성서공동번역을 계기로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야훼를 '하느님'이라고 함께 부르기로 결정한 것은
한국고유신앙의 핵심을 이루는 하느님 신앙을 수용하자는 중요한 태도라고 하겠다.

 

이는 또한 가톨릭의 한문식 칭호인 '천주'를 한글화하고
개신교는 종래의 '하늘'과 연결된 하나님 개념을 회복한다는 의미이다.

 

하느님'으로 칭호를 통일한 이유를 설명하는 측은
합당하고 정당한 칭호의 회복임을 강조하고, 민족의 고유한 언어 표현적인
신 개념의 공통성을 계승하여야 함을 밝혔다.

 

특히 '하나'의 의미에 연결된 '하나님'이 그 칭호로서 부당한 이유를
첫째 언어학적으로 불가능한 형태이고,
둘째 유일신 개념을 진정으로 나타내지도 못하고,
셋째 도리어 희랍철학, 중국철학, 대종교, 천도교의 개념과 오해되고,
넷째 '하느님'을 사용하는 세계와 통화를 두절시키고,
다섯째 역사적으로 볼 때 '하나님'이라는 방언(方言)에서 우발적으로 도입된 표현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언어학적 관점에서의 하느님과 하나님
인간은 그 사회 안에 공동 유산으로서 '언어'를 소유하고 있으며,
그 언어를 통해서 인간과 인간, 그리고 신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맺어 왔다.

그러므로 인간은 항상 그 말(언어)로써 '의미'를 새롭게 창조하는


언어적 존재(Homo loguens)이며 창조적 존재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리스도인의 신(神) 찬미 행위의 그 모두가
언어 구조로 표현된다는 엄연한 '말의 사건'앞에서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새로이 눈을 떠야 한다.

 

한국 교회의 현실을 보면 같은 한국어를 사용하는 언중(言衆)이요,
더욱이 같은 그리스도인이면서도 한 신(神)의 명칭이

'하느님', '하나님' 등으로 서로 위화감을 주도록 다르다.


그리하여 한분이신 야훼를 인간들의 자의적인 해석에 의해
두 분으로 갈라놓은 결과를 초래하게 하였고,

나아가 한국 그리스도교의 일치 (가톨릭과 개신교의 일치)를 방해하는 요소 중의 하나로 작용함으로써,

야훼의 중요한 가르침인 사랑(이웃사랑)을 앞장서 실천해야 하는 교회가

오히려 그 편협함을 야기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본다.

 

'하나님' 이란 호칭은 우리 어법상 오류(誤謬)

현재 우리나라 개신교 측에서 흔히 쓰고 있는 '하나님'이라는 호칭과 표기는
우리나라 어법과 문법상 사실은 맞지 않는 오류이다.

 

그것은 그들이 '유일신'임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우리 한글에는 있지도 않은 이상한 조어(造語)를 만들어 낸 셈이다.

 

일반적으로하느님에 대한 우리 신앙인들의 기본적 개념에는
앞서 살펴보았듯 전지, 전능, 영원, 불변, 유일, 사랑, 엄위, 공의, 지존, 진실, 위대,
참 왕, 영광, 자비, 평화, 거룩, 구원, 은총, 선하심

그리고 창조주(조물주)와, 지극히 높으심, 크심, 그리고 현존과 다스림 등의 뜻을 포함하고 있다.

 

'하느'는 '한' 에서 나온 파생어로 "한" 은 우리나라에서 널리 쓰이는 접두사다.

그 쓰임에 따라 관형사가 되기도 하지만 그 뜻은 결코 축소됨이 없이 강조의 뜻만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
'한'은 은 넓다, 크다, 높다, 아주, 매우, 오래 등의 뜻으로 폭 넓게 사용 되고 있는데,

 

예를 들면

어린아이더러  "한 길 에 나가 놀지 말라" 는 말은
큰길 또는 넓은 길은 위험하다는 경고성 표현이고,

 

아주 더운 여름을 가리켜 그냥 여름이라 하지 않고 "한여름"이라 한다든지,

반대로 아주 추운 겨울을 말 할 때도 우리는 곧잘 "한겨울"이라 한다.

 

그리고 땅이 꺼지도록 탄식하며 내쉬는 숨을 "한숨" 이라 하고,
오랜 시간을 일컬어 "한참"

정 중앙이 되는 지점을  "한가운데", "한복판"이라고도 한다.

 

"큰 고개" 를 가리키는 말로서 우리나라 여러 곳에 산재한 "한티" 가 그렇고,
"고을"이 조금 크다싶은 동네를 "한 고을" 또는 "한 골"로 부르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요즘도 시골에선 평야처럼 넓은 들을 가리켜 "한 들"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밖에도 아버지의 아버지를 일컬어 "한" 이 변형된 "할아버지", "할머니" 부르는 것

또한 같은 이치일 것이다.

 

음운론적 변천

20세기 초 성서본들에 혼용되어 있는 두 동의 동음어인 (同義 同音語)

아래아〈ㆍ〉와 〈ㅡ〉 라는  두 이형태(異形態)의 변천 관계를 바로 수용 못한

지극히 단순한 오류에서 시작된다.

 

즉 이 두 말은 당시에
동의어이며, 동음어인 것을 이의어(異意語)로 보았다는 말이다.

 

아래아〈ㆍ〉의 혼란은 15세기부터 보이기 시작했으나
기록 문자의 보수성으로 하여 〈ㆍ〉의 제2차 소실 (문자의 불사용)은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서 폐기하기를 발표함으로써 비로소 완성되었다.

 

이것이 제1음절의 아래아〈ㆍ〉의 소실로써,  


 

그러나 이런 구별은 후대에 올수록 없어지고
동일 음가에서 오는 혼철(混綴)과 오철(誤綴)이 늘어난다.

이는 특히 국역 성서 초기부터 1956년까지, 60년간 일반적으로 만연된 현상이었다.

 

그러다가 꾸준히 자리잡아 오던 〈ㆍ〉의 제1차 소실
(제2음절 이하에서 〈ㆍ〉 → 〈ㅡ〉로 되는 현상)이 확정되어

표준어화 되었다.

 

이것이 한국어 음운 변천사에 중대한 사실인 〈ㆍ〉 소실과

이에 따른 모음조화의 붕괴 현상으로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유독 개신교에서만은 위에 설명한 바 한국어 일반 원칙인
모음조화 붕괴형인 '하느님' 표기와는 여전히 괴리된 

형태를 고수하고 있다.

 

한문판 성경에서는 "天主"라는 명칭을 채택해 쓰고 있었고

그것을 우리나라에서 한편으로는 "텬쥬" 즉 "천주" 로,

다른 한편으로는 으로 번역해 썼다.

 

이때   의 의미가 "하늘"과 연관되는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하늘님" 이 "하느님"으로 표기된 것이다.

 

"아들 + 님 "이 "아드님" 이 되고, "딸 + 님"이 "따님"이 되듯이 말이다.

"솔 + 나무", "버들 + 나무"가 "소나무", "버드나무"가 되는 것에서도 보듯이

이는 "ㄴ" 앞에서 받침 "ㄹ" 이 탈락하는 ㄹ탈락 현상 때문에 그러하다.

 

어휘론적 의미

한편 어휘론적으로 보아
'하느님'은 그 명칭상 창조물인 하늘을 존칭하는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기우를 토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가 '주님의 기도'에서 올리는 대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창세이전부터 하느님께 속한 선재(先在)적 하늘(heaven)이지,

저 시공적(時空)적인 창조물 하늘(sky)과는 구별된다.

 

'하나님'이 '어근 + 접미사'의 구조라면,

어근 '하나'(수사)를 존칭하는 결과가 되고 만다,


명사의 존칭인 (天主)'이나 '선생님'과는 똑같은 조어 구조이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다.

 

'주님'이 '주'(主)의 존칭이라면,
'하나님'도 곧 하나(一)의 존칭어이니 이는 수 자신(數神)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어에서 수사(數詞)가 파생 결합할 때는
독립성 없는 수량 관형사형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결국 명사 존칭어는 있어도,
'수사+존칭 접미사'의 결합은 한국어에선 불가능한 것이다.

 

애매성과 다의성

1939년 김교신(金敎臣) 선생이〈聖書朝鮮〉(122호)에 발표한
"하나님" 이란 제목의 글에서 그 애매성이 기인한 듯 보인다.

 

"한글학자의 소설(所說)로써  "하나님"을 "하느님"으로 변개(變改)하여야 하는 듯이

주창한다면 우리는 단연코 반대한다.

 

"하나님"은 유일신(唯一神)을 표시하는 말로서

구미(歐美) 제국의 어휘에도 벌써 기입된 문자요,

세계에 유례없이 귀중한  말인데 신앙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자는 누구인가."

 

"약 반세기 전에 예수교가 조선에 전래한 이래로 우리 선배들은

이 "야외"의 신(神)을 조선말로 "하님" 이라고 역(譯)해서 우리에게 전해 주었다.

그 후에  자를 사용하지 않음으로 인(因)하야 하나님으로 표시하여 왔다."

 

"그런데 근래에 지(至)하야 하느님으로 표기하는 이들이 심히 많아졌음을 보고
우리는 기독교도의 일고(一考)를 촉(促)하지 아니치 못하는 바 있다.

 

"하나님"을  "하느님"으로 표기하기 시작하기는

대개 한글학자들의 설명에 기인한 것인 줄로 짐작되는데 .... "

 

"명칭의 변경은 그 내용의 변개를 의미한다.

불신자인 어학자들이 무엇이라고 설명하건 말건 우리가 알 바 아니나 ...."

 

라는 글인데,  이 글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은

 

〈ㆍ〉를 흔히 '아래 아'¯라고 부르듯이

이 당시에도 〈ㆍ〉는 'ㅏ'로 읽혔을 것이고
따라서 "하나"로 읽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一)"의 고형(古形)은

〈ㆍ〉가 놓이는 자리가 다르다.

 

"하나의 님"을 나타내고자 하였다면 

 

다른 한 예로

 " 하나의 밭" 이지만 "한밭" 이면 "큰밭"  즉 "大田"이 되듯이

〈ㆍ〉가 놓이는 자리는 대단히 중요한 몫을 하였다.

 

〈ㆍ〉는 이미 18세기에 제 음가를 잃었으나 오랫동안 써 오던 버릇에 얽매어

20세기가 되어서도 쓰고 있다가 1933년의〈한글맞춤법통일안〉에서부터는 폐기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이제까지 〈ㆍ〉로 표기되던 것들은 어떤 다른 글자로 바꾸어 표기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그때〈ㆍ〉를 어떤 글자로 바꾸어 적느냐 하는 것은 당시의 현실음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었다.

 

〈ㆍ〉음은 단어에 따라 〈ㅏ〉로 바뀐 것이 많지만, 단어 뒤쪽에서는 〈ㅡ〉로 바뀐 것이 많았다.

 

오늘날의 "가을" "가르(치다)",  "가득(하다)"의 〈ㅏ〉나 〈ㅡ〉가 고어에서는
다 〈ㆍ〉로 표기되었던 것들인데 1음절에서는 〈ㅏ〉로 된 반면

뒤쪽 음절에서는 〈ㅡ〉로 된 것에서 그 대표적인 예를 볼 수 있다.

 

"말씀", "아들", "다르다"  의 〈ㅡ〉도 역시 〈ㆍ〉이던 것들이 〈ㅡ〉로 변화한 예들이다.

"하늘" 의 〈ㅡ〉도 바로 이 예에 속한다.

 

따라서  "하느님"으로 표기되어야 하는 것은

이 점에서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 다시 종합해 보면 한국어 신명(하느님의 이름)은 가히 다의적이다.

하나님이라 불러도 그 속엔 지존자 이신 최고신 야훼의 신성이 변함없고,

하느님이라 불러도 역시 유일신의 신성이 변질되는 것이 없다.

 

이 양면은 불가분리성으로 신성과 그 권능에 속한 것이요,
인간 언어로 제약받으실 리 없다.

 

그리고 이 한국적 신관의 다의성은 활용함에 따라서는 언어 문학적 측면에서
상승적인 풍부한 의미를 지닌다.

 

표준어 문제
그리스도교계를 떠나서 국가 언어 정책면에서도
표준어로의 일치라는 중대한 선결 문제가 '하느님'이냐 '하나님'이냐를 가름함에 걸려 있다.

 

그리스도인은 곧 한국어의 언중이며, 한국어 성경는
곧 그리스도교인의 것만이 아닌 한국인의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어 성서도 한국 사회 일반과의 조화가 선결 요인이다.


이 '말의 일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혼 속에 새 일치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공동번역 성서의 머리말을 보면
"우리 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신․구교가 연합하여 우리말로 성서를 내놓게 된 것은

신구교 자체뿐 아니라 우리 민족 전체를 위하여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뜻깊은 일이다"라고

이 번역 작업을 평가했다.

 

함께 '하느님'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기로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고 있는 개신교에 대해 다소 유감스러운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출처 : 수단이태석신부님/수단어린이장학회
글쓴이 : 베로니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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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 피정 준비에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