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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한미동맹론자의 ‘4가지 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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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상식

2021. 6. 14.

자칭 한미동맹론자의 ‘4가지 우상’

 

 

5월21일 한-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호혜·포괄 동맹으로 한-미 관계가 거듭나는 계기가 만들어졌고, 바이든 대통령이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구상에 대한 지지를 표명함으로써, 북-미, 남-북, 한-미 삼각관계의 선순환 가능성도 열었다.

미사일지침 종결, 백신 생산 허브 공동구축, 우주개발을 포함 다방면의 한-미 경제·기술 협력 등, 양자관계에서도 보기 드문 성과를 이뤘다. 동맹을 복원하고 양국관계를 공고히 하려는 두 대통령의 의지와 노력의 결과라 하겠다.

 

그러나 일부 정치인과 언론매체, 논객들의 평가는 박하다. 이들의 인색한 평가를 보면서, 50년 전 필자가 학부 시절 접했던 영국 경험주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의 네 개의 우상(종족, 동굴, 시장, 극장)이 떠올랐다.

베이컨은 사물과 현상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방해하는 일련의 편견, 선입견, 오류를 이 네 가지 우상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인색한 평가 역시 이러한 인식론적 한계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첫째, 종족의 우상자연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게 아니라 자기중심적으로 보고 재단하는 오류나 편견을 말한다. ‘기업들의 피나는 44조원 내주고 빈 수레로 돌아왔다’는 이른바 ‘백신 외교 실패론’이 이에 속한다. 국제 공공재에 해당하는 백신을 이기적 거래의 대상으로 삼는 데서 오는 오류다.

사실 바이든 행정부는 ‘백신 미국우선주의 정책’ 때문에 중국의 백신 외교 행보와 비교되면서 국제사회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아왔다. 게다가 전세계 수많은 개발도상국가가 백신 부족으로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방역 모범국인 한국이 미국의 동맹임을 들어 백신 우대를 요구하는 걸 미국이 수용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그런 구걸 외교는 오히려 우리의 국격을 크게 훼손하는 행위다. 백신 파트너십을 통한 한국 내 백신 생산 허브 구축이야말로 대승적 해법이다.

 

둘째, 동굴의 우상개인의 특수한 환경, 성격, 교육 등 사회화 과정에서 생겨난 편견과 오류를 의미한다. 자기만의 편견의 동굴에 갇혀 바깥세상을 보지 못하는 현상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문재인 정부가 중국 편향에서 벗어나 이제야 미국으로 ‘올바르게’ 선회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정부의 정책에는 변한 게 없다. 공동성명의 기조와 방향성은 미국과의 동맹,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조화롭게 유지해 나가겠다는 정부의 입장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도 이를 굳이 ‘선회'로 해석하는 것은, 이들이 그간 ‘한-미 동맹 절대론’이라는 동굴의 우상에 사로잡혀, 문재인 정부의 외교정책을 반미·반일과 친북·친중으로 도식화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셋째, 시장의 우상본질과 관계없이 세간에서 떠도는 이야기(언어)로 사물과 현상을 인식하려는 오류다. 쉽게 말해 유행어에 따라 현실 인식이 좌우되는 현상이다.

쿼드 논쟁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정부는 미측이 쿼드 가입을 공식 또는 비공식적으로 요청한 바 없다고 누누이 밝힌 바 있고, 바이든 행정부 관료들 역시 쿼드는 안보동맹도 아시아판 나토도 아닌 4개국 비공식 협의체이며, 따라서 한국의 가입 여부는 쟁점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런데도 워싱턴의 일부 싱크탱크 관계자들은 ‘미국 정부가 한국에 쿼드 참여를 공식으로 요청했는데 이를 거부했다’거나, ‘한국이 쿼드에 참여하지 않으면 한-미 동맹이 파국을 맞게 될 것’이라고 운을 뗀다. 한국의 매체와 전문가들은 다시 이를 과장되게 전하면서, 이 사안이 한-미 관계의 핵심 쟁점인 것처럼 부각해왔다.

하지만 정상회담 결과는 그러한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실체 없는 담론의 포로가 되는 일, 바로 시장의 우상이 빚어낸 혼선이다.

 

마지막으로 극장의 우상역사나 전통, 권위를 비판 없이 수용하는 데서 오는 오류와 편견을 말한다.

중국 위협론을 예로 들어보자. 미국의 현재 국력과 중국의 대응전략으로 보아, 이는 객관적 실체라기보다는 장기적 개연성으로, 미국 학계가 만들어놓은 일종의 예방적 프레임이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이를 이성적 비판 없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아무리 한-미가 철통같은 동맹이라 해도, 위협인식과 그에 따른 손익 계산은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미국의 ‘중국 때리기’에 대한 무조건적 동참도 마찬가지의 오류를 범하는 것 아닌가 한다.

 

언제나 그렇듯, 목표는 우리의 국익과 건강한 한-미 관계의 도모다. 스스로를 동맹론자라 칭하는 이들이 보여주는 네 가지 우상은, 오히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장애가 될 뿐이다.

 

문정인 ㅣ 세종연구소 이사장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999126.html?_fr=mt0#csidxda9037013c8c21c889509b2d5f72c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