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사

태극기사의 일상생활과 관심사항을 모아모아 놓지요

코로나19 백신 파트너로 한국 선택

댓글 0

시사, 상식

2021. 6. 9.

코로나19 백신 파트너로 한국 선택

 

일본 제치고 백신 제조·연구의 허브기지로 삼고 협력 강화 선언



지난 5월 21일(현지시간) 종료된 한미정상회담에서는 대북·대중국 문제 등 외교뿐 아니라 기술, 과학, 국제정치, 환경, 젠더 등 수많은 의제가 논의됐습니다. 미국에 거주하는 익명의 전문가가 한미정상회담 발표 내용을 분석했습니다. 기고자 요청으로 가명으로 게재하는 점 양해 바랍니다.

                  연합뉴스

 



한미정상회담 공동 발표문에서 안보문제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분량을 점하는 것이 코로나19 방역 관련 내용이다. 단일 주제로 전체 발표문의 거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하게 다뤄졌다. 미일정상회담도 한미에 비해 적은 분량이지만 코로나19 방역 주제가 중요하게 다뤄졌다. 코벡스 프로그램을 통한 백신 생산과 공급 증대에 양국이 힘쓴다고 선언한 점은 동일하다.



반면 한미와 미일의 차이는 한국을 국제적 코로나19 백신 제조·연구의 허브기지로 삼는 것과, 이를 위해 한미가 파트너십을 강화한다고 선언한 점이다. 그런데 일본 과학기술의 기본기, 특히나 생명과학 분야의 압도적 역량과 규모를 안다면, 일본을 제치고 한국에 코로나19 백신 제조·연구 허브기지를 바이든 대통령이 제안한 것은 좀 의외가 아닐 수 없다.

 

일본산 백신은 왜 볼 수가 없을까



일본 서양의학은 이미 에도시대 후반과 메이지유신 초반부터 시작된 유서 깊은 전통을 가지고 있다. 역대 노벨 생리학·의학상 수상자가 5명이다. 세계 10대 제약회사 중 아시아에서는 일본 제약회사만 끼어 있다. 세계 9위의 다케다제약(1781년 창업)이다. 일본 제약회사들의 연구와 제조 역량은 아시아권에서는 경쟁 상대가 없고, 세계적으로도 최상위급이다.

그럼 도대체 일본의 코로나19 방역과 백신 개발에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지금 일본산 백신은 볼 수가 없는 것일까? 일본 정부는 외국 정부나 기업의 임상자료를 토대로 국내 사용승인을 해주지 않는다. 반드시 일본 내에서 일본인을 상대로 한 추가 임상실험을 요구한다. 이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는 지난해 12월 이미 승인이 난 화이자 백신도 올 2월이 돼서야 사용승인이 났을 정도다.

이렇게 신규 백신 승인이 까다로운 이유는, 일본인들의 백신에 대한 낮은 신뢰도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속도보다는 엄격히 정해진 규칙에 따라 승인하고, 이를 통해 신뢰도를 확보하려 한다.

*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수송하는 차량이 경북 안동시 SK바이오사이언스 공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 권도현 기자

 



1990년대 일본 법원은 잇달아 백신 부작용에 대한 정부 배상 책임 판결을 내렸다. 이 법원 판결에 근거해 일본 정부는 더 이상 법정 전염병 백신 접종 의무를 강제하지 않게 됐다. 일본 정부는 자궁경부암 예방 효과가 있는 인유두종바이러스(HPV) 예방접종도 더 이상 권장하지 않는다.

일본사회의 백신 불신 분위기에 더해, 이미 외국산 코로나19 백신 수천만도스를 수입하고 있다. 일본 제약회사들이 어렵사리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다고 해도, 개발비 회수에 성공할 정도의 수요가 지속될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 만약 백신 부작용이 문제 되면 골치 아픈 법정 시비에 휩싸일 가능성까지 높은 상황에서, 전력을 다해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자원을 투자할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된 것이다.



일본이 1990년대와 2000년대 백신 개발에 침체기를 겪는 동안, 한국은 1990년대 말부터 바이오산업에 막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신종플루 백신 개발을 포함해, 세포배양 독감 백신, 대상포진 백신 등이 속속 개발되는 성공을 거두었다. 이런 지속적인 백신 개발과 생산 능력 향상이, 이번 코로나19 팬데믹에서 큰 위력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 한미 정상이 5월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 국빈만찬장에서 확대회담을 하고 있다. / 워싱턴 강윤중 기자



미일정상회담 발표문에 없고 한미정상회담 발표문에만 담긴 것이 하나 더 있다. 한미정상회담 발표문을 보면 ‘CEPI를 통한 국제 코로나 백신 공급 증가’를 언급하고 있다. CEPI(Coalition for Epidemic Preparedness Innovations)는 ‘전염병 대비 혁신을 위한 연합’이란 단체로, 2017년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을 통해 창설된 단체다. 초창기에는 에볼라 바이러스의 퇴치 등에 주력하다, 범지구적 코로나19 팬데믹의 등장과 함께, 현재는 전 세계의 코로나19 백신 연구를 지원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 단체는 한미정상회담 후 3일 만에 SK바이오사이언스에 1억7000만달러의 신규 자금을 투자해, 상반기 안으로 임상 3상에 돌입할 수 있도록 지원을 결정했다. CEPI의 이 결정은 미국 워싱턴대학과 SK바이오사이언스가 합작해 개발 중인 재조합 단백질·나노 입자 방식의 코로나19 백신 개발 성공에 대한 국제적 기대를 보여준다.

아울러 한일간의 코로나19 백신 개발 경쟁의 차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일본의 제약회사 중에 SK바이오사이언스 정도의 백신 개발 진도가 나간 회사가 없다. 가장 빠른 진도를 보이는 안제스가 임상 2상을 마치고 자료 분석 중일 뿐이다.

이외에 코로나19 방역과 관련해 한미정상회담 발표문에만 쓰인 ‘적시에(in a timely manner)’라는 표현이 있다. 기존 개발된 백신의 생산 능력을 최대한 신속히 끌어올려 국제적 백신 수요를 충족시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일 간 백신 개발 경쟁력 차이



현재까지 아시아권에서 자국 내 백신 생산 소식은 많지 않다. 호주는 5000만도스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국내 생산을 계획하고 있다. 일본은 다케다제약이 올해 하반기까지 2억5000만도스 분량의 노바백스 생산 설비를 갖출 계획을 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이미 아스트라제네카와 노바백스 백신을 SK바이오사이언스를 통해 대량 생산하고 있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추가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모더나 백신을 3분기 내 대량 생산하게 됐다. 일부 언론에서는 병입만 하는 백신 생산이 별것 아닌 것처럼 기사가 나가고 있는데, 현재 국제적 백신 생산 상황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나올 수 없는 기사다.

결국 미국이 협력 파트너로 삼을 국가는 한국밖에 없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기존 백신 개발·생산 능력이 있는 유럽 국가들은 ‘내 코가 석자’고, 미국도 사정은 마찬가지인 셈이다. 원래 국제적으로 최대 백신 공급처였던 인도는 하루 신규 확진자가 수십만명 수준이라, 자체 생산물량의 해외공급은 당분간 불가능하다. 현재 제3세계에서는 러시아와 중국이 자국의 백신을 제공해 상대국의 환심을 사는 백신 외교전이 한창이다. 미국이 이 경쟁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한국과의 협력이 필수적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한미정상회담에만 있는 표현이 하나 더 있다. 팬데믹 초창기 미국에 절실히 필요했던 의료용품을 한국이 제공해준 것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이 감사를 표명하는 내용이다. 코로나19 초창기 한국 질병관리본부를 주축으로 전 세계에서 선두급 진단 기기 개발과 생산이 가능했기에 받을 수 있던 감사였다.



정현(가명)

ⓒ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