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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해니 2008. 11. 2. 23:39
[구효송칼럼]인식의 빈곤을 탓하랴
구효송 영산대 교수 (2008-10-31 오전 9:50) ㅣ 무카스미디어

인식의 문제, 국기원은 죽어가고 있다

10월 16일자로 작성된 나의 글이 제법 태권도 기구의 일꾼들 마음에 메아리를 울린 듯하다. 바로 그 다음 날에 태권도진흥재단 송동근 사무총장 명의로 실린 글이 그러하고 10월 27일자로 실린 국기원의 공식입장을 담은 이근창 사무처장의 글이 이를 보여준다. 지난 며칠 동안 좀 바쁜 일정을 보내고 나니 좀 숨을 돌리고 싶은데, 그럴 시간을 주지 않으니 약간의 원망이 따르기도 하지만 어쩌겠는가. 지금도 피곤에 떨어지는 눈을 추스르며 몇 자 적어보고자 한다.

이 와중에 현학적인 말을 아끼고자 하지만 글재주가 없으니 쓸 수밖에 없는 딱한 사정에 대한 이해도 함께 구한다. 우리가 어떤 현상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다음 사항을 전제로 한다. 먼저, 판단의 객체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그것이다. 여기에는 우리의 사회 현상 그리고 역사에 대한 견해 등이 모두 포함된다. 결국 역사를 배운다는 것이 바로 이 자리에서 내가 서 있는 위치와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니, 이를 역사관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고, <나/ego>를 품고 있는 우주라고 볼 때에는 우주론이라 불러도 크게 틀리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 우주를 받아들이는 판단의 주체인 <나>의 의식작용에 관한 이론을 일러 인식론이라 한다. 그런데 오늘날 발달된 자연과학의 영향으로 전통적인 우주론은 물리학 분야로 넘어간 듯하고, 인식론적 주제만 철학의 과제로 남은 듯하지만, 이도 역시 발달된 생물학적 연구의 결과 철학적 전유물이 아닌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이를 뒤집어서 보면 오히려 이런 현상이 철학의 광범위성을 역설하는 것으로, 철학의 영역을 흔드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든든한 철학의 뒷받침이 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다. 우리는 여태 우주라는 것은 그냥 주어진 것이고, 우리의 인식이라는 것은 그 주어진 우주를 단순히 그리고 피동적으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으로 파악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의 눈에 <인식된> 산은 그저 산이었고, 물은 그저 물이었다. 즉, 산은 그저 저기에 있는 것이고, 그것을 느끼는 나의 시각은 마치 사진기처럼 이를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었다. 과연 그런가?

이 부분을 조금만 더 확대해 보자. 생물학적인 입장에서 <나>를 낳아준 여자를 우리는 한국어에서는 ‘어머니’라고 부른다. 영어에서는 당연히 ‘mother’라고 칭한다. 그래서 우리는 어머니를 mother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조선시대에 살던 사람들에게 비춰진 ‘어머니’란 존재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갖는 ‘어머니’ 상과 같을 수 있을까? 이는 단순히 생물학적 계보가 같다고 사회적 의미도 같을 것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이다. 그리고 단어가 같다고 해서 시대를 초월해서 그 어머니란 의미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인식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다.

즉, 우리의 인식이란 시대적 그리고 사회적 여건에 의해서 길러진 인식일 수 있으며, 여기에는 단순히 사회적인 차이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차이도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면 우리가 배우고 공부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는 바로 <길러진> 혹은 <길들여진> 인식의 너울(이를 쇼펜하우어 및 니체는 인도철학의 사고를 물려받아 마야의 너울/Schleier der Maya라고 표현했다)을 걷어내는 작업인 것이다.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여러 계기로 인해 수많은 너울을 쓰고 살아가고 있다. 여기에는 단지 사회로부터 주어진 것도 있을 것이고 나의 개인적 욕심 때문에 스스로 만들어낸 너울도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인식의 공통분모를 가질 수 있다면 이것은 ‘마야의 너울’을 벗겨낼 때만 가능하다. 아니면 똑 같은 너울을 둘러쓰고 있어야 가능하지 않겠는가? 스스로 이 너울을 뒤집어쓰고 혹은 남에게 보이지 않는 너울을 씌워 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전략가적인 태도일 수 있으되 ‘참’을 찾는 사람의 태도로는 올바르지 못하다.

나는 그러면 왜 이러한 알쏭달쏭한 이야기를 적고 있는가? 현재 우리가 몸담고 있는 태권도계가 여러 가지 위험한 현상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여러 이유로 인해서 전혀 이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산인지 물인지 혹은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들 눈앞에 드리워진 너울 때문이다. 맑은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 너울이 드리워졌을 터이고, 이런 너울을 이중 삼중으로 뒤집어쓰고 있으니 상황 파악이 제대로 될 리가 없고, 상황 판단이 되지 않으니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주위에서 아무리 크게 외쳐도 따뜻한 물속의 개구리처럼 느끼지도 못하는 채 마지막을 향해서 달려갈 뿐이다.

지난 글과 함께 이 글을 쓰는 데에는 한 가지 큰 전제가 있다. 국기원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누가 죽여서가 아니라 스스로 죽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징조는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미 국기원 단증을 거부하는 대륙연맹 및 국가협회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 그 징조다. 이는 단순히 승단심사비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경제적 관점을 떠나서 태권도 본산의 상징인 국기원이 거부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또, 세계가 변하는데 국기원의 고인 물은 흐르지 않고 있다. 국기원을 장악하고 있는 인사들의 안이한 태도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보다 큰 문제는 새 시대에 적응할 의지가 결여되었다는 점이다. 스스로 이러한 의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니 아예 정부에서 손을 대겠다는 것 아닌가? 국기원에 포진하고 있는 당신들은 인정하기 싫겠지만, 당신들 외에 태권도를 아끼는 모든 사람들의 눈에는 국기원이 죽어는 것이 보인다.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나의 글에 대한 반박은 모두가 헛될 뿐이다. 국기원이 죽어가고 있다는 정확한 판단 하에서만 나의 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을 부인하지 마라


국기원 전경

나는 지난 글의 제목을 <국기원을 살려야 한다>로 잡았었다. 이것이 무카스 편집진에 의해서 <세계연맹과 국기원은 통합해야한다>로 바뀌게 되었다. 아마도 밋밋한 앞의 제목보다는 독자들의 시선을 끌기 좋은, 센세이션을 일으킬 제목을 뽑았을 것이다. 이 글에 대한 두 기관의 반박은 그 기관의 성격만큼 달랐다.

태권도진흥재단의 송동근 사무총장은 역시나 스스로 논란의 원인을 제공한 세계태권도아카데미(WTA)의 성격에 대해서 강변하고 나섰으며, 국기원은 혹시라도 자신을 죽일까 두려워하는 약한 자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말았다. 그런데 미안하게도 별 설득력이 없다. 일단 두 기관 공히 사고의 지평이 너무도 좁아서 유아적인 인식수준을 숨길 수 없었을 뿐 아니라 토론 상대자의 논리에 대한 이해조차 하지 못하고 있으니, 이 자리에서 이들의 발언을 하나하나 걸고 넘어가는 것이 별로 쓸모 있어 보이지 않는다. 다만, 생각나는 대로 몇 자 적어볼 뿐이다.

먼저, 송동근 사무총장의 글은 반박할 것이 아니라 그냥 흘려버려도 큰 일이 날 정도는 아니다. 다만, 태권도공원과 WTA의 관계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 뿐. 보도에 의하면 태권도진흥재단과 세계태권도연맹이 협력하여 WTA를 만든다고 했는데, 이 부분에 대한 해명은 보이지 않고, 이상한 주장만 되풀이하는 것이 눈에 걸린다. 태권도공원이 곧 WTA라고 하니 이 부분에 대한 명확한 입장 표명이 있어야 모두들 이해할 것 아닌가? WTA를 따로 만드는 것인가 아니면 <공원>이 곧 WTA인가? 만약 공원=WTA라면 태권도공원은 이름을 두 개 가지는 것인가? 그것도 설문조사까지 해서 만든 시설의 이름을 두고 또 다른 이름을 붙이는 것인가? 만약 후자의 경우가 맞다면 이는 스스로 오해의 소지를 불러온 것이나 다름없다. 태권도공원을 그대로 두고 그 공원에서 세계태권도교육을 국기원이 담당하게 하면 간단하게 끝날 일을 굳이 WTA라는 명칭을 붙여서 긁어 부스럼을 만든 꼴이 되니까 말이다. 그러나 만약의 경우에 WTA라는 세계태권도교육기구가 따로 만들어진다면, 그리하여 송 총장이 밝혔듯이 그 교육을 국기원이 맡게 된다면 이는 또 다른 분란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 될 것이고, 그 결과는 그렇지 않아도 어지러운 태권도계에 또 하나의 혼란을 던져주는 격이 될 것이기에 우려를 표하는 것이다. 과연 무엇인 진실인가? 태권도진흥재단과 태권도공원과 WTA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되는 것인가? 이 부분에 대한 명확한 답이 필요하다.

그러나 국기원은 조금 다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지금 국기원은 죽어가고 있다. 지금도 국기원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엉뚱한 고집만 부리고 있으니 딱할 뿐. 마치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주려고 애를 쓰는 사람에게, “나는 멀쩡한데 뭘 살리겠다는 것이냐?”며 대드는 꼴이다. 이것이 세계태권도본부를 자처하는 국기원의 공식적인 입장과 그 인식 수준이라니 기가 막힐 뿐이다.

내가 지난해에 작성한 국기원 비판의 글에 김병운씨가 반박을 한 이후로 제대로 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따분했는데, 이제 지난 10월 16일자로 작성된 나의 글 <세계연맹과 국기원은 통합해야한다>에 국기원 사무처장 이근창이 반박 논리를 펴면서 제법 정중하게 문장을 꾸며나가는 노력을 보였으나, 그 노력 뒤에 숨겨져 있는 인식의 빈곤이 딱해 보일뿐이다. 김병운씨의 수준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씁쓸하다.

이근창 처장은 몇 개의 단락을 지으면서 현안을 조목조목 언급하고 있으나, 모두가 뻔 한 소리다. 국기원은 지난 세월 동안 이렇게 훌륭했었노라고, 그래서 국기원은 살아야 한다고. 아니, 누가 죽인다고 했던가? 오히려 국기원이 죽기를 바라지 않는 마음을 WTA라는 유령까지 들먹이면서 국기원의 기능을 옹호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가? 죽어가는 것에 대한 자각과 측은지심이 없다면 국기원은 내 욕설의 대상이 될지언정 이 처장의 글이 감히 나에게 비판 및 토론의 대상은 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국제올림픽아카데미는 오히려 내가 언급하고 싶은 것이다. 그 상징성으로 IOA가 그리스에 본부를 두고 있듯이 국기원도 그 상징성을 살려서 소위 종주국에 둘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 것이 아닌가? 다만, 이 처장의 이름을 빌어서 이 글을 쓴 국기원의 눈에 문제가 된 것은 단지 한 가지 이유에서이다. 국기원과 세계연맹이 통합해서 국기원이 그 산하기구로 들어가는 모양새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자존심 때문일 게다. 그렇지 않은가?

이 알량한 자존심으로 당신들은 국기원을 어떻게 운영해 왔나? 이 처장의 언급을 그대로 옮겨보자. “국기원이 중앙도장으로서 정신과 철학을 지켜감으로써 전 세계 태권도인들에게 우리의 전통과 정신을 알리며 태권도의 가치를 높이고 있는 점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과연 그런가? 이런 발언을 아무런 가책도 없이 그대로 할 수 있는 이 처장의 정신세계가 의심스럽다. 과연 지금까지의 국기원은 “정신과 철학”을 제대로 지켰기에 최근의 누적된 단증 문제가 불거지고 국기원의 권위 추락을 걱정하는 이들이 많아진 것인가? 문화브랜드 태권도를 앞세우고, 이의 가치를 역설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그 뒤에서 갖은 지저분한 짓을 마다하지 않는 행위로 인하여 국기원은 이미 그 가치를 상실하고 말았다. 이제 국기원은 새로 태어나야할 시점에 와 있다.

게다가 하나 더. 당신들의 국기원에는 이미 스스로 일어설 능력이 없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는 국기원을 제외한 모든 인사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민간단체에 정부가 개입하는 모양새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미안하지만 나에게는 이 처장의 글이 마지막을 앞 둔, 그러나 마지막을 부정하고 싶어 하는 사람의 비명으로 들린다.


제대로 된 논쟁을 하자

그의 글을 한 마디로 줄인다면 그 내용은 단 하나. 어떻게 국기원이 세계연맹의 산하기구로 될 수 있느냐는 이 한 줄이다. 그렇다. 이 처장의 별 영양가 없는 글의 핵심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나의 의견은 국기원이 세계연맹의 산하기구로 편입되어도 괜찮다는 것이다. 그 형식을 갖추고 세계연맹보다 오히려 더 권위 있는 기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이 처장으로 대표되는 국기원의 불편한 심사가 숨어 있으니, 이렇게 장황하게 떠드는 나도 참 딱하게 됐다.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무엇을 논할까? 자기 죽음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세워두지 않은 사람이 그냥 죽겠다는데 나는 어쩔 것인가? 미안하지만 그렇게 둘 수는 없다. 국기원이 당신들의 개인 소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글이 길어지니까 세계연맹 산하기구로 편입하는 부분에 관한 논쟁을 다음 편으로 미루고, 우선 국기원이 살 방안이 무엇인지 묻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단증을 둘러싼 국기원 권위의 하락과 타 기관의 단증 발급을 막지 못할 경우 국기원의 대책은 무엇인가? 만약 WTA와 같은 ‘세계태권도 교육기관’이 설립된다면 국기원의 대책은 무엇인가? 그래도 ‘나 잘났다’고 큰 소리만 치고 있을 것인가? 숨만 쉬고 있다고 살아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여기에 대한 방안이 없다면, 그리고 무조건 국기원은 훌륭하다고만 할 것 같으면 이제 그 오만한 입을 다물라. 그리고 다음 글을 준비하라. 나는 논쟁을 체질적으로 즐기는 사람이니까 얼마든지 오라. 다만 고수에게 다가갈 때에는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