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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테크, 우리 시대의 영웅일까 악당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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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상식

2021. 6. 17.

빅테크, 우리 시대의 영웅일까 악당일까

 

2011년 가을, 미국 뉴욕에서 터져 나온 ‘월가를 점령하라’는 함성은 세계 주요 도시로 빠르게 퍼져갔다. 2000년대 초반 내내 현란한 금융공학 파티에 흠뻑 취했던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대형 금융회사의 무한질주와 탐욕을 한목소리로 질타했다.

 

그로부터 10년. 세상은 이제 새로운 ‘공공의 적’을 무대에 올려 세우느라 분주하다. 구글·아마존·페이스북·애플과 같은 대형 플랫폼기업, 이른바 빅테크가 주인공이다.

10년 전 ‘월가를 점령하라’는 외침이 주로 사회운동 진영에서 처음 등장했던 데 반해, 현재 빅테크를 겨냥한 화살의 발사대는 뜻밖에도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 말하자면 체제의 핵심 주류라는 점이 이채롭다. 정부의 주요 정책 책임자나 국제기구의 최고위직 입에서 ‘독점 해체’ ‘바닥을 향한 경쟁’과 같은 날 선 표현들이 서슴없이 튀어나오는 세상이다.

 

최근 나라 밖에서 전해진 두가지 뉴스는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지난 11일(현지시각) 미국 하원은 빅테크 독점규제 법안을 발의했다. 무엇보다 핵심은 플랫폼 독점 종식 법안인데, 이 법이 통과될 경우 아마존은 사실상 둘로 쪼개지거나 자체 브랜드 판매 플랫폼 사업을 접어야 할 처지다. 유럽 경쟁당국이 구글의 디지털 광고 시장 독점에 칼날을 들이댄 것과도 맥이 닿아 있다.

 

국제사회의 조세정책 공조 움직임에 탄력이 붙는다는 뉴스도 있다. 주요 7개국(G7)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다국적기업에 15%의 글로벌 최저한세율을 도입하는 안 합의를 코앞에 두고 있다. 고정 사업장 유무와 상관없이 영업활동이 이뤄지는 현지 국가에 법인세를 물도록 하는 것으로, 2016년 닻을 올린 ‘세원 잠식 및 소득이전 방지를 위한 다자간 협의체’(BEPS)의 첫 결실이 이뤄지는 셈이다.

 

지난 10년 새 빅테크는 어쩌다 금융위기의 주범이라던 대형 금융회사를 슬그머니 몰아내고 새로운 공공의 적이 되었을까. 독점적 지위를 무기 삼아, 시장경제의 생명줄인 경쟁의 토대를 무참히 파괴해버렸다는 게, 단연 첫손에 꼽히는 이유일 게다. 각국의 경쟁당국이 이들 빅테크와의 전면전 맨 앞에 선 배경이다.

총민간투자 대비 인수합병 금액을 기준으로, 지난 20년 남짓한 기간의 인수합병 규모는, 산업집중도가 역사상 가장 높았다는 19세기 말~20세기 초를 가뿐히 넘어섰다.

 

조세주권의 붕괴는 또 다른 폐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임기 절반께인 2018년은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노동에 매긴 총세율이 자본에 매긴 총세율보다 높아진 해다. 연방세·주세·지방세 모두를 따졌을 때, 자본소득 총세율이 20% 초반까지 떨어진 결과다.

수익이전과 탈세 기법을 총망라한 빅테크의 세금 부담은 이보다도 더 적었다. 데이터와 지적자산을 나라 밖으로 일찌감치 이전해놓은 탓이다. 구글이 지닌 가장 값진 자산의 법적 소유자는 주요 나라의 조세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지구상 어딘가의 ‘안가’에 숨어 있다.

 

이 시대의 공공의 적 빅테크와의 싸움은 성공할까. 섣불리 단언하긴 힘든 물음이다. 국제사회를 이루는 각국 경쟁당국과 세무당국의 역량을 총동원해야 할뿐더러, 소비자 편익을 내세워 독점을 변호하고 조세회피산업을 일군 글로벌 회계·컨설팅 법인과의 승부도 버겁다. 기꺼이 조세주권을 내다 파는 나라들을 국제사회가 과연 징벌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몰타, 룩셈부르크, 키프로스…. 국민소득 중 법인세수 비중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는,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선두 기업들의 고향이 아니다.

 

그럼에도 최근 뚜렷해진 일련의 흐름에 담긴 의미는 가벼이 볼 수 없다. 21세기 시장경제 체제에도 자기 교정의 동력이 작동한다는 최소한의 믿음 때문이다. 어쩌면 세계화의 폐해와 한계는 단절과 분리가 아니라 더 많은 세계화와 국제사회의 공조를 통해서만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른다. 개량이자 땜질일지언정, 자본주의의 생명력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중대한 경기침체가 찾아온 때마다 침체 이전의 호황 시절에 영웅이었던 사람들이 실은 악당이었다는 게 드러났다.”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의 이야기다.

 

플랫폼 기업은 우리의 24시간을 지배하는 우주이자 삶의 운영체제(OS)다. 플랫폼이란 멋진 신세계에 흠뻑 취한 우리는, 경쟁을 파괴하고 개인정보를 상품화하며 노동을 쥐어짜는 행위를 혁신이라 화답한다.

 

최근의 분투가 언젠가 실현될 묵시록에 맞선 귀한 백신이길.

악당은 결국 드러난다. 금융위기가 증명했듯이.

 

 

최우성ㅣ경제산업부장

morgen@hani.co.kr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999660.html#csidx3e24ab09162e6be8da8b0d4b6c9a6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