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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편 '만물박사'들과 '오염물' 퍼나르는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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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교육, 문화계 관련

2020. 10. 13.

종편 '만물박사'들과 '오염물' 퍼나르는 기자들

 

[정상호 교수의 시대 공감 세대 ②] 한국형 협치의 사회적 조건 : 공정한 언론

 

 

  지난 9월 21일 "신동아" 온라인판에 게재된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의 칼럼. 제목은 <"한국인 30% 민주주의에 반감” 文정부 비판 英이코노미스트의 숨은 근거>였다.

 

 
1. 이념의 과잉과 무지가 만날 때 : 길 잃은 <신동아> 칼럼 그리고 동아일보사

지난 9월 인터넷을 달군 어느 평론가의 칼럼(<신동아> 게재)을 보고 말문이 막혔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를 인용해 "문재인 정권이 피포위의식(siege mentality)에 사로잡혀 있다"는 내용이었다. 기가 막힌 이유는 '남한의 자유주의적 지도자들이 내면의 권위주의를 발산'한다는 <이코노미스트>의 칼럼(8월 20일) 때문이 아니다.

사실 문재인 정부가 외부의 비판에 인색하고 소수 친문세력이 의사결정을 독점하고 있다는 세간의 비판에 대해서는 솔직히 경청하고 해결책을 진지하게 모색할 필요가 있다.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의도적인 왜곡과 무지가 만나는 지점은 여기서부터다.

<신동아>의 그 칼럼은 갑자기 '세계 가치관 조사'(World Values Survey)의 한 항목(한국인 중 '민주주의 반감' 응답자 30%)을 인용해 "한국은 러시아·이라크와 비교당해야 하는 정치 후진국"이 됐다고 한탄했다. 그러면서 그 "책임은 문재인 정권에 있다"라고 주장했다(칼럼 원문 보기).

세계가치관조사는 민주주의와 신뢰, 종교와 가치관 등을 연구하는 사회과학자들, 특히 비교 연구자들에게는 신뢰할만한 귀한 자료이기에, 필자를 포함해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7차 조사가 언제 공개될지 목을 빼고 기다리던 중이었다. 그러나 원자료(raw data)와 국가별 비교 자료의 공개가 모두 이뤄진 게 아니라 2021년에 이뤄지기 때문에, 자료의 해석과 활용엔 상당한 주의가 필요함은 당연하다. 하지만 며칠 동안 포털 사이트 뉴스랭킹 상위권에 오른 <신동아> 칼럼은 신중함이나 객관성과는 아주 거리가 멀었다.



자세한 설명을 위해 아래 퀴즈와 정답 그리고 해설을 살펴봐주시길 권한다.



[퀴즈 ①] 다음 자료는 어느 정부를 설명한 것일까요?

 


  
정답: '이명박 정부'다. 위 자료는 2010∼2012년 '세계 가치관 조사'에서 나타난 결과다. "한국인들은 의회·정당 중심의 민주주의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동아일보> 2012. 8.14).

해설: 이 설문 결과에 대한 해석은 논쟁적일 수 있다. 이 분야의 최고 전문가인 어수영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한국인들은 민주주의 정치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민주주의를 운영하는 핵심인 의회와 정당에 대한 불신 때문에, 의회·정당 중심의 민주주의 정치에 높은 지지를 보내지 않았다"라고 분석했다(<동아일보> 2012. 8.14). 이 정도가 합리적인 해석이다. 

한편, 이 분야를 대표하는 세계적 석학인 잉글하트(Ronald Inglehart)나 달톤(Dalton. Russell)은 '의회와 정당 중심의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 인식은 선진국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이며, '자기-표현(self-expression)과 개성, 직접행동을 중시하는 탈산업화 시대의 당연한 결과라며, 오히려 젊고 똑똑해진 시민들의 회의에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어쨌든 이 항목 하나만을 갖고 "대한민국은 1990년대 후반 러시아나 오늘날의 이라크 등 민주주의가 망가져 있다고 평해도 과언이 아닌 나라와 비교될 수준"이라는 평가는 완전한 억지다.



[퀴즈 ②] 다음 자료를 보고 민주주의와 인권보장이 가장 잘된 정부를 찾으시오
 


정답: '문재인' 정부다. 위의 자료는 '세계 가치관 조사' 중 해당 설문 결과를 시-계열적 추세로 나타낸 것이다. 이것만으로는 다른 국가와의 비교가 어려워 선진 민주주의 국가라 단언할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이것은 독재다. 적어도 민주주의는 아니다. 세계 가치관 조사가 제시한 '글로벌 스탠다드'에 따르면 그렇다"라는 <신동아> 칼럼이 완전한 왜곡이라는 점이다.

해설: 한 평론가의 칼럼이 갖는 실수와 결함을 왜 <신동아>나 동아일보사 탓으로 돌리는지 모르겠다는 반론이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칼럼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유력 언론이 이처럼 사실 확인이 게으를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확인해주고 있다. 2012년의 세계 가치관 조사의 경우, 다름 아닌 '동아일보 부설 21세기평화연구소'가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에 의뢰해 이뤄졌음은 역설적이다. 또한, 앞서 인용한 자료(<동아일보> 2012. 8.14)에서 알 수 있듯이 조금만 신경썼다면 의도적 왜곡과 과장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2. 칼럼니스트가 사라진 언론: 독설과 예능이 판치는 평론 시장  

 

                      ▲  불타는 신문.
 

 
이 글의 주제인 정치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폭력과 혐오를 불사하는 극단주의 세력에 대한 내부 정화가 필요하다(지난 칼럼 보기). 아울러 이 글에서 설명하듯 진보와 보수를 떠나 균형과 사실에 입각한 '공론장의 활성화'가 시급하다.

종편과 인터넷에서 일부 독설가들이 판을 치기 이전, 한때는 진보든 보수든 이념을 떠나 서로 인정했던 칼럼니스트들이 존재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리영희 교수의 남북문제, 정운영 선생의 한국 경제, 그리고 여전히 활동 중인 최장집 교수의 노동 관련 칼럼의 울림은 깊고도 명료했다. 민주화가 본격화되기 이전인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 이전 시기의 류근일 칼럼과 김대중 칼럼 역시 동의 여하와 상관없이 적지 않은 대학생들과 재야 인사의 필독 대상이었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진영을 아우른 칼럼니스트나 적어도 상대 진영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지식인과 언론인을 발견하기 어렵다. 대신 그 자리를 연예계 소식부터 코로나19까지 모두 꿰뚫고 있는 만물 박사 변호사들과 창의적 분석이라고는 한 마디도 찾아볼 수 없는 정치학 박사들이 채우고 있다.

더욱 위험한 곳은 인터넷의 '인상주의적 정치비평 시장'이다. 이 영역은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독설과 혐오 표현을 즐겨 써온 일부 평론가와 정치인, 그리고 그 지지자들의 놀이터이자 사냥터로 전락했다. 더욱 한심한 일은 소위 좋은 대학을 나와 언론고시를 위해 몇 년이나 매진했던 언론인들이, 그러한 B급 논평들을 최소한의 논증이나 평가 없이 읊조리듯 퍼나르면서, 공론장 오염의 공모자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과 공정에 입각한 언론 정상화의 첫걸음은, 어떤 거대한 제도개혁이 아니라, 논리와 예의를 상실한 평론 시장을 제대로 된 칼럼니스트와 저널리즘으로 채우는 일이다.

 

정상호(shojeong)



(* 다음 칼럼은 공정한 언론을 위한 과제를 다룹니다.)

덧붙이는 글 | 이 칼럼을 쓴 정상호씨는 서원대 사회교육과 교수로 현재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