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보다 소중한 것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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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1. 10.





목숨보다 소중한 것

스위스는 산지가
전 국토의 70%,
호수는 5%로 되어 있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은 25%에 불과했다.

그래서 스위스는
예전에는 유럽에서도
가장 못 사는
나라 중의 하나였다.

먹을 것을 찾아
살길을 찾아 스위스를 떠나
다른 나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

그들이 찾은 일자리 중
하나는 용병이었다.

용병이란
봉급을 주고 군인으로
쓰기 위해 고용된
병사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 까지
끝까지 항전한다.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

1792년에는
파리 튈르리 궁에 민중들이
몰려들어 왔다.



여기에는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머물고 있었다.

수많은 화난 민중들이
몰려오자 왕의 근위병들은
겁에 질려 모두
도망을 쳤다.

그런데 오직
스위스 용병부대 만이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었다.

필사적인 저항에
양측은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에 프랑스
민중(시민)군은
퇴로를 열어줄 테니
용병들은 스위스로
돌아갈 것을
권유하였다.

하지만
스위스 용병들은
꼼짝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며
프랑스 시민군에
항전하며 프랑스 왕을
보호하였다.



스위스 용병들의
필사적인 저항으로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무사히 궁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중과부적으로
스위스 용병들은
프랑스 시민군과 맞서
싸우다가 786명 모두
장렬히 전사하고
말았다.

왜 이들은
이길 수 없는 싸움에
끝까지 저항했을까?

그들이 필사적으로
싸운 이유는
조국 스위스가 너무나도
가난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왕과 맺은
약속으로 왕을 끝까지
지킨다고 했는데,

왕을 버리고 도망간다면
자신들의 후손들은
용병이 되지 못하고
가난 속에서 굶주리게
될 것이기에
끝까지 약속을 지키며
싸운 것이다.



당시 전사한
한 용병이 가족에게
보내려 했던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우리가 다른 나라에
신용을 잃으면 후손들은
영원히 용병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계약을 지키기로 했다."

오늘날까지
스위스 용병이
로마 교황의 경비를
담당하는 전통이
이어지고 있는 데는
이와 같은 배경이 있다.

젊은 용병들이
목숨을 바치며
송금한 돈은
헛되지 않았다.

스위스 용병의 신화는
다시 스위스 은행의
신화로 이어졌다.



용병들이 송금했던
피 묻은 돈을 관리하는
스위스 은행의 금고는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 결과
스위스 은행은
"안전과 신용"의
대명사가 되어
이자는커녕, 돈 보관료를
받아가면서 세계 부호들의
자금을 관리해 주는
존재가 되었다.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에서
신뢰 비용이 높다고 합니다.

불신 때문에 생기는
사회적 비용을
우리가 노력함으로써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우리 후손들에게는
그 비용을 넘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프랑스혁명 당시의
스위스 용병들처럼
내 자녀와 미래 세대를
위하여

신뢰를 유산으로
물려주고 싶습니다.

🔶 옮긴 글 🔶


우리 벗님들~!
健康조심하시고
親舊들 만나
茶 한잔 (소주 한잔) 나누시는
餘裕롭고 幸福한
나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