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좌파의 또 다른 지침서 - ‘전환의 시대’. 그 허구를 파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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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5. 16.

한국좌파의 또 다른 지침서 - ‘전환의 시대’. 그 허구를 파헤친다.

 

요즘 우리나라는 집권 3년차에 들어가는 문재인정부에 대한 중간 평가로 어수선하다.

어제는 대통령이 KBS에 출연하여 집권 2년차에 즈음한 1:1 대담을 가졌다. 주요의제는 대북관계, 경제문제, 인사문제, 요즘 핫 이슈인 패스트트랙이 주가 되었다. 여기자의 다소 공격적인 질문이 더 크게 뉴스거리가 되기도 했지만 역시나 문대통령의 답변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고, 진영의 편협성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이 대담 장면을 보다가 문득 최근에 읽은  '전환의 시대'(저자 : 박노자, 본명 : 블라디미르 티호노프)가 떠올랐다. 책 제목부터 좌파의 이념교과서라 불리우는  전환시대의 논리'(이영희 저)와도 매우 비슷하다.

 

참고로 세간에 많이 알려진 1970년대 운동권의 필독서였던 전환시대의 논리를 간략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전환 시대의 논리는 이영희씨가 10여 년 간 쓴 논문의 일부를 모은 선집이다. 이 논문은 중국의 부상, 베트남 전쟁, 한미일 관계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내용 자체는 일관성 있게 인간의 해방, 사상의 자유, 권위에 대한 저항, 이성의 승리 등을 피력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에 관한 내용은 중국의 부상과 이를 저지하려는 미국이 일본을 파트너 삼아 새로운 패권주의를 조성하여 과거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 할 수도 있다는 논리이다. 복잡한 국제정세에 관한 의견이니 여기에서는 논외로 하겠다. 중요한 문제는 베트남 전쟁의 실상을 통해 베트남과 미국의 입장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베트남 전쟁에 대한 그의 입장은 프랑스 제국주의, 식민주의에 맞서 싸운 베트남 인민의 80년 투쟁과 부패한 자유베트남 정권에 대한 민중의 투쟁으로 고려해야 할 전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는 미국의 참전이 남베트남의 자유 수호라는 반공 전략에 근거한다고 한다. 1960년대 중반 이후에는 그나마 체면 유지를 위한 것이었고, 3세계 국가와 그 국민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작동했음을 고발하고 있다. 당시 철저한 반공교육과 친미정책의 사회적 분위기에서 민족사회주의 시각을 통해 세상을 바라봤다는 점에서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 책은 70~80년대 당시 한국사회의 암울한 현실을 도피하고자 했던 운동권 학생들에겐 새로운 시각과 비젼을 보여주는 대단한 서적으로 인식되었겠지만, 어차피 초기 마르크스 이론이 보여주는 휴머니즘적 요소를 자본-공산, 부패-평등, 식민-자주, 독재-민주, 억압-해방, 폭력-이성 등으로 이분화하여 소개한 것이다. 그러나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고, 국제사회의 역학관계가 낱낱이 드러난 요즘 시대에 소개되었다면 분명 별 볼일 없는 가쉽거리로 치부되었을 것이다.

 

사회주의 시각을 가진 이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가 한국 좌파의 이론적 뿌리가 되었다면, 박노자 교수의 전환의 시대'는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사회주의자의 갈등적 시각에서 본 한국좌파의 행동지침서 쯤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한국인으로 귀화한 러시아인 박노자 교수가 쓴 전환의 시대는 한국사회의 문제를 단순히 정책 실패나 몇몇 권력자들의 무능과 부도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자유주의, 자본주의, 군사정권과 같은 구조적 부조리에 있다고 보고 그 안에서 무성한 적폐가 자라났다고 보고 있다. 특히 그는 적폐 시대로 상징되는 이명박·박근혜 정권 이후 초유의 대통령 탄핵을 거쳐 남북이 평화체제를 모색하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짧은 시기 동안 격렬한 변화를 겪어온 우리 사회를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그리고 지금이 남북 간 평화의 적기이고. 과거의 적폐를 털어내고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야 하는 전환의 기회란다. 지금이 탈분단, 탈군사화, 탈자본의 시대로 가야할 때란다. 이 책은 한마디로 혁명을 부추기는 한국판 사회주의 운동의 지침서다.

 

1. 탈분단의 시대를 향해

 

 

(요약 소개)

분단체제 속에서 자라온 대한민국은 여전히 병영사회다. 국가정보원과 기무사 등이 적폐 정권의 온갖 비리에 연루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만큼 이 기관들이 분단체제라는 그늘에 숨어 막강한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었으며, 그 어떤 사회적 견제도 받지 않고 불투명하게 운영되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개개인에게 분단체제로부터 비롯된 군사주의는 실로 뿌리 깊이 내면화되어 있다. 한국은 고강도·초장기 노동을 견딜 인력에게 복종을 훈련시킨다. 한국 사회의 근간을 규정해온 분단체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주목한 키워드는 탈 분단이다.

그는 통일이라는 오래된 구호 대신에 탈 분단이라는 용어를 일부러 골라 쓴다. ‘통일같이 거창한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남북이 최소한 정상적 이웃이 되는 일이 먼저라는 의미이다. 남한 사람들에게 북한은 방문은 커녕 통신과 서신왕래마저 두절되어 있다. 북한에 사는 친척들과 연락조차 취할 수 없는 상황은 세계사에 전례가 없는 국가적 잔혹행위다. 과연 이와 같은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남북이 통일로 바로 직행할 수 있겠는가? 그는 남북이 서로 동등한 평화통일을 이루려면 남측의 주장만이 아니라 북측의 의사도 똑같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양측의 통일 비전 사이에 구체적인 접점들을 찾고 통일을 준비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안들을 제안한다.

 

(비 판)

저자가 말한 대로 우리나라는 30년 이상을 군사정부 하에 살아왔다. 또한 일제 강점기의 잔재로 권위주의, 관료주의도 남아있고, 뿌리 깊은 유교 사상과 자본주의 융합인 신유교윤리도 존재한다. 한국인의 정신에는 이러한 복합적 요소가 잠재되어 있고, 세계화시대에 맞게 점차 수직적 사고에서 벗어나고 있는 중이다. 체제의 혁명적 변화를 꾀해야만 새로운 세상이 올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스스로 어떤 도그마에 빠져 있음을 자인하는 것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남북한이 서로 교류하고서로 인정하는 문화가 선행되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과연 분단이 장기화되고, 고착화된 원인이 무엇인가? 그 고착화의 원인을 김일성 3대 세습독재가 아닌 우리나라의 군사정권이나 보수정권에서 찾으려 하는 것은 억지이다지금이라도 우리가 적대가 아닌 우호의 손을 내민다고 해서 북한이 자신들의 이해타산, 즉 핵보유 인정, 체제보장, 경제협력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보장해 주지 않는 한 우리의 손을 잡아줄리 만무하다문대통령이 선의의 손을 내민 것을 굳이 탓할 수는 없지만무방비 상태로 너무 깊게 손을 내밀었다는 점에서 위험천만하다. 신뢰구축도 못한 상태에서 섣부른 경제협력을 약속하거나 일방적인 방어체제를 축소하거나 남한 내 반미, 반일 정서를 심화하는 것은 북한정권으로 하여금 오판 가능성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어느 때이건 통일을 위한 우리정부는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거나 국민의 안전을 볼모로 해서는 안된다. 우리 국민 역시 가슴속에 탈 분단을 간직하되, 머릿속에는 탈 북핵탈 독재를 외쳐야 할 때이다.

 

2. 탈군사화된 시대를 향해

 

(요약소개)

한국은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군사화된 사회다. 한국보다 더 군사화된 사회는 지금도 무력분쟁이 진행 중이거나 그런 분쟁이 당장이라도 터질 수 있는 이스라엘, 러시아, 아르메니아 같은 강성 징병제 국가들 정도다. 그동안 한국만큼 많은 병역거부자들을 매년 감옥에 보내는 나라도 없었다. 군사주의는 그 반대자들에게 설 자리를 허락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 일상에 여과 없이 침투해 있다. 이미 대한민국은 군대사회사이에서 뚜렷한 경계를 찾아내기가 힘들 정도다. 군사화된 학교와 직장에서 얼마든지 권력의 비대칭에서 비롯된 각종 들의 행태를 볼 수 있다. 박노자 교수는 그간 사회의 공분을 일으킨 인분 교수 사건이나 임금을 체불하며 폭리를 누렸던 재벌들의 치부를 조국경제 부흥이라고 부르는 세태 등을 꼬집으며 새로운 정권에서 탈군사화가 국정의 핵심 과제로 부상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나아가 현재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미투 운동이나 여혐같은 젠더 이슈들을 돌아보며, 군사화된 사회가 동시에 여성혐오 사회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분석한다.

 

(비 판)

우선 우리나라는 아직도 세계에서 가장 위협적인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휴전국, 즉 아직도 전쟁 중인 나라다. 이스라엘, 러시아 못지않게 첨예한 이념적 갈등을 겪고 있는 나라이다. 현재 우리 실정을 생각하면 징병제는 당연하고, 군사적으로 열세에 몰리지 않도록 군비도 확장하고 우방국들과의 상호방위체제를 구축하는 것도 필요한 나라이다. 정작 군대와 사회가 분리되지 못하고 있는 나라는 북한인데, 혹 저자가 남북한을 혼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늦은 감이 있지만 양심적 병역거부자 문제는 해결되었고, 우리 사회에 팽배되어 있는 여혐, 젠더 논란은 사회 내의 여성역할론을 부각해야 그 권리를 찾을 수 있다. 미국, 중국과 같은 나라의 여성은 남성 못지않게 비교적 평등한 사회적 대우를 받는 곳이다. 그 이유는 오랜 기간 동안 남성 못지않게 여성의 사회적 기여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제주도 해녀를 떠올리면 알 수 있다. , 자신의 지위는 남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역할을 찾을 때 획득되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여자들도 당당히 군대를 가야 한다고 본다. 아울러 우리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런저런 갑질 논란은 군사화된 사회 탓이라기보다는 건전한 시민의식의 부재라 보여 진다.

 

3. 탈자본의 시대를 향해

 

(요약소개)

박노자 교수는 한국을 브레이크 없는 극단의 자본주의국가로 사회의 인적 재생산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분석한다. 학벌 차별과 대학 재벌의 탐욕이 한참 올려놓은 각종 교육비, 투기로 앙등한 집값 등이 이 사회를 거의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없는 곳으로 만들었다. 이념 문제를 떠나서 일단 이 나라가 살아남으려면 "기업하기 좋은 나라"에서 "다들 골고루 살기 편한 사회"로 개조해야 한다며,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교육·의료·주거 등 생존과 재생산에 가장 긴요한 부분들은 시장이 아닌 공공화가 필수라고 주장한다.

또한 지금의 대한민국은 재벌들의 볼모 신세라며 민주주의가 한국에서 제대로 기능하려면 탈자본의 시대로 나아가야 하며 국가경제에 핵심 역할을 하는 기업을 공유화하고 기업 경영에 노동자를 참여시켜야 한다고 한다.

이 책은 한국사회가 불행사회를 벗어나는 길을 찾으려면 남과 경쟁하지 않고, 서로 어울려 평등하게 살고, 생계가 아닌 자아실현을 위해 노동을 하고, 폭력·폭언을 당하지 않는 존엄한 삶을 사는 것이라 했다. 박노자 교수는 이제 우리 사회가 단 1%가 아닌 국민 대다수가 공유할 수 있는 꿈을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야말로 한반도가 분단체제를 벗어날 평화의 적기이며, 대한민국이 판을 바꿀 전환의 기회라고 말한다.

 

(비판)

자본주의 국가의 가장 큰 약점은 재벌에 의한 자본의 집중과 사회전반에 따른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다. 이는 시장경제체제를 시행하고 있는 전 세계 모든 자본주의국가가 앞으로도 꾸준히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가 한국사회의 부정적 측면만을 지나치게 부각하여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정 정부, 특정 계층을 적폐 대상으로 삼은 것도 불합리하다. 게다가 이제 우리는 감히, 다수가 공유할 수 있는 꿈을 조직한다.” 는 전제 하에 이를 전환의 시대가 왔다고 말하는 박노자 교수가 말은 너무도 섬뜩하다점진적 사회주의자의 성향을 훨씬 뛰어넘어 사회의 근간을 뒤흔드는 혁명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이 떠오른다. 이 책의 집필 목적이 더욱 의심스러운 것은 우리사회의 부조리를 해결하는데 굳이 북한과의 분단체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있다. 마치 사회주의국가로의 통합을 간절히 바라는 모양새이다.

 

결 어

나는 이 책을 통해 왜 문정부가 정권획득 후 적폐세력이라 일컬어지는 이전 보수정권에 대한 전방위적 탄압을 하게 되었는지, 국민상식 수준을 뛰어넘는 대북관계와 군사합의, 반미, 반일을 외치며 독자노선에 가까운 외교적 행보를 걷고 있는지, 문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말했던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가 무엇인지도 알 것 같다혹시 문정부는 19C 마르크스가 꿈꾼 유토피아를 한반도에 부활시키려는 건 아닐까? 21C 우리나라는 전쟁이나 폭력혁명이 아닌 정상적 방법으로는 원시시대로 돌아가지 않는 한 공산사회가 될 수 없고설사 그런 세상이 온다해도 재화가 화수분처럼 넘쳐 모든 인간의 이기적 욕심을 충족시키지 않는 한 우리가 원하는 완전한 사회는 올 수 없다. 국가는 전능한 조직도 아니고 국민 전체의 행복을 책임질 수도 없다. 다만 우리가 만든 국가라는 공동체는 모든 구성원에게 최대한의 자유와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되 경쟁에서 뒤쳐진 사람을 위한 안전망이 되어주면 된다. 국가가 국민 개개인의 삶을 모두 책임지려 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생각에 매몰되면 결국 통제와 간섭을 낳게 되고 거대한 수용소의 빅브라더가 된다.

나는 문대통령이 꿈꾸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위험천만한 세상을 결코 맞이하고 싶지 않다.

 

2019. 5. 15  푸른별