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

Jason Eco 2010. 8. 17. 00:10
18세기 사회는 시장의 부속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 저항했다. 대표적인 예로, 스피넘랜드 법Speenhamland Law은 영국의 농촌에서 노동 시장이 형성되는 것을 그 법이 제정된 1795년부터 1834년까지 막아냈다. 이 법은 모든 민중들이 앞 다퉈 자유 노동시장의 등장을 요구할 때까지 존속하며 시장경제의 자기조정을 방해했다. 스피넘랜드 법 이전부터 노동이 토지나 화폐보다 늦게 시장에 상품으로 나오도록 막았던 법이 바로 1662년에 제정된 정주법인데, 이로 인해 농촌 노동자들이 교구에 묶임으로써 전국적 노동 시장의 형성이 1795년까지 늦춰졌다. 그런데 전통적인 국가 가부장주의의 노동 조직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노동자의 임금을 최소 수준에서 보조하는 ‘수당 체계’를 도입하는 스피넘랜드 법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1834년까지 경쟁적 노동 시장의 확립이 저지되었다. 그런데 이 ‘생존의 권리’ 보장은 시장경제를 도입하려는 중간계급의 반대뿐만 아니라 인간성을 파괴당했던 당사자 노동자들의 반발로 철폐되었다.
  스피넘랜드 법은 사실 국가 가부장주의적인 영국 구빈법의 상대적으로 자유주의적인 형태였다. 그러나 본디 의도와는 정반대로 변질되고 말았다. 전무후무한 임금 보조라는 제도는 이전보다도 훨씬 더 온정주의적이었지만, 고용주들에게 노동자의 임금을 무참히 깎을 수 있는 당위를 제공해주었다. 게다가 이제는 일하지 않아도 일정 수준에서 생활할 수 있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노동의욕 역시 급격히 떨어졌다. 이는 산업혁명 뒤 시장경제가 자리잡으면서 모든 분야에서 규제를 철폐하고 있는 시점에서 노동 부문에 대해서만 예전의 규제를 오히려 더 강화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스스로 노동하여 자립하기보다는 편하게 구호를 받아먹고 사는 구호 대상 극빈자pauper로 스스로 전락하여갔다. 사실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이전까지는 농민들이 구호 대상 극빈자로 전락하는 것을 치욕으로 여겼던 탓에 도리어 더 열심히 일하고자 하는 동기가 분명 있었다. 그러나 1799년과 1800년에 제정된 단결 금지법은 그들이 근면한 노동을 통해 임금을 정해진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저지했다.
  결국 스피넘랜드 법의 시기에 강력한 영향력을 보였던 온정주의와 시장 체제는 사회를 두 갈래로 해체하고 말았다. 그 중 고용주들은 새로운 계급을 형성하였지만, 농촌 프롤레타리아들은 노동을 통한 자급자족에 실패함으로 인해 계급화되지 못하였다. 그 결과, 그/녀들은 거의 빈사상태에 빠졌다. 이런 현실에 대해 1834년의 사람들은 스피넘랜드 법이 유지되는 것보다는 당장 철폐되는 것이 낫겠다는 주장에 공감했다. 그 결과, 구빈법이 철폐되었고, 10년간 경쟁적 노동 시장의 형성 과정에서 일부 구호 대상 극빈자가 추려지는 과정을 겪으면서 비로소 점차 노동계급이 형성됐다. 이후 각종 사회 입법을 비롯한 여러 사회의 자기보호운동이 노동에 자기조정 메커니즘이 착근된 부작용을 해소하고자 나타났고, 효과를 거두었다.
  스피넘랜드 법을 둘러싼 논쟁 과정의 구호 대상 극빈자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의식으로부터 새로이 도래한 복합 사회를 해명하고자 하는 과학이 도출되었다. 산업혁명의 결과로 무한정 증대된 부를 바탕으로 하며 19세기 초 들어서야 새로이 발견된 사회의 법칙을 설명하며 인간을 짐승과 같다고 가정하는 정치경제학이 대두된 것이다. 그러나 물론 이것이 완벽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유익한 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