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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세옥 2009. 5. 19. 00:16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의 ‘초정밀 문양’ 제작 비법 실마리 나왔다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 <경향신문사>
지금으로부터 6000년 전 한반도에 최첨단 나노 기술이 존재했다면 믿을 수 있을까. 기원전 4세기 무렵 청동기 시대에 만든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多紐細汶鏡)은 이 시기 한반도에 동아시아 최고 수준의 정밀 기술이 존재했음을 웅변하는 유물이다. 다뉴세문경 제작 방법의 비밀을 풀기 위해 지금껏 수차례 복원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을 정도다.

다뉴세문경은 청동기 후기에서 초기 철기 시대에 유행한 청동 거울이다. 다뉴(多紐)란 뉴(끈으로 묶을 수 있는 고리)가 여러 개 달려 있다는 뜻으로, 거울 뒷면에 달려 있는 고리 때문에 붙은 명칭이다.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에는 두 개의 고리가 달려 있는데, 청동기 시대 사람들은 이 고리에 끈을 걸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거울 뒷면에는 직선과 원으로 이루어진 기하학적 문양을 새겼다. 세문(細汶)은 이 문양이 정밀하다는 뜻에서 붙은 것으로, 무늬가 굵고 거친 거울은 따로 다뉴조문경(多紐粗汶境)이라고 부른다. 다뉴조문경은 청동기 전기에 많이 사용되었다.

지름 21㎝ 공간에 수많은 선과 원 새겨 다뉴세문경은 중국 동북 지방과 러시아 연해주를 비롯하여 한반도 전역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일본에서도 같은 종류의 청동 거울이 발견된다. 숭실대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숭실대 국보경)은 1960년대 충남 지역에서 발견된 것으로 지금까지 발견된 100여 점의 다뉴세문경 중 가장 크고 정교하게 만든 것이다. 숭실대 국보경은 한때 출토지가 강원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고(故) 한병삼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말을 빌려 국보경은 원래 논산훈련소에서 참호를 파던 군인들이 발견했는데 중간상인에게 넘어가는 과정에서 강원도에서 발견한 것으로 둔갑했다고 전했다.

국보 다뉴세문경의 비밀은 무엇보다도 문양의 정교함에 있다. 국보 다뉴세문경은 지금껏 발견된 것 중 가장 크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지름이 21.2㎝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좁은 공간에 무려 1만3000개가 넘는 정교한 선과 100여 개의 동심원이 새겨져 있다. 선과 선 사이의 간격은 불과 0.3㎜에 불과한데다, 원과 직선이 복잡하게 교차하면서 기하학적인 아름다움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현대 최고의 숙련된 제도사가 확대경과 초정밀 제도 기구의 도움을 받아 그린다고 하더라도 쉽지 않은 작업이다. 오로지 육안과 초보적인 수준의 기구에 의존해서 이처럼 정교한 문양을 그렸다는 것 때문에 신비감은 물론, 후대에 만들어졌다는 위조 논란까지 일고 있는 것이다.

위_ 수많은 직선을 이어서 그린 다뉴세문경의 삼각 문양. 아래 _ 다뉴세문경 외구의 동심원. <국립중앙박물관>
국보 다뉴세문경의 또 한 가지 놀라운 점은 그것이 거푸집에 청동을 부어 만든 주물 작품이라는 점이다. 도안이 아무리 정밀하더라도 그 도안을 바탕으로 주물을 떠내기 위해서는 고도의 주물 기술이 필요하다. 주물 기술에 문제가 있을 경우 도안의 정교함이 희생되어 최종적으로 만들어낸 거울이 도안과 같은 수준의 정밀성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거푸집이 출토된 적이 없기 때문에 거푸집의 재질과 형태는 더욱더 수수께끼에 휩싸여 있었다.

지난 10월 16일 숭실대 기독교박물관이 개최한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 과학적 보존 처리’ 학술대회에서 다뉴세문경의 제작 비밀을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나왔다.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팀이 발표한 두 개의 논문이 그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해 7월 숭실대 기독교박물관의 의뢰를 받아 올해 8월까지 거울 표면이 갈라지는 현상이 발생한 다뉴세문경에 대한 보존 처리를 진행하면서 제작 방법을 규명했다. 보존과학팀은 이 과정에서 국보경을 발견 당시와 같은 19개의 파편으로 분리하고 파편의 단면을 X-선형광분석기와 입체 현미경 등을 동원하여 분석했다.

다뉴세문경 제작의 비밀을 푸는 관건은 주석과 구리의 비율, 거푸집의 재질, 문양 제도 방법 등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우선 국보 다뉴세문경은 구리와 주석의 비율이 매우 이상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구리와 주석의 비율이 중요한 것은 주석 함유량이 많을수록 거울의 반사율이 높아지지만 주석 함유량이 일정 비율을 초과하면 인장 강도가 급격하게 떨어져 작은 충격만으로도 쉽게 깨지기 때문이다. 보존과학팀에 따르면 다뉴세문경의 구리 대 주석 비율은 65.7:34.3으로 다른 청동 거울에 비해 주석 함유량이 높은 편이고, 제작 당시 거울면의 빛깔은 은백색에 가까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거푸집의 재료는 모래인 것으로 밝혀졌다. 지금까지 거푸집의 재질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많았다. 몇 차례 복원 시도에서도 동판이나 납 등에 무늬를 새긴 뒤 밀랍판으로 눌러 모양을 본뜨는 방법을 사용했으나 최종 주물에서 무늬가 망가지는 등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 보존과학팀은 거울 면과 문양 면에 걸쳐 있는 주조 당시 발생한 결함 부위를 분석했을 때 거푸집에 사용한 주물사(거푸집 모래)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함으로써 거푸집의 재질이 모래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러나 완성된 거울의 단면에 모래가 밀려 올라간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거푸집이 그리 튼튼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1만3000여 개의 선과 100여 개의 동심원을 0.3㎜ 간격으로 어떻게 그려냈는지는 가장 큰 관심거리다. 보존과학팀은 화상분석기로 21개의 원에 대해 반지름을 구한 결과, 반지름 분포가 동일한 경향을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를 토대로 미루어볼 때 이 원들은 다치구(일종의 컴퍼스로 여러 개의 바늘을 갖고 있어 한 번에 여러 개의 원을 그릴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 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컴퍼스를 사용하여 한 번에 원을 하나씩 그린다면 이처럼 일정한 분포의 반지름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보존과학팀은 또 각각의 선과 동심원이 어떤 순서로 그려졌는지에 대해서도 분석을 내놓았다.

거품집 재료는 모래로 추정 그러나 해결되지 않은 부분 또한 많다. 우선 다치구를 사용하여 원을 그렸다고는 하지만 그 다치구를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았다. 1㎝ 길이 안에 무려 20개의 바늘을 박아야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초정밀 기계의 도움 없이 어떻게 다치구를 만들어냈는지는 수수께끼다. 또한 직선과 동심원이 그려진 순서를 추정했다고 하지만 확대경이나 초정밀 제도 기구의 도움 없이 청동기 시대의 장인이 어떻게 그처럼 복잡한 문양을 그려냈는지도 상상력의 영역에 있다. 무엇보다도 제작 방법에 대한 이론적인 분석과 실제 복원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현대의 장인이 실제 복원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 비밀이 완전히 풀렸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몇 년 전 다뉴세문경 복원에 도전했던 한 장인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다”라면서 그 정밀한 제작 기술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위대한 예술 작품은 분석할수록 더 많은 비밀을 드러낸다.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비밀을 간직한 채 현대인들에게 지속적인 찬탄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