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소로몬 2015. 4. 1.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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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불교의 발전과 쇠퇴과정에서의 힌두교의 영향
이 은 구*
인도에서 발생하여 세계 종교로 발전한 불교가 왜 인도에서는 사라졌는가 하는 의구심을
간혹 갖게 된다. 본고는 이에 대한 원인을 불교 자체의 내재적 원인보다는 인도의 사회 문
화사적인 관점에서 불교가 인도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린 것이 아니라, 힌두교와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 융해된 것이라는 점을 규명해 보고자 한다. 다시 말하면 불교가 인도에서 생겨나
게 되는 배경과 발전 과정 그리고 쇠퇴의 원인을 힌두교 ‘세계’라는 맥락에서 파악해 볼
때, 불교가 인도에서 사라져버린 것이 아니라 힌두교에 점차 동화된 것이라는 점을 밝혀 본
다.
Ⅰ. 서 론
주지하는 바와 같이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하여 세계적인 종교로 발전하였다. 그 과정에서
우리 나라도 아시아 대부분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일찍이 불교를 받아들임으로써 불교는 한
국문화의 한 근간을 이루어 왔다. 그리하여 우리는 한국불교의 전통과 사상에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하지만 불교에 대한 이해의 장을 보다 더 넓히기 위해 불교 발생의 배경과 이의
발전 과정에 대한 이해도 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불교의 역사적 발전 과정에 대해 살펴보려면 우선 불교가 인도의 종교적, 철학적 토양 위에
서 그 시대와 문화의 산물로 발생한 것이란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
의 근본적인 이해는 당시의 인도적인 독특한 종교적 철학적 전통을 이해하는 가운데 가능
할 것이다.1) 불교는 힌두교 2)의 초기형태라고 할 수 있는 브라흐만교 3)의 형식주의적 의례
의 전통을 반박하면서 인간의 내면적 자기성찰을 시도한 혁신적 종교형태로 출발하였으므
로 불교의 사상적 본류를 이해하려면 인도의 사상적 전통의 뿌리인 힌두교에 대한 이해가
당연히 필요하다고 하겠다.
여기에서는 불교가 성장 쇠퇴해 가는 과정에 있어서 과연 인도의 종교적, 사상적 배경에서
얼마나 자유롭게 독자적인 사상을 설파할 수 있었는가를 힌두교와의 관계를 통해 살펴봄으
로써 인도에서의 불교의 위상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알아 본다. 동시에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가 쇠퇴의 길을 걷게 되는 원인을 불교 자체의 내재적 원인보다는 인도의 사회 문화사
적인 관점에서 힌두교와의 상호 영향관계를 통해 살펴 보고자 한다.
Ⅱ. 인도불교의 특성과 이의 힌두교와의 관계
계급 제도를 기반으로 하는 힌두교와는 달리 불교는 인간의 자유 평등적 가치관에 바탕을
두고 있어 세계 종교로 발전할 수 있었다. 주지하다시피 전통적인 힌두교는 계급 제도를 인
정함으로써 인도 이외의 지역으로 전파되기 어려웠다. 유대교가 유대인들의 선민의식 때문
에 그들만의 종교에 머물고 말았던 것처럼 힌두교 역시 카스트 제도라는 계급 제도에 그
기반을 두고 있어 이를 인정하고 있는 인도 내에서만 그 종교적 특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하면 힌두교는 힌두로 태어나 카스트의 위계질서에 편입되어 카스트의 구성원이 된
힌두들만이 신앙할 수 있다는 한계점을 갖고 있다. 여러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힌두교를 수
용한 경우에도 카스트 제도를 수반하는 계급 제도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불교 교단
(san.gha; 僧伽)에서 만큼은 어느 누구도 계급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었던 불교는
자유 평등사상에 기초하여 인도적 한계를 넘어 다른 아시아 지역으로 전파될 수 있었다.4)
비구니(nuns)를 불교 교단에서 인정하고 받아들인 것을 보더라도 불교는 과거 힌두 전통으
로부터 훨씬 관대하였다.5) 또한 불교는 인간 구원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정립하여 인간 구
원의 전형을 창출하였다.6) 여기서 나온 내세관은 인도 이외의 지역에서 적극적인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불교 교단의 성격은 카스트를 인정하지 않는 인간평등에 있었으며, 불교 사상은 그 교의를
실천하는 주체가 인간의 인격 속에 있음을 내세우는 인간성의 고찰이다. 이런 점에서 윤회
로 말미암아 인간의 계급이 나면서부터 고정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브라흐만교 7)와 비교해
볼 때 불교는 가치 기준부터 달랐다. 말하자면 불교는 외면적인 형식주의에서 내면적인 인
간주의로 가치를 전환시킨 혁신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이처럼 브라흐만교에 반대하여 베
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극단적인 고행이나 희생의식을 경시하였던 불교가 인도에서는 사
회성을 잃은 반면에 국경을 넘어 각 나라의 민간 신앙을 흡수하면서 아시아의 거의 모든
지역으로 전파되었다는 사실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붓다는 깨달은 바를 전하는 데에 있어서 주로 브라흐만들에 의해 사용되고 있던 산스끄리
뜨(sanskrit; 梵語)어가 아니라 마가다 지역에서 주로 쓰이던 빨리(pa?i)어를 사용하였다. 그리
하여 이 빨리어 성전에 밝혀진 초기불교는 어디까지나 비(非)브라흐만교의 입장에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개인적 해탈을 추구하는 상좌부 불교(소승불교)에서 후대
로 내려와 대중을 구제하는 대승불교로 전환함에 따라 산스끄리뜨어로 된 소위 범어(梵語)
경전이 다시 나오게 된다. 이는 힌두교가 부흥하면서 범어가 다시 등장하게 된 사실과 관련
하여 특히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8)
붓다의 가르침은 당시로서는 여러 면에서 놀랄만한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다. 붓다에게는 자
아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써 무명(無明, avidya)에서 벗어나는 지혜가 주된 관심사였다.
붓다의 기본 입장에서 볼 때 예배나 기도 등의 행위는 무의미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불교에
서는 예배의 대상이 없고, 진정한 의미의 신격이라는 것도 없어 불교는 무신론에 가까운 것
이다. 그래서 초기의 불교도들은 붓다를 종교적 수행자, 진리의 발견자 내지는 정신적 스승
으로 추앙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힌두교의 종교적 전통과 환경 아래서
붓다는 거의 신적인 존재로 비춰지게 되었다. 처음부터 붓다의 생애에 관한 몇 가지 구전
(口傳)이 있었다. 여기에다 불교 이외의 대중들 사이에 나돌던 민간설화나 전설을 포함하는
『자따까(Ja?aka)』(本生經)가 편집되었다. 이는 붓다의 전기(傳記)에 관해 기본적이고도 풍부
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으나 사료(史料)에서 붓다의 역사적인 모습은 점차 사라진다. 그 대신
붓다는 신앙적으로는 신격화되고, 철학적으로는 법(dharma)이 되고, 문학적으로는 이상화된
전륜성왕(轉輪聖王, CakravartI Ra?a?이 된다.
불교는 무신론에 바탕을 두고, 브라흐만에 의해 형성된 계급 제도와 의례주의(ritualism)를
배격하면서 모든 자의 평등을 제창한 일종의 브라흐만교에 대한 개혁적인 종교로 출발하였
다. 그러나 불교는 인도의 전통적인 종교 관념인 업과 윤회사상 9)을 받아들였다.10) 업과 윤
회사상은 카스트 제도라는 인도의 계급 제도를 이론적으로 정당화하고 있는 힌두교의 중심
사상인 것이다. 말하자면 힌두교의 업과 윤회사상을 받아들인 불교는 인도의 전통사상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불교는 카스트의 무의미함을 설하고 실제로도 그러한 구별
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계급 제도를 극복하는 사회 개혁 운동으로 나아가지는 못함으로써
힌두교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였다.
인도에서 굽따 왕조시대(320-647)는 힌두교가 그 면모를 완전히 갖춘 시기이다. 한때 아쇼까
대왕(기원전 269-232)의 비호 아래 불교가 북인도에서 주민 다수의 종교로 되는 듯이 보였
다. 그러나 불교가 인도 전체의 지배적인 종교로 되었던 때는 한 번도 없었다.11) 즉 불교는
브라흐만교와 힌두교의 한 가운데서 태어나 그 가운데서 자라났고, 이들보다 한 번도 우위
를 차지하지 못하였으며 언제나 한 부분만을 차지하고 있었다.12) 아쇼까 대왕 이후 꾸샨왕
조의 까니슈까 왕만은 불교를 적극 옹호하였다. 주화를 보더라도 불교 색채가 뚜렷한 주화
가 나왔던 것은 까니슈까 왕 때 뿐이고, 그 후의 왕들은 대개 힌두교의 쉬바 신을 섬기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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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조경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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