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 가치 성장

21세기에 부합하는 사회복지와 사회복지사의 정체성 그리고 이에 걸맞는 제 기능과 역할 등에 대한 사회복지현장가로서의 고민의 글

시대의 흐름 속 '축구' 가치에 대해 제대로 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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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인 나는/기타(개념, 원리 등)

2014. 6. 13.

 

1. 스포츠(sports) 유래

 

스포츠(sports) 그 자체 및 스포츠 활동 참여가 개인의 인성, 자기절제, 자신감, 자존심, 행복감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러한 스포츠(sports)의 어원은 라틴어에 뿌리를 두고, 이어서 프랑스 어로 사용되었다. 본래는 disport라 했으나, 영어로 바뀌면서부터 di가 없어지고 sport가 되었던 것이다. 원어에서 dis라는 것은 '분리(分離)'의 뜻을 나타내는 접두어로 away에 해당하고 port'나르다(carry)'의 뜻을 갖는다.

 

따라서 disportcarry away, '자기의 본래의 일에서 마음을 다른 곳으로 나른다는 것’, 다시 말하면 '일에 지쳤을 때에 기분을 전환하기 위하여 무엇인가를 하는 것', '생활의 성실한, 또는 슬픈 장면을 떠나서 기분 전환을 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스포츠가 국제적 개념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19세기 이후의 일이며, 스포츠를 명확하게 한 마디로 정의한다는 것은 곤란한 일이나 현대에는 각 사회나 개인이 관습적으로 하는 스포츠 경기, 투기(鬪技)로서 하는 운동. 운동인 스포츠 등의 세 가지 개념으로 쓰여 지고 있다.

 

2. 축구(Soccer)의 기원

 

그리스설(기원전 67세기경 고대 그리스 시대에 행해진 하파스톤(Harpaston)이라고 하는 경기)

중국설(기원전 200여 년 전 고대 한나라 제국의 황제가 군사 훈련 목적으로 둥근 물체에 공기를 집어넣고 일정한 대형을 갖춰 차고 달리기를 시켰다(‘추슈’(축국, 蹴鞠))영국설(덴마크의 폭정 하에 학대를 받아왔던 영국인들이 덴마크 군을 철퇴시킨 후 전쟁터에서 패잔병들의 두개골을 차며 승전을 축하했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

 

3. 고대 공차기

 

제의 목적이든 놀이 목적이든 군사 훈련의 목적이든, 일정한 약속과 지속적인 패턴을 가진 행위로 둥근 물체를 차는 행위는 고대시대에 여러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근대적인 스포츠나 중세적인 놀이보다는 주술이나 군사훈련의 목적이 더 컸다고 한다.

(우리나라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에서 공차기 놀이가 있었는데 그 명칭이 '축국(蹴鞠)'이었다.)

 

4. 중세 공놀이

 

고대에서 중세로 접어들면서 공놀이는 과격한 전투로 변했다. , 고대 시대가 일정한 형식에 맞춰 집단 군무나 제례를 행하는 것이었다면 중세의 농촌 공동체에서 공놀이는 비전투적인 전투즉 가상의 전쟁을 세시풍속의 놀이로 전화시킨 싸움의 형태(격렬한 몸싸움 동반)로 변했다.

 

중세 신분 사회는 엄격한 위계질서의 통제로 유지되는데, 마을 사람들은 수호성인의 날이나 수확기에 한바탕 떠들썩하게 즐김으로써 이 억압적인 질서에서 잠시나마 벗어나보는 것이다. 권력자들 또한 1년 중의 몇날 며칠은 그렇게 맘껏 놀이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문화 통치(카니발리즘)를 활용했다.

 

5. 근대 스포츠

 

산업혁명으로 기존의 마을공동체를 해체시키고 도시를 탄생시켰다. 그 결과 19세기 중엽은 그 어느 시기보다 대규모의 자발적 인구 이동이 전 지구적으로 감행되었다.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은 농촌에서 일하는 방식 농번기나 농한기 혹은 큰 비라도 내리면 밭일 대신 집안에 머무는 식의 생활 패턴 - 과 달리 아침이면 어김없이 출근을 해야 했다. , 주중에 일을 함으로써 주말이 되면 일제히 일손을 놓고 휴식을 취하고자 했고 이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새로운 유흥 형태(: 관전 형태의 스포츠 놀이)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리고 정책적 측면에서 산업 사회에 필요한 사람을 엄청난 규모로 양성하기 위한 산업 사회의 한 방식으로 학교 등과 같은 교육기관에서 축구를 통해 규칙성, 도덕성, 단체성을 가르치기 시작했다(축구 규칙 -> 규율과 통제를 바탕으로 한 교육 시스템).

 

그 결과 격렬한 몸싸움 등을 동반한 전근대적인 놀이와 유흥은 사실상 사라지게 되었고, 중세의 격렬한 공놀이 문화 역시 근대에 들어서면서 점점 세련되고 합리적인 형태로 변형되어 문명화된 사회의 일상에서 정확하게 규정된 정당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 공격적으로 표출되던 쾌락이 수동적이고 순화된 관전의 쾌락으로 전환된 것이다(: 19세기 중엽 영국의 사립학교나 유럽 각국의 근대식 군대에서 매우 체계적인 교육 규정과 훈련 규칙으로 스포츠가 자리 잡게 됨 / 축구와 풋볼의 구분, 축구협회 발족, 프로축구 클럽(직업인으로서의 축구)의 탄생 등).

 

오늘날의 축구 형식으로 발전된 것은 19세기 중엽 축구와 럭비를 구별하기 위해 18631026일 영국 축구협회를 발족시켜 경기 규칙을 제정함과 동시에 그 명칭을 Association Foot Ball이라 명명했던 때부터이다.

 

영국에서 시작된 근대 축구가 우리나라 한국에 전파된 것은 1882(고종 19) 제물포에 상륙한 영국 군함 '플라잉 피쉬(Flying Fish)'호의 승무원들을 통해서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식 축구의 보급은 1904년 서울의 관립(官立) 외국어학교에서 체육 과목의 하나로서 채택하면서부터이다(스포츠백과, 2008, 국민생활체육회).

 

6. 근대~현대 축구의 의미

 

도시화로 인해 사람들은 이제 도시 정체성(막연히 도시 거주민이라는 행정상의 의미가 아니라 엇비슷한 노동 직군에 포함된 수많은 도시민들의 정서적 연대 뜻함)’이라는 새로운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게 되었다.

 

도시인들은 스스로 선택하여 결정한 새로운 도시와 감정을 일치하기 시작했다. 도시는 수평적인 감정의 연대가 가능한 공간이었다. 기존의 농촌에서는 가문이나 혈통이나 신분 질서가 엄연했다. 도시는 달랐다. 새로운 산업 경제에 따른 계급 차이가 뚜렷했지만 그러나 동질 계층 내에서의 연대 의식과 감정 교감은 옛 마을 공동체의 품앗이보다 훨씬 강렬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유럽 전역에서 저마다의 역사적 상황과 도시 생활의 공통분모를 바탕으로 현대적 삶을 견뎌내기 위한 감정의 연소 공간으로 축구장이 선택되었고, 그 거대한 축구장에서 도시 정체성이라는 연대의식을 확인, 공유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흐름 속에 도시간의 크고 작은, 다양하면서도 졸렬한, 그러나 그들의 자존심과 명예가 걸린 도시 상호간 경쟁이 시작되었고, 도시를 바탕으로 한 클럽 축구팀(직업인으로서의 축구)이 탄생하게 되었다(바로 이러한 유럽축구 특히, 영국 축구의 발전 모습은 우리나라와 같이 기업 홍보용 차원에서 탄생한 프로축구팀의 발전과는 전혀 다른 생명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고대 또는 중세까지 공놀이에 담겨져 있던 제의적 신성성이나 놀이문화의 순수성이 근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면서 소멸된 것에 대해 로제 카유아는 [놀이와 성스러움]에서 현대는 성스럽지 않은 세계, 축제도 놀이도 없는 세계, 따라서 일정한 기준도 없고 헌신해야 할 원리도 없으며 창조적 파격도 없는 세계. 성스러움이 사라진 상태가 되면 직접적인 이익, 냉소주의, 모든 규범의 부정이 확연해지고 이것이 고귀한 활동 및 명예로운 경쟁의 전제가 되는 규칙을 대신하게 된다.”라고 경고하였다.

 

20146월 현재 브라질에서 열리고 있는 피파 월드컵과 관련해서 개최국인 브라질 국민들이 월드컵은 없다월드컵 개최에 소요된 110억 달러 이상의 예산을 교육과 국민건강, 주택난 및 교통난 해소 등에 투자해야 한다월드컵을 중단시키겠다는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지만 브라질 국민은 궐기해야 한다브라질은 축구는 사랑하지만 지금 월드컵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고 시위를 하는 그 이유가 어디에서 출발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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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장을 보호하라(정윤수(축구칼럼니스트), 2002)

체육학대사전

국민생활체육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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