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사

태극기사의 일상생활과 관심사항을 모아모아 놓지요

31 202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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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물 관련 조선시대 성리학(주자학)과 기타 학자들의 학통과 계보

조선시대 성리학(주자학)과 기타 학자들의 학통과 계보 * 성리학(주자학) 계보 : 안향-안향의 6군자-이제현-이곡-이색-정몽주-길재, 권근 - 조선 성리학의 정통 계보는 이색, 정몽주, 길재가 시발점. * 이색의 가계 : 한산 이씨. 아버지는 성리학맥에 있어 이제현의 뒤를 이었다고 평가받는 이곡(李穀)이다. 세조와 함께 계유정난에 참가해 정난공신에, 금성대군과 혜빈 양씨 등을 숙청하고 세조를 즉위시켜 좌익공신까지 오른 이계전과 이계린이 이색의 손자다. 손자인 이맹균(1371~1440)은 세종대왕 치하에서 세자인 이향(뒤에 문종)까지 가르치던 스승이었으며 좌찬성까지 올랐으나, 여종과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 이를 안 부인 이씨가 그 여종을 굶기고 때려죽이게 했다. 그러자 이맹균은 여종이 잘못하여 아내가 때려..

22 202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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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물 관련 조선시대 인물들의 호(號) 사전

조선시대 인물들의 호(號) 사전 * 강세황 : 표암(豹菴), 표옹(豹翁) : “어려서부터 등에 ‘표범’처럼 흰 얼룩무늬가 있어서, 스스로 장난삼아 그렇게 호를 지었다.” 「표옹자지(豹翁自誌)」 김홍도의 스승. 문사(文士)였지만 시서화(詩書畵)에 뛰어나 삼절(三絶)이라고 불렸던 문인화가였다. * 강희맹 : 사숙재(私淑齋) : ‘사숙(私淑)’이란 ‘직접적으로 가르침을 받지는 않았지만, 그를 흠모해 홀로 그 학문과 도리를 배우고 익혔다’는 의미임. 맹자는 공자가 이미 사망한 후 태어났기 때문에, ‘자신의 학문은 공자를 사숙하면서 이룬 것’이라고 말함. 『맹자』 「이루하(離婁下)」편. 강희맹은 자신이 오직 성인을 본받아 학문을 익혔다는 사실을 말하거나, 자신의 학문과 예술은 홀로 터득한 것이라는 사실을 드러냄...

21 202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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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물 관련 김노경 사건(윤상도 옥사 사건)

김노경 사건(윤상도 옥사 사건) ​[개요] 윤상도는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나서 과거에 급제하여, 종6품 부사과(副司果)에 승진했다. 1830년 윤상도와 윤한모 부자는, 효명세자의 무능과 정2품 호조판서 박종훈, 종2품 어영대장 유상량, 종2품 유수를 역임한 신위 등, 탐관오리를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러나 윤상도와 윤한모 부자는 군신을 이간질하고, 반란을 선동했다는 이유로 전라도 추자도로 유배됐고, 1840년 김홍근의 상소(윤상도 옥사 재조사)로 유배지에서 다시 의금부로 압송되어, 국문을 받고는 아들 윤한모와 함께 능지처참 되었다. 김노경은 1830년 윤상도의 배후조종자로, 전라도 고금도로 유배되었다가, 1834년 순조의 배려로 해배됐다. 1837년(헌종 3)에 사망했다. 1840년 김홍근의 상소(윤상도..

19 202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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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물 관련 청장관 이덕무와 초정 박제가

청장관 이덕무와 초정 박제가 - ‘기호(記號)’와 ‘소전(小傳)’, 글로 그린 자화상 # 백탑파(白塔派)와 백탑시사(白塔詩社) 북학파의 1세대를 이끈 사람이 박지원과 홍대용이라면, 북학파의 2세대를 주도한 인물은 청장관(靑莊館) 이덕무와 초정(楚亭) 박제가였다. 특히 북학파의 2세대 그룹을 가리켜 ‘백탑파(白塔派)’라고도 하는데, 그 까닭은 이들이 현재 종로2가 탑골공원 안에 자리하고 있는 백탑(白塔, 원각사지 10층 석탑)을 중심으로 모여 살면서 학문적·문학적 교류를 나누었기 때문이다. 박제가는 ‘백탑에서의 맑은 인연’이라는 뜻을 담아 『백탑청연집(白塔淸緣集)』을 저술하였고, 그 서문(序文)에 그렇게 제목을 붙인 사유와 자신들의 생활과 활동 상황 등을 적었다. 이덕무와 박제가는 일찍이 유득공, 이서구 ..

18 202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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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물 관련 홍재 정조 이산

홍재 정조 이산 - ‘임금은 모든 신하와 백성의 스승‘이라는 군사(君師)라고 자처한 제왕 # 홍재(弘齋) : “군자는 도량이 넓어야 한다!” 조선에서 임금은 제왕인 동시에 한 사람의 유학자였기 때문에, 호를 지어 자신의 뜻을 드러내는 선비 문화에 영향을 받았다. 호학군주(好學君主)였던 정조는 스스로 다양한 호를 지어 자신의 뜻과 철학을 세상에 드러냈다. 홍재(弘齋), 탕탕평평실(蕩蕩平平室),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 홍우일인재(弘于一人齋) 등, 정조가 남긴 호는 다른 어떤 선비들의 호보다 독특하고 다채롭다. 정조는 임금이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학자에서 찾았던 사람이다. 정조가 가장 먼저 사용한 호는 왕세손 시절 자신이 거처하던 동궁의 연침(燕寢, 침소 혹은 침전)에 이름붙인 ‘홍재(弘齋)’였다. ..

18 202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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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물 관련 연암 박지원과 담헌 홍대용

연암 박지원과 담헌 홍대용 - 북학파의 비조(鼻祖) # 박지원과 홍대용의 도의지교(道義之交)와 북학파 18세기 조선의 문예 부흥과 지식 혁명을 이끈 두 개의 재야 지식인 그룹이 있었다. 그 하나가 성호 이익에게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학문을 배우고 사상의 영향을 받은 성호학파라면, 다른 하나는 연암(燕巖) 박지원과 담헌(湛軒) 홍대용을 비조(鼻祖, 시조)로 하여 사제(師弟) 혹은 사우(師友) 관계를 형성한 북학파라고 할 수 있다. 북학파는 자신들이 추구했던 신학문과 지식 경향을 가리켜 ‘이용후생학(利用厚生學)·경세치용학(經世致用學)·경세제민학(經世濟民學)·경세제국학(經世濟國學)·명물도수학(名物度數學)‘이라고 불렀다. ‘이용후생학’이란 나라 경제와 백성의 삶을 이롭게 하는 실용적인 지식과 기술 및 생활 도..

17 2021년 03월

17

역사, 인물 관련 성호 이익과 순암 안정복

성호 이익과 순암 안정복 - 실학의 산실(産室), ‘성호학파’ # 지식 혁명, 학문과 지식에 대한 사고의 대전환(大轉換) 역사에는 일세(一世)를 지배하는 시대적 추세와 정신 사조가 있다. 율곡 이이가 산 16세기를 ‘사림의 시대’, 우암 송시열이 산 17세기를 ‘보수의 시대’라고 표현한다. 18세기는 ‘혁신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18세기 100년 동안 정치·경제·사회·문화·예술 등 모든 방면에서 최대의 화두는 단연 개혁(改革) 혹은 혁신(革新)이었기 때문이다. 18세기 조선은 가히 ‘지식 혁명’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기존의 학문과 지식에 대한 사고의 대전환이 일어났다. 성리학(주자학)만이 유일한 가치이자 학문이라고 여겼던 전통적인 개념의 지식인(사대부)들이, 중인 이하의 계층이나 배우고 다루는 ..

16 202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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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물 관련 김만중(金萬重)

김만중(金萬重) - 1637(인조 15) 한성에서 출생, 1692(숙종 18) 남해 유배지에서 사망.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중숙(重淑), 호는 서포(西浦). 시호는 문효(文孝) 예학의 대가인 김장생(金長生)의 증손자이자, 김집(金集)의 손자이다. 아버지 익겸은 병자호란 당시 김상용(청음 김상헌의 형)을 따라 강화도에서 순절하여, 유복자로 태어났다. 1665년(현종 6)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이듬해 정언·부수찬이 되고, 헌납·사서 등을 거쳤다. 1679년(숙종 5)에 다시 등용되어 대제학·대사헌에 이르렀으나, 1687년(숙종 13) 경연에서 장숙의 일가를 둘러싼 언사로 인해 선천에 유배되었다. 이듬해 왕자(후에 경종)의 탄생으로 유배에서 풀려났으나, 기사환국이 일어나 서인이 몰락하게 되자, 그도..

16 2021년 03월

16

역사, 인물 관련 반계 유형원과 잠곡 김육

반계 유형원과 잠곡 김육 - 개혁을 설계한 땅, 부안 우반동과 가평 잠곡 # 반계(磻溪) : 우반동에서 조선 최고의 개혁서 『반계수록(磻溪隧錄)』을 저술하다 전북 부안 변산(邊山)에 위치한 우반동(愚磻洞)은, 허균이 일찍이 마음을 빼앗겨 정착하려 했을 만큼, 아름다운 산수와 풍요로운 물산을 자랑하는 곳이다. 허균은 1608년(선조 41, 나이 40세) 가을에 관직에서 해임되자, 정사암(靜思庵)이 있던 곳에 집터를 잡아 중수하고, 생계를 연명할 약간의 전장(田莊)까지 갖추었다. ‘정사암중수기(靜思庵重修記)’에 기록. 조정 관료와 사대부들은 허균의 기이하고 파격적인 행동을 탐탁하지 않게 여겼고, 1609년 1월, 허균을 서장관(書狀官)으로 임명해 우반동에서 한양으로 불러 올린 다음, 명나라로 보내버렸다. 명..

15 202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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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물 관련 우암 송시열과 백호 윤휴

우암 송시열과 백호 윤휴 - 조선의 주자 vs 사문난적 # 보수의 세기, 주자학의 광기(狂氣) 조선의 유학사를 말할 때, 대개 율곡 이이의 학통은 사계(沙溪) 김장생 → 신독재(愼獨齋) 김집 → 동춘당(同春堂) 송준길 → 우암(尤庵) 송시열로 전승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율곡은 ‘경장(更張)’과 ‘안민(安民)’을 정치의 최우선적 가치로 여긴 개혁적 성향의 성리학자였던 반면, 김장생 이후 김집과 송시열에 이르기까지 서인(특히 노론 계열) 세력은 ‘신분 질서’와 ‘춘추의리(春秋義理, 중화를 숭상하고 오랑캐를 물리친다)’를 정치와 사상의 최고 가치로 삼은 보수적 성향의 주자학자였다. 율곡의 성리학 사상과 정치 철학이 집약되어 있는 『성학집요(聖學輯要)』를 살펴보면, 그는 시무(時務)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마땅히..

13 202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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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물 관련 고산 윤선도와 공재 윤두서

고산 윤선도와 공재 윤두서 - 땅끝 마을 해남에서 꽃피운 예술혼 # 고산(孤山) : ‘외롭게 홀로 서 있는 산’과 같은 삶. ‘사림의 전성시대’였던 16세기에 영남사림이 도학(道學, 성리학) 연구에 힘을 쏟았던 반면, 호남사림은 문학 방면에서 큰 재능을 발휘했다. 17세기에 들어와 또 한 명의 걸출한 스타 시인을 배출하였는데, 바로 고산(孤山) 윤선도이다. 송강 정철과 고산 윤선도는, 한문(漢文)이 ‘보편 문자’였던 시대에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빛낸, ‘언어의 연금술사’라고 할 수 있다. 윤선도는 특별히 ‘자연미의 시인’이라고도 하는데, 윤선도의 작품들이 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는 것과 더불어, 그 언어와 리듬이 지극히 부드럽고 서정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윤선도는 사대부의 주류 문화였던 한시(漢詩..

11 202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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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물 관련 교산 허균과 죽도 정여립

교산 허균과 죽도 정여립 - 만민평등과 천하공물을 부르짖은 두 혁명가 # 교산(蛟山) : 이무기의 꿈 허균을 대표하는 호는 ‘교산(蛟山)’인데, 그가 태어난 강릉 외가의 뒷산 이름이 교산이다. 오대산 줄기가 바다를 향해 이무기처럼 기어가는 듯한 형세를 취하고 있는 교산 아래에 허균의 외가 터가 자리잡고 있다. 허균의 외가 마을에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었다. 1561년(명종 16) 어느 가을날, 이무기가 교산 아래에 있던 큰 바윗돌을 깨뜨리고 사라졌는데, 이때 두 동강 난 바위에 문처럼 구멍이 뚫려서 교문암(蛟門岩)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허균의 삶을 추적해 볼 때, 교산이라는 그의 호는 단순히 지명을 취한 것이 아니라 ‘이무기의 정기’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지은 「애일당기(愛日堂記)」에서, ..

11 2021년 03월

11

역사, 인물 관련 조선시대 당파와 당쟁(붕당정치)

조선시대 당파와 당쟁(붕당정치) 고려 말기에 혁명파와 온건개혁파로 양분되었던 사대부 계층은, 조선이 개국한 뒤 양반 관료 체제를 구성했다. 이들은 정치적으로 훈구파와 사림파로 갈라지기도 했다. 사림파가 완전히 정권을 장악한 이후에는 정국 상황과 이해관계에 따라 여러 당파로 분열을 거듭하며, 붕당정치로 들어가게 되었다. 1. 훈구파와 사림파 가. 훈구파 관학파라고도 한다. 훈신(勳臣)·훈구대신·훈구공신 등의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조선 초기 세조의 집권을 도와 공신이 되면서 정치적 실권을 장악한 이후 형성된 집권 정치세력이었다. 이들은 세조의 측근으로 등장하여, 그 이후 몇 차례의 정치적 격변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존재했는데, 이는 정치변동 과정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공신으로 책봉되었기..

10 202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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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물 관련 화담 서경덕과 토정 이지함

화담 서경덕과 토정 이지함 - 송도삼절과 최초의 양반 상인 # 화담(花潭) : 봄이 되면 바위틈 철쭉꽃이 만발하여 붉게 비추는 ‘꽃 못’ 박연 폭포와 황진이, 서경덕을 일컬어 ‘송도삼절(松都三絶)’이라고 하는데, 이 말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이덕무가 한중일의 한시(漢詩)들을 모아 엮은 시화집(詩話集)인 『청비록(淸脾錄)』과 이긍익의 역사서인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서경덕의 인품과 절행(節行)을 사모했던 황진이가 그를 추앙하는 마음으로 박연 폭포와 자신을 포함해 ‘송도삼절(松都三絶)’이라는 말을 지었다. 서경덕은 세상의 명성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화담(花潭) 가 조그마한 초가집에 거처하며, 지극히 단순하면서 소박한 삶을 살았다. 또한 평생 벼슬에 나가지 않은 채, 간혹 ..

09 2021년 03월

09

역사, 인물 관련 백사 이항복과 한음 이덕형

백사 이항복과 한음 이덕형 - 조선의 관포지교, 오성과 한음 # 백사(白沙) : 이름 없는 강 나루터 노인의 호(號)를 탐하다 조선의 관포지교라 할 ‘오성(鰲城)과 한음(漢陰)’으로 유명한 이항복과 이덕형. 이항복과 이덕형이 처음 만난 시기는 1578년(선조 11)으로, 이항복의 나이 23세, 이덕형의 나이 18세 때였다고 한다. 이항복은 19세에 권율의 딸인 안동 권씨와 이미 혼인했고, 이덕형 역시 17세에 이산해의 딸인 한산 이씨와 혼인해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두 사람은 처음 만났을 때 이미 성년이었고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장소 역시 감시(監試)를 치르는 과거 시험장이었다. 이항복과 이덕형은 1580년(선조 13) 같은 해에 과거에 급제해 벼슬길에 나섰다. 그런데 정승(政丞)..

08 2021년 03월

08

역사, 인물 관련 매월당 김시습과 서계 박세당

매월당 김시습과 서계 박세당 - 수락산이 맺어준 200년의 인연 # 매월당(梅月堂) : 매화와 달을 사랑했던 광사(狂士) 김시습은 천재였다. 수많은 천재 중에서도 천재가 인정하는 유일한 천재였다. 아홉 번이나 과거 시험에서 장원을 차지한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 천재 율곡 이이가 천재라는 기록을 남긴 유일한 인물이 김시습이다. 율곡은 ‘시습(時習)’이라는 이름 역시 김시습의 타고난 천재성에서 비롯되었다고 적었다. ··· (김시습은) 태어날 때부터 천품(天稟)이 다른 사람과 달랐다. 세상에 나온 지 불과 8개월 만에 스스로 글을 알았다. 최치운이 보고서 기이하게 여겨 이름을 ‘시습(時習)’이라고 지어주었다. 시습은 말은 더디었으나 정신은 놀라워서, 글을 보면 입으로 읽지는 못했지만 뜻은 모두 알았다. -..

05 2021년 03월

05

역사, 인물 관련 일두 정여창 · 사옹 김굉필 · 정암 조광조 · 회재 이언적

일두 정여창 · 사옹 김굉필 · 정암 조광조 · 회재 이언적 - 선비 정신의 사표(師表), 동방 사현(四賢) # 동방 사현(四賢)이란? 성종 시대에 중앙 정치 무대에 등장하기 시작한 사림(士林)은 무오사화→갑자사화→기묘사화→을사사화→정미사화의 참화(慘禍)와 재앙을 겪었다. 하지만 명종 말기 훈구파와 외척 세력의 마지막 상징이나 다름없었던 문정왕후가 죽은 이후, 권간(權奸) 윤원형 일파를 단죄하면서 정치적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하게 된다. 이후 사림은 선조 시대에 들어와서 조선의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권력집단으로 자리 잡아, ‘사림전성시대’가 열린다. 중앙 정치를 장악한 사림은 성리학을 국가 통치의 이념과 원리로 삼았으며,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 성리학의 적통(嫡統)과 도통(道通)의 계보를 세..

03 2021년 03월

03

역사, 인물 관련 퇴계 이황

퇴계 이황 - 평생 ‘물러날 퇴(退)’ 한 글자를 마음에 품고 살다! # 퇴계(退溪) : ‘물러날 퇴(退)자를 호로 삼은 까닭은? 이황은 1570년 12월 8일, 나이 70세로 죽음을 맞았는데, 죽기 나흘 전에 조카 이영을 불러 당부의 말을 남겼다. 내가 죽고 난 후 조정에서 관례에 따라 예장(禮葬)을 하려고 청하면 사양해라. 또한 비석을 세우지 말고, 다만 조그마한 빗돌에다 앞면에는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라고만 쓰고, 뒷면에는 향리(鄕里)·세계(世系)·지행(志行)·출처(出處)를 간략하게 서술하여 『가례(家禮)』에서 말한 대로 하라. ··· 일찍이 스스로 나의 뜻을 적어서 미리 명문(銘文)을 지으려고 했다. 그러나 자꾸 미루어 오다가 미처 끝내지 못한 채, 어지러이 흩어놓은 난고(亂..

02 2021년 03월

02

역사, 인물 관련 삼봉 정도전

삼봉 정도전 - 도담 삼봉인가? 삼각산 삼봉인가? # “이성계가 나를 이용한 것이 아니라, 내가 이성계를 이용해 조선을 세웠다.” 조선은 군사적 기반을 갖춘 이성계 세력과 유교적 이념으로 무장한 정도전 등 신진 사대부의 결합에 의해 탄생한 나라다. 이성계가 힘을 쓰는 ‘몸체’였다면, 정도전은 머리를 쓰는 ‘두뇌’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조선은 정도전의 정치 철학과 머릿속 설계도에 따라 건설된 셈이다. 이러한 사실은 두 가지 차원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그 하나가 ‘신권 정치(臣權政治)’라면, 다른 하나는 ‘한양 도성(漢陽都城)’이다. 臣權政治란 재상(宰相)이 국정 운영의 중심이 되어 통치하는 것이다. 유교 국가가 이상으로 삼은 ‘민본(民本)과 왕도(王道)’를 이루기 위해서는, 임금의 권력 행사를 제한..

26 2021년 02월

26

역사, 인물 관련 남명 조식

남명 조식 - 대붕의 기상을 품은 산림처사 # 남명(南冥) : 남녘 바다를 향해 날아가는 대붕(大鵬) 조식은 성리학자이지만, 동갑내기(1501년생)이자 학문적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퇴계 이황과 같은 전형적인 성리학자는 아니었다. 그는 당시의 성리학자들이 요서(妖書)라고 배척했던 책인 『장자(莊子)』에서 자신의 호를 취했다. 이 책의 첫 장에 ‘남명(南冥)’이라는 말이 나온다. ··· 북녘의 아득한 바다[北溟]에 물고기가 살고 있다. 그 이름은 곤(鯤)이고, 그 크기가 몇 천리나 되는지 알 수 없다. 이 곤은 어느 날 갑자기 새로 변신하는데, 새가 되면 그 이름을 붕(鵬)이라고 한다. 이 붕의 등 넓이 또한 몇 천리인지 알 수 없다. ··· 이 새는 바다에 큰 바람이 일어나면 남녘의 아득한 바다[南冥]..

25 2021년 02월

25

역사, 인물 관련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 - 조선의 대표 화가, 3원(三園) # 단원(檀園) : ‘선비[士]’가 되기를 바랐던 화가 김홍도는 조선 최고의 화가이다. 풍속화의 대가로 알려져 있지만, 산수화, 인물화, 불화, 동물화, 초충화(草蟲畵) 등, 그림에 관한 한 모든 방면에서 최고의 실력을 보여준 독보적인 인물이다. 김홍도의 출신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그의 증조부인 김진창이 만호(萬戶) 벼슬을 지냈다는 기록이 전해와, 집안이 원래 무반이었으나 중인으로 전락한 것으로 보인다. 어릴 적 그가 스승으로 모신 문인화가 표암(豹菴) 강세황의 『표암유고(豹菴遺稿)』 「단원기(檀園記)」의 기록으로 보아, 김홍도는 7~8세 어린나이부터 20세 때까지 경기도 안산에 살던 강세황의 문하에서 글을 배우고 그림..

24 202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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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물 관련 면앙정 송순과 송강 정철

면앙정 송순과 송강 정철 - 가사 문학의 산실(産室), ‘면앙정’과 ‘성산’ # 가사 문학과 호남가단(湖南歌壇) 무등산은 광주, 화순, 담양에 걸쳐 있는 웅장하고 수려한 산인데, 북서쪽 자락에 있는 성산(星山) 아래 담양군 남면 지곡리에 한국가사문학관이 자리하고 있다. 이 일대를 중심으로 반경 10여 킬로미터 안에 세워진 면앙정(俛仰亭)·식영정(息影亭)·소쇄원(瀟灑園)·환벽당(環壁堂)·송강정(松江亭) 등을 무대삼아 호남의 문사(文士)들이 수많은 국문 시가(가사 문학)의 걸작들을 남겼다. 영남사림과 기호사림이 ‘도학(道學, 성리학)’ 연구와 그 실천에 힘을 쏟은 반면, 호남사림은 ‘시가(詩歌)’에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였다. 이들의 문학 활동은 당시 조선 사대부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한시(漢詩)보다는..

23 202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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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물 관련 율곡(栗谷) 이이(李珥)

율곡(栗谷) 이이(李珥) - 기호 사림의 본향 # 율곡(栗谷) : 기호사림(畿湖士林)의 본향(本鄕), 경기도 파주 율곡 이이라면 신사임당과 강릉 오죽헌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정작 이이의 삶과 철학의 주요 무대는 경기도 파주의 율곡(栗谷)과 황해도 해주의 석담(石潭)이었다. 스스로 자호로 삼았을 만큼, 이 두 곳은 이이의 얼과 혼이 서려있는 장소다. 조선의 16세기는 ‘사림(士林)의 시대’였다. 사림의 역사는 멀리 포은(圃隱) 정몽주의 학통을 이은 야은(冶隱) 길재에게서 찾을 수 있다.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길재는 경북 구미에 은둔했다. 이곳에서 길재는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면서 성리학 연구와 후학을 가르치는 데 일생을 바쳤다. 당시 길재의 학통을 이어받은 사람은 김숙자였다. 김숙자는 다..

22 202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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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물 관련 여유당(與猶堂) 정약용(丁若鏞)

여유당(與猶堂) 정약용(丁若鏞) - 남인(南人)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 # 여유당(與猶堂) : “신중하라! 겨울에 시냇물을 건너듯. 경계하라!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하듯.” 여유당(與猶堂)은 다산(茶山)과 함께 사람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정약용의 대표적인 호. 그가 생전에 저술한 500여 권의 서적을 모두 모아 간행한 전서(全書)의 제목도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그의 고향 마을 생가에 오늘날에도 걸려 있는 당호(堂號) 역시 여유당(與猶堂)이다. 여유당이란 호는 18세기 이후 조선에서 ‘남인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를 표현하고 있다. 정약용은 친가와 외가 모두 남인의 명문가였다. 그의 친가 직계 조상들은 8대가 연이어 문신의 꽃이라 하는 옥당(玉堂, 홍문관)에 오를 정도로 대학자를 다수 배출했고..

20 202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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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물 관련 추사 김정희의 제주도 유배

추사 김정희의 제주도 유배 # 윤상도 옥사 사건 윤상도는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나서 과거에 급제하여 종6품 부사과(副司果)에 승진했다. 윤상도와 윤한모 부자는 효명세자의 무능과 정2품 호조판서 박종훈, 종2품 어영대장 유상량, 종2품 유수를 역임한 신위 등 탐관오리를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다. 윤상도와 윤한모 부자는 반란을 선동했다는 이유로 전라도 추자도로 유배됐다. 김노경은 윤상도 상소의 배후조종 혐의로 전라도 고금도로 유배됐다. 윤상도는 유배지에서 다시 의금부로 압송되어 국문을 받고, 아들 윤한모와 함께 능지처참 되었다. 효명세자는 순조의 아들이자 헌종의 생부이며, 고종의 양부이다. 3세에 왕세자에 책봉되어, 18세에 생부 순조를 대리청정하며 안동김씨 세도정치와 맞서 싸우다가 4년 만에 요절했고, 아들 ..

18 202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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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물 관련 대동법과 김육

대동법과 김육 @ 대동법 개요 대동법은 1608년 경기도에서 처음 시행되기 시작하여 1708년에 완성되었다. 호역(戶役)으로서 존재하던 각종 공납과 잡역의 전세화(田稅化)가 주요내용이었다. 대동법에서는 공물을 각종 현물 대신 미곡으로 통일하여 징수했고, 과세 기준도 종전의 가호에서 토지의 결수로 바꾸었다. 따라서 토지를 가진 농민들은 공납의 부담이 다소 경감되었고, 무전 농민이나 영세 농민들은 이 부담에서 제외되었다. 대동세는 쌀로만 징수하지 않고 포나 전으로 대신 징수하기도 했다. 대동법의 시행은 조세의 금납화로 상품화폐경제의 발전을 촉진시켰으며, 임진왜란 이후 파국에 이른 재정난을 타개할 수 있었다. 또한 공인들의 활동에 의해 유통경제가 활발해지고 상업자본이 발달했으며, 공인의 주문을 받아 수요품을 ..

17 202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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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물 관련 민중의 시대, 통일의 시대를 노래하던 백기완 선생을 추모하며

민중의 시대, 통일의 시대를 노래하던 백기완 선생을 추모하며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민중가이며, 만일 우리가 새로 국가를 만든다면 이걸로 하면 좋겠다 싶은 노래, ‘산 자여 따르라’라는 후렴구가 인상적인 ‘임을 위한 행진곡’의 노랫말을 만든 백기완 선생이 타계하셨습니다. 재수하고 있던 1987년, 6월 항쟁으로 인해 군부정권이 표면적으로나마 항복하고 직선제 대통령제가 부활됐을 때, 그는 대선 후보로 나왔습니다. 김영삼 김대중 후보의 단일화가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그는 민중후보의 단일화를 외치며 후보 자리를 내려놓았지요. 그렇지만 그런 일이 있었어도 가끔 거리에 나가면 대학생들이 소리를 높여 외치는 소리를 듣곤 했었습니다. “가자, 가자, 백기완과 함께 민중의 시대..

10 202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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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물 관련 작호론(作號論) : 명(名), 자(字), 호(號)

* 이 글은 「호, 조선 선비의 자존심」(한정주 지음)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작호론(作號論) : 명(名), 자(字), 호(號) - 이름[명(名)]과 자(字)와 호(號)는 어떻게 짓는가 @ 머리말 : 호(號)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조선의 선비들은 최소한 셋 이상의 호칭을 지니고 있었다. 명(名)과 자(字)와 호(號) 명(名)이란 ‘이름’으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이름과 같다. 자(字)는 관례(冠禮, 성인식)를 치르고 짓는데, 그 까닭은 ‘이름을 귀하게 여겨서 공경하기 때문’이다. 관례를 치르고 나면 함부로 이름을 부르지 않고 자(字)를 지어 부르도록 했다. 다, 자를 지을 때는 반드시 이름(名)과 연관 지어 짓도록 했다. 관례는 대개 15~20세 때 행해진다. 명(名)과 자(字)는 부모나 어른..

10 202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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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물 관련 근·현대사 인물들의 호(號) 소사전

* 이 글은 「호, 조선 선비의 자존심」(한정주 지음)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근·현대사 인물들의 호(號) 소사전 * 김구 : 백범(白凡) : ‘백정(白丁)과 범인(凡人)’에서 각 한 글자씩 취함. 독립운동가이자 민족 지도자로 대한민구 임시정부 주석을 지냈다. 해방 이후 남북 분단을 막고 자주적 통일국가 수립에 앞장서다, 반공 우익 세력의 사주를 받은 안두희에게 암살당했다. 백범(白凡)이라는 그의 호는 감옥에 갇혀있던 1913년에 지어진 것으로, ‘가장 미천한 신분인 백정(白丁)에서부터 평범한 보통 사람인 범인(凡人)에 이르기까지 모두 자신과 함께 애국심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소원을 표시한 것. * 김대중 : 후광(後廣) : 그가 태어난 고향마을인 전남 신안군 하의면 ‘후광리(後廣里)’ 지명에서 ..

14 2021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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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물 관련 가난의 품격, 그리고 혼자 노는 즐거움

가난의 품격 가난한 사람에게도 품격과 품위가 있다. 부귀와 권세와 이익 앞에 당당했던 이덕무의 삶과 철학은 자호에 잘 나타나 있다. 그 하나가 '선귤당'이라면, 다른 하나가 '청장관'이다. 선귤당(蟬橘堂)은 '매미(蟬)'과 '귤(橘)'을 취해 지은 자호다. 이덕무는 말하였다. "내가 예전 남산 부근에 살고 있을 때 집의 이름을 선귤이라고 했다. 집이 작아서 매미의 허물이나 귤의 껍질과 같다는 뜻에서였다." 작고 초라한 집에 살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했던 이덕무의 기백이 잘 드러나 있다. 청장관(靑莊館)은 이덕무가 죽음을 맞은 곳이다. 생전 그의 글과 기록을 모두 모아 엮은 책의 제목 또한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다. 이덕무를 대표하는 자호이자 당호(堂號)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청장관을 호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