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여행칼럼

태초 2010. 6. 4. 01:39

 

1.태국시위의 원인

 

태국시위의 원인은 합법적인 선거로 선출된 탁신정권을 부패한 정권으로 규정하고,  2006년 9월19일 총칼과 탱크를 앞세운 군부 쿠데타 때문이었다. 더욱더 문제가 된 것은 2008년 12월15일 합법적인 선거가 아닌 정치꾼들의 술수로 의회에서, 민주당 아피싯 총재를 27대 총리로 선출한 일이었다. 분명 태국의 법은 총선을 통해서 정권을 잡는 것이 수순이었는데, 군부세력은 이를 무시한 것이었다. 이에대해 자기들의 표로 뽑힌 탁신이 해외망명길에 오르고, 오랫동안 태국정치를 유린해온 태국 군부세력이 얼굴마담으로 아피싯정권을 내세워 또 다시 기득권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책을 연이어 내놓자 농촌의 저소득층과 도시의 빈민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레드셔츠들은 분노를 시위로 표현한 것이다. 

 

좀더 덧붙이자면 태국은 1932년 군부세력의 쿠데타로  절대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바뀐 이후, 근 80년간 태국의 정치사는 19번의 쿠데타가 일어났는데, 이는 거의 4년에 한번씩 쿠데타가 일어난 것이었다. 태국의 정치가 군부세력들의 쿠데타로 오랫동안  더렵혀지면서 국민들의 선거에의해 뽑힌 정권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못했고, 선거에의해 합법적으로 정권이 교체되는 민주화의 과정을 제대로 밟을 수도 없었다. 또한, 태국에서 계속되는 군부세력들의 쿠데타는 군부내에서 파벌을 조성할 수 밖에 없었고, 이는 쿠데타 이후 정권을 잡으면서 파벌조성및 목숨을 걸고 쿠데타에 참여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각종이권에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결국, 근 80년에 가깝게 태국군부세력은 태국정치를 철저하게 유린해서, 태국을 '세계최고의 빈부격차가 심한 국가'의 반열에 올려놓았고, 태국 정치권을 부패의 온상으로 올려놓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 군부80년 역사는 철저하게 태국 기득권층인 왕,왕족, 군부세력, 경찰, 화교, 방콕의 중산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책을 실시했고, 반면에 태국민 다수를 이루는 태국북부지역과 북동부지역의 농촌지역의 농촌 저소득층과 이들 지방출신이 대부분인 방콕 빈민층의 희생을 강요했다.

 

그에 반하여, 탁신 전 수상은 비록 엄청난 탈세를한 것은 분명 맞지만, 수상으로 재임시 탁시노믹스라고 불리우는 정책을 펼쳐 농촌과 도시의 빈민층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30밧 의료정책, 빚 탕감정책, 경제개발에서 소외되어온 지역의 우선개발정책등으로 빈부격차해소, 도농간의 갈등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지속했고, 한편 강력한 개혁정책으로 태국의 기득권층들이 운영하는 태국유흥산업의 대표적인 방콕의 주요환락가를 초토화시켰다. 이러한 탁신정책은 그동안 억눌려왔던 태국민 다수를 이루는 농촌과 도시의 빈민층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어주기 충분했다.

 

자기들의 손에 의해 뽑힌 수상이 자기들의 이익을 대변하자 태국국민들은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고, 이는 결국, 그동안 태국정치에 무관심했던  국민들 다수가 선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결과를 낳았다. 한편, 탁신은 태국 기득권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신문,TV방송으로부터 "포퓰리즘의 전형". "포퓰리스트"라는 비난과 멸시를 당했음에도 꿋꿋히 일관성있게 정책을 펼친결과, 그의 재임당시 2002년부터 고도의 성장을 이루어냈다.(탁시노미스참조)

 

따라서, 태국민의 다수를 이루는 농촌과 도시의 저소득층은 근 80년 가까운 군부세력과 기득권층의 정권이 이루지 못한 일을 탁신수상이 하나씩 해결하자 환호할 수 밖에 없었고 그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 것이다. 그런데, 이를 군부세력이 총칼과 탱크를 앞세우고 엎어버렸기에 이에 시위로 맞선 것이었다.   

 

(여기서 다시한번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은 선거로 뽑힌 수상이 탈세등 불법적인 일을 한 경우, 사법부의 처분에 맡기지 않고 군부세력이 나서 쿠데타로 정리하려 했다는 것, 그리고, 아피싯 총리를 군부세력들과 노련한 정치꾼들이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편법으로 뽑았다는 것이 이번 방콕비상사태의 또 다른 원인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절차를 무시하는 군부세력들의 빈번한 쿠데타가 태국 정치를 후퇴하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2.태국시위의 전개과정.

 

2001년 탁신이 이끄는 타이락타이당 총선압승에 이어 국민들 다수를 이루는  농촌과 도시의 빈민을 위한 정책, 태국 국가경제를 한단계 올려놓은 결과 2005년 2월6일 재집권에 성공. 탁신의 재집권 이후, 불안해진 기득권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언론들은 탁신일가의 탈세의혹을 계속 문제를 삼았고, 그 결과 태국의 기득권층을 상징하는 엘로우셔츠는 시위를 시작했다. 이에대해 탁신이 이끄는 타이락타이당은 재신임을 묻는 선거를 제안했고, 태국 기득권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민주당은 선거에서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거부했다. 타이락타이당은 민주당의 반대를 무릎쓰고, 총선을 한 결과 압승을 거두어 재집권에 성공했지만

2006년 5월8일 태국헌법재판소는 4.2총선 무효및 재선거를 판결했고, 9월19일에는 태국정치를 오랫동안 유린해온 군부세력들이 19번째의 쿠데타를 일으켰고, 태국의 국왕은 이를 추인했으며 탁신은 축출당했다.

 

2007년 12월 23일 총선에서 또 다시 탁신계인 "국민의 힘(PPP)"이 승리한 후, 탁신이 귀국했고, 이에 불안감을 느낀 태국 기득권층을 대표하는 "국민 민주주의 연대(PAD)"는 2008년 5월25일 시위를 시작했고, 태국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신변에 위협을 느낀 탁신은 영국으로 망명길에 올랐다. 8월 28일에 국민민주주의 연대(PAD)는 정부청사난입했고, 이어 9월 17일 태국의회가 탁신계인 솜차이 옹사왓을 총리로 임명하자 이에 반발하는 국민민주주의 연대(PAD) 는 정부 임시청사 점거,의사당 봉쇄,수완나품공항 점거등을 통해 솜차이옹사왓 총리의 퇴진을 요구했다.

 

태국의 기득권층의 이익에 동조하면서 기회적인 처신을 해온 태국 사법부는 또 다시,PPP등 집권3당의 해체를 명령했다. 그로인해 탁신계의 일부 철새정치인들이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기거나 편들고 나서는 기회주의적인 처신으로 민주당의 아피싯이 태국의

27대 총리로 선출되었다.

 

이에 2010년 3월14일 레드셔츠들이 방콕 랏차담넌 거리 집결후 의회해산, 조기총선을 요구하며 반정부 시위 돌입했고, 레드셔츠들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4월3일 태국시위대는 방콕 쇼핑중심가 라차프라송 거리 무단 점거했다. 결국,5월19일 태국 보안군은 무력강경진압을 전격실시해 2개월이상 지속되어온 방콕시위를 종결지었다.

3.그렇다면 태국 사태에서 왜 국왕은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은가?

 

현재, 태국국왕은 한국 나이 83세로 고령이다. 게다가  건강상태가 심각하게 좋지 않다.

동시에, 태국 국왕은 국가에 쿠데타나 위기가 있을 경우 일단 어느 한쪽이 우세하다는 것이 확실한 경우에 한해서 우세한 쪽의 손을 들어주는 처신을 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 태국인구중 투표권을 가진 사람 60%이상이 레드셔츠계열이자 탁신을 지지하는 세력이다.

앞으로 선거가 가까울뿐더러 선거를하면 레드셔츠 즉 탁신계열이 무조건 이기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태국의 군부세력과 기득권층은 선거를 두려워한다. 왕도 두려워한다.

 

현 외무장관이 미국방문중에 입헌군주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을 정도이고,

탁신계열의 정치인들도 태국에서 더이상의 왕은 필요없다고 떠드는 상황이다.

 

왕쪽에서 볼 때에는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그렇기에 군부세력을 대표로하는 기득권층을 심정적으로

지지하나 그렇다고 지지할 수도 없다. 선거하면 무조건 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결국, 태국의 정세가 미묘하게 돌아감에 따라 조용히 입다무는 것이다.

 

태국국민들 다수가 의식이 깨이면서 정치에 참여하고, 그러는 가운데 서서히 태국의 왕정도 기우는 모습이

엿보이는 것이다.

 

 

*위글은 일부 사실과 다를 수 있으며, 관점이 다른 의견이 나올 수 있으므로 참조정도만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