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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해니 2009. 4. 8. 06:37

정관대로 처리해라 !

신대륙 탐험에 성공한 콜럼버스(1451~1506, 이탈리아 탐험가)를 축하하기 위한 연회장에서 누군가 찬물을 끼얹는다. 어떤 사람이 “배 타고 항해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비아냥 거린 것이다. 그러자 콜럼버스는 사람들에게 달걀을 보이며 세워보라고 말했다.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자, “자 그럼 제가 해 보죠”하면서 달걀의 아랫부분을 깨서 세웠다. 이후 언뜻 보면 어려운 일 같아 보이지만 풀고 나면 쉬운 문제 혹은 남이 한 다음에 하면 쉬운 일을 빗대어 ‘콜럼버스의 달걀’이라고 했다.


콜럼버스의 달걀을 묘사한 그림

최근 태권도계에 절대 풀리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 문제가 있다. 국기원이다. 지난해 초 태권도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재단법인 국기원은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유인촌,이하 문체부)소속의 ‘특수법인(특별법이 정한 법인)’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서울시태권도협회와의 갈등이 증폭됐고, 이어 엄운규 원장이 지난해 6월 ‘원장 보직을 사임한다’는 내용의 사표를 제출했다. 이후 국기원은 10개월째 수장을 잃고 표류하며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초 서울시태권도협회는 14년 전에 진행된 국기원 사무실 증축을 빌미로 국기원을 흔들기 시작했다. 이에 엄운규 원장은 이사들에게 강경한 대응을 촉구했다. 하지만 이사들 대부분이 고개를 돌렸다. 서울시협회와 얽혀 있는 이해관계와 국기원 임직원간의 갈등이 원인이었다. 엄운규 원장은 국기원을 위해서는 새롭게 판을 짜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강수를 둔다. 사표를 던진 것이다. 이사진의 동반사퇴를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사들은 수장의 결단을 외면했다. 오히려 비난의 화살을 엄운규 원장에게 돌렸다.

물론 엄운규 원장이 사임했다고 해서 이사들이 함께 물러난 의무는 없다. 하지만 지난 10개월 동안 이들의 보인 행동은 상식이하였다. 국기원 현 정관 제13조(직무대행)를 보면 ‘원장이 사고 또는 궐위되었을 때에는 부원장이 원장의 직무를 대행한다’, ‘제3항 중 원장이 궐위되었을 경우 직무대행자인 부원장은 3개월 이내 원장 선출 전차를 밟아야 한다’고 나와 있다. 정관에 비쳐보면 현 이사들 모두 직무유기다. 지난 3월 열린 정기이사회에서는 직무대행을 맡은 송상근 부원장은 “직무대행은 그만하고 싶다. 대신 부원장은 계속 유지하겠다”는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발언을 해 분노를 샀다. 그리고 국기원정상화추진위원회 구성이라는 어이없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정관대로 처리하면 될 일을 가지고 구지 어려운 길을 가겠다는 것이다. 이들의 행동을 정관 9조 ‘고의 또는 과실로 본원에 손해를 끼친 임원은 해임할 수 있다’에 비쳐본다면 국기원 현 이사들은 모두 해임 사유에 해당 된다.

현재까지 국기원 이사(재적인원 19명) 중 절반이상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사표를 제출했다. 늦은 감은 있지만 고무적인 일이다. 현재 국기원 이사회는 사표를 던진 이사들로 인해 재적인원이 3분의 2이상이 충족되지 않는다. 국기원은 대한태권도협회(KTA)처럼 대의원제도가 없다. 이사회가 없으면 굴러갈 수 없는 구조다. 이사를 새로 선임해야 한다. 국기원 정상화를 위한 기회가 온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현 이사들이 일괄 사퇴 후 새롭게 판을 짜는 것이다. 그리고 국기원이 특수법인 전환에 대한 주도권을 가지고 문체부와 협상을 해야 한다. 이사회 선임은 국기원 사무처에 맡기는 것이 맞다. 정관 31조를 보면 ‘사무국장(처장)은 원장을 보좌하고 사무국의 업무를 장리하여 총무이사 사고 및 궐위시 그 직무를 대행한다’고 나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국기원 일부 이사와 사무처 책임자가 서로 반목하고 있다. 몇몇 이사들이 일괄사퇴를 거부하는 이유다.

일부 이사들과 충돌하고 있는 국기원의 한 직원은 “엄운규 원장의 사표에는 원장만 그만둔다고 돼 있기 때문에 이사장직은 유지하고 있다”는 식의 말장난을 하고 있는데, 엄운규 원장이 “김운용 전 원장이 사표를 제출할 때도 원장에 대한 사직이었다. 이는 원장과 이사장을 겸직하고 있기 때문에 이사장에 대한 별도의 내용이 없어도 함께 사직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이라고 밝힌 상황에서 괜한 주장을 펼쳐 구설수에 오를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해결의 키는 엄운규 원장이 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이사들의 일괄사퇴가 이뤄진다면 엄운규 원장이 한시적 혹은 조건부로 국기원으로 돌아와 이사 선임, 특수법인 등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가장 모양새가 좋다. 일각에서는 “문체부에서 관선이사를 파견 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리는데, 이는 국기원이 사고단체로 지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태권도의 본산이라는 국기원이 정부가 지정한 사고단체로 전락하는 것은 가장 최악의 상황으로 볼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정관대로 일을 처리한다면 국기원 문제는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다.

[무카스미디어 = 신준철 기자 / sjc@mook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