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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선언, 기우와 회의론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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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상식

2021. 12. 6.

종전선언, 기우와 회의론을 넘어

 


 

 

지난 9월21일(현지시각)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한반도 종전선언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호소한 이래, 정부는 임기 말의 모든 외교적 노력을 이 사안에 집중하고 있다.
11월26일 김부겸 국무총리는 “종전선언은 한반도에서 살아온 모든 사람의 염원인 평화를 위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목표”라고 강조하면서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회원국들의 지지를 요청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도 최근 “종전선언은 남·북·미가 서로에 대한 적대와 대결을 내려놓은 채, 평화를 향한 신뢰를 형성하고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유용한 조치”라고 표명한 바 있다.
 
그러나 안과 밖에서 종전선언에 대한 시선은 다분히 냉소적이고 부정적이다. “종전선언이라는 종이 한장으로 무엇이 달라지겠느냐”는 비아냥, 북한의 비핵화가 마무리되고 진정한 평화가 시작되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출구에서 채택돼야 한다는 출구론 주장이 대표적이다. 종전선언이 현상 변경을 야기해 한반도의 안보 위협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등장한다. 유엔사령부 해체, 주한미군 철수, 한-미 연합훈련 및 연습 중단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관론이다.
 
현실적으로는 관련국과 충분한 사전 협의 없이 무리하게 밀고 나간다는 지적이 있다.
‘이중 기준’과 ‘적대시 정책’ 철회를 대화 복귀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는 북한, 표면적으로는 종전선언을 지지하지만 실제로는 회의적인 미국, 방관자 자세를 보이는 중국, 시기상조론을 펴는 일본의 입장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시점도 도마에 올랐다.
현 정부의 남은 임기는 다섯달, 대선은 석달밖에 남지 않은 지금 종전선언이라는 대못을 박아 차기 정부에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지적과 비판에 나름의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나, 과도한 우려로 보이는 부분이 적지 않다.
우선 선언의 성격이다.
문재인 정부가 제안하는 종전선언은 전쟁이 끝났다는 것을 확인(confirm)하는 것이 아니라, 70년 넘은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의지를 표명(affirm)하는 성격에 가깝다.
이러한 노력은 종이 한장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이를 통해 현재의 교착상태를 반전하고 신뢰를 구축하는 동시에 비핵화의 돌파구를 마련해보겠다는 것이다. 누구도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으려 하는 교착국면에서 종전선언 입구론이 당위성을 갖는 이유다.
 
현상 변경에 대한 우려를 보자.
물론 종전선언은 현재의 준전쟁 상태에 종지부를 찍고 항구적 평화로 가려는 현상 변경의 마중물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이미 밝혔듯, 종전선언이 유엔사 해체, 주한미군 철수, 한-미 연합훈련 중단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다. 이들 사안은 각각 한국의 주권적 결정 사항이고, 평양이 이를 주장해온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며, 종전선언이 이뤄진다 해도 이러한 구조는 당장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정부는 동맹과 안보 구조의 틀을 유지하되, 적대 관계를 개선하고 북한의 비핵화를 추동하는 출발점으로 종전선언을 보고 있다. 평화프로세스라는 긴 여정의 조심스러운 첫걸음일 뿐이다. 그만큼 어려운 협상이 될 것은 분명하나, 이로 인해 안보 위협이 증가할 것이라고 단언하는 건 지나쳐 보인다.
 
환경에 대한 분석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내세우는 전제조건은 상수다. 그러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근 남긴 긍정적 언급을 되짚어보면, 평양 역시 종전선언이 그러한 조건을 실현시킬 만능키가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영원한 전쟁’을 원치 않는 한 미국에도 종전선언은 충분히 고려할 만한 옵션이다. 당사국으로서 참여를 당연시해온 중국은 반대할 이유가 없다. 일본과는 충분한 협의가 필요하겠지만, 종전선언의 실질적 당사자가 아니므로 큰 변수는 아니다.
 
지금이 적절한 때인가, 회의론자들은 묻는다.
그러나 시기상조가 아니라 만시지탄이다. 가깝게는 2018년에 마무리해야 했고, 멀게는 30여년 전 냉전의 해체기에 끝냈어야 하는 일이다.
남은 임기가 얼마 없다는 이유로 한반도 평화의 돌파구를 마련한다는 외교적 노력조차 손을 놓는다면, 헌법적 의무를 외면하는 직무유기일 뿐이다.
차기 정부를 위해 대못을 박지 말라는 주장 또한, 평화와 안보를 정쟁으로 만드는 국내 정치용 프레임이라 하겠다.
 
종전선언으로 인해 평화로 향하는 길이 더 복잡해질 거라 염려하는가. 그러나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70년을 끌어온 전쟁을 끝내자는 선언은 상식이자 당위이고, 우리는 이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역량과 체제를 갖고 있다.
한반도의 젊은이들에게 핵무기와 영원한 전쟁을 유산으로 남길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문정인ㅣ세종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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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22061.html?_fr=mt0#csidxa616e9cf7c67aa6b12ec2a17307aee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