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사

태극기사의 일상생활과 관심사항을 모아모아 놓지요

명백히 틀렸거나 부당한 관점들

댓글 0

사법, 검경, 공권력, 공공 비리

2021. 6. 21.

명백히 틀렸거나 부당한 관점들

 

 

최근 일본군 ‘위안부’ 소송과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소송에서 상반된 판결들이 연이어 선고되었다.

사실상 동일한 사안에 대해 여러 개의 소송이 제기되었을 경우, 재판을 한 여러 개의 재판부에서 각기 다른 판단을 내리는 일은 재판 독립의 원칙상 자연스럽다.

이미 선고된 대법원 판결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사실상 동일한 사안에 대해 하급심 법원이 대법원 판결과 배치되는 판단을 하는 것도 우리나라 법제상 허용된다. 하급심 법원들의 각기 다른 판단은 상급심에 풍부한 관점을 제공한다. 그리하여 상급심은 좀 더 치열한 검토를 거쳐 최종적인 판단을 하게 된다.

이미 선고된 대법원 판결과 배치되는 하급심 법원의 판결은, 대법원의 판례 변경을 이끌어내며 규범 해석을 발전시키기도 한다. 나아가 선고된 판결들은 시민사회에 공개되어 지지 또는 비판을 받게 되는데, 민주적 사법 통제 또는 사법의 책임의 관점에서 바람직하다.

따라서 일본군 ‘위안부’ 소송과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소송에서 나오는 상반된 판결들과 이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논의는, 우리나라의 사법제도가 예정하고 있는 바를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의미 있다.

 

다만, 이 논의에서 명백히 틀렸거나 부당한 관점들은 제외될 필요가 있다.

 

첫째,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소송에서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1심 판결이 선고되자, 이를 계기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강제동원 소송과 관련하여 법원과 정부 그리고 일본 기업 대리인 사이에서 오간 비공개 협의를 정당화하는 시각이 재등장했다. 소위 사법농단 사태 중에서도 가장 심각하다고 꼽히는 위 사안은, 법원이 정부 및 피고와 함께 원고의 패소 방안을 비밀리에 논의하고 수행했다는 점에서, 범죄 성립 여부를 떠나 삼권분립 및 재판제도의 근간을 흔든다.

어떤 이들은 이를 ‘아미쿠스 쿠리에’(Amicus Curiae, 법정 조언자)라고 일컫는데, 명백히 틀린 주장이다. 아미쿠스 쿠리에는 결코 법원이 정부 및 피고와 함께 원고 패소 방안을 원고 모르게 뒷방에서 논의하는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설령 외교적 사안에 대한 사법 자제가 필요하다고 보더라도, 이는 적법절차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물밑에서 법원과 정부와 피고가 원고를 빼놓고 원고 패소의 재판 결과를 미리 정한 후, 그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재판 진행 방식을 협의하고, 그 물밑 협의에 따라 연극처럼 재판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사법 자제를 해선 안 된다. 이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채택한 국가의 방식이 아니다.

삼권분립과 적법절차의 원칙 훼손을 옹호해서는 안 된다.

 

둘째, 일본군 ‘위안부’ 재판이나 일제 강제동원 재판의 의미를 ‘금전배상’으로 축소해석하는 시각은 부당하다. 재판을 하다 알게 된 사실인데, 민사재판을 단순히 ‘누구에게서든 돈만 받으면 장땡인 절차’로 생각하는 당사자는 드물다. 재판 당사자들은 대부분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여 상대방에게 합당한 금전 지급의 의무를 지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금전 관계에서도 그러할진대, 하물며 인권침해 피해자들은 어떻겠는가.

심각한 인권침해를 겪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할 때에는, 금전적 배상을 받겠다는 목적 외에도, 자신이 겪은 일이 불법부당한 인권침해라는 점을 공적으로 확인받고, 피해자가 가지는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여 가해자에게 합당한 책임을 지우겠다는 목적을 함께 갖는다.

이러한 인권침해 피해자의 폭넓은 권리는,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유엔 가입 당사국 전원이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유엔 피해자 권리 기본원칙’에도 규정되어 있다.

자신이 겪은 피해의 심각성과 불법성을 공적으로 확인받지 못한 상태에서, 조국조차 그들을 잊어버리고 있었을 때, 그들 스스로 자신의 삶을 관통했던 불법을 확인하고, 가해자들에게 공적인 책임을 묻고자 시작한 재판이다. 피해자들의 주장이 법리상 항상 옳다고는 말할 수 없다. 따라서 피해자들의 청구를 각하한 법원의 판단에 동의를 표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입장이더라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단순히 ‘돈을 받아내기 위해서’ 재판을 받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명백히 부당하다.

최소한 이제는 우리나라도 잘살게 되었으니 구차하게 일본으로부터 돈 받아낼 생각 하지 말자는 식으로 피해자들을 모욕해서는 안 된다.

무엇을 주장하든 인간에 대한 예의는 지켜내야 한다.

 

류영재 ㅣ 대구지방법원 판사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00135.html#csidx66c3f50d14ce06cacf7577afaa63d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